사는게 기적 입니다

사는 게 기적입니다/눅11:24-32

사는 게 기적입니다
눅11:24-32





요즈음처럼 두려운 시대가 없는 것 같습니다. 모든 것이 불안합니다.
걱정만 하려고 하면 모든 것이 걱정입니다.
한번 상상해보십시오, 쇼핑을 간다고 상상해 보십시오.
차를 시동 걸때 급발진 사고 날까봐 걱정이 됩니다. 한강 다리를 건너기 무섭습니다.
백화점이 무너질 것 같아 가능한 지하 주차장에 댑니다. 비행기 테러 때문에 고층에 올라
갈 수 없습니다. 엘리베이터가 떨어질까 봐 두렵습니다. 우연히 옆에 편지 통에 밀가루 같은
것이 보여 두렵습니다. 은행을 갑니다. 은행원이 몇억씩 가지고 사라지고 문을 닫으니 돈을
마음놓고 맡길 수가 있습니까? 식사를 하러 스낵에 내려갔습니다.
마음놓고 먹을 것이 없습니다.
중국 납 때문에 게탕을 먹을 수 있나, 광우병 때문에 소고기를 먹을 수 있나!
에라! 라면이라도 끓여 먹어야 겠구나! 하면 여전히 공업용 뼈를 쓰는 것은 아니까? 유전자
변형 콩을 쓰는 것은 아닐까? 그렇습니다.
남편에게 전화가 옵니다. 회사가 구조조정을 하고 있습니다. 남편 또한 우울합니다.
아니! 휴대폰도 오랫동안 사용할 수 없습니다. 전자파가 나오고 아니 ! 왜 이렇게 사용 비는
비싼지 마음놓고 사용 할 수 없습니다.
큰애가 전화 옵니다. 입시를 1년 남았습니다. 공부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모릅니다.
장관을 믿고 공부하던 학생들은 공포에 질렸고, 망연자실합니다.
작은 아이도 학교에 맘대로 보낼 수 없습니다. 아이들끼리 왕따 시키고, 오히려 교장 선생
님이 아이를 이상하게 이뻐 할까봐 걱정을 합니다.
10만원을 가지고 나가면 살 것이 없습니다. 물가가 너무나 올랐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잘 들어보지 못한 외국 브랜드는 많이 늘어났습니다.
다 생각 접어놓고 열심히 공부 하겠다고요? 석, 박사 실직자는 상상을 초월합니다.
올해 서울대생들의 30%만 취직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문명은 발전하지만 우리는 방황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살아야 할지 막막하고 두렵습니다. 이럴 때가 문제입니다.
이때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정신이 없습니다. 그리고 아무 믿을 것이 없는 이때에
삶의 분명한 지침이 우리에게 있습니까?
오늘 본문은 바로 이야기입니다. 정말 불안한 이 세대에 살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합니다.

오늘 예수님께서는 \\\"악한세대와 같이 절대로 표적에 몰두하지 말라\\\"라고 하셨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이렇게 불확실하고 두려운 세상에서는 표적을 구하게 됩니다. 그래서 미래학
자들은 21세기가 되면 미신이 더욱 기승을 부리게 될 것이라고 예언을 했습니다.
옳습니다. 더욱더 미혹하는 영들이 강해 질 것이 분명합니다.
본래 세계 역사를 볼 때 전쟁 중에 대부분 사이비 종교가 성행하였습니다.
왜 그런 줄 아십니까? 이렇게 불안해지면 무엇인가 인간은 보기를 원합니다.
표적을 따르려고 하는 것입니다. 표적을 보려고 애를 씁니다. 불안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 시대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사람들은 불안했습니다. 로마 군인 밑에서 언제 죽을지
모르는 상황입니다. 경제도, 정치도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이들은 하나님을 믿었지만 불안하
기 때문에 무엇인가 보려고 했습니다.
본문 29절을 보십시오, 이 날도 예수님께 무리들이 모여 기적을 기다립니다. 어떻게 보면 이
해되지 않습니까? 예수님은 지금까지 기적을 행하신 분이십니다. 그런데 갑자기 \\\"이 세대는
악한 세대라 표적을 구하되 요나의 표적밖에는 보일 표적이 없다\\\"고 하신 것입니다.
왜 표적을 구하는 것이 악한 세대일까요?
오늘 본문과 같은 내용인 마12장 39절을 보면 \\\" 악하고 음란한 세대라 표적을 구하되 요나
의 표적밖에는 보일 표적이 없나니\\\" 라고 하셨습니다.
악하고 음란한 것이 이유입니다. 그래서 표적을 구하는 것입니다. 그들의 동기가 문제였습니
다. 기적을 구하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표적을 구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배를 드리는 이유도 마찬가지지요. 혹자들은 예배를 드리지 않으면 매맞을까봐 두
렵기 때문에 예배를 드린다고 합니다. 그런데 어떤 분은 너무나 예배를 드리고 싶습니다. 내
가 할 수 있는 최선의 것은 예배임을 알고 귀하게 예배를 드립니다.
동기가 중요합니다. 이것을 오늘 예수님께서는 음란하다고 표현하고 계십니다. 남편과 아내
가 있는데 다른 사람에게 관심을 갖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세대를 의미합니다. 음란한 영혼
들은 기적을 찾아 해매게 됩니다. 이것이 문제입니다.

저도 처음 은혜 받고 신앙 생활을 할 때 얼마나 표적의 무지개를 찾아 다녔는지 모릅니
다. 천사를 본 분을 만났습니다. 성가대에서 천사가 날개 짓을 한다고 합니다. 얼마나 부럽
습니까? 어떤 분은 진짜 이상하게 좋은 냄새가 납니다. 그리스도인의 향기라는 것입니다. 진
짜 귀신이 나가더라구요. 능력 있는 자들은 다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기적을 찾아 헤
맬 수 밖에요. 이것이 우리의 모습입니다.

지난주 성경공부에서 그런 말을 나누었습니다. 참 이상합니다. 이단에 빠지면 아무 것도 안
보입니다. 어떤 분이 이단에 빠졌습니다. 그런데 얼마 전에 예수님이 오신다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남편과 함께 흰옷을 입고 마중하러 나갔습니다. 그런데 오시지 않았습니다. 그것을
보고 남편은 화가 나서 그 이단교회를 나가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부인은 열심히 참여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공부 하시는 분한테 제가 물어보았지요. \\\"그 분 매우 어렵게 사신 분
이시지요\\\" 그랬더니 힘들게 살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바로 이것입니다. 우리가 어려움을 당할 때 은혜 받을 때지만 유혹에 빠지기 쉽습니다.
경제가 나쁩니다. 정치가 어렵습니다. 회사가 망할지 모릅니다. 아이들은 제멋대로 입니다.
남편은 남편대로 아내는 아내대로 삽니다. 이것이 함정입니다. 이 함정은 우리를 기적을 찾
게 만드는 것입니다. 어려울수록 정신을 차려야 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도 바로 이
함정 때문에 망했습니다.

출애굽기 31장에 보면, 이스라엘 백성이 출애굽은 멋있게 성공했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생
깁니다. 그들은 미래가 불안했습니다. 미래가 보장되지 않았고, 만족이 없었습니다. 앞일이
걱정되었습니다. 설상가상으로 모세는 하나님을 뵈러 시내산에 올라갔습니다. 40일이 되어도
내려오지 않는 것이 아닙니까? 그래서 그들은 하나님은 눈에 보이지 않으니까 보이는 기적
을 원했습니다. 금송아지를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진노를 사게 된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저희 교회는 2년이 되어 갑니다. 어려움도 기쁨도 많았습니다. 많은 분들이 이
곳을 다녀갔습니다. 그런데 지나간 많은 분들을 생각해보면 기적을 원하는 것이었습니다.
설교가 하나님의 말씀을 하는지 아닌지 살펴보아야 하는데 내 맘에 맞는지 그렇게 생각하는
것입니다. 올바른 말씀이 선포되느냐 보다 목사님이 나에게 맞는지 교회가 하나님의 교회보
다 자신이 경험하고 원하는 교회로 만들려고 했던 분들을 분명히 저는 보았었습니다. 참으
로 두려운 일입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내가 열심히 주님을 섬기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교회에 출석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무엇을 위해서 하나님을 위해 봉사합니까? 또 다른 기적을 바라고 이 자
리에 와 있는 것은 아닐까요?
가장 중요한 것은 불안한 시대라고 해서 기적이 우리 신앙의 목표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이적을 목표로 삼지 말아야 합니다. 예수님의 당부입니다.
그렇다면 그리스도인들은 무엇을 바라고 살아야 합니까?
그것을 가르쳐 주기 위해 예수님께서는 두 가지 예를 드십니다.
남방 여인의 사건과 니느웨 사람들의 사건입니다.
31절을 보면 남방의 여왕이 솔로몬의 명성을 듣고 찾아와서 솔로몬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듣
고 돌아갔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의도가 무엇입니까?
남방여인은 이방인이었습니다. 이 남방여인은 멀리서 주님의 말씀을 들으러 찾아왔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방여인은 회개하였습니다.
그러나 유대인은 하나님의 백성입니다. 주님께서 유대인을 찾으러 갔습니다. 그러나 유대인
들은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니느웨 사건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들은 이방인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들은 요나 선지자 이야
기를 듣고 회개하였습니다. 유대인들은 회개하지 않았습니다.
결국 이렇게 예를 들면서 말씀하신 요점이 무엇인줄 아십니까? 28절입니다.
\\\" 예수께서 가라사대 오히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자가 복이 있느니라 하시니라 \\\"
이 말씀을 하게 된 배경은, 27절을 보면 한 여인이 말을 합니다. \\\"당신을 밴 태와 당신을
먹인 젓이 복이 있습니다.\\\" 라고 한 것입니다. 이이야기는 나도 그런 아이가 하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라고 하는 고백입니다.\\\" 이 말을 들은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예수께서 가
라사대 오히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자가 복이 있느니라 하시니라!\\\"
무슨 이야기입니까? 우리가 불안하고 어수선할 때 목표를 둘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기적이 아닙니다. 표적이 아닙니다. 하나님 말씀입니다.
세상이 불안하고 탄저병이 도처에 깔려 있을 때 우리는 하나님 말씀을 붙잡아야 삽니다.
그 길이 우리가 살길임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그것만이 하나님께 진정으로 복 받을 길임일
믿으시는 여러분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어려울수록 말입니다.

이것은 우리의 모습입니다. 같은 어려움을 당해도 기적만을 좇다가, 믿음을 떠나는 모습입
니다. \\\"믿어도 소용없더라! 하나님이 정말 살아 계시는가!\\\" 원망합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은
같은 어려움 속에서 하나님만을 바라봅니다. 바로 말씀으로 살려고 하는 것이 이런 기적을
일으키신다는 것을 기억하시길 바랍니다.
아이! 목사님 저는 믿음 생활을 오래해서요. 걱정 없습니다. 다 알고 있습니다. 과연 그럴까
요? 오히려 어정쩡한 믿음 생활을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하루라도 1분이라도 말씀을 대하
지 않고 살면 우리는 기적을 바라는 음란한 세대 속에 들어 갈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오늘 예수님께서도 이런 말씀을 하시지 않으십니까? 오늘 본문에 귀신이야기를 합니다. 한
더러운 귀신이 어떤 사람에게 들어갔다가 나왔습니다. 그런데 이 귀신이 왜 나왔을까요? 아
마 어떤 사람이 주님 앞에 회개하고 나왔습니다. 그리고 예배를 드립니다. 그래서 귀신이 그
사람에게서 나왔을 것입니다. 그런데 나와보니 갈 곳이 없습니다. 그래서 옛날에 자기가 있
던 그 사람의 마음에 다시 왔습니다. 그런데 왠걸 ? 깨끗이 청소가 되어 있습니다. 잘 정리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이 귀신은 일곱 귀신을 데리고 들어갔습니다. 문제는 그 사람 형편이
처음보다 나중이 더 심해졌다는 겁니다.

예수님이 무엇을 가르치시기 위해 이 말씀을 주셨을까요? 우리의 마음과 영적 생활에는
중립이 없다는 것입니다. 어정쩡하면 더욱 곤란해집니다. 분명하게 믿어야 합니다. 도리어
일곱 귀신이 들어 올 수 있다는 것을 말씀합니다. 이것은 참으로 비극입니다. 우리 주변에
얼마나 주님을 믿다가 실족한 분들이 많으십니까? 하나님에게 실족한 것이 아닙니다. 사람
에게 실족하였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섬기지 않는 것입니다. 일곱 귀신이 들어 간 것입니
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은혜를 아는 우리들은 더욱 성령과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말씀에 순
종을 하며 살아야 합니다. 잘못하면 교회에 있으면서 교회밖에 있는 사람들 보다 더 세상
적인 사람들이 될 수 있습니다. 이것을 두려워해야 합니다. 우리는 일곱 귀신을 가지고 믿
음 생활을 하고 있는지 모릅니다. 그러니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은 세상을 사는 것이 이렇게
더럽고 힘들지요. 사실 일곱 귀신을 가지고 말씀을 대하지 않고 이렇게 사는 것이 기적입니
다. 이제 교회에 나오면서 귀신의 소리를 듣지 마십시오, 기적은 더 이상 보여 줄 것은 없습
니다. 오직 예수님 밖에 없습니다. 이 예수님을 믿고 살아갈 수 있는 여러분들이 되시길 바
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