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나의 표적 욘2:7-10,눅11:29-32
구약은 신약의 그림자입니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구약은 그리스도에 대한 약속입니다. 구약은 오실 메시야에 대한 증언들이며, 신약은 오신 메시야의 기록들입니다. 구약의 모든 율법과 선지자는 그리스도에 초점이 모아져 있는 것을 우리는 잘 압니다. 요나라는 이름은 \\\\\\\'비둘기\\\\\\\'라?뜻입니다. 성경에서 비둘기는 단순하고 속이기 쉬우며 겁이 많은 새로 알려져 있습니다(호7:11; 11:11).
예수께서는 마태복음 16:4과 누가복음 11:30에서 자신을 요나에 견주십니다. 첫째는 죽음에서 건지심을 받을 자인 것이 요나와 비슷하며, 둘째는 다시 살아나셔서 심판을 내리실 자인 것이 비슷합니다. 요나는 큰 물고기 뱃속에서 나와 심판을 선포하는 자로 니느웨에 갔듯이, 예수님도 죽음에서 다시 사신 자로 예수님을 믿지 않던 사람들을 심판하시러 다시 오실 것입니다. 어느 시대든지 표적은 있습니다. 이 표적을 통하여 그리스도의 복음은 전파됩니다.
요나를 통하여 하나님은 복음을 전파하시며 모든 사람을 사랑하시며 한 사람도 남김없이 구원받는 것을 원하시는 것을 알게 하십니다. 지금도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받는 것을 원하고 계십니다. 어느 한 사람도 사랑하지 않는 사람 없습니다. 그리고 어느 한 사람도 하나님이 만들지 않은 사람이 없습니다. 요나의 표적은 예수님이 당시 사람들에게 보여주시기 원하셨던 표적일 뿐만 아니라 현재도 모든 사람에게 보여주기를 원하시는 현대의 표적입니다. 요나의 표적은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요나의 표적은 욕구의 성취를 약속하는 것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심판을 통고하는 것을 뜻합니다. 이 요나의 표적을 이해하는 것이 현대를 사는 우리에게 필요합니다.
첫째, 악한 세대는 요나의 표적이 필요합니다. \\\\\\\"이 세대는 악한 세대라 표적을 구하되 요나의 표적밖에는 보일 표적이 없다\\\\\\\"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요나의 표적이 왜 필요할까요? 세상이 악하기 때문입니다. 악한 세상에는 요나같은 사람이 필요합니다. 악한 세상에는 요나의 표적 같은 표적이 필요합니다. 현대 사회의 악은 상상을 초월합니다. 인터넷의 자살 사이트는 사람들로 하여금 자살을 교사하고 자살을 방조합니다. 엽기사이트는 무시무시한 살인 무기를 소개하고 사람 죽이는 법을 소개하고 사람을 죽이게 부추깁니다. 그래서 얼마 전에는 중학생 형이 동생을 무참히 죽였습니다. 인터넷 채팅을 통하여 소위 원조 교제라는 것이 성행합니다. 얼마 전 텔레비전에는 원조 교제로 잡혀온 중학생이 \\\\\\\"조금도 나쁘다고 생각 안 해요\\\\\\\"라고 당당하게 말합디다. 어제 신문에는 인터넷 채팅에 중독된 어느 부인이 남편이 자신을 계속 의심한다고 칼로 난자해서 살해했다고 합니다.
지난주간 타임지에는 한국이 아시아에서 혼외정사가 1위라고 했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타임지에 불만입니다. 홍콩, 한국, 태국, 필리핀, 싱가폴 등을 대상으로 조사했는데 왜 일본은 빠졌는지 모르겠습니다. 일본이 분명히 일등일 것 같으니까 미리 뺀 것 같습니다. 좀처럼 양보하지 않는 나라인데 그럴 때는 양보하네요. 우리 사회의 용어부터가 틀렸습니다. 원조야 가난한 국가 대상으로나 하는 용어인데 무슨 원조교제입니까? 단란이란 말은 가정에 쓰는 말인데 무슨 주점이 뭘 그리 단란해서 단란주점입니까? 타임지에는 \\\\\\\"신실하지 못한 적이 있었습니까\\\\\\\"라고 질문했는데 우리말은 \\\\\\\"혼외정사\\\\\\\"라고 너무 극단적인 용어를 쓴 것 같습니다. 어쨋든 선과 악이 혼돈되고 바르고 그른 것이 뒤바뀐 세상이 되었습니다.
악이란 사탄의 성품입니다. 사람을 파괴하고 분리하는 것입니다. 사람됨의 본분을 버리게 하는 마귀의 장난입니다. 세상을 붕괴하고 결과적으로 파멸에 빠지게 하는 수단입니다. 예수님 당시에도 예수님께서 이 악한 세대라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바울 당시에도 바울은 그 세대를 이 악한 세대라고 하였습니다. 아담이 죄를 범한 다음 온 인류의 죄로 유전되었습니다. 그 후 악하지 않는 세대는 없습니다. 악은 쉽게 유전되고 가르치지 않아도 잘 습득합니다.
예수님은 마태복음 12:35에서 \\\\\\\"선한 사람은 그 쌓은 선에서 선한 것을 내고 악한 사람은 그 쌓은 악에서 악한 것을 낸다\\\\\\\"고 하셨습니다. 악한 사람은 그 속에 악이 가득하므로 악한 것밖에 나올 것이 없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기도를 가르치실 때에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마 6:13)라고 가르치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직접 기도를 드릴 때에 \\\\\\\"내가 비옵는 것은 저희를 세상에서 데려가시기를 위함이 아니요 오직 악에 빠지지 않게 보전하시기를 위함이니이다\\\\\\\"(요 17:15)라고 하셨습니다. 바울도 고리도전서 14:20에서 \\\\\\\"형제들아 지혜에는 아이가 되지 말고 악에는 어린 아이가 되라\\\\\\\"고 하였고, 베드로도 베드로전서 3:11에서 \\\\\\\"악에서 떠나 선을 행하고 화평을 구하여 이를 좇으라\\\\\\\"고 하였습니다.
마이클 몰리노스는 그의 책 \\\\\\\'영성 깊은 그리스도인\\\\\\\'에서 \\\\\\\"완전하게 되려는 것은 오히려 위험한 것일 수 있습니다. 그것은 완전한 것에도 악이, 선 안에도 악이 존재하기 때문입니다\\\\\\\"라고 하였습니다. 악은 항상 우리 곁에 상존하고 있습니다. 헤일 셀라시는 \\\\\\\"인류의 역사를 살펴볼 때에 악의 승리가 가능했던 이유는 활동할 수 있었던 사람들의 태만과 더 잘 알아야 했던 사람들의 무관심과 가장 중요한 시기에 침묵으로 일관했던 정의의 목소리 때문이었다\\\\\\\"라고 합니다. 이 세상에서 악은 승리합니다. 우리 세대도 \\\\\\\"이 악한 세대\\\\\\\"일 수밖에 없습니다. 세대가 점점 악해지기 때문에 예수님이 당시 사람들에게 보여주기를 원하셨던 요나의 표적이 지금도 필요한 것입니다.
둘째, 표적을 구하는 시대는 요나의 표적밖에 없습니다. \\\\\\\"이 세대는 악한 세대라 표적을 구하되 요나의 표적밖에는 보일 표적이 없다\\\\\\\"고 하십니다. 예수님은 얼마든지 표적을 행하실 수 있지만 그들에게는 요나의 표적밖에 없다고 하십니다. 고린도전서 1:22에는 \\\\\\\"유대인은 표적을 구하고 헬라인은 지혜를 찾으나 우리는 십자가에 못박힌 그리스도를 전하니\\\\\\\"라고 합니다. 유대인들은 표적을 좋아하는 민족입니다. 대단한 것을 보면 믿을 것 같으나 기적을 본다고 믿는 것도 아닙니다. 예수님의 부자와 나사로의 비유는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표적을 좋아하는 유대인답게 부자는 죽은 나사로가 살아서 형제들에게 가서 복음 전해주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그의 청을 거절합니다. 말씀을 믿지 않으면 죽은 자가 살아나서 권함을 받지 않고 믿지 못합니다. 말씀을 믿지 못하면 표적을 봐도 믿어지지 않는 법입니다.
세상에 얼마나 표적이 많습니까?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은 예수님을 시험하여 하늘로서 오는 표적을 구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아침에 하늘이 붉고 흐리면 오늘은 날이 궂겠다 하나니 너희가 천기는 분별할 줄 알면서 시대의 표적은 분별할 수 없느냐\\\\\\\"(마 16:3)고 하십니다. 표적을 구하는 시대입니다. 박태선이 나와 한 때는 대단한 기적을 행했습니다. 할렐루야 기도원 김계화원장도 암도 고치고 대단한 능력이 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좀 별나다 하면 수많은 사람들이 우루루 몰려다닙니다. 현상을 보고 믿으려고 하고, 추구하는 습성은 예나 지금이나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성경을 보면 예수님 자신이 표적입니다. 예수님의 탄생을 알리는 천사들은 목자들에게 \\\\\\\"너희가 가서 강보에 싸여 구유에 누인 아기를 보리니 이것이 너희에게 표적이니라\\\\\\\"고 합니다. 예수님이 표적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본다고 믿습니까? 아닙니다. 본 사람도 배신하고 죽이라고 하고 십자가에 못박게 했습니다. 표적은 이미 보았지만 믿지 않습니다. 그들은 메시야를 구했지만 메시야가 왔을 때는 믿지 않고 죽였습니다. 눈을 뜨게 하고, 먹을 것을 주고, 죽은 자를 살렸지만 이만 하면 믿을 만도 한데 그들은 믿지 않았습니다.
표적을 본다고 믿는 것은 물론 아닙니다. 표적을 보려고 좇아다니던 사람들이었는데 그들이 표적이라도 구했으면 좋겠는데 표적도 아닙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안타깝게 \\\\\\\"너희가 나를 찾는 것은 표적을 본 까닭이 아니요 떡을 먹고 배부른 까닭이로다\\\\\\\"(요 6:26)고 하십니다. 나사로가 죽은지 나흘만에 다시 살아서 썩은 냄새가 나는 채로 무덤에서 나왔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에게 이렇게 많은 표적을 행하셨지만 저를 믿지 않았습니다(요 12:37). 표적을 원하고 표적을 보지만 표적으로 알지 못하고 표적을 보아도 믿지 못하는 이런 시대에 요나의 표적은 필요합니다. 사람들의 표적을 원하는 심리를 마귀는 이용합니다. \\\\\\\"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나 큰 표적과 기사를 보이어 할 수만 있으면 택하신 자들도 미혹하게 하리라\\\\\\\"(마 24:24)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이 표적이며 말씀이 표적입니다. 바울은 \\\\\\\"나 바울 친필 문안하노니 이는 편지마다 표적이기로 이렇게 쓰노라\\\\\\\"(살후 3:17)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무수한 표적을 보며 사는 복 있는 사람들입니다. 이런 표적의 때에 예수님은 모든 표적을 다 보이시고, 그 이상의 다른 표적을 더 보이지 않으시고 요나의 표적밖에 보여줄 표적이 없다고 하셨습니다.
셋째, 요나의 표적은 이 세대에 인자의 모습입니다. 요나가 니느웨 사람에게 표적이 된 것같이 인자도 이 세대에 그러하리라고 하십니다. 하인자인 그리스도는 표적입니다. 예수님은 구약을 성취하신 분입니다. 구약 인물들은 하나님의 약속을 성취할 그림자입니다.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요셉이 그러하며 이스라엘을 구한 사사들이 그러하며 선지자들이 또한 그러합니다. 요나는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의 그림자입니다. 큰 고기 뱃속은 예수님의 무덤입니다. 다시 토하여 나온 것은 부활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다시 나와서 니느웨에 회개를 선포한 것은 예수님의 재림과 심판을 의미합니다. 요나의 표적은 인자의 모습입니다. 예수님은 지금 이 세대에도 요나의 모습으로 보이기를 원하십니다.
맥스 루카도는 그의 책 \\\\\\\"예수님처럼\\\\\\\"에서 \\\\\\\"예수님은 악 속에서 선을 찾으셨을 뿐만 아니라 고통 속에서 뜻을 찾으셨다. 예수께서 체포현장에서 말씀하신 98개의 단어 중 30개는 하나님의 뜻에 대한 것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악한 세상에서도 선을 찾으시고 하나님의 뜻을 찾으십니다. 마치 악한 니느웨를 향한 요나의 보습입니다. 세상에 어떤 기적이 일어났다고 해도 현혹되지 마십시오. 어떤 표적이 보인다고 하더라도 미련을 가지지 마십시오. 예수 그리스도 한 분만 있으면 다른 표적을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모든 것입니다.
마지막 때가 되면 별난 사람이 다 나올 것입니다. 자신이 그리스도라는 자칭 그리스도도 나올 것이고, 신비한 기적을 베푼다는 사람도 나올 것입니다. 그러나 절대로 미혹되지 마십시오. 이런 것들은 이미 성경에 다 기록된 현상들입니다. 찬송가 194장에는 \\\\\\\"우리를 죄에서 구하시려 주 예수 십자가 지셨으니 기쁘게 부르세 할렐루야 나 구원얻었네 찬송하세 찬송하세 주님 나를 구하셨네 찬송하세 찬송하세 주가 구원하셨네\\\\\\\"라고 합니다. 우리는 찬송합니다.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셨음을 찬송합니다. 예수님이 구원하셨음을 찬송합니다. 예수 외에 어떤 증거도 어떤 표적도 필요치 않습니다.
결론 요나의 표적은 지금도 인자의 모습입니다. 요나는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제물이 되었습니다. 고기뱃속에 사흘을 있다가 다시 육지로 나와 니느웨를 회개시키고 하나님의 구원과 사랑을 전하였습니다. 이 요나의 표적을 통하여 하나님의 마음을 알고 모든 사람을 하나님께로 인도하여야 합니다. 어느 로마 황제가 하나님이 없다고 부인했습니다. 그는 자신의 신하에게 하나님이 있다는 증거가 어디 있느냐고 하였습니다. 그 때 그 신하는 유대인들을 가리키면서 \\\\\\\"저 유대인들을 보십시오. 저들이 하나님이 계시다는 증거입니다\\\\\\\"라고 하였답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살아 계심을 증거하는 증거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사랑이심을 확인하는 증거입니다. 우리는 모든 사람이 다 구원받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의 증거입니다. 이 음란하고 죄 많은 시대에 또 한 주간의 삶을 하나님의 표적들로 살기를 바랍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