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들의 기적

빈 들의 기적/눅9:10-17

빈 들의 기적
눅9:10-17





대입 수능시험 전날, 가슴저리게 생각나는 사람이 있어서 전화를 돌렸습니다. 저의 가장 친한 신학 동기목사님께로... 애써, 평범한 안부를 묻고 이런 저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사실, 정작 하고싶은 예기는 가슴속에 숨겨둔채로 말입니다.(?) 그때, 그 목사님이 묻습니다. “예찬(저의 큰아들)이가 내일 수능시험보지요?... 잘 치루게 해달라고 하나님께 기도드렸습니다...”저는 들킨(?) 마음이었습니다.

네, 그 목사님의 큰 딸아이가 제 아들과 동갑내기입니다.... ‘살아있었다면...’ 말입니다. 그 아이를 처음 본 것이 6살 때 였습니다. 그렇게 예쁜 아이는 거의 본적이 없을만큼, -부모와는 다르게(?)- 너무나 예쁘게 생긴 아이였습니다. 그리고 그 이듬해, 7살 때 그 예쁜 아이는 하나님께로 갔습니다. 그날(!) 아침 아이는 학원을 안간다는 것이었습니다. 오늘은 ‘더 좋은 곳’에 가야하기 때문이랍니다. 아빠는 나무라면서 그러려면 나가서 놀라고 야단을 쳤답니다. 그리고 아이는 문밖을 나서자마자, 좁은길을 무서운 속도로 지나가는 차에 치어 그만 죽게된 것입니다. 주택가인지라 문 바로앞에 차가 지나다닌 것입니다.

그 목사님은 한동안 심한 죄책감(!)에 빠졌었습니다. 어렵게 극복(?)하고 신학수업을 다 마치고 지금은 목사님이 되셔서 열심히 목회하고 있는 것입니다.

제가 전화한 날, 그는 하루종일 딸아이가 보고 싶었었나 봅니다.
아들의 수능날, 다른 부모들처럼 저도 목사가 아닌, 한 아이의 아버지로서 대견함과 미안함, 그리고 아쉬움들로 하루를 보냈습니다. 그런데.. 그 목사님의 마음은 어떠했겠습니까? 비교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아이가 살아있었다면 무척이나 대견해 했을텐데 말입니다.

그가 계속말을 잇습니다. 그런데, “황목사님, 참 감사한일입니다!” 그는 두 가지를 감사하였습니다.
먼저는, 그렇게 예쁜 딸을 자기에게 주셔서 7년동안이나 함께 살수 있게 하심이 너무나 감사하다고 했습니다. 무려 7년간이나!.(?) 아이에 대한 기억 하나하나가 잊혀지지를 않는답니다. 그리고 십수년전에 먼저간 딸자랑을 마치 곁에 있는양, 신이나서(?) 늘어놓습니다. ...

또 한가지 감사하는 것은, 그 아이를 다시볼 수 있으니(!) 감사하다는 것이었습니다.
이 땅에서 열심히 하나님의 일을 하다가 생이 다하여 이 땅에서의 삶을 마감하게되면 그렇게 그리던 딸아이를 만나게 될터이니 감사하다는 것입니다. 언젠가 새벽에는 그 아이가 너무 보고싶어서 하나님께 기도했었답니다. “하나님, 그 아이에 대한 사랑과 기억을 놓을 수가 없습니다. 꿈속에서라도 한 번만이라도 보게 해주십시오..” 간절한 기도지요.... 그 때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더랍니다. “나도 너를 놓을 수가 없구나! 그래서 널 붙들것이니라. 내가 너와 영원히 함께 있을 것이니라! 조금있으면 모두가 함께 있을 것을 볼 것이니라...” 주안에서 죽은 자들은 모두(!) 영원토록 그분안에 거합니다!.
주안에서는 이별이 없습니다. 죽음도 갈라놓지 못합니다! 주님의 부활은 죽음을 이기셨기 때문입니다!

그 목사님은 예수로 인하여 슬픔중에도 감사할 수 있었습니다.
“주신자도 여호와시오 취하신자도 여호와시니라!”

이것이 신앙의 힘이요 예수의 능력입니다!
예수는 절망의 한 복판에서도 소망으로 다가오십니다! 예수는 참소망이십니다! 그래서 주안에 있는 자는 복됩니다! ‘환난중에도 감사할 수 있으며 빛의 날이 올 것을 소망중에 기다릴 수 있는 것입니다!’
지금 혹시, 절망중에 있습니까?
오늘 우리는 어디에 서있습니까? 지금 내가 서있는 곳은 어디입니까?

한 아버지가 사업의 부도를 맞으면서 너무나도 힘들었습니다. 그는 아내, 중학생 아들, 그리고 딸을 차례로 공기총으로 쐈습니다! 유서에는 이렇게 썼습니다. “이렇게 사랑할 수 밖에 없어서 미안하구나...” 또, 한 노인이 자식 눈칫밥 먹기가 너무나 불편해서 차라리 저세상으로 가세겠다고 하시면서 목숨을 끊기도 했습니다. 수능시험 치룬날, 그리고 그 다음날도, 몇 번인가.. 실패의 아픔을 이기지 못하고서 꽃도 피우지 못한 청소년들이 죽어갔습니다.

대학을 졸업하고 7년간이나 취직을 하지못한 한 젊은 청년이 시골에서 힘겹게 농사짓는 부모님 보기가 부끄러워서 목숨을 끊었습니다. 수만개의 기업이 문을 닫았습니다. 더 많은 기업인들, 장사하는 사람들은 언제 닫아야 할지를 고민하고 있습니다. 40대도 모자라서 30대 중반에 그렇게 많은 젊은 아빠(!)들이 명예롭지못한(?) ‘때아닌 명퇴’를 당했습니다. 주부들의 5분의 1이 자살을 생각하며 산다는 것입니다. 우울증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것의 가장 큰 원인은 경제적 어려움 이랍니다.

자살에 대한 한 조사를 보았습니다. 무려 70%나 되는 사람들이 그럴수도 있을 것 이라고,.. 자살에 대해서 자연스레, 관대하게 받아들이고 있는 것입니다. (또하나, 암담한 것은 정치인들은, 일부 소수는 아직도 파악을 하지 못한채로 벌레처럼 살고(?) 있다는 것이지요)

오늘 우리는 어디쯤 서있는 것입니까? 따뜻한 날은 오는 것입니까?
본문,
사람들이 빈들에 모였습니다. 그들은 병든 자들입니다.(11) 육신이 병든자, 마음이 상한자... 날이 저물었지만 마땅히 갈곳이 없는 사람들입니다.(12) 배고픈 사람들입니다. 그렇습니다 병든 것도 서러운데, 병듦으로 인하여 다른 권한들도 함께 빼앗겼습니다. 병든 것 이상으로(!) 잃어버린 것입니다. 병듦, 갈곳 없음, 배고픔, .... 이것이 그들인 것입니다. <그들은 빈들에 오기전에 이미 빈들의 마음인 것이었습니다!>

빈들이란 어떤 곳입니까? “황량함”이란 뜻입니다. 그렇습니다. 그들은 황량한 곳 한 복판에 주저앉아 있는 것입니다. “소망은 어디로 갔습니까?...”
빈들, 갈곳없음, 배고픔, 외로움.... 이것들은 절망의 표시들입니다. 그들은 지금 절망중에 있습니다. 누가 그들을! 누가 그들을 일으킬까! 누가 그들의 주린 배를 채울 수 있을까! 누가 그들의 소리를 들어줄까! 누가 그들을 싸매어 줄까! 그들은 쫓겨난자들입니다..

그런데, <그들 가운데에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그들이 풍요(!)를 얻게된 것입니다. “먹고 다 배불렀더라. 그리고도 남은 조각이 열두 바구니라!”

어찌된일입니까?
그것은 그들안에서 일어난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들 밖에서! 임하신(!) 일이었습니다!’
“예수께서 하늘을 우러러 축사하시고 떼어 제자들에게 주어 무리앞에 놓게 하시니...” (16)
그리고는 풍요가 임했습니다! 할렐루야!

빈들, 빈곤, 배고픔... 그것들, 그들과 풍요사이에는 누가 있습니까?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는 소망이십니다! 아니, 예수만이 참소망이십니다.
예수님은 병든 그들을 고쳐주셨습니다. 병들었다고 세상이 빈들로 내몰아버린 그들을 영접하셨습니다! 고치셨습니다! (11) ‘그들을 위해’ 하늘을 우러러 축사하셨습니다!

주님은 그런 분이십니다.
오늘 교회는 주님의 모습을 본받아야 합니다. 병들고 가난하고 배고픈자들을 향하여 외면하지 말아야 합니다. 교회는 노른자들의 집합체가 아닙니다. 교회는 엘리트(?)들의 모임이 아닙니다. 엘리트란 없습니다! 오직, 라오스(!) 평범한 사람들, 고통받는 사람들, 외로운 사람들.. 그들의 피난처요, 안식처가 되어야 합니다!

주님은 그런자들의 주님이십니다!
“인자가 온 것은 병든자를 고치려 함이라!”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함을 전파하며 눌린자를 자유케 하고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 (눅 4:18~19)

사람들은 그들을 빈들로 보냈지만 주님은 빈들로 가셔서 그들을 영접하셨습니다! 고치셨습니다! 먹이셨습니다! 이제, 그곳은 더 이상 빈들이 아니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예수께서 임하시면 빈들이 풍요의 땅으로 변하는 것입니다!>, <빈들의 마음이 부요함으로 채워지는 것입니다!>, 오직 주님이 함께 하시면!

주님이 그곳에 계셨습니다. 그래서 그곳엔 풍요가 임했습니다.
넘쳐났습니다. 그렇습니다. 기적이 일어난 것입니다! <빈들에 기적이!> 그렇습니다. 차가운 빈들에도 따뜻한 봄은 옵니다! 황량한 들판에도 꽃은 핍니다! 볼품없는 사람에게도 멋(!)이 깃듭니다! 쓸모없을 것같은 사람에게도 새삶이 시작됩니다! 환난중에도 감사가 피어납니다. 절망중에도 소망이 임합니다. 그것은 “상한갈대도 꺽지 않으시고, 꺼져가는 불도 끄지 아니하시는” 주님께서 일으키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당신은 지금 빈들에 서있습니까?
마음이 시립니까? 서글픕니까? 답답하십니까? 차가운 겨울입니까? 깊은 낙심중에 있습니까? 파산앞에 이르렀습니까? 벼랑에까지 몰려왔습니까? 나의 한계앞에 왔습니까? 질병중에서 아파하십니까? 앞이 보이질 않습니까? ...

기억하십시오!
<빈들에서도 기적은 일어납니다!> 아니,기적은 늘 그렇듯이 빈들에서! 일어나는 법입니다!
주님과 함께 한곳은 늘~ 그렇게 기적이 일어납니다! “초막이나 궁궐이나 그 어디나 주 예수 모신 곳이 하늘나라!” 그렇습니다. 예수가 함께 하시는 곳이면 빈들에도 풍요를 경험할 수 있습니다!. 쫓기고 쫓긴 그들, 그래서 빈들에 모인 그들에게 주님은 영접의 모습으f 맞이하셨으며 풍요로 채우셨습니다. 오늘 이 자리, 이 교회, 이 예배를 통해서 주앞에 나오는 자들에게 주님의 풍요가 임할 것입니다! 예수님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앞에 나아올 것입니다.

“내가 환난중에 여호와께 부르짖었더니 내게 응답하셨도다!” 아멘!
예수는 소망이십니다! 예수만이 참 소망이십니다! 할렐루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