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을 받을 때 이런 기적이 일어납니다 눅5:1-11
우리가 신앙생활 하면서 늘상 가지기 쉬운 잘못 중 하나는 하나님 앞에서 떳떳하고 당당할려고 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본질적으로 자기를 내세우고 나타내기를 좋아합니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서도 그렇게 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내가 이렇게 충성했습니다. 내가 이렇게 봉사했습니다. 나를 알아 주십시요.\\\'
그래서 우리는 죄를 안지으려고 노력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떳떳하고 싶어서 자기를 완벽하게 가꾸려고 노력합니다. 우리는 결코 주님 앞에 무릎꿇고, 주여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고백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주님 품에 안겨서 눈물 흘리려고 하기보다는 주님 앞에 고개를 들고, 어깨를 펴고 당당히 소리치려고 합니다. 주님의 은혜와 긍휼을 간절히 구하는 자리에 서기보다는 하나님 앞에 정정당당하게 나가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신앙생활이 얼마나 힘들고 어려운지 모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실패와 좌절을 맛보게 되는 것입니다. \\\"목사님 저는 왜 안될까요? 왜 나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못할까요? 왜 나는 이렇게 하나님이 싫어하는 짓만 할까요? 나도 정말 이 교회 기둥 같은 집사, 장로 되고 싶은데 왜 나는 안될까요?\\\" 신앙생활을 좀 열심히 하려고 하는 사람들을 보면 대개가 다 이런 고민을 하고 있습니다.
신자의 가장 큰 무기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그것은 다름 아닌 하나님 앞에 겸손하게 무릎꿇는 것입니다. \\\"주여 나는 부족합니다. 주여 나는 죄인입니다. 주여 나는 아무 것도 내놓을 것이 없는 사람입니다.\\\" 그렇게 고개 숙이면 주님이 꼼짝을 못하십니다. 오늘 본문은 바로 그것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베드로는 한마디로 실패자입니다. 그는 밤이 새도록 고기를 잡았지만 한 마리도 잡지 못했습니다. 대개 사람들은 자신의 실패와 좌절을 숨기려고 합니다. 남들이 알아봐야 입방아만 찢지 무슨 도움이 되겠느냐 하는 것입니다. 사실이 그렇습니다. 사람들은 남의 허물과 약점을 가려주기 보다는 가쉽거리로 만들기를 더 좋아합니다. 그러나 여러분 우리 주님은 본질적으로 다른 분이십니다. 우리 주님은 우리의 허물과 죄악과 연약함을 담당하기 원하셔서 이 땅에 오신 분이십니다.
하버드 교수를 역임하셨던 헨리 누엔은 렘브란트의 명화 돌아온 탕자를 감상하면서 이런 통찰을 얻게 되었다고 합니다. 탕자가 누구냐? 탕자는 바로 예수님이시다. 예수님은 실로 탕자와 같은 존재가 되셔서 이 땅에 소셨다. 하늘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낯선 나라에 왔고, 자신에게 있는 모든 것을 포기한 분이 바로 예수님이시다. 예수님은 마침내 십자가를 통해서 아버지 집에 돌아갈 수 가 있었다. 예수님은 자신이 탕자와 같은 처지에 빠짐으로서 진짜 탕자인 우리를 구원하시고자 하신 분이시다. 그냥 저 고상한 천국에서 손 내밀어 우리를 건지시는 분이 아니라 직접 이 땅에 오셔서, 이 냄새나고 더러운 이 세상에 오셔서 나 같은 죄인을 구원하시고자 하신 것이다. 저는 이 헨리 누웬의 생각이 결코 틀리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주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다\\\"고 하셨습니다.
사실 우리가 겉으로는 드러나지 않지만 우리의 실상이 어떠합니까? 만일 텔레비전 방송에서 추적 60분 하면서 우리의 과거 현재를 적나라하게 파헤친다면 어느 누구가 얼굴을 똑바로 들고 살수 있을까? 털어 먼지 안 나는 사람 아무도 없다고 합니다. 우리 모두는 다 죄인입니다. 설령 텔레비전은 우리의 죄악을 다 알 수 없다 할지라도 하나님은 다 아십니다. 그러므로 우리 중 그 어느 누구도 하나님 앞에 당당히 설 수 있는 사람이 없는 것입니다. 또 우리 주님도 결코 우리에게 그런 모습을 기대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겸손하게 고개 숙이고, 나는 부족합니다. 인정하고 고백하는 모습을 좋아하십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상한 심령인 것입니다. 마음을 찢는 사람을 원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을 살펴보면 항상 주님이 찾아가 만나는 사람은 바로 이렇게 실패하고 좌절한 사람을 찾으십니다. 병들고 나약한 사람, 죄 많고 사람들에게 손가락질 받는 사람을 찾으시는 것입니다. 본문에도 그러합니다. 밤새도록 그물질을 했지만 고기를 한 마리도 잡지 못한 어부를 찾아오셨습니다. 어부가 밤새도록 노력했는데 고기를 한 마리도 잡지 못했다는 것은 수치요, 부끄러움이요, 안타까움입니다. 내가 이래 가지고 살수 있을까? 내가 이것밖에 되지 못하는구나. 바로 이렇게 한탄하면서 그물을 씻고 있는 베드로를 찾아오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그 배에 오르셨습니다. 고기를 풍성히 잡은 배에 오르지 않았습니다. 남들에게 자랑할 거리가 많은 사람의 배에 오르지 않았습니다. 그 포구에서 제일 실패하고 낙심한 사람의 배에 오르셨습니다.
예수님께서 그 배에 오르셔서 많은 사람들에게 말씀을 증거 하셨는데 솔직히 그 말씀이 누구를 향한 말씀이겠습니까? 저는 그 말씀이 거기 모인 수많은 사람들에게도 해당되는 말씀이지만 구체적으로 바로 배 안에 예수님을 올려다보고 있는 베드로 실망하고 낙심하고 절망하고 있는 베드로를 향한 말씀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나중에 보면 아시겠지만 말씀을 마치시고 예수님은 그 말씀의 능력과 위력을 베드로에게 적용시키는 것을 보아서 더욱 더 그러합니다.
여러분 여기서 우리는 한번 상상력을 동원할 필요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베드로의 배위에서 증거 하신 말씀이 무엇이었겠습니까? 도덕과 윤리를 강조하는 설교였겠습니까? 똑바로 살아라 그렇지 않으면 끝장이다. 그런 말씀이었겠습니까? 아닙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구원의 말씀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치료의 말씀이요 희망의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믿음과 소망을 주시려고 오신 분이지 결코 우리를 기죽이려고, 정죄하려고 오신 분이 아니십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도적이 오는 것은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 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 믿습니까? 우리 하나님은 우리를 축복하시기를 원하시는 분이십니다. 우리 하나님은 실망하고 낙심하는 사람에게 새로운 용기를 주시는 분이십니다. 우리 하나님은 죄악 가운데 쓰러지고 넘어진 사람의 발과 발목에 힘을 주시고 새롭게 일으켜 세워주시는 분이십니다. 우리 기독교의 모토가 무엇입니까? 믿음, 소망, 사랑 이것 아닙니까?
사랑할 자를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정말 죄인 된 우리, 연약한 우리, 부족한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소망 있는 사람, 일찍부터 싹을 보고 희망 주고 소망 주는 것이 아니라, 정말 싹수없지만, 정말 가능성 없지만 거기에서 소망을 보고 가능성을 보고 희망 주시는 분이십니다. 베드로같이 허물 많고 약점 많고, 성격 급한 사람을 교회의 초석으로 삼으시는 것입니다. 창녀 마리아를 창녀라 손가락질하지 않으시는 주님, 그 창녀의 심성 속에 성녀 마리아의 모습을 발견하시는 주님 아니십니까? 주님은 그런 분이십니다. 그러기에 주님을 믿으면 영적인 힘이 생깁니다. 정신적인 힘이 생깁니다. 육체적인 힘이 생깁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거기에 길이 보이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역사하는 길이 보이는 것입니다.
사회학에는 거울 자아 이론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이것은 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사람이 나를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정말 그렇게 된다는 것입니다. 자기가 존경하는 부모님이나 선생님이 자기를 보고 칭찬하고 격려할 때에 내가 정말 그렇게 되어야지 하는 마음이 생긴다는 것입니다. 마음만 생기는 것이 아니라 그 말씀이 양약이 되어서 평생 그를 그 목표로 향해 나가도록 인도하고 마침내 그를 그 자리에 세운다는 것입니다. 만일 여러분이 자녀를 저주하고, 욕한다면 자녀는 그런 길을 가게 될 것입니다. 저는 이 거울 자아 이론이 맞다고 생각합니다.
자 그렇다면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시고, 나에게 희망을 두신다는 이 말씀을 말씀 그대로 진실로 믿는다면 우리가 거울을 볼 때마다 하나님의 눈으로 나를 볼 수만 있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진실로 우리 안에서도 탕자 어거스틴이 변하여 성자 어거스틴이 되는 역사가 일어나지 않으리라는 법이 있습니까? 성격 급한 베드로가 교회의 반석이 되고, 살인자 바울이 위대한 선교사가 되는 것이 꼭 성경 안에서만 일어나야 하는 법이 있습니까? 우리가 아침마다 거울을 보면서 하나님은 나를 보시는 눈으로 나를 바라보기 시작한다면 우리의 인생도 그렇게 변할 줄 믿습니다. 여러분 절대로 의심치 말고 믿어야 할 것은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누가 뭐래도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소망이 있고, 미래가 있습니다. 분명 저와 여러분의 미래는 열려질 것입니다. 하나님의 축복은 반드시 우리를 위하여 예비되어 있는 것입니다. 믿으시기 바랍니다.
믿음이 없으면 블레셋 군대가 쳐들어 왔을 때 모든 무기를 다 갖추고 있으면서도 벌벌 떨었던 사울과 같은 꼴이 됩니다. 지금까지 수많은 전투 경험도 있고, 승리의 경험도 있는 사울아닙니까? 머리에는 빛나는 투구가 있고, 가슴에는 철갑 옷이 있고, 손에 날이 바짝 선 칼이 있어도 두려워 떱니다. 왜 그렇습니까? 한마디로 믿음이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신다는 믿음이 없기 때문입니다. 전쟁의 승패는 여호와 하나님께 달려 있다는 것을 믿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나의 생사 화복은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다는 것을 믿지 못하고, 저 골리앗에게 달려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아닙니다. 하나님이 역사의 주관자이십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축복하시고, 우리에게 승리 주시고, 우리에게 희망과 소망 주시는 분이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어린 다윗은 이 믿음이 있기에 비록 손에 물매돌밖에 없었지만 나가 이길 수 있었던 것입니다. 물매돌의 파워로 이긴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신다는 이 믿음으로 이긴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 믿으면 결코 손해 보지 않습니다. 하나님 믿고 의지하면 저와 여러분이 반드시 축복 받으실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베드로가 앉아서 예수님의 말씀을 듣는데 마음속에 믿음이 생기는 것입니다. 용기가 생기가 자신이 막 생기는 것입니다. 할 수 없었던 베드로가 할 수 있다는 용기가 생기는 것입니다. 그 말씀을 듣는데 절망이 소망으로 변하여 막 꿈틀거리는 것입니다. 슬픔이 기쁨으로 변하기 시작합니다. 이제 가난이 부요함으로 변화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그러고 나니까 베드로가 가슴이 막 두근두근 뛰는 것입니다. 자기도 모르게 손에 땀이 나고 두 주먹을 불끈 쥐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마음속으로 예수님 이제 준비되었어요. 나에게 뭐라고 말씀 좀 해주세요. 이제 주님 때문에 무엇이든지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예수님 말씀 좀 해 주세요. 그런 마음이 막 드는 것입니다.
거기 수많은 사람이 예수님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아마 그랬을 것입니다. \\\"아, 예수님, 언젠가 했던 말씀하고 비슷하시군요.\\\" 그러고 그냥 쿨쿨 잠을 자는 사람 있었을지 몰라요. 그냥 눈을 쩍 감고 명상에 잠긴 사람 있었을지 몰라요. 또 예수님의 말씀을 들으면서 \\\'아, 내가 강아지 밥을 안 주고 왔는데\\\' 아마 그 생각하고 있는지 몰라요. \\\'아, 지금 내가 빨리 안 가면 남편이 와서 막 신경질을 부릴 텐데.\\\' 아니면 \\\'학교 간 아들이 집에 와서 문을 막 두드릴 텐데. 이것 큰일 났구나.\\\' 그러면서 이런 생각, 저런 생각하면서 듣는 사람 있었을 거예요.
그런데 베드로는 그런 것 아니에요. 베드로는 절박합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의 말씀을 듣는 순간 막 믿음이 생겨요. 예수님은 벌써 베드로를 보았어요. \\\"아, 믿음 없던 베드로에게 믿음이 생겼구나. 절망하던 베드로에게 소망이 생겼구나. 자신이 없었던 베드로에게 용기가 생겼구나.\\\" 그 베드로는 보신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베드로야!\\\" \\\"예!\\\"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아라.\\\" 그 많은 사람들이 있었지만, 그 말씀을 누구에게 지적했습니다. 베드로에게 지적했습니다. 그 말씀을 받을 만한 사람은 누구냐, 베드로밖에 없었습니다. 거기 다른 제자들도 있었어요. 다른 동무들도 있었어요. 그러나 그 말을 받을 만한 사람은 누구냐, 베드로밖에 없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들이여, 오늘 우리 모두가 함께 예배를 드립니다. 이 말씀을 듣는 사람은 많습니다. 그러나 준비된 사람이 과연 얼마나 있습니까? 베드로처럼 이 말씀을 아멘으로 받아들여 축복 받는 성도가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주님은 결코 우리의 과거를 묻지 않으십니다. 지난밤 고기를 몇 마리 잡았나 묻지 않습니다. 실패했다고 부끄러워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넘어졌다고 부끄러워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물에 고기 한 마리 잡지 못했어도, 주님의 말씀에 위로를 받고 그 말씀 앞에 엎드러지면 그 실패는 결코 실패가 아닙니다. 그것은 오히려 우리에게 크나큰 축복입니다. 하나님은 그렇게 일하시는 분이십니다. 우리의 약함을 들어서 강한 자를 부끄럽게 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먼저된 자를 나중 되게 하시고 나중된 자를 먼저 되게 하시는 분이 우리 하나님 아버지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 실패를 통해서 하나님 앞에 엎드려질 수 있다면 이것은 크나큰 은총이요 축복이 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결코 그 실패와 좌절과 넘어짐 속에 그냥 버려두지 않으실 것입니다. 다시 일으켜 세우시되 크게 세워주실 것입니다. 그물이 찢어질 정도로 축복하여 주실 것입니다. 우리의 상상을 초월할 만큼 하나님이 우리를 높이 세워주실 것입니다. 제가 바라보는 비전이 바로 이것입니다. 우리 서북교회는 약한 교회입니다. 목사도 부족하고 연약합니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 겸손 겸비하게 무릎꿇는다면 하나님이 분명히 다시 세워주실 것입니다.
목사뿐이겠습니까? 우리 모든 성도를 크게 높게 세워주실 것입니다. 우리가 언제까지나 낮고 천하고 멸시받는 자리에 있게 하실 하나님이 아니십니다. 우리의 그물이 튿어지는 축복이 임할 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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