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의 기적

말씀의 기적/눅5:1-11

말씀의 기적
눅5:1-11





세계 2차 대전후에 더글러스 맥아더 장군이 전쟁으로 폐허가 된 일본에 들어갑니다.
일본의 경제는 극도로 혼란에 빠져 있습니다.
전쟁후 남은 자원은 겨우 살아남을 수밖에 없는 자원입니다.
일본이라는 제품을 가지고는 돈을 벌 수가 없습니다.
맥아더 장군은 미국의 품질관리 전문가인 W. 에드워드 데밍 박사를 모셔옵니다.
일본의 유력한 기업들을 모았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연설을 합니다.

“만을 오늘 당신들이 돈을 벌기 전에 품질유지가 아니라! 품질발전을 위해 투자한다면 일본은 10년후면 발전될 것입니다. 30년후면 경제대국이 될 것입니다!”
일본은 계속적으로 품질개량에 매달렸습니다!
돈을 벌기보다는 품질개량에 포커스를 맞추었습니다.
“어떻게 하면 좋은 제품을 만드느냐?”에 열중했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도요타 같은 자동차회사는 최고의 회사이지만 노사의 분규가 없습니다.
오직 품질개량으로 미국의 시장을 석권했습니다.

기업의 생명은 품질유지가 아니라! 품질개량입니다.
물건의 생산에 대한 품질의 변화가 기적을 일으킵니다.
사업에 대한 품질의 변화가 엄청난 기적과 영광을 가져오는 것입니다.

믿음도 마찬가지입니다.
믿음의 유지가 아니라! 믿음의 변화가 믿음을 성장시키는 것입니다!
믿음의 변화가 없는 것은 믿음의 기적이 없습니다.
율법적인 믿음과 복음적인 믿음의 차이가 무엇입니까?
율법적인 믿음은 변화가 없습니다.
믿음을 유지하는데 급급합니다.

주일을 지키는데 급급하고! 자기의 율법적인 믿음 유지하는데 급급합니다.
율법적인 믿음은 믿음의 변화가 없습니다.
복음적인 믿음! 영적인 믿음은 믿음이 변합니다.
믿음이 자라고 변화하는 것입니다.
믿음이 자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믿음이 자라는 것을 겨자씨에 비유했습니다.
“천국은 마치 겨짜시 한알 같다고 했습니다!”

“이는 모든 씨보다 적은 것이로되 자란 후에는 나물보다 커서 나무가 되매 공중에서 새들이 와서 깃들이느니라!”(마13:32)라고 말씀합니다.
믿음이 나무가 된다는 것입니다.
요셉의 믿음은 자라서 담을 넘은 가지처럼 뻗어가는 것입니다.
믿음이 열매를 맺습니다.
애굽나라의 총리가 되고! 흉년을 이기는 지도자가 되었습니다.
자라는 믿음입니다.
여러분의 믿음은 유지하는 믿음입니까?
아니면 성장하는 믿음입니까?
여러분의 믿음은 열매를 맺는 믿음입니까?
이사야 선지자는 이렇게 말씀합니다.
“너희는 눈을 높이 들어 누가 이 모든 것을 창조하였나 보라! 주께서 수효대로 만상을 이끌어내시고! 각각 그 이름을 부르시나니 그의 권세가 크고! 그의 능력이 강하므로 하나도 빠짐이 없으시느니라!”(사40:26)
그런데 야곱아! 어찌하여 어찌하여 내 사정을 하나님이 알지 못한다고 하느냐?
내 원통한 것을 수리하지 못한다고 하느냐?
“너는 알지 못하느냐? 듣지 못하느냐?”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영원하신 하나님! 땅끝까지 창조하신 자는 피곤치 아니하시며 곤비치 아니하시며 명철이 한이 없으시며 명철이 한이 없으시며 피곤한 자에게 능력을 주시며 무능한 자에게 힘을 더하시나니 소년이라도 넘어지며 장정이라도 자빠지되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의 날개치며 올라감같을 것이요! 달음박질하여도 곤비치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치 아니하리로다!”(사40:26-31)
우리가 무능해도 관계가 없습니다.
우리가 때로는 지혜가 부족해도 하나님의 명철이 한이 없습니다.
문제는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믿음의 변화입니다.
“내 믿음을 개선해야 되겠다!!”라는 생각을 가진 순간 인생의 성공은 정해져 있습니다.
문제는 믿음을 개선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앤서니 라빈스라는 사람이 지은 책중에 “내안에 잠든 거인을 깨워라!”라는 책이 있습니다! 성공의 포인트가 무엇입니까?
“제한된 믿음을 변화시켜라!”라는 말씀입니다.
믿음은 모든 행동! 모든 사고! 모든 성공을 만들어 내는 힘입니다.
믿음이 삶을 변화시키는 힘입니다.
믿음이 사람을 변화시키는 힘입니다.
오늘 베드로가 예수님으로부터 부르심을 받는 장면이 나옵니다.
소명의 체험이라고 말씀할 수 있습니다.
믿음에서 중요한 것은 예수님을 만나는 경험입니다.

말씀의 기적은 선택의 은혜입니다!
예수님이 갈릴리 호숫가에 찿아오셨습니다.
호숫가에서 그물을 씻고 있는 제자들을 보고 예수님이 찿아 오셨습니다.
그리고 두배가 있는 중에 한 배에 오르셨습니다.
이것이 예수님이 베드로를 선택하신 것입니다.
갈릴리 바다를 찿아오셔서 그리고 자신이 직접 배에 오르셨습니다.
이것이 예수님의 선택의 은혜입니다.
예수님의 가장 큰 은혜는 예수님께서 우리를 찿아오시는 은혜입니다.
내가 예수님을 찿고 선택하신 은혜가 아니고! 예수님이 나를 택하신 은혜입니다.
나의 의지가 아니고! 나의 생각이 아니고! 나를 향한 예수님의 선택의 은혜입니다.
예수님이 베드로를 택하신 것입니다.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고!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 이는 너희로 가서 과실을 많이 맺게 하고! 또 과실이 항상 있게 하여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무엇을 구하든지 다 받게 하여 함이라!”(요15:16)라고 말씀합니다.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의 선택의 은혜입니다.
가장 큰 은혜는 내가 하나님의 자녀로 선택받았다는 확신입니다.
이것이 소명이요 능력입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하나님의 선택을 이렇게 말씀합니다.
“너는 두려워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것이다!”
“내가 물가운데 지날 때에도 내가 너와 함께 할 것이라! 강을 건널 때에 물이 너를 침범치 못할 것이며 네가 불가운데 행할 때에도 타지도 아니할 것이요! 불꽃이 너를 사르지 못하리니 대저 나는 네 하나님이요!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요! 네 구원자임이라!”(사43:2-3)라고 말씀합니다.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다고 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으로부터 택하심입니다.
선택의 은혜입니다.

믿음의 생활의 시작이 그렇게 중요합니다.
영적으로 시작되지 않았으면 다시 영적으로 시작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하나님의 은혜! 예수님의 은혜를 바로 알지 못하면 모든 것이 헛수고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모르는 예배! 감정적인 예배입니다.
하나님이 은혜를 모르는 봉사와 수고! 사람의 자랑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모르는 찬양과 기도는 감동이 없습니다.
제일 중요한 은혜는 예수님이 나를 선택하신 은혜입니다!
이것이 은혜의 시작입니다.

예를들어서 “내가 예수님을 믿게 된 것이 나의 선택입니까? 은혜입니까?”
교회는 내가 오지만 예수님을 만나게 된 것은 나의 선택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베드로의 배에 오르듯이 나의 자리에 오셔야 합니다.
예수님이 나를 찿아오시는 것을 영접하는 것이 최고의 은혜입니다.
예수님이 베드로를 축복하는 장면이 있습니다.
예수님이 베드로에게 어떻게 물었습니까?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 허더냐?
“더러는 세례요한 더러는 엘리야 어떤 이는 예레미야나 선지자중의 하나라 하나이다!”
“너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시몬 베드로가 이렇게 대답을 합니다.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입니다!”(마16:15)
예수께서 대답을 합니다.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아버지시라!”
시몬이 예수님이 하나님의 살아계신 아들이라고 믿게 된 것이 은혜입니다.
이를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고! 하늘에 계신 아버지라고 했습니다.
이것이 예수님을 고백하는 은혜입니다.
수가성 여인을 보시기 바랍니다.
“수가성여인이 우물가에 계신 예수님을 찿아간 것이 아닙니다.
수가성여인이 예수님을 만나기 위해서 자기의 마음을 정리하고 만나러 간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수가성 여인을 우물가로 찿아 오셨습니다.
예수님이 허물많은 여인을 찿아 온 것입니다.
이것이 은혜입니다.
내힘으로 만나는 것이 아니고! 주님의 은혜로 만남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말씀의 기적은 정직한 순종입니다!
예수님이 시몬에게 이렇게 지시하십니다.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라고 말씀합니다.
시몬이 이렇게 응답합니다. “우리가 밤이 맞도록 수고하였으나 얻은 것이 없습니다!”
믿음의 축복을 받을 때! 반드시 필요한 과정이 있습니다.
예수님앞에 정직해야 합니다.
베드로는 정직한 실패를 고백합니다.
“우리가 밤이 맞도록 수고하였으나 얻은 것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축복과 성공을 받는 사람은 정직하게 자기의 실패를 고백하는 사람입니다.
성공적인 삶을 살지 못하는 것은 실패를 인정하지 않습니다.
자기의 신앙에 대해서 정직하지 않습니다.
자기의 부족함에 대해서 정직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베드로는 정직한 고백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밤이 맞도록 수고하였으나 없지마는 말씀에 의지하여 그물을 내리리이다!”라고 결단합니다.
말씀에 의지하여 그물을 내리리이다!
베드로는 자기의 경험대로 하지 않았습니다.
베드로는 자기의 지식대로 하지 않고! 자기의 생각대로 하지 않고!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깊은데 그물을 내렸습니다.
“그런데 그물을 내리는 순간에 고기를 에운 것이 심히 많아 그물이 찟어지니라!”
우리가 언제부터 기적이 나타나는 것이니까??
말씀을 의지하고 말씀에 순종할 때부터 기적이 일어납니다!
베데스다 연못가에 38년된 병자를 보시기 바랍니다.
38년을 믿고 베데스다 연못가에서 있었습니다! 한두해도 아니고! 십년도 아니고 38년을 서 있었습니다.
그런데 자기의 믿음이 어떤 믿음인가를 보지 않습니다.
믿음의 능력이 나타나지 않고! 믿음의 치유가 나타나지 않으면 내믿음에 문제가 있다!
라고 생각해야 하는데 그런 믿음을 점검하지 않습니다.
자기의 믿음을 점검하지 않으니까? 38년을 허비하는 것입니다.
인생의 역사가 일어나고! 기적이 일어나고! 은혜가 일어나야 하는 시간이 다 자나가는 것입니다. 인생의 가장 귀중한 시간을 감격하지 못하고 허비합니다.
믿음이 잘못되면 인생의 시간을 허비합니다.
믿음이 잘못되면 물질을 다 허비합니다.
“내가 그렇게 인색하며 아껴도 내 것이 되지 않습니다!”
사람의 잘못된 습관만큼 질긴 것이 없습니다.
참된 믿음이 아니고는 자기의 습관 하나를 바꾸지 못합니다. 38년을 바꾸지 못합니다.
자기의 전통! 자기의 생각을 바꾸지 못하고 항상 하는 말이 있습니다.
“나를 못에 먼저 넣어줄 사람이 없나이다!”
“내가 가는 동안에 먼저 내려가는 사람이 있나이다!”
이것이 실패하는 믿음의 양식입니다.
자기의 잘못된 믿음을 가지고 서 있습니다.
자기의 믿음은 바른데! 문제를 다른데 두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기적을 체험하지 못하는 사람은 항상 잘못된 믿음입니다.
미신적인 믿음입니다. 전통을 따르는 믿음입니다.
말씀을 따르는 믿음이 아니고! 다른 사람들을 보고 따라 하는 믿음입니다.
예수님은 뭐라고 말씀합니까?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요5:8)
예수님은 38년된 병자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라는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말씀을 믿고 일어섰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이렇게 말씀의 기적을 말씀합니다.
“그 사람이 곧 나아서 자리를 들고 걸어가니라!”(요5:9)
말씀에 의지해서 순종하니까?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베드로가 어떻게 그물이 찟어지는 성공의 기적을 일어났습니까?
“내가 말씀에 의지하여 그물을 내리리이다!”라는 정직한 순종입니다.
말씀에 정작하게 순종하는 자는 오늘도 기적이 일어납니다!

말씀의 기적은 사명의 일꾼입니다!
베드로가 고기를 잡는 이야기가 스토리입니다.
그러나 이 기적의 스토리가 주는 진리가 있습니다.
고기를 많이 잡았다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베드로가 고기를 많이 잡았을 때! 예수님의 기적에 대해서 베드로가 어떻게 응답했느냐?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삶이 위대하게 되기를 원하십니까?
하나님의 은혜에 대해서 어떻게 응답하고 있습니까?
베드로는 어떻게 예수님의 기적에 대해서 응답하고 있습니까?
반드시 응답이 있어야 합니다.
응답이 없는 예배! 응답이 없는 기도는 헛수고입니다.
하나님의 은혜에 대하여 응답이 있는 사람만이 진정한 기적을 체험합니다.
베드로는 고기가 많이 잡혀서 춤을 주어야 하는데 그렇게 않습니다.
예수님앞에 무릎앞에 엎드렸습니다.
여러분! 십자가앞에 무릎을 꿇고 엎드린 적이 있습니까?
내 영혼과 마음이 예수님앞에 울어본 것이 있습니까?
베드로가 주님의 무릎앞에 엎드렸습니다.
고기가 많이 잡혔든데 왜! 엎드리고 회개하는 것입니까?
베드로가 이렇게 회개합니다!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베드로는 주님을 몰랐던 것을 회개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능력을 모르고 살았습니다.
말씀의 진리를 모르고 살았습니다.
열심이 살았습니다.
그리고 땀을 흘리면서 살았습니다.
고기를 잡으면서 열심이 살았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를 진정으로 만나지 못한 삶은 모두가 죄값입니다!
살면 살수록 죄값이 많아지는 것입니다.
이것이 예수 그리스도가 없는 인생입니다.
내가 아주 열심히 살았지만 열매가 없습니다.
예수님의 능력을 모르는 삶은 헛수고입니다.
그래서 회개하는 것입니다.
베드로가 사명의 사람이 된 것은 회개의 사람입니다.
회개로부터 시작했습니다.
그러니 믿음이 쑥쭉 자라는 것입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사명을 줄때도 회개로 시작했습니다.
“사단아 물러가라! 너를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책망을 받을 때로 회개했습니다.
만약 베드로가 회개가 없는 사람이라면 “사단아! 물러가라! 너를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라는 말을 들었으면 원수가 되었을 것입니다.
예수님으로부터 칭찬만 들은 것이 아니라! 책망을 받는데도 회개했습니다.
회개는 축복으로 가는 길입니다.
회개하는 베드로에게 뭐라고 말씀합니까?
“이제 내가 후로는 사람을 취하리라!”라는 사명을 주셨습니다.
예수님이 사명을 주셨습니다.
영혼을 구원하는 사명입니다.
“사람을 취하리라!”
예수님이 주신 최고의 사명이 무엇입니까?
“이제 후로는 사람을 취하리라!”
진정한 말씀의 기적은 사명의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베드로가 밤새 고기를 잡지 못하다가 많은 고기를 잡았던 것처럼!
말씀의 기적이 일어나는 가정이 되기를 바랍니다.
베드로처럼 말씀에 의지하여 그물을 내리기를 바랍니다.
베드로처럼! 예수님앞에 무릎을 꿇는 사람이 되기를 바랍니다.
영혼을 구원하는 사명의 일꾼이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