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의 의미 막16:15-18
사실 ‘내세, 영원, 기적’ 이런 것들은 이 세상의 학문과 지식으로 감지하거나 알아낼 수 있는 것들이 아닙니다. 그러나 그것을 우리에게 알게 하실 때는 가장보편적인 방법으로 그러니까 우리의 삶에 일어나는 아주 일반적인 모든 일들 에서 많이 나타납니다.
예를 들어 애들 키우는 일, 점점 나이 먹어가는 일, 사람과의 관계에서 부딪히는 사건을 접하면서 인생이 무엇인가? 산다는 것이 무엇인가? 하는 데에서 조금씩 생각이 영적으로 바뀌고 또 우리에게 주신 말씀이 정확하구나 하는 것을 깨닫고 삶에서 발견하면서 초월적인 영적부분을 감지하면서 하나님을 찾는 방법을 동원하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경은 기적들이 많이 기록되어 있고 하나님의 직접적인 간섭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기적들을 믿고 간구하고 소망하면 성경말씀대로 일어나는 경우가 많습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면서 하나님이 치유하셨다, 하나님이 돌보셨다,
하나님이 계시하셨다 하는 것을 한두 번 체험 하지 않으신 분이 없을 정도로 사실은 우리가 영적인 능력을 깨닫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기적을 우리의 입장에서 우리의 욕심에서 늘 요구하고 있고 동원하고 있는 것이 문제입니다. 그리고 그 기적이나 영적인 체험이, 영원에 관한 것이 모든 사람에게 동일하게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의학으로 극복하지 못하는 병에 걸리면 수많은 치료법과 약들이 소개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인상실험해서 검정되지 않는 약들이 많이 쏟아지고 있는데 그것을 먹고 치료되었다는 사람들이 간혹 있습니다. 그러면 동일한 병에 걸려서 고통당하는 사람들이 그 약을 그러니까 건강식품이나 한약정도이겠지요. 구입해서 먹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 다른 사람들은 그 약 효과를 보지 못한단 말입니다. 이게 사실 문제 아니겠습니까? 병이 치료될 수는 있지만 그러나 보편적이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한의사들은 체질에 따라 처방을 해야 된다 뭐 이런 식으로도 말을 합니다.
기적도 마찬가지입니다. 모든 사람에게 동일하게 기적을 베푸는 것이 아니기에 오해의 소지가 다분히 있는 것입니다. 사도행전 7장에서 스데반이 설교를 하고 돌에 맞아 죽습니다. 우리의 신앙상식으로는 돌에 맞아 죽으면 안됩니다.
성경에는 분명히 기적과 하나님의 직접적인 간섭과 심판이 자주 등장하는데 꼭 필요한 일이나 사람에게는 하나님이 간섭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스데반이 설교할 때 수많은 사람들이 회개하고 자복해야 맞는 것 아닙니까? 베드로는 어쩌면 스데반보다 조직적이고 체계적으로 설교를 하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3000명이 회개하는 역사가 일어났는데 스데반에게는 왜 아니냔 말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의문거리입니다.
우리 생애만 해도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분명히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셨고 복을 주셨습니다. 그것을 우리는 압니다. 그런 경험과 확신을 가진 성도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 정작 가장 필요 때는 안 들어 주신단 말입니다. 우리 애 원하는 대학과 학과에 붙어주시면 얼마나 좋습니까? 제수를 했는데도 하나님이 오리발을 내 미십니다. 이번에 조금만 도와주시면 탄탄대로인데 결정적 일 때는 안 도와주시고 싸구려만 들어주시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이런 것들이 무슨 의미이며 그리고 이런 기적들을 어떻게 이해해야 되며 어디까지 믿어야 되는가 하는 것이 시급하게 된 실정입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이런 일들을 많이 경험해 오자 결국 적당한 선에서 믿기 시작해 버렸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들이 힘이 없습니다. 모든 것이, 그러니까 예배나 기도나 전도나 이런 것들이 형식적이고 습관적이 되어 버렸습니다. 자주 좌절하고 낙심하며 이웃을 변화시키는 능력 또한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신앙생활에 기대도 없습니다. 기적이 없다고는 안 하지만 기대 안 하는 사람이 되어버린 것입니다.
앞서 말씀드렸지만 하나님은 기적이란 방법을 제일 많이 쓰시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의 삶 속에 초월적인 기적보다는 일상생활의 충실한 삶을 통해서 깨닫게 하시는 경우가 많습니다. 왜냐하면 그 속에 하나님의 손길과 깨우침이 더 많이 있고 그것이 보편적인 방법이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경에 기적이 있고 기적이 자리해야 되는 믿음과 확신이 있어야하는데 우리가 그것을 놓쳐버리는 것은 사실 신자로서 굉장히 가난해지는 것이고 든든한 기초를 하나 포기해야 되는 것입니다.
반복해서 말씀드리는 것 같지만 사실 우리의 일상생활에서 또 경험 속에서 이런 기적들이 제대로 일어난 적이 없고 체험되지 못한 것이라 어디까지 믿어야 되고 어디까지 기대를 해야 되는지 혼돈되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래서 오늘 이 문제가 말씀을 통해서 풀리기를 원합니다.
마가복음 16:15-18 ‘또 가라사대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 믿고 침례를 받는 사람은 구원을 얻을 것이요 믿지 않는 사람은 정죄를 받으리라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곧 저희가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 뱀을 집으며 무슨 독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즉 나으리라 하시더라’ 어떻습니까? 주님께서 친히 하신 말씀입니다. 그런데 이것을 사실 믿고 싶은데 이렇게 되드냐는 말입니다. 이상하게 믿는데 안 됩니다. 이것을 어떻게 이해해야 됩니까? 믿는 자에게 이런 표적이 따르겠다고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마가복음 11:22 ‘예수께서 대답하여 저희에게 이르시되 하나님을 믿으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이 산더러 들리어 바다에 던지우라 하며 그 말하는 것이 이룰 줄 믿고 마음에 의심치 아니하면 그대로 되리라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이 말씀을 어떻게 이해하십니까? 우리가 만일 저 피아노를 보고 밖으로 나가라고 진심으로 믿고 기도하면 저 피아노가 밖으로 나갈 것을 믿습니까? 해보고 되면 믿고 안 되면 안 믿는 것입니까?
믿음이라는 것이 사실 이 본문의 힌트입니다. 믿는다든가 의심치 않는다는 것은 이 문제의 가장 중요한 핵심이 결과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기도를 듣는 전능하신 하나님께 있다는 말씀입니다. 이 세상을 무에서 유를 창조하시고 우리의 인생을 주관하시는 전능하신 하나님이 우리의 기도를 외면하지 않으시고 듣고 계시는데 그 분이 하고자하는 계획은 태양을 멈추어서라도 산을 옮겨서라도 이루시고 만다는 것입니다. 그 믿음은 우리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전능하신 하나님의 뜻 안에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집에 들어가서 스위치를 켜면 불이 들어오고 스위치를 끄면 불이 안 들어옵니다. 그런데 스위치를 켰는데 불이 안 들어오면 믿음이 없어서 불이 안들어 온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어디 휴즈가 나갔겠지 아니면 정전이 되었겠지 이렇게 생각하지 스위치를 켰는데 불이 안들어 왔다고 해서 ‘아! 나는 믿음이 없구나,
의심 했구나 그래서 다시 무릎을 꿇고 앉아서 진실된 마음으로 회개하고 의심 없이 기도하면 불이 딱 들어오는 일은 없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 일은 과학적인 방법으로 대응하는 것이고 기도는 전능하신 인격자를 위해 부탁하는 것이기 때문 입니다. 기도라는 것은 내가 원하는 것이 다 이루어져야 된다는 것은 아닙니다. 기도는 언제나 내가 하나님께 부탁해서 하나님이 그 결과를 이루는 것입니다.
아이가 눈이 적어서 눈을 좀 크게 해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특히 여자아이라 눈이 커야 예뻐 보이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정성이 적어서 그런지 믿음이 없어서 그런지 응답이 없습니다. ‘그럼 그렇지 무슨 기적, 기도한 다고 다 되는 것은 아니야!’ 여러분 이것은 의학적인문제입니다. 빨리 성형수술 받는 것이 제일 좋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만든 솜씨에 반기를 드는 것입니까? 눈이 적은 것으로 인해 살아가는데 전혀 지장이 없기 때문입니다. 믿음을 이런 것에 동원해서는 안되는 것이지요. 우스게로 말씀드린 것이지만 우리가 이런 식의 기도를 많이 한다는 사실을 알아야 됩니다.
성도여러분 믿는다든지 의심치 않는다는 것은 내가 절망 나의 필요한 것을 기도했으며 하나님께서 듣지 않으신 적이 없고, 그것이 하나님이 하고자하는 약속이고 계획이라면 날아가는 새를 몰아서 먹이시듯이 만나를 만들어내어 먹이시듯이 바람을 멈추어서라도 이루시고야 마는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믿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를 향해 사랑과 선함과 복 주시려는 마음을 갖고 계시는 분이기 때문에 외면하실 리가 없다는 것을 알고 믿는 것이 본문 내용입니다. 만일 우리의 기도가 이루어지지 않았다면 그것은 하나님이 보실 때 그 결과가 나에게 필요치 않는 것이거나 해로운 것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그런 체험들을 많이 했습니다. 우리고 합심해서 기도한 일이라 하더라도 그것이 교회에 덕이 안 되고 해가 될 때는 응답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리고 지난 후에 보면 ‘아! 그래서 하나님이 응답하지 않으신 것이구나’하는 것을 깨달을 때가 많았습니다. 예를 들면 우리가 교회를 옮기려고 얼마나 애를 썼습니까? 합심해서 기도도하고 말입니다.
그런데 지금 그 장소에 가보면 정말 옮기지 않은 것이 복이었구나 하는 것을 느끼면서 하나님이 응답하시지 않으신 것도 응답이구나 하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막11:24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랬습니다. 지금 내 손에 들어있지 않아도 지금 눈앞에 없어도 받은 줄로 믿는 것은 내가 섬기고 계신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항상 우리에게 기도하라고 하십니다. 주께서 약속하시기를 내 이름으로 구하는 것은 내가 주겠다고 약속했습니다. 안 이루어지는 이유는 우리에게 해롭기 때문입니다. 영적으로 타락하고 나태한 삶의 결과라면 하나님께서 이루시지 않습니다. 저는 요즘 하나님의 긍휼과 자비가 간절히 필요합니다.
교인들도 참 어려운 가운데 놓인 분들도 많습니다. 여러 가지 문제에 얽혀 계신분도 있고 가정에 어려움으로 고생하시는 분들도 있습니다. 정말 하나님의 긍휼과 자비가 필요한때입니다. 사실 어느 때고 하나님의 긍휼과 자비가 필요하지 않을 때가 없겠습니다마는 요즘 하나님의 간섭하심과 은혜를 많이 사모합니다. 그러면서 마음속에 하나님이 하심에 대한, 꼭 이루실 것이라는 기대가 항상 생긴다는 것입니다.
무엇이든지 됩니다. 내가 기도했으면 그것은 응답받은 것입니다. 한번 하나님께 매달려 봅시다. 간절히 바라는 마음으로 간청해 봅시다. 그러면 반드시 응답하십니다. 축복받는 교회, 생동력이 있는 교회, 부흥이 넘치는 교회, 사명이 살아있는 교회 치고 기도가 끊어지는 교회 없습니다. 그것이 우리교회에도 적용되고 사업체에도, 가정에도 개인에게도 적용되는 말입니다. 우리의 인생에 가장 귀하게 투자해야 될 부분이 있다면 기도입니다.
기도는 염려를 거두어갑니다. 기도는 의심을 거두어갑니다. 기도는 역사를 이룹니다. 이것이 기도의 축복이고 이 축복이 우리에게 있는데 왜 기도하시 않으십니까? 여러분 새벽기도는 하루를 투자하는 것입니다. 새벽의 기도는 하루를 하나님과 동행하는 원천입니다. 오늘 하루를 허락하신 하나님께 감사하며 이 하루를 복되게 드릴 수 있는 가장 귀한시간이 새벽입니다. 우리 영명교회가 새벽을 통해서 하나님의 약속하심을 믿고 기도하신다면 우리의 기도가 열매로 맺히는 것을 분명히 볼 수 있을 것입니다.
마가복음 16:17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 뱀을 집으며 무슨 독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이런 일이 사실 있습니까? 남에게 손을 얹어서 병이 낫습니까? 목사님 ‘저는 아직까지 불면증도 못 고쳤습니다. 안수 받았는데 두통도 아직 낫지 않았습니다. 저 허리는 어떻고요’ 우리의 가장 필요한 부분에 대해서 일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데 대하여 성경은 이런 커다란 약속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바로 이런 것입니다. 너희는 온 천하를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는 사명을 맡은 대상들이라는 것입니다. 흑암 중에 사는 백성에게 사망의 그늘에 잠자는 영혼들에게 복을 주시며 구원의 도를 전하시며 저들을 불러 백성을 삼고자 하는 사랑과 진념과 긍휼과 하늘과 당의 권세를 가지신 이가 그 일을 행하는데 있어서 사소한 일들로 방해받는 일을 허락하지 않으리라는 뜻입니다.
‘뱀을 집으며 무슨 독을 마실지라도’이것이 구원되는 일이라면,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예수그리스도를 보내서 십자가에 죽이시기까지 하신 분이 무슨 일을 못하겠습니까? 그래서 사명자에게 능력을 주고 힘을 주고 길을 열어주고 기적을 베푸는 것입니다. 이것이 주의 일이라면 그것이 생명 살리는 일이라면 뱀을 집어도 무슨 독을 마셔도 그것으로 인해 방해 받을 수 없는 것이 기적입니다.
로마서 8:38-39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 들이나 현재일이나 장래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아무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니라’바로 이 이야기를 뒤집어서 말하자면 너희가 뱀을 집고 독을 마셔도 죽지 않으리라.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의 사랑에서 저들을 끊을 자 없고 하나님이 그 사랑을 담아 구원을 베풀려고 보내는 이를 방해할 것이 없다는 뜻입니다. 시험 삼아 뱀에게 한 번 물러 보십시오. 내가 하나님의 사랑을 입은 사람인가 아닌가를 확인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구원을 이루시고 생명을 살리는데 있어서 무엇으로도 중단되지 않는다는 약속이며 방해 받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구원하기위해 출애굽 할 때 목마름이 방해 되지 않았습니다. 반석에서 물을 내시기까지 그들을 마시게 했습니다. 그들은 추수할 땅도 없었습니다. 씨를 뿌리고 거둘 수 있는 환경과 조건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이 걷는 땅은 척박한 사막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만나를 만들어서 주었습니다. 고기가 먹고 싶다고 해서 메추라기를 몰아주었습니다.
지금 무엇이 방해되고 있습니까? 환경이 방해되지 않습니다. 먹고 마시는 것이 방해되지 않습니다. 밤에는 갈 길을 잃을 수 있고 두려울 수 있고 추워서 고통당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것까지 이스라엘을 구원해내는 일에 있어서 방해되지 않도록 불기둥으로 인도했습니다. 낮에는 무더워서 살 수 없는 곳이지만 그것이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구름기둥으로 인도했습니다.
난공불락의 여리고성이라 할지라도 홍해가 가로놓여있다 할지라도 이스라엘을 구원하고 약속한 땅을 이루기위해서는 하나님이 이스라엘 여정 속에 항상 기적을 베풀어주었습니다. 그들이 40년을 사막에서 생활했지만 옷이 해어지지 않았고 발이 부릅뜨지 않았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역사입니다. 하나님이 계획하시고 가장 귀중한 목적인 구원을 이루는데 있어서는 반드시 무엇을 동원하시더라도 역사하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교회를 세우고 하나님나라를 확장하는 일에 사명을 다한다면 하나님이 분명히 지켜주실 것입니다. 그것이 건강이든, 돈이던, 지혜든 간에 하나님이 길을 열어주실 것입니다. 교회가 커서 청소하는 사람들이 사실 필요합니다. 간단한 일입니다마는 이것을 해결하지 못해서 전도사님들이 애를 먹습니다. 청소하러 오면 그것으로 인해 혹시 어려움을 당한다든지 문제가 생긴다든지 절대로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입니다.
교사를 한다든지, 성가대를 한다든지, 전도계획을 세우고 전도를 나간다든지 하는 일 때문에 어떤 문제도 하나님은 막으시고 길을 여시고 은혜를 주실 것입니다. 이 일을 이루는데 돈이 필요합니까? 건강이 필요합니까? 지식이 필요합니까? 이것 때문에 절대로 하나님의 일을 하는 사람들이 방해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사명 받은 자들은 죽지 않는다는 말을 이런 관점에서 하는 것입니다.
사도행전을 보면 스데반의 순교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는 은혜와 권능이 충만하고 그 얼굴이 천사 같았고 많은 기적을 행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스데반의 사역을 죽음으로 가고 있었습니다. 기왕 스데반에게 은혜와 권능을 주었더라면 먼저 돌에 맞아 죽는 일부터 막으셔야 되지 않겠습니까? 스데반은 남을 고쳐내고 도와주고 그런데 정작 스데반이 죽는 데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여러분 기적은 우리가 요구하는 목표와 결과를 이루는 방법으로서가 아니라 그가 가는 길이 하나님이 보시고 인정하시는 길이란 말입니다. 우리가 죽은 한이 있더라도 이것이 하나님이 원하시고 기뻐하시는 일이면 된다는 믿음이 우리에게는 없습니다. 예배가 왜 소중하냐하면 하나님은 예배드리는 것을 기쁘게 받으시기 때문입니다. 내가 드리는 시간과 헌신이 주님에게 기쁜 것이라면 고난마저도 그것이 주님이 기쁘신 것이라면 우리는 족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주님이 기뻐하시는 것이 하늘나라의 영광이요 축복이기 때문입니다.
히브리서 11:6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하나님이 계신 것과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합니다. 하나님이 계신다는 것은 우리가 보고 경험하는 이 세계가 전부가 아니라는 뜻입니다. 천국이 어디 있냐? 지옥이 어디 있냐? 이렇게 이야기하지 말라는 말입니다.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 일부입니다
. ‘아! 그러니까 천왕성 명왕성 다음에 안 보이는 세계, 이런 물질계가 아닌 영적인 세계, 영계가 있구나’하는 것은 하나님이 계신 것으로 알게 됩니다. 그 다음에는 하나님이 상주심입니다. 그의 모든 존재의 주인이 하나님이란 말입니다. 하나님이 상과 벌을 주고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분이시란 말이지요. 이것을 믿는 믿음 안에서의 삶이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삶입니다.
말씀의 결론을 맺겠습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위해서 가는 사명의 길에는 무엇이 방해할 수없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됩니다.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삼았습니다. 그냥 삼은 것이 아니라 예수그리스도의 피흘림으로 자녀 삼았습니다. 그러니까 우리를 그냥 내 버려둘 리 없다는 사실을 아셔야합니다. 무엇을 동원해서라도 어떤 기적과 역사를 이루어서라도 하나님은 자녀로서의 특권을 누리고 자녀된 길을 걸어가는 일에 방해 할 수 없습니다. 태양을 멈추어서라도 산을 옮겨서라도 해내시고야 마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주님의 길을 걸어가는데 염려하지 말아야 됩니다. 그 분이 주신 말씀을 따라 가는 길에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분이 주신 지상명령을 수행하는데 염려할 필요가 없단 말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지키시며 도우시며 언제나 함께하심을 믿고 하나님이 계신 것과 상 주시는 이심을 믿고 살아가는 지혜로운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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