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으면 이런 표적이 나타납니다 막16:11-18
아마 대한민국 역사상 가장 흥분되었던 시기는 6년 전인 2002년 축구월드컵 기간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런데 2002월드컵축구 경기 중에서 가장 흥분되었던 최고의 경기를 꼽으라고 한다면 많은 사람들은 이탈리아와의 16강전 경기를 꼽을 것입니다. 예선 3경기나 스페인과의 준준결승전이나 독일과의 준결승전도 흥분되는 경기였지만, 이탈리아와의 경기는 다른 어떤 경기보다도 가장 흥분되는 경기였던 것 같습니다
제 기억으로는 전반전 안정환 선수가 페널티 킥에 실패하면서 응원하던 국민들에게 큰 아쉬움과 실망을 주었습니다. 그런데 엎친데 덮친 격으로 이탈리아의 비에리 선수에게 헤딩골을 내줘 패배 직전에 몰렸다가 경기종료 5분 정도 남았을 때 설기현 선수의 극적인 동점골로 연장전에 들어갔습니다. 그러다가 연장 후반 12분에 안정환 선수의 극적인 헤딩 골로 한국팀이 2대1로 승리를 거둔 것을 여러분들은 기억하실 것입니다.
그런데 이 경기가 끝나고 매스컴에서는 당시 한국팀 감독이었던 히딩크 감독의 선수운용방식을 대대적으로 칭찬하였습니다. 다른 감독이었다면 페널티 킥에 실패한 선수를 야단치고 심하면 아예 경기에서 빼버릴 텐데, 히딩크 감독은 달랐습니다. 가장 중요한 순간에 페널티 킥에 실패한 안정환 선수를 빼지 않았습니다. 히딩크 감독은 안정환 선수에게 제2의 기회를 주어, 그로 하여금 자신의 실수를 만회할 수 있게 했습니다. 이것이 히딩크 감독의 탁월한 용병술입니다.
그런데 성경을 보면 하나님께서도 히딩크 감독처럼 실수한 당신의 백성들에게 제2의 기회를 주시는 경우를 종종 볼 수 있습니다. 실수했다고 해서 버리거나 포기하지 않으시고 또 다시 기회를 주어 그들로 하여금 자신의 실수를 만회하게 하십니다. 구약의 요나 선지자는 하나님으로부터 니느웨로 가서 회개의 메시지를 선포하라는 말씀을 듣고도 니느웨로 가지 않고 다시스로 가는 배를 탔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요나 선지자를 포기하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은 바다에 빠져 죽을 위기에 처한 요나를 위해 큰 물고기를 준비하여 살려주신 후, 그에게 제2의 기회를 주셨습니다. 또 신약의 베드로도 마찬가지입니다. 주님께서는 3번씩이나 당신을 부인하고 세 번째는 저주까지 했던 베드로를 포기하지 않으셨습니다.
주님은 그를 용서하시고 그에게 제2의 기회를 주셨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우리가 당신의 기대에 따르지 못한다 할지라도, 우리를 버리거나 포기하지 않으십니다. 설령 우리가 우리 자신에게 실망할 만큼 하나님께 잘못을 하고 실수를 해도, 하나님은 여전히 우리를 사랑하시며 우리에게 다시 한번 기회를 주십니다. 할렐루야! 우리 옆에 계신 분들과 인사하겠습니다. ”하나님은 여전히 당신을 사랑하십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비록 실수를 해도 여전히 우리를 사랑하시는 줄로 믿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제2의 기회를 주시기 위해 우리를 포기하지 않으시는 줄로 믿습니다.
포기하지 않으시는 주님 우리는 오늘 본문을 통해서 ‘포기하지 않으시는 주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셨다가 3일 만에 부활하셨습니다. 이미 우리가 한 달 전 부활주일에 살펴본 것처럼, 부활하신 예수님은 막달라 마리아와 야고보의 어머니 마리아와 살로메 등에게 보이셨습니다. 그리고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에게 보이셨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제자들이었습니다. 오늘 본문 11절에서, “그들은 예수께서 살아나셨다는 것과 마리아에게 보이셨다는 것을 듣고도 믿지 아니하니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처럼, 그들은 여인들로부터 전해들은 예수님의 부활을 믿지 않았습니다. 지금 그들이 누구입니까? 제자들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3년 동안 따라다니며 수도 없이 많이 부활에 대해 들었지만, 어이없게도 예수님의 부활을 믿지 않았습니다.
13절에서도 그들의 한심한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두 사람이 가서 남은 제자들에게 알리었으되 역시 믿지 아니하니라.” 여기에서 중요한 부분은 ’역시‘라는 단어입니다. 엠마오로 가던 두 제자가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후 그 소식을 그들에게 전해주었지만, 역시 그들은 믿지 않았습니다. 이쯤 되면 누가 봐도 그들은 예수님의 제자가 될 자격이 없습니다. 만약 제가 예수님이라면, 저는 더 이상 그들을 제자로 생각하지 않을 것입니다.
아무리 부활을 이야기해도 믿지 못하는 한심한 그들을 아예 더 이상 만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다르십니다. 다같이 14절을 보겠습니다. ”그 후에 열한 제자가 음식 먹을 때에 예수께서 그들에게 나타나사 그들의 믿음 없는 것과 마음이 완악한 것을 꾸짖으시니 이는 자기가 살아난 것을 본 자들의 말을 믿지 아니함일러라.“ 예수님을 은 30냥을 팔아먹은 가룟 유다를 제외한 11명 제자들이 모여서 식사를 하고 있는 자리에 나타나셨습니다.
그리고 두 번씩이나 부활소식을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당신의 부활을 믿지 않는 그들의 믿음 없음과 마음이 완악한 것을 책망하셨습니다. 여기까지는 우리의 예상대로입니다. 그러나 15절을 보면 우리의 예상은 빗나가고 맙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부활을 믿지 못하는 제자들을 책망하며 꾸짖으시는 했지만, 그렇다고 그들을 완전히 포기한 것은 아닙니다. 예수님은 포기하지 않으시고 그들에게 다시 한번 사명을 주십니다.
다시 사명을 주시는 주님 15절과 16절을 보겠습니다. ”또 이르시되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 믿고 침례를 받는 사람은 구원을 얻을 것이요 믿지 않는 사람은 정죄를 받으리라.“ 본문 15절에서 놓쳐서는 안 될 중요한 두개의 단어가 있습니다. ‘온 천하에 다니며’라는 단어와 ‘만민에게’라는 단어입니다. 이 두 단어는 장소와 대상을 의미하는데, 장소와 상관없이 모든 사람에게 복음을 전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내가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겠다’고 말씀하지 않으시고,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은 복음을 전파하는 것이 교회에, 즉 믿는 자들에게 위임되어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믿는 우리들이 해야 할 의무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자동차를 운전하면서 교통법규를 지키고, 직장이나 사업장에서 번 수입에서 세금을 냅니다. 왜 그렇습니까? 국민의 의무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교통법규를 지키고 싶지 않아도 지켜야 하고, 내고 싶지 않아도 세금을 내야 합니다. 복음전파도 마찬가지입이다. 의무이기 때문에 복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하고 싶어서 하는 것이 아니라, 하기 싫어도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억지로라도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이 ”내가 복음을 전할지라도 자랑할 것이 없음은 내가 부득불 할 일임이라.“(고전9:16)고 고백한 것처럼, 복음증거는 우리의 책임이라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복음 전파는 옵션사항이 아니라, 필수사항인 줄로 믿습니다. 복음을 전하는 것은 부득불 해야 할 우리의 의무인 줄로 믿습니다. 물론 우리가 온 천하에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복음을 증거하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한 청년이 아침 일찍 바닷가를 산책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저 앞에 어떤 나이가 드신 한 노인이 계속해서 모래 위에 올라와 있는 불가사리들을 주워서 다시 바다에 던져 넣는 것이 보였습니다. 청년은 그 노인에게 가까이 다가가서 왜 그렇게 하시는지 물었습니다. 그러자 노인이 이렇게 대답합니다. “조금 있다가 해가 뜨겁게 비치면 모래 위에 올라와 있는 불가사리들이 말라죽기 때문에 지금 바다에 던져 주고 있는 것이오.” 청년은 어이가 없어서 이렇게 말합니다.
“할아버지, 모래 위에 널려 있는 이렇게 많은 불가사리들은 어떻게 다 바다에 던져 넣을 수 있어요?” 그 때 그 노인은 “물론 모래 위에 올라와 있는 이 모든 불가사리들을 다 바다에 던져줄 수는 없겠지. 그러나 내 손에 들려있는 이 불가사리는 내가 바다로 던져주면 살 수는 있지”라고 말하고는 손에 들고 있는 불가사리 하나를 바다로 던져주었다고 합니다.
마찬가지 원리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 있는 수많은 영혼들을 다 구원의 길로 인도할 수는 없습니다. 우리가 죽는 날까지 끊임없이 복음을 전해도 불가능합니다. 그러나 내 손에 맡겨진 영혼, 내 가까이에 있는 영혼들은 주님께로 인도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남태평양의 부시에 가거나 아프리카 오지에 가서 복음을 전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곳에 가지 않는다 할지라도, 직장이나 사업장이나 동네나 학교, 등의 우리의 삶의 터전에서 만나는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할 수 있습니다. 하다못해 가정 안에 있는 불신 남편이나 불신 부모님들에게 복음을 전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어느 곳에서든지 만나는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복음을 전하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소원합니다. 어디에서 누구를 만나든지 복음을 전함으로 말미암아, 주님께서 주신 사명을 잘 감당하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주님께서는 두 번씩이나 부활소식을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당신의 부활을 믿지 않는 제자들을 포기하지 않으시고 그들에게 복음전파의 사명을 주셨습니다. 그런데 주님께서는 악덕업주와 같은 분이 아닙니다. 세상의 악덕업주들은 어떻게 합니까? 직원들이나 아르바이트생들을 마구 부려먹습니다. 일만 잔뜩 시켜 먹고 임금을 떼먹는다든지, 아니면 임금을 제대로 주지 않습니다. 주님은 제자들에게 사명만 주고 나 몰라라 하는 악덕업주와 같은 분이 아닙니다.
또한 아무런 대책도 세우지 않고, 변변한 무기도 주지 않은 채 나가서 싸우라고 명령하는 무자비한 사령관과 같은 분이 아닙니다. 주님은 당신의 제자들에게 맨손으로 세상에 보내시지 않으셨습니다. 다같이 17절과 18절을 보겠습니다.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곧 그들이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 뱀을 집어올리며 무슨 독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즉 나으리라 하시더라.“ 여기 17절과 18절을 보면, 주님께서는 4가지의 중요한 약속을 해주셨습니다.
주님의 4가지 약속 주님께서는 당신의 제자들에게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고 사명을 주신 후, 사명을 감당하는 사람에게 나타나게 될 4가지 표적을 약속해주셨습니다. 여기 \\\\\\\'표적\\\\\\\'이라는 단어는 NIV 영어성경에서는 ‘Signs\\\\\\\'로 번역되어 있지만, 원어로는 ’쎄메이온(shmei\\\\\\\'on)‘이라는 헬라어로서, 상징, 징후, 이적, 기사, 등의 의미가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믿는 사람들이 복음을 증거할 때, 4가지 표적이 나타난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주님께서 이렇게 약속하신 이유는 당신의 제자들이 세상의 핍박 속에서도 끝까지 담대하게 복음을 증거하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주님께서 약속하신 것을 한 가지씩 살펴보겠습니다.
1) 귀신을 쫓아냄 첫째로 믿는 자들은 귀신을 쫓아낼 수 있다고 하십니다. 본래 사단은 하나님을 섬기던 천사였지만, 타락하여 천국에서 쫓겨났습니다. 이 사단이 귀신들을 이용하여 믿는 사람들을 미혹합니다. 때로는 돈으로, 때로는 명예로, 때로는 성적인 문제로, 믿는 사람들을 넘어뜨리기 위해 미혹하고 유혹합니다.
이 귀신들은 다른 것은 무서워하지 않고 예수님의 이름을 가장 무서워합니다. 예수님이 십자가 위에서 사단을 누르고 승리하신 것을 귀신들은 귀신 같이 압니다. 귀신들은 다른 것은 무서워하지 않고, 오직 예수님만을 무서워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예수님의 이름을 사용하면 귀신들은 쫓겨나가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 이름의 권세를 사용하시기 바랍니다. 꿈속에서 가위 눌린다든지, 자꾸만 정신이 혼란스러워진다든지, 기도에 집중하지 못한다든지 할 때, 이렇게 외치시기 바랍니다. ”내가 나사렛 예수 이름으로 명하노니, 악한 마귀야 떠나갈지어다. 내가 예수 이름으로 명하노니 더러운 귀신아 떠나가라. 꿈자리를 시끄럽게 하는 귀신아, 예수 이름으로 명하노니 한 길로 왔다가 일곱 길로 떠나갈지어다.“ 누가복음 10장을 보면 예수님은 복음을 전하도록 하기 위해, 70명의 제자들을 둘씩 짝지어 각 지역으로 파송하셨습니다.
70명의 제자들은 복음을 전하고 돌아와서 주님께 이렇게 보고를 했습니다. “주여, 주의 이름이면 귀신들도 우리에게 항복하더이다.”(눅10:17) 여러분, 귀신이 무엇 때문에 항복했다고 합니까? 주의 이름, 즉 예수 이름으로 귀신들이 항복했다는 것입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사탄이 하늘로부터 번개같이 떨어지는 것을 내가 보았노라. 내가 너희에게 뱀과 전갈을 밟으며 원수의 모든 능력을 제어할 권세를 주었으니 너희를 해할 자가 결코 없으리라.”(눅10:18~19) 할렐루야! 그렇습니다. 예수 이름에는 능력이 있는 줄로 믿습니다. 믿는 우리들은 뱀과 전갈을 밟으며 원수의 모든 능력을 제어할 수 있는 예수 이름의 권세를 가지고 있는 줄로 믿습니다. 이것이 믿는 자에게 따르는 첫 번째 표적입니다.
2) 새 방언을 말함 둘째로 믿는 자들은 새 방언을 말할 수 있다고 하십니다. 여기 ‘방언’이란 원어로 ‘말’이라는 뜻의 ‘글롯사’라고 합니다. 글롯사에는 대인방언과 대신방언 두 가지가 있습니다. 대인방언은 다른 사람과 대화할 수 있는 언어적 방언이고, 대신방언은 하나님과 대화할 수 있는 비언어적 방언입니다. 지난주 중고등부 수련회 기간인 목요일 저녁, 성령께서 크게 역사하셨습니다. 저녁 8시에 찬양으로 시작한 성령대망회에서 말씀을 다 듣고 난 학생들이 회개하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과 부모님과 친구들에게 잘못한 죄를 회개하며 눈물, 콧물 흘리며 흐느끼는 학생들이 참 많았습니다. 그리고 5분도 제대로 기도하지 못하던 많은 학생들이, 기도 시간만 되면 몸을 비틀고 억지로 앉아 있던 학생들이, 화장실도 가지 않고 무릎을 꿇고 목이 터져 라고 새벽 1시30분까지 기도했습니다. 찬양시간부터 따지면 5시간 반, 말씀 후부터 따진다 해도 4시간 이상 기도한 학생들이 많았습니다.
그런 가운데 많은 학생들이 새롭게 방언의 은사를 받아, 몇 명만 빼고 대부분의 학생들이 방언의 은사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방언의 은사를 받은 학생들은 다른 친구들도 방언을 받도록 목숨 걸고 중보기도해주기도 했습니다. 이처럼 믿음으로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는 비언어적 방언을 주십니다.
또한 드물기는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언어적 방언도 주십니다. 지금은 연로하셔서 거의 활동하지 않고 계시지만, 21세기에 들어와서 하나님께 가장 크게 쓰임 받으셨던 분 중의 한 분은 \\\\\\\'빌리 그레함\\\\\\\' 목사님이십니다. 그 분이 모스크바 집회를 할 때의 일입니다. 빌리 그레함 목사님은 러시아어 통역사를 통해 설교 도중 이렇게 선포했다고 합니다.
\\\\\\\"미국 사람들도 예수를 믿지 않으면 멸망합니다.\\\\\\\" 그러자 통역사는 신이 나서 통역을 했습니다. 그런데 이어서 \\\\\\\"소련 사람도 예수 믿지 않으면 멸망합니다.\\\\\\\"라고 하자, 통역사가 아무 소리 안하고 가만히 있더랍니다. 빌리 그래함 목사님은 통역사는 못 들은 줄 알고 한 번 더 얘기했습니다. 그래도 통역사가 통역을 하지 않더랍니다. 그때 목사님은 ‘지금 이 사람이 그 말씀을 통역했다가는 집회에 끝나자마자 형장의 이슬로 사라질 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에 지금 통역을 못하는 구나’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통역사가 통역을 해주던지 해주지 않던지 상관하지 않고 하나님 앞에 기도하면서 다시 그 말씀을 선포했는데, 놀라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선포된 말씀이 러시아 방언으로 선포된 것입니다. 모스크바 광장에 있던 수많은 사람들이 “소련 사람도 예수 믿지 않으면 멸망합니다.”는 말씀을, 러시아 방언으로 알아들은 것입니다. 물론 빌리 그래함 목사님은 러시아어를 전혀 할 줄 모르는 분이었습니다. 이것을 새 방언이라고 합니다.
이처럼 방언에는 비언어적 방언과 언어적 방언이 있습니다. 비언어적 방은 방언 통변이 되지 않으면 무슨 말인지 우리가 알 수는 없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말로 기도하는 것보다 방언을 통해서 우리는 하나님과 더 깊이 그리고 더 오랫동안 대화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내가 만일 방언으로 기도하면 나의 영이 기도하거니와, 나의 마음은 열매를 맺히지 못하리라. 그러면 어떻게 기도할까 내가 영으로 기도하고 또 마음으로 기도하며, 내가 영으로 찬송하고 또 마음으로 찬송하리라.”(고전14:14~15)고 밝힌 적이 있습니다. 방언기도의 장점은 인간언어의 한계를 뛰어넘는 기도를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알고 있던 사도 바울은 “내가 너희 모든 사람보다 방언을 더 말하므로 하나님께 감사하노라(고전14;18).”고 까지 말할 만큼 방언기도를 많이 했습니다. 그러므로 아직까지 방언의 은사를 받지 못한 분들은 방언의 은사를 사모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는 간절히 사모하는 사람에게 방언의 은사를 주실 줄로 믿습니다. 중고등부 학생들 중 지난 수련회 기간 동안 정말 열심히 기도했지만, 아직까지 방언의 은사를 받지 못한 몇 명 남은 학생들도 조그만 더 간절하게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방언의 은사를 주실 줄로 믿습니다. 이것이 믿는 자에게 따르는 두 번째 표적입니다.
3) 해를 받지 않음 셋째로 믿는 자들은 해를 받지 않을 수 있다고 하십니다. 18절 상반절을 보면, ’무슨 독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라고 말씀하고 있는데, 이 말씀이 무슨 뜻일까요? 정말 농약이나 독극물을 마셔도 죽지 않는다는 말씀일까요? 어느 목사님의 글에서 아주 믿음 좋은 신학생에 대한 이야기를 읽은 적이 있습니다. 그 신학생은 글자 그대로 성경을 믿었다고 합니다. ’좁은 길로 다니라‘고 예수님이 말씀하셨기 때문에 골목길만 될 수 있는 대로 찾아다녔다고 합니다.
’쉬지 말고 기도하라‘고 하셨기 때문에, 시험을 앞두고도 공부는 하지 않고 기도만하며 성경만 보았다고 합니다. 또 몇 명 앞에서 독약을 들고 “봐라. 나는 이 성경에 나오는 ’무슨 독을 마실 지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라는 이 말씀을 그대로 믿는다. 자! 봐라!”라고 말하고는 다른 친구들이 말릴 틈도 없이 마셔 버렸다고 합니다. 여러분, 이 신학생이 어떻게 되었을까요? 그 자리에서 죽었다고 합니다.
만약 그 학생이 독인 줄 알고도 일부러 마셨다면, 그것은 하나님을 시험한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시험해서는 안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독극물을 마시면 어떻게 될까 하며 하나님을 시험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무슨 독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라고 말씀이 무슨 뜻일까요? 만약 우리가 독극물인지 모르고 먹었다고 가정하겠습니다.
하나님을 시험하기 위해서도 아니고 실수로 독극물을 마셨을 때, 하나님께서는 독을 마신 위험으로부터 믿음의 사람을 보호해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설령 실수로 해서 독을 마셨다할지라도, 해를 받지 않게 해주시는 줄로 믿습니다. 믿는 자들에게 이런 표적을 보여주시는 줄로 믿습니다. 이것이 믿는 자에게 따르는 세 번째 표적입니다.
4) 병든 사람을 치료함 넷째로 믿는 자들은 병든 사람을 치료할 수 있다고 하십니다. 마태복음, 마가복음, 누가복음, 요한복음, 등 사복음서를 보면, 4분의 1이 치유에 대한 기록입니다. 예수님은 가는 곳마다 많은 병자를 고쳐주셨습니다. 우리가 오늘 마가복음을 51번째 살펴보고 있지만, 지난 50주 동안 살펴본 것처럼, 예수님은 별의별 환자를 다 고쳐주셨습니다.
그리고 제자들에게도 병 고치는 권세를 주셨습니다. 누가복음 10장 8절과 9절을 보면, “어느 동네에 들어가든지 너희를 영접하거든 너희 앞에 차려 놓는 것을 먹고, 거기 있는 병자들을 고치고 또 말하기를 하나님의 나라가 너희에게 가까이 왔다 하라.”고 말씀하시면서 병 고치는 권세를 주셨습니다. 오늘 본문 18절 하반절에서도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즉 나으리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저는 이 말씀을 믿습니다. 우리가 믿음을 가지고 예수 이름으로 병든 자에게 손을 얹고 기도하면, 치료되는 역사가 나타나는 줄로 믿습니다. 그러므로 이 사실을 조금도 의심하지 말고 믿어야 합니다. 일반적으로 신유의 은사는 믿음의 은사와 함께 합니다. 믿음이 있어야 병이 치료되고, 병이 치료되려면 믿음의 은사가 있어야 합니다.
저는 1998년 6월에 우리 교회에 부임한 이래 약 10년 동안 이루 헤아릴 수 없는 신유의 역사를 체험했습니다. 다 밝힐 수는 없지만 최근에 있었던 것 몇 가지만 소개하겠습니다. 작년 이 맘 때 쯤으로 기억이 나는데, 이용호집사님의 둘째 서연이의 귀에 문제가 있어서 크라이스트처치병원에 수술날짜를 잡아 놓았습니다.
그리고 저에게 기도를 부탁해왔습니다. 새벽마다 기도를 하는데, 어느날 저에게 믿음이 생겼습니다. 그 때부터 수술이 잘 되도록 기도하는 대신, ‘수술하지 않고 낫게 해주십시오‘라고 기도를 했습니다. 저 혼자 속으로만 기도한 것이 아니라, 새벽기도회에서 공개적으로 그렇게 기도했습니다. 그 결과 어떻게 되었을까요? 수술도 하지 않고 나은 줄로 믿습니다. 수술하려고 아기를 데리고 병원에 갔지만, 병원에서 수술하기 직전 마지막 검사를 하다가, 나 나은 것을 발견한 것입니다.
할렐루야! 또 2주 전부터 알파코스 해피하우스 2기에 성령께서 크게 역사하고 계십니다. 치유라는 주제의 40분간의 짧은 토크를 마치고 게스트들과 테이블 리더들과 함께, 간절하게 믿음으로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기도를 마친 후 제 입에서 저도 모르는 사이에 “이 자리에 왼쪽 엉덩이 근처가 아파 고생하고 있는 분이 계십니다. 허리는 아니고 허리 밑 부분입니다. 누구세요?”라는 말이 나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자 우리 교회는 출석하고 있지 않지만, 알파코스를 통해서 많은 은혜를 받고 있는 자매님 게스트 한 분이 나오는 것이었습니다. 그 분 말에 의하면 \\\\\\\'자기보다 보험으로 한의원을 많이 다닌 사람이 없을 것입니다\\\\\\\'라고 할만큼 셀 수 없이 침을 많이 맞고 계신 분이었습니다. 또 매일 파스를 붙이지 않고는 견딜 수 없다는 분이셨습니다. 그래서 그 분을 위해 간절히 기도해드렸습니다. 한 주가 지난 후에 그 분에게 물었더니 “약간 통증이 남아 있기는 하지만, 지난 한 주 동안 파스 한 장도 붙이지 않았지만, 문제가 없다는 것입니다.”라고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할렐루야! 많은 차도가 나타난 것입니다. 또 성령께서 저에게 왼쪽 목이 아픈 분을 보여주셨습니다. 저는 어느 누구로부터도 왼쪽 목의 통증 때문에 고통을 당하고 있고, 약을 먹어도 차도가 없어 고생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없는데, 성령께서 정확하게 보여주셨습니다. 그래서 “왼쪽 목이 아프신 분이 이 자리에 계십니다.
정확하게 왼쪽 목이 아프신 분이 누구죠?”라고 믿음으로 물었더니, 역시 테이블 리더 중 한분이 나오셨습니다. 그래서 간절하게 기도해드렸습니다. 역시 그 분은 약으로도 통증이 사라지지 않았는데, 하나님께서 고쳐주셨습니다. 또 어릴 때 무릎 연골을 다쳐 어린 아이가 밀어도 넘어질 정도로 약한 무릎 때문에 큰 고통을 겪고 있던 어느 게스트의 무릎을, 하나님께서 그 날 고쳐 주셔서 통증이 사라졌다는 간증을 전해 들었습니다.
또 자매 게스트의는 2년 동안 왼쪽 팔의 통증 때문에 마사지도 받고 별의별 치료를 해지만, 차도가 없어 고생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차에 \\\\\\\'치유토크\\\\\\\'를 끝내고 기도해주었는데, 그 이후 아무런 통증도 느끼지 못할 만큼 하나님께서 완전히 치료해 주셨습니다. 지난주에도 모든 토크를 끝내고 기도하는데, 또 성령께서 저에게 왼쪽 치아쪽을 보여주셨습니다. 그래서 제가 “여기 왼쪽의 치통으로 고생하는 분이 계십니다. 누구세요?“라고 했더니 역시 한 분이 나오셔서 간절하게 기도해드렸습니다. 그리고 1주일 후에 물어보니 전혀 아프지 않을 만큼 치료해주셨습니다.
이처럼 성령께서는 우리가 모르는 것도 가르쳐주시는 줄로 믿습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기도할 때 역사하시는 줄로 믿습니다. 우리가 믿음을 가지고 예수 이름으로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고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치료해주시는 줄로 믿습니다. 그러므로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즉 나으리라‘고 하신 말씀을, 말씀 그대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이 말씀을 의지하여 기도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치유의 역사를 체험하시기를 바랍니다. 믿음이 있으면 치유의 역사가 나타납니다. 이것이 믿는 자에게 따르는 네 번째 표적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제 말씀을 맺겠습니다. 주님께서는 믿는 자들에게 나타나는 네 가지 표적을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이 말씀은 \\\\\\\'특별한 사람들\\\\\\\'에게만 해당되는 말씀이 아닙니다. 이 말씀은 12명의 제자뿐 아니라, 70명의 제자들과 더 나아가 우리 모두에게 해당되는 말씀입니다. 목사나 전도사가 아니라도, 은사를 받지 않은 사람이라 할지라도, 신학교를 나오지 않았다 할지라도, 믿음만 있으면 이런 4가지 표적을 일으킬 수 있다는 것입니다.
사실 지난주에 집 사람이 알파코스 해피하우스에 참여하고 있는 모집사님처럼 왼쪽 어금니의 통증으로 많이 고생을 했습니다. 새벽기도도 거의 빠지고, 심방도 못하고 밥도 제대로 먹지 못한 채 고생을 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알파코스에서는 믿음으로 기도를 받았던 사람들이 많이 나았어요. 내가 기도할 테니 믿음으로 함께 기도해 봐요. 그리고 나으면 나에게 내일 아침 치료비 꼭 줘야해요.” 그랬더니 집사람은 고개를 끄덕인 후, 저의 기도를 받았습니다. 여러분, 어떻게 되었을까요? 낫았을까요? 낫지 않았을까요? 저도 궁금했습니다. 다음 날 아침 과연 낫았을까 궁금했는데, 나중에 알고보니 너무 치통이 심해 집 사람 혼자 치과에 가서 이빨을 뽑고 돌아왔다는 것입니다.
저는 용돈 벌 찬스를 놓치고 말았습니다. 아내의 믿음이 부족했는지, 아니면 저를 목사로 보지 않고 남편으로 생각해서 인지는 몰라도, 하나님의 치유의 손길을 경험하지 못했습니다. 저는 아내의 그 모습을 보면서 ‘이건 아닌데’라는 생각이 들면서 약간 실망이 들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한국의 유명한 000 목사님의 이야기를 생각하며 약간의 위로를 받았습니다. 그 목사님은 50여 년 동안 기도로 수많은 환자를 고치셨지만, 사모님이나 자녀들이 배탈이 났을 때, 고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무엇이 문제입니까? 믿음이 문제입니다. 목사이든지, 집사이든지, 권사이든지, 새신자이든지, 만약 믿음만 있다면 누구든지 예수 이름으로 네 가지 표적을 나타낼 수 있는 줄로 믿습니다. 믿음만 있다면 누구든지 예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 무슨 독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병든 사람을 치료할 수 있는 줄로 믿습니다. 그러므로 저는 저와 여러분들안에 이러한 하나님의 역사를 일으키는 믿음이 있기를 소원합니다. 그리고 믿음에 따른 하나님의 능력을 통해 온 천하에 복음을 증거하여 주님께 영광 돌리며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