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찌하여 기적을 요구하는가? 막8:11-13
사람들이 예수님을 뒤쫓아 다니며 줄기차게 요구하던 한 가지 질문이 있습니다. \\\"표적을 보여달라!\\\"는 것입니다. 당신이 성경에 오리라 예언된 메시아라면 메시아라는 것을 입증할 만한 기적을 우리에게 보이라는 것입니다. \\\'당신이 하나님의 일을 한다고 하는데 백문이불여일견이라고 하나님이 당신을 보내셨다는 어떤 증거라도 있으면 보여주시오. 자칭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계속해서 떠벌리기만 하면 무슨 소용이 있겠소. 사실이 그렇다는 것을 확실히 보여주면 그뿐 아니오. 그러니 당신이 주님의 일을 하고 계신 분이라는 사실을 모두가 인정할 만한 표적을 우리에게 보여 주시오. 이스라엘의 지도자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의 사슬에서 해방시켜 가나안으로 인도하던 중, 하늘로부터 만나와 메추라기를 내려 하나님의 위대한 능력을 보여 주지 않았는가? 하나님의 선지자 엘리야도 하나님께 기도하므로 하늘로부터 불을 내리게 하여 하나님이 함께 하심을 기적으로 보여주지 않았느냐? 그렇다면 당신이 하늘로부터 온 사람이라면 놀라운 표적을 통해 하늘로부터 왔다는 증거를 보여주어야 마땅하지 않겠느냐?\\\'
사람들의 요구
메시아임을 입증해 보이라는 이들의 요구는 예수님의 지상사역 기간동안 줄곧 주님을 괴롭혀왔던 문제입니다. 주님께서 십자가를 지시고 돌아가실 때에도 십자가처형장면을 구경 나왔던 많은 군중들이 뭐라고 소리질렀습니까? \\\"당신이 만약 하나님의 아들이라면 그 십자가에서 뛰어 내려와 보라. 자기 자신도 구원하지 못하면서 남을 구원하겠다는 것이 말이나 되느냐? 당장 그 위에서 펄쩍 뛰어 내려온다면 또 모를까? 자 때는 왔소. 지금이 바로 그 때요. 지금이야말로 만민들 앞에서 당신이 메시아임을 입증할 만한 절호의 기회가 아니오? 주저하지 말고 어디 한 번 하늘의 표적을 보여주시지. 우리도 뭔가를 봐야 당신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든지 말든지 할 것 아니겠소.\\\"
만약 여기서 그들의 요구대로 숨은 괴력을 발휘하여 손발에 박힌 대못을 쑥쑥 뽑아버리고 십자가에서 공중제비 돌아 멋진 모습으로 뛰어내린 다음 \\\"짠! 자 똑똑히 보아라. 내가 아무 것도 할 줄 몰라서 그동안 가만있었는지 아는가? 너희가 이래도 못 믿겠느냐?\\\" 라며 호통을 치셨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모르긴 몰라도 일대 혼란과 반전이 일어났을 겁니다. 겱구 십자가지시는 일은 실패로 돌아갔을 거예요.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이들의 요청을 침묵으로 거절하십니다. 묵묵히 십자가에 달리셔서 \\\'다 이루었다\\\'는 이 한마디 남기시고 돌아가십니다. 무슨 말입니까? 우리의 구원은 기적으로부터 오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구속의 은총은 십자가를 기피하고 거부하는데 있는 것이 아니라 십자가를 지고 대속의 피를 흘리는데 있다는 말씀입니다. 주님은 자신의 죽음을 통하여 십자가만이 우리의 구원을 보장해줄 수 있음을 증언하십니다. 죽으심으로 이것이 하늘의 뜻임을 순명으로 보여주십니다. 십자가 외에 다른 대안은 없습니다.(There is no alternative.) 한번 따라해 봅시다. \\\"구원은 기적으로가 아니라 십자가로 말미암는다.\\\"
하늘의 표적
사람들은 무언가 기적을 보고 싶어합니다. 기적을 보여달라는 요청은 예수님 당시에만 있는 일이 아닙니다. 문명의 첨단을 달리는 오늘날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오늘의 본문 말씀을 보십시오. 사람들이 예수님 앞에 나아와 요구하는 내용이 무엇입니까? 당신이 정말하늘로부터 온 사람이라면 하늘로부터 오는 표적을 구하여 당장 그 표적을 보여달라는 것 아닙니까?
11절 말씀을 보십시오.
\\\"바리새인들이 나와서 예수께 힐난하며 그를 시험하여 하늘로서 오는 표적을 구하거늘\\\"
이들의 요구는 분명합니다. 우리가 믿고 안 믿고는 당신이 상관할 바가 아니고 먼저 하늘로부터 오는 표적을 보여달라는 겁니다. 그러나 주님은 이들의 요청을 일언지하에 거절하신 다음, 그 장소를 급히 떠나 배를 타고 갈릴리바다 건너편으로 가버리십니다. 이들을 대하시는 우리 주님의 태도를 눈여겨 보십시오.
12절 말씀입니다.
\\\"예수께서 마음 속에 깊이 탄식하시며 가라사대 어찌하여 이 세대가 표적을 구하느냐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세대에게 표적을 주시지 아니하리라 하시고 저희를 떠나 다시 배에 올라 건너편으로 가시니라\\\"
표적을 보여달라는 이들의 요청을 받으시고 예수님은 깊이 탄식하십니다. 심령 깊은 곳에서 매우 침통해 하셨다는 말입니다. 문자 그대로 해석하면 \\\'슬픔에 젖어 신음하시다\\\'(He sighed deeply.) 라는 뜻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깊이 신음을 토하시며 침울해 하시는 주님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 주님은 이들에게 \\\'더 이상 너희들에게 보여 줄 표적이 없노라\\\'고 경고하신 후 총총히 그 곳을 떠나버리십니다.
불순한 동기로 기적을 바라지 말라
무엇 때문에 예수님께서 이렇게 침울해 하시는 것입니까? 너희들에게 보여 줄 표적이 없노라고 강하게 책망하시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표적을 보여달라는 이들의 요구가 매우 불순한 동기에서부터 출발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본문 11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바리새인들이 나와서 예수께 힐난하며 그를 시험하여\\\"
이들이 예수님에게 나오는 목적이 그를 믿고 따르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를 책잡아 넘어뜨리려는데 있었던 것입니다. 주님 앞에 서자마자 다짜고짜로 힐난하며 따지기 시작하는 그들의 모습에서 그들이 가지고 있는 적대감의 정도를 쉽게 느낄 수 있지 않습니까?
유혹의 문제
주님을 찾아 나오는 여러분들의 동기는 무엇입니까? 우리도 때로는 바리새인들 못지 않게 불순한 동기에서 기적을 요구하기도 합니다. 때로는 기적을 놓고 흥정하기도 합니다. 기적을 주시고 안 주시고는 주님께서 하실 일이지 인간이 시험할 문제가 아닌 것입니다. 여기서 \\\'시험하여\\\'라는 말은 예수님이 광야에서 40일동안 주리시면서 기도하실 때에 마귀가 유혹할 때 사용하던 단어와 똑같은 단어를 쓰고 있습니다. 이 마귀가 세 번씩이나 예수님을 시험한 목적이 무엇입니까? 예수님으로 하여금 기적을 행하도록 강요하여 십자가의 길을 가지 못하도록 막으려 했던 것입니다. 이보다 더 사악한 유혹이 어디 있습니까? 예수님의 기적을 바라보면서 그 기적을 믿으려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하든지 시험하여 거꾸러뜨리려는 것은 마귀의 장난에 불과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런 식으로 시험하는 자에게 가까이 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의 요청을 즐겨 듣지 않습니다. 오히려 주님의 책망을 들을 수밖에 없습니다. 주님은 시험하는 자 옆에 오랫동안 머물러 계시지 않습니다. 이 요청이 있고 나서 예수님은 곧 그곳을 떠나가십니다. 시험하는 자는 예수님과 오랫동안 같이 동행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기적을 구경거리로 만들지 말라
무엇이 예수님으로 하여금 마음을 안타깝게 하고 있습니까? 주님이 곧바로 그들 곁을 떠나시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사람들이 예수님에게 기적을 요구하는 목적이 무엇입니까? 기적을 믿으려 하기보다는 오히려 기적이 나타나는 것을 보고 즐기려는데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도 그렇지 않습니까? 주님을 믿고 따르는 일보다 주님을 믿고 따르는데 나타나는 역사나 이적들에 대하여 더 깊은 관심을 가지기 마련입니다. 기적 보기를 원하는 마음은 다 똑 같습니다. 이들이 요청했던 것처럼 우리도 뭔가를 우리에게 보여달라. 보여주면 우리가 믿겠다는 식으로 신앙생활하지 않습니까? 믿음은 기적 때문에 믿는 것이 아닙니다. 믿어야 기적이 나타나는 줄 믿습니다.
그분이 누군가?
우리 인간들은 구경의 내용보다 구경 자체를 좋아합니다. 예수님과의 개인적인 만남을 통해서 주님을 믿고 그분의 뜻을 이루어 드리기보다는 오히려 주님이 하신 일에만 집중하고 그 일들만을 최고의 관심사로 생각할 때가 많이 있습니다. 예수님 자신에 대한 관심보다는 주님께서 병자를 고치셨으니 내가 기도하면 병자가 나아야 하고, 주님께서 귀신을 좇아 내셨으니 내가 명령하면 귀신이 나가야 하고, 주님께서 물위를 걸으셨으니 나도 물위를 걸어야한다고 주장하는데 더 열을 올리고 있습니다. 문제는 주님이 무엇을 하셨는가(What He was doing)에만 초점을 맞추다보니 그가 누구신가(Who He is)에 대해서는 아무 관심이 없다는다는 것입니다.
마치 마술사가 마술을 할 때 여러분이 그 마술사의 행동을 보면서 무엇을 생각하십니까? 마술사가 어떻게 생겼나 거기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그 사람의 얼굴이 둥글든 길쭉하든 몸이 뚱뚱하든 홀쭉하든 키가 크든 작든 상관이 없어요. 오로지 구경꾼들의 관심은 어디에 있습니까? 얼마나 마술을 잘하느냐 거기에 있어요.
우리의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주님의 교회를 드나들 때에 예수님을 만나려고 하기보다는 예수님이 하셨던 그 일을 자꾸 재현하려고 노력하고 그것만을 요청하는 경우들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문제는 기적에 있지 않습니다. 문제는 우리가 주님과 어떤 인격적인 만남을 가지고 있느냐 이것이 무엇보다 중요한 말씀이라는 것입니다. 주님의 전을 찾을 때마다 뭔가를 보기 위해서 나오는 자들이 아니라 주님과의 긴밀한 교제를 통해서 주님의 사람으로 쓰임받는 여러분의 삶이 되시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교회는 구경하러 오는 데가 아닙니다. 오늘은 어디를 얼마나 수리했나, 오늘은 어디를 바꾸었나, 온통 이런 일에 우리의 관심을 기울이다보면 우리는 진정한 예배를 주님 앞에 드릴 수가 없습니다. 내가 어떻게 해야 주님을 만날 수 있을까? 어떻게 해야 내가 주님의 십자가의 은혜로 구원받을 수 있을까? 바로 이 문제만을 붙들고 씨름할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의 모든 관심은 우리의 구원에 모아져야 합니다. 교회에 구경하러 오지 마세요. 오늘은 무슨 기적이 일어날려나 하는데 신경쓰지 마세요. 기적만을 쫓아다니다보면 어줍잖은 신앙인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불신앙으로는 기적을 볼 수 없다
예수님께서 왜 이들의 요청을 받으시고 깊이 통분해 하시는 것입니까? 그들과 오래 머물러 계시지 않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왜 이들의 요구를 일축해버리시고 이 세대에게 보일 표적이 없다고 거부하시는 것일까요? 이들의 요구가 다분히 불신앙적이라는데 있습니다. 이들은 예수님을 믿으려는 차원에서 기적을 요구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미 믿지 않겠다는 마음을 가지고 기적을 요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믿지 않겠다는 불신앙의 죄를 마음에 가지고 기적을 보기 원한다면 결코 어떠한 기적도 바라볼 수가 없습니다.
어찌하여
주님은 완악하고 불신앙적인 사람들에게 표적을 보여주시지 않습니다. 보여줄 수 있는 능력이 없거나 부족해서가 아니라 기적을 보여주더라도 믿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기적을 보지 못하는 것은 기적이 없어서가 아니라 기적을 볼 수 있는 눈이 닫혀있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이런 자들에게 강력한 어조로 경고하십니다. 12절 말씀입니다.
\\\"어찌하여 이 세대가 표적을 요구하는가? 어떤 표적도 이 세대에게 주지 않겠노라\\\"(No sign will be given to it.)
이 말씀은 \\\'절대로 그런 일은 없을 것이다\\\' 라는 강한 부정의 의미를 가지고 있는 말입니다. 히브리적으로 해석하자면 \\\'만약 이 세대에게 표적이 주어진다면 내게 저주가 임하리라\\\"는 뜻입니다. 이렇게 심하게 말씀하시는 이유가 어디에 있습니까? 기적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얼마든지 하나님께서는 놀라운 기적을 매순간 순간 우리에게 보여 주실 수가 있어요. 그러나 마음에 불신앙으로 가득 차 있는 사람은 어떠한 기적도 볼 수가 없는 것입니다.
예수님 당시 기사와 이적이 부족해서 그들이 믿지 않은 것이 아닙니다. 문제는 우리 자신들이 기적을 볼 수 있는 믿음을 가지고 있느냐 없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불신앙적인 태도를 가지고는 아무 일도 할 수가 없습니다. 어떤 일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만남의 기적을 이루라
주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이 무엇입니까? 주님은 우리들이 주님과의 개인적인 만남이 이루어지기를 요구하고 계십니다. 이 세상에서 우리가 체험할 수 있는 가장 위대한 기적은 주님을 만나는 일입니다. 이 일보다 더 큰 기적이란 없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예수님을 만나려는 일은 뒷전으로 제쳐놓고 어떤 다른 더 큰 기적이 있는가해서 주위를 두리번두리번 살피는데 온 정신을 팔고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만나는 이 일보다 더 소중하고 귀한 기적은 없습니다. 왜냐하면 이와 같은 기적은 쉽게 일어나는 것이 아닐 뿐 아니라 주님의 은혜가 아니고서는 그 무엇으로도 체험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기적으로 주님을 만나는 것이 아닙니다. 인간의 노력이나 수행이나 선행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믿음으로만 가능한 일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님 앞에 나아올 때마다 마땅히 이런 기도를 드릴 수 있어야 합니다.
\\\'주님! 나는 주님과 교제를 나누고 싶습니다. 주님! 나는 주님을 영원토록 찬양하며 살기를 원합니다. 내 일생 다 가도록 주님이 나의 생애의 주인이 되셔서 나를 인도해 주시기를 원합니다. 나는 주님의 품에 안기기를 원합니다. 주님! 나의 죄를 용서하여 주시고 나를 품에 안아주시고 주님의 자녀 삼아 주셔서 영원히 주님과 하늘 나라 갈 때까지 동행하며 살게하여 주시옵소서.\\\'
우리가 마땅히 주님앞에 요청해야 할 기적은 태산이 무너지고 땅이 치솟고 하는 그런 차원이 아닙니다. 사업이 잘되고 가정이 평안하고 자녀들이 성공하고 질병이 낫고 모든 문제가 형통하게 풀리는 것만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가장 위대한 기적은 주님과 만나는 바로 거기에 있음을 기억하십시오. 언제나 새롭게 주님을 만나시는 기적이 주님의 전을 찾을 때마다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소원합니다.
십자가는 회개의 기적을 일으킨다
주님이 요청하시는 기적이 있습니다. 회개의 기적입니다. 주님을 만나는 것이 최고의 기적이라면 회개하는 것도 그에 못지 않은 기적중의 기적입니다. 이제는 기술력만 있으면 빌딩 하나 정도를 세우고 허무는 일쯤은 순식간에 할 수가 있어요. 돈만 조금 들이면 건물 내부를 화려하게 꾸미는 일쯤은 얼마든지 할 수가 있어요. 그러나 우리의 심령을 변화시키는 일은 그 무엇으로도 할 수가 없습니다.
제가 목회하면서 피부로 절실히 느끼는 것이 하나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바꾸기 힘든 것이 \\\'사람의 마음\\\'이라는 사실입니다. 한 번 완악해진 마음, 한 번 굳어진 마음, 한 번 타락된 마음, 한 번 부패된 마음, 한 번 거짓된 마음을 다시 새롭게 개조하고 바꾼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알 수가 없어요. 제가 주님 앞에 감히 기적을 요구하는 기도를 하나 드린다면 이런 기도를 드리고 싶어요. \\\"하나님! 제 말 한마디 한마디, 제 행동 하나 하나가 사람들의 마음과 영혼을 변화시킬 수 있게 하옵소서.\\\"
주님의 십자가
우리는 때로 위대한 기적은 사업이 번영하고 병이 낫고 큰 역사가 일어나는 이런 데서 기적을 찾아요. 그러나 우리가 찾아야 할 기적은 바로 우리의 심령이 변화되는 일입니다. 우리의 심령이 중생하는 바로 거기에 있음을 명심해야 합니다. 우리는 아이/엠/에프 한파라는 이 어려운 시기를 지나가고 있습니다. 어떻게 하든지 이 경제난을 극복하기 위해서 노심초사 애를 쓰고 있습니다.
어느 누구나 할 것 없이 이 일을 어떻게 해결하면 좋을 것인가 고민하고 있습니다. 그 뿐만이 아닙니다. 어떻게 해야 이 나라가 이대로 주저앉지 않고 다른 나라 사람들에게 존경받는 강한 나라로 발돋움할 수 있을까를 걱정하고 있습니다. 위정자들을 비롯한 대다수 사람들은 경제가 회복되고, 수출을 많이 하고, 정치가 안정되고, 질서를 잘 지키면 될 것으로 생각하지만 천만의 말씀입니다.
그러나 여기 아이/엠/에프 위기를 단숨에 뛰어 넘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이 있습니다. 이 나라를 세계 최강의 나라로 바로 세울 수 있는 기적의 길이 있어요. 무엇인지 아십니까? 바로 회개하는 것입니다. 나라의 빚이 많다많다해도 우리나라 백성 한사람 한사람이 그동안 잘못 살아온 것을 회개하고 온갖 부정으로 치부해온 재산을 회개하는 마음으로 다 내어놓으면 빚 갚는 것 어렵지 않습니다. 이 나라가 다시 일어서는 일도 순식간에 할 수 있어요. 삭개오처럼 \\\'내가 남에게 토색한 것이 있으면 내 재산의 절반이라도 팔아서 그것을 갚겠다 그래도 내게 또 다른 죄가 발견된다면 내 남은 재산을 다 바쳐서라도 갚겠노라\\\'는 결심을 가진다고 해보세요. 얼마나 놀라운 일이 일어나겠습니까? 상상만 해도 근사하지 않습니까? 우리 모두의 마음속에 이런 근본적인 회개의 마음이 일어날 때에 거기에 놀라운 기적이 나타나는 줄 믿습니다.
우리 모두가 이렇게만 할 수 있다면 아무리 복잡한 정치문제나 사회문제도 간단히 해결할 수 있어요. 이 사회가 안고 있는 어떤 혼란스러운 문제도 단 하루만에 해결할 수 있는 길이 있습니다. 온 백성들이 회개하는 것입니다. 회개의 기적만큼 위대한 기적은 없습니다. 남북통일도 김정일이 회개하면 문제는 간단합니다. 그가 지금이라도 진정으로 회개한다면 우리가 예배 마치고 나가는 순간 통일이 이루어졌다는 소식이 들려 올 겁니다. 믿으시면 아멘 하시기 바랍니다. 회개할 때 놀라운 기적이 일어납니다.
그렇다면 이 위대한 기적은 무엇을 통해서 일어날 수 있습니까? 우리 완악한 인간들이 어떻게 회개할 수 있나요?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만이 우리의 회개를 가능케 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기적을 찾지 말고 먼저 믿으십시오. 기적이 믿음을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믿음이 기적을 만들어내기 때문입니다. 불신앙적인 삶에는 결코 기적이란 존재하지 않습니다. 단순히 기적을 구경하기 위한 목적으로 기적을 요구하지 마십시오. 기적을 보아야겠다는 열심이 지나쳐 능력의 주님을 시험하지 마십시오. 이런 자들과 주님은 가까이 하지 않으십니다. 우리가 우리 자신의 불신앙적인 자세를 고집하려고 할 때 주님은 우리 곁을 떠나가십니다.
이 세상의 어떤 기적보다 십자가에서 이루어놓으신 구원의 기적만큼 위대하고 심오한 기적은 없습니다. 다시 한번 분명히 말씀드립니다. 우리 주님의 십자가보다 더 위대한 기적은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앞으로 나아 오십시오. 그 십자가 앞에 여러분의 모든 죄와 부정과 허물을 내어놓고 주님의 사하심을 받으십시오. 그리고 주님을 기쁨으로 만나십시오. 사랑이 넘치는 주님과 친밀한 교제를 나누세요. 생각지도 않았던 놀라운 일들이 눈앞에 펼쳐질 줄로 믿습니다. 여러분의 생애가 지금까지 경험해 보지 못했던 위대한 기적들로 가득 채워 가시기를 바랍니다.
< 기도 >
은혜로우신 주여!
사순절기간을 맞이하여 주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를 지신
그 귀한 은혜의 사건을 기억하며 이 시간 주님 앞에 우리의
적나라한 모습을 내어놓습니다. 그 동안 우리는 기적을 보며
환호하고 박수치고 또 환성을 지르는데 골몰해 있었고 우리의
자신의 내면을 바라보고 우리 자신의 더러워지고 추해진 모습을
발견하는 데는 너무나 게을렀던 저희들이었음을 이 시간 고백합니다.
주님! 주님의 십자가 앞에 나아와 우리 자신의 진면목을 바라보게
하여 주시옵고 모든 지나간 죄를 주님앞에 내어놓고 회개하는 이
회개의 기적이, 중생의 기적이 저희들에게 있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주님과 함께 새로운 역사의 장을 펼쳐나가는 하나님의
귀한 백성들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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