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을 구하는 사람들

기적을 구하는 사람들/막8:11-13

기적을 구하는 사람들
막8:11-13





인간이 아무리 유능할지라도 상대적으로 다른 사람보다 더 잘 할 수 있는 것 뿐 이지 하나님처럼 전능한 존재가 아니기 때문에 기적을 기대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창조주 하나님이 하시는 일은 아무리 하찮은 일이라고 할지라도 기적이 아닌 일이 하나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인간이 아무리 과학 만능의 시대를 살아갈지라도 유한한 인간은 절대자를 찾아야 하는 것이며 인간의 과학으로도 불가능한 기적이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하나님을 믿어야만 하는 것입니다.



1. 영적 소경들



보이는 육체적인 부분만 있는 짐승과 달리 보이지 아니하는 영적인 부분을 가지고 있는 인간은 아무리 흙에서 나오는 좋은 것들을 많이 먹을지라도 결국은 늙고 병들어 죽고 맙니다. 인간은 본래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대로 지음을 받았기 때문에 하나님의 신령한 은혜를 먹어야만 영원히 살수 있는데 인간이 범죄로 인해 하나님과의 관계가 단절되었기 때문에 그 영혼은 이미 죽어 버렸기 때문이라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엡 2:5)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너희가 은혜로 구원을 얻은 것이라) (계 3:1) 사데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하나님의 일곱 영과 일곱 별을 가진 이가 가라사대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죽은 자로다

그러한 인간의 지식도 살아있는 것과 죽어 있는 것이 있습니다. 예수님 당시 바리새인들은 세상에 어느 누구보다 성경에 대해 해박한 지식과 경건하게 보이는 종교의식에 심취하며 평생을 살아가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누구보다 믿음이 살아있는 사람들처럼 보였으나 영적으로는 무지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예수님이 세상에 오신 것은 우연이 아니라 구약 성경에 예언된 말씀대로 성령으로 잉태되어 동정녀 마리아의 몸에 잉태되어 베들레헴에서 태어나 나사렛 땅에서 자라나심으로 예언대로 세상에 오신 구주였습니다. 하나님이 아니고서는 할 수 없는 많은 기적들을 베푸심으로 예수님이 바로 예언대로 오신 구세주이심을 부인할 수 없는 확고한 증거들을 많이 나타내 보여 주셨습니다.

(눅 4:18)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케 하고 예수님 당시 바리새인들은 자나깨나 약속하신 메시아를 기다리는 사람들이었으며 평소에 누구보다도 많이 예수님의 가르치심을 듣고 예수님이 메시아 이심을 증거하는 많은 기적들을 본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므로 바리새인들은 세상에서 어느 누구보다 예수님을 환영하고 사랑해야 할 사람들이건만 정반대로 세상에서 어느 누구보다 예수님을 믿지 아니하고 가장 많이 대적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오늘 성경 말씀에서도 바리새인들이 지금까지 그렇게 많은 표적을 보았으면서도 또 다른 표적을 구한 것은 예수님을 좀더 잘 믿기 위해서가 아니라 예수님을 시험하기 위한 불순한 동기 때문이었습니다.

(막 8:11) 바리새인들이 나와서 예수께 힐난하며 그를 시험하여 하늘로서 오는 표적을 구하거늘 여기서 표적란 물론 초자연적인 기적을 의미하지만 그 차이점은 예사로운 기적이 아니라 예수님이 구약에 약속 하신대로 세상에 오신 메시아임을 입증할 수 있는 좀더 강력한 기적을 보여달라고 시험이었습니다. 인간은 감히 예수님에게 기적을 요구할 만한 존재가 아니며 예수님 또한 사람에게 인정을 받으시기 위해 사람들의 비위를 맞추는 분도 아닙니다. 그러므로 바리새인들의 이같은 요구는 마치 예수님이 공생애를 시작하시면서 광야에서 사십일을 금식 기도하셨을 때 마귀가 예수님에게 찾아와서 돌들이 떡덩이가 되도록 만드는 기적을 일으켜서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증거를 보이라는 시험과 동일한 것입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 되심을 증거하시는 이는 오직 하나님 뿐 이시며 예수님이 요단강에서 세례를 받으실 때 하늘 문이 열리면서 음성으로 비둘기 같은 성령의 임재로 이미 확증된 것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에게 하늘에서 오는 다른 표적을 구하는 것은 그들의 불신앙과 영적인 무지를 나타내는 것입니다. 행여나 오늘 우리가 예수를 믿은지 오래며 성경을 읽고 설교 말씀을 들으면서도 그것으로 만족하지 못하고 또 다른 기적을 보아야만 믿겠다고 하는 영적 무지에 빠진 현대판 바리새인들이 아닌가 하는 것입니다.



2. 예수님의 탄식



창조주 하나님을 믿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믿는 우리 기독교는 분명히 표적과 이적이라는 초자연적인 기적 위에 세워진 종교가 분명하며 또한 예수께서 때로 기적을 행하신 것도 예수님이 기적을 행하신 것도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입증하시기 위함이었습니다. 또 알고 보면 우리는 창조주 하나님이 행하신 기적의 현장에서 살아가고 있으며, 또한 성경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의 기적을 많이 접할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으로 만족하지 않고 기적만을 구하고 자신의 믿음이 연약한 것은 기적을 체험하지 못한 하나님 탓으로 돌리는 것은 알고 보면 열심 있는 믿음이 아니라 말씀만으로 만족하지 못하는 영적 무지에서 비롯된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요 20:29)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는 나를 본 고로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2되도다 하시니라 그러나 오늘 성경의 바리새인들 지금까지 예수님이 행하신 많은 기적들을 경험하여왔고 또한 지금 그 예수님을 두 눈으로 똑똑히 보면서도 예수님을 영접하지 아니하고 보다 더 강력한 메시아의 표적을 구하는 바리새인들의 요구를 들어주시지 아니하시고 도리어 탄식하셨습니다. (막 8:12) 예수께서 마음속에 깊이 탄식하시며 가라사대 어찌하여 이 세대가 표적을 구8하느냐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세대에게 표적을 주시지 아니하리라 하시고

여기서 탄식이라는 말은 신음하다, 한숨쉬다 라는 의미로 예수께서 그들을 불신에 대해 마음 속 깊이 슬픔과 의분을 느끼셨음을 뜻하는 것입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1) 예수님을 탄식하게 만든 가장 큰 원인은 예수님에게 기적을 요구하는 세대가 경건한 믿음의 세대가 아니라 악하고 음란한 세대이며 2) 무엇을 보든지 어디로 보나 믿을 수밖에 없음에도 불구하고 일부러 불신하는 것은 마음이 악한 것을 드러내는 것이며 3) 예수님의 기적을 보면서 믿지 못하고 도리어 귀신의 왕 바알세블을 힘입어 한다고 모함 할 정도로 예수님에 대해서 매사 부정적이었기 때문에 보다 더 강력한 기적을 요구하는 것은 예수님을 좀더 잘 믿기 위해서가 아니라 이단으로 몰기 위한 구실을 찾기 위해서였습니다.

겉보기에는 무척이나 경건하고 거룩한 체 하지만 속으로는 예수님이 하시는 일 중에서 약점을 캐내어 예수님을 죽이려고 하는 계획에서 나온 것이기 때문에 예수님은 탄식하신 것입니다. 어제나 오늘이나 악한 마귀가 예수님에게 사사로운 목적을 위해 기적을 나타내기를 요구한 것처럼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의 많은 기적을 목격하고서도 만족하기 아니하고 예수께서 보다 더 강도 높은 또 다른 기적을 나타내 보여주기를 요구한 것이 바로 오늘 성경 말씀입니다.

(요 4:48)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희는 표적과 기사를 보지 못하면 도무지 믿지 아니하리라 대부분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공통된 감정은 여러 사람들 앞에서 돋보이고 특별한 존재가 되고 싶어하며, 그것을 흔히 성공이라고 말하며 그 성공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성공할 수만 있다면 마술처럼 사람을 속이고 조작을 해서라도 기적을 일으키고 싶은 부패한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유한한 인간이 아무리 유능할지라도 다른 사람보다 할 수 있는 것 이 더 많은 것뿐이지 하나님처럼 전능한 존재가 아니기 때문에 인간의 하는 일에서는 기적을 기대할 수 없습니다.

창조주 하나님이 하시는 일은 기적이 아닌 일이 하나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비록 인간의 육신을 입고 세상에 오셨을지라도 많은 기적을 행하신 것은 그 분이 전능하신 하나님이심을 증거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사람들에게 자신을 과시하고 인기를 끌기 위해서 기적을 행하신 적은 단 한번도 없으셨습니다. 예수님은 결코 기적을 남발하시는 분이 아니라 기적을 행하실 때마다 몇 가지 공통된 원칙을 벗어나지 아니하셨습니다. 그것은 예수께서 기적을 행하실 때마다 항상 고통 당하는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해 긍휼히 여기시는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지 사람들에게 자신을 과시하고 인기를 끌기 위해서 기적을 행하신 적은 단 한번도 없으셨습니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들은 어떻습니까? 성경에 기록된 기적들이 다 전능하신 하나님이 하신 일이며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신 일이며 그 주님은 지금도 살아 계셔서 얼마든지 전능하신 창조주의 능력으로 얼마든지 기적을 일으키실 수 있으신 분이라는 사실을 믿어야 합니다. 물론 성경에 나타난 것과 같은 기적을 실생활에서 경험하지 못하고 예수를 믿으면서도 여전히 가난과 질병에 시달리고 있을 수 도 있습니다. 그래서 때로는 하나님께 기적이 일어나기를 기도하기도 하지만 아무런 응답이 없을 때도 있습니다. 그럴지라도 의심하지 말아야 할 이유가 어디에 있습니까? 그것은 우리가 이미 더 큰 기적을 체험한 사람들이며 우리의 삶의 현장이 바로 하나님의 기적을 매일 매일 경험하는 장소이기 때문입니다.

그 증거물이 바로 하나님의 창조의 세계이며, 내가 살아 있다는 것이며,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구원함을 받은 것이며, 하나님의 은혜로 매일 매일을 살아가는 것이 알고 보면 모두다 하나님이 집행하시는 기적인 것입니다. 그에 비하면 우리가 기대하는 기적은 이미 우리에게 하나님이 베풀어주신 기적과 비교하면 아주 미미한 것입니다. 사람이 아무리 암병에서 고침을 받는 기적을 체험하였다고 할지라도 부활이요 생명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 하나로 죄사함을 받고 구원을 받아 영생을 얻었다는 것은 기적 중에 기적인 것입니다.

인간이 하나님을 믿는 것은 나의 선행이 아니라 하나님의 무조건 적인 은혜인 것처럼 우리가 믿는 것은 기적 때문이 아니라 십자가와 부활의 복음에 대한 믿음 때문인 것입니다. 그렇게도 많은 축복과 큰 은혜를 받고 살아감에도 불구하고 성경 말씀만으로 만족하지 아니하고 바리새인들과 같이 별다른 기적을 구하는 강퍅한 마음과 불신앙은 또다시 주님을 탄식하게 만드는 일임을 알아야 합니다.



3. 요나의 표적



예수님은 함부로 사람을 비난하거나 정죄하시는 분이 아니심에도 불구하고 더 큰 표적을 구하는 바리새인들을 가리켜 악하고 음란한 세대에 보여줄 표적은 요나의 표적뿐이라고 하셨습니다.

(마 12:39)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악하고 음란한 세대가 표적을 구하나 선지자 요나의 표적밖에는 보일 표적이 없느니라 그 이유는 이미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셨으며 약속하신 메시아가 오셨으며 그 분이 바로 예수님이시며 그 사실을 하나님이 친히 말씀으로 인정하셨고, 성령이 비둘기 같이 임하심으로 증명이 되었고, 그 동안 예수님이 그동안 베푸신 많은 기적으로 충분히 입증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또 다른 표적을 구하는 것은 믿고자 함이 아니라 어떻게 하든지 예수님이 메시아 되심을 부인하려는 악한 의도에서 비롯된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사람들이 사는 길은 또 다른 기적이 아니라 선지자 요나가 하나님의 명령을 불순종하여 바다에 던져져 물고기 뱃속에서 사흘 동안 죽지 않고 살아 있다가 나와 니느웨 성에 가서 하나님의 심판을 외쳤을 때 모든 니느웨 사람들이 회개하여 구원함을 받은 것과 같은 일이 앞으로 예수님을 통해서 일어날 터인데 그것이 바로 부활의 기적이며 그 부활의 기적만이 인간을 죽음에서 구원할 수 있는 최대의 표적이라는 것입니다. 바리새인들이 예수님께 모든 사람들이 깜짝 놀랄 만한 메시야다운 기적을 요구하였을 때 예수님은 단호히 거절하신 까닭은 표적이 결코 그들에게 믿음을 가져다주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마치 애굽에서 400년 간 종살이를 하던 60 만 명의 이스라엘 백성들이 창과 칼이 아니라 어린양의 피로 구원함을 받고 자유를 얻은 사건은 기적 중에 큰 기적이었습니다. 하나님은 그 후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계속 그 유월절을 기억하게 하신 이유가 어디에 있을까요? 이스라엘 사람들은 출애굽 당시 하나님의 놀라운 기적들을 체험하고도 하나님을 믿기는커녕 오히려 기적의 만나와 메추라기와 생수를 먹으면서도 열 번씩이나 하나님을 시험하였습니다(민 14:22).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 유월절을 잊어 버렸을 때 다른 어떤 놀라운 표적을 경험하였으나 결국 불신하고 시험에 빠져 약속의 땅 가나안에 못 들어간 것과 같은 원리입니다. 예수님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늘로서 오는 표적을 구하는 바리새인들에게 요나의 표적밖에 보여 줄 것이 없다고 하신 까닭이 다른데 있는 것이 아니라 죄인들을 사망과 지옥의 고통에서 건져내시기 위해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장사한지 사흘만에 부활하신 기적은 기적 중에 기적이며 최대의 표적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구원에 필요하고도 충분한 조건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주셨습니다. 다라서 말씀을 믿지 못하는 자들은 어떠한 기적을 보여 주더라도 하나님을 믿지 못합니다. 인간에게 진정한 기적은 바로 십자가와 부활의 기적뿐이라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니느웨 사람들이 물고기 뱃속에서 사흘만에 살아 나온 요나의 설교를 듣고 회개하여 구원함을 받은 것처럼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장사되어 사흘만에 무덤에서 다시 살아나신 부활의 복음을 듣고 믿는 자만이 영생을 얻게 됨을 뜻하는 것입니다.



예화: 낙원에간 나사로와 지옥에 간 부자의 이야기- 형제 다섯이 지옥에 오지 않게 하기 위해 자기를 아버지 집으로 보내달라고 간청하였을 때 아브라함의 책망

(눅 16:29) 아브라함이 가로되 저희에게 모세와 선지자들이 있으니 그들에게 들을지니라 (눅 16:30) 가로되 그렇지 아니하니이다 아버지 아브라함이여 만일 죽은 자에게서 저희에게 가는 자가 있으면 회개하리이다 (눅 16:31) 가로되 모세와 선지자들에게 듣지 아니하면 비록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는 자가 있을지라도 권함을 받지 아니하리라 하였다 하시니라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얼마든지 오늘 우리에게도 기적을 경험하게 하실 수 있으신 분이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경, 성경하시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인간들이 원하는 기적은 이미 창조된 피조물과 성경에 많이 나타나 있습니다. 그것을 믿지 아니한다면 어떤 기적도 믿음을 주지는 못할 것입니다. 오늘도 주님을 탄식하게 하던 바리새인들처럼 성령을 근심하게 하고 탄식하게 하는 사람은 불신자들이 아니라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말씀으로 만족하지 아니하고 더 신비한 기적만을 구하는 사람들입니다. 예수께서 이 땅에 오셔서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전파하시고 수 많은 기적으로 그것을 입증하여 주셨음에도 불구하고 마음이 완고하여 더 큰 기적만을 구하는 무리들을 가리켜 악하고 음난한 세대라고 탄식하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으로 만족하지 아니하고 또 다른 이적을 구하는 것은 불신앙의 소치이며 하나님을 탄식하게 만드는 죄악입니다. 예수께서 세상 끝 날까지 항상 함께 하시겠다는 약속이 성령의 임재를 통해서 이루어졌다면 성령을 근심하게 하는 일이 곧 예수님을 탄식하게 하는 일입니다.

1) 영적 소경이 되어 스스로 하나님을 잘 믿는 줄 알고 자만에 빠져 자신의 허물을 깨닫지 못하고 남의 허물을 비난하고 정죄하기에 급급하고 있을 때 성령께서도 예수님처럼 근심하신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2) 자신의 건강과 부요와 성공이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임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자신의 힘으로 된 줄 알고 감사하며, 더 많은 것을 구하는 이기적인 삶을 살 때 성령께서는 예수님처럼 탄식하심을 명심해야 합니다.

(엡 4:30) 하나님의 성령을 근심하게 하지 말라 그 안에서 너희가 구속의 날까지 인치심을 받았느니라



결 론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날로 발달하는 현대 과학으로 말미암아 옛날 사람들이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들이 신이 아닌 인간에 의해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우주 왕복선을 타고 달나라를 오고가며, 화상전화로 서로 얼굴을 마주 보면서 국제 전화를 하고, 심장을 자동차 부속품처럼 바꾸고, 유전 암호를 찾아내어 세포하나만으로 똑같은 양과 소와 사람까지도 복제가 가능한 세상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그러한 일들을 신이나 할 수 있는 기적 같은 일들이 인간에 의해 이루어져 가고 있기 때문에 이제는 종교가 무용지물인 것처럼 말하고 있습니다. 과연 인간의 과학은 기적을 만들어 낼 수 있을까요? 아무리 현대 과학이 발달할지라도 기적을 만들어 낼 수 없음은

1) 아무리 인간이 기적과 같이 놀라운 일들을 할지라도 무에서 유를 창조할 수 없으며, 인간은 무슨 일을 하든지 약 한 알을 만들어도 반드시 많은 시간과 물질과 인력이 투입되어야 하며

2) 단 번에 할 수 있는 일이 없고 많은 시행착오의 반복해야 하고,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것조차도 완전 무결한 것이 없고 반드시 시간이 지나면 낡아지고 고장나고 부작용이 따르며

3) 많은 사람을 죽일 수 있는 파괴적인 것은 잘 만들지만 모든 인간이 반드시 겪어야만 하는 죽음을 해결하는 기적은 만들어내지 못하고 있는 것이 한계입니다.

오늘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하나님의 기적의 현장이요, 우리가 몸담고 신앙 생활하는 교회는 성육신하여 세상에 오신 예수님의 기적의 현장인 것입니다. 하나님을 우리에게 알려 주시는 계시의 말씀으로도 믿지 아니하는 사람에게는 어떤 기적도 믿음에 유익을 도모하지 못하지만 정반대로 하나님의 말씀을 믿을 때 기적은 그 믿음을 더욱 공고하게 만들어 준다는 사실을 잊지 말고 말씀 중심의 신앙이 결코 무식하고 유치한 믿음이 아니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