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 막6:35-36
우리가 읽고 듣는 성경은 모든 인종과 종파를 초월하여 모든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는 윤리나 도덕가 기록되어 있기 때문에 만인이 읽고 듣고 귀를 기울이게 되면 인간답게 사는 것이 무엇인가를 깨달을 수 있습니다. 만일 성경 말씀의 내용이 그것이 전부라면 구태여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할 것이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 말씀인 성경에는 그 모든 것 위에 계시는 초월자이신 하나님은 누구이며 무엇을 하셨고 무슨 일을 하고 계시며, 그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은 어떻게 세상 사람들보다 더 나은 삶을 살며 궁극적인 행복이 어디에 있는 가를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그 가운데 하나가 바로 아무리 인간들이 발전시킨 과학이 신기에 가깝다고 찬사를 보낼지라도 따라갈 수 없는 하나님의 기적과 이사가 신구약 성경 곳곳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 가운데 대표적인 것 몇 가지를 꼽는다면 다음과 같습니다.
1) 아무것도 없는 가운데 아름다운 천지와 만물을 창조하신 일 이며
2) 예수 그리스도께서 동정녀 마리아의 몸에 성령으로 잉태되신 것이며
3) 예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사흘만에 다시 살아나신 부활 사건입니다. 이 모든 기적은 하나님이 단독적으로 하신 것이지만 때로는 불완전한 인간을 통해놀라운 기적을 일으키셨는데 그 대표적인 사건이 바로 오늘 성경의 오병이어(五餠二漁) 기적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왜 그러한 기적들이 오늘날에는 잘 일어나고 있지 아니한지 그 원인과 어떻게 하면 오늘도 기적을 체험하는 믿음의 사람이 될 수 있는지 그 답을 오늘 성경을 통해서 찾아보고자 합니다.
1. 빈들에서
예수께서 휴식이 필요한 제자들과 함께 휴식을 위해 한적한 곳을 찾으셨다가 먼저 알고 몰려들었는데 그 수가 무려 장정만 오천 명이나 되는 큰 무리였습니다. 예수님은 모여드는 사람들의 처지가 마치 목자 없는 양과 같음을 보시고 불쌍히 여기사 피곤도 잊으신 채 그들에게 천국 복음을 가르치셨는데 그곳은 잔디가 나있는 빈 들판이었습니다. (막 6:34) 예수께서 나오사 큰 무리를 보시고 그 목자 없는 양 같음을 인하여 불쌍히 여기사 이에 여러 가지로 가르치시더라 (막 6:35) 때가 저물어 가매 제자들이 예수께 나아와 여짜오되 이 곳은 빈 들이요 때도 저물어 가니 거기 모여 예수님의 가르치심에 귀를 기울이고 있는 사람들은 마치 목자 잃은 양처럼 영육간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들이었습니다.
1) 정치적으로는 로마 제국의 식민지로 자유와 박탈 당한지 오래며
2) 경제적으로는 많은 세금을 포탈당한 채 가난에서 벗어날 길이 없으며
3) 종교적으로는 본질이나 변화보다는 외식과 형식에 얽매여 살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들의 유일한 희망이 있다면 오래 전부터 하나님께 선지자들을 통해 약속하신 인류의 구세주 메시아가 오셔서 구원해 주시는 길 밖에 없었습니다. (사 61:1) 주 여호와의 신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사 가난한 자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나를 보내사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며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갇힌 자에게 놓임을 전파하며 그러한 사람들이 바로 예수님에 대한 소문을 듣고 모여 가르침을 듣고, 행하시는 이적을 보면서 예수님에 대한 기대가 너무나 커서 자리를 떠날줄 모르는 동안 해가 저물게 되었습니다. 해는 저물어가고 먹을 것은 없는데 빈들 판을 떠나지 않고 있는 그 많은 사람들의 모습에서 우리는 구약 성경에서 이스라엘 백성들과 오늘 우리들의 현실을 엿볼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때로 그의 택하신 백성들을 문명 도시가 아니라 활약한 그 황량한 광야에서 연단 시키시고, 기적을 체험하게 하시면서 신앙을 훈련시키셨습니다.
그것이 바로 출애굽의 사건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조상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가나안 땅으로 가는 길이 이미 블레셋 사람들에 의해 잘 만들어져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길이 없는 광야로 인도하심으로 자그만 치 사십 년 동안 광야에서 고난을 맛보게 하신 까닭은 무엇 때문일까요? 농사를 지을 수 없는 광야, 한 곳에 정착할 수 없는 광야, 구름 기둥과 불기둥이 인도하는 대로 오늘은 이곳에서 내일은 저곳으로 이동해야만 하는 나그네의 삶이었습니다.
(신 8:2)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사십 년 동안에 너로 광야의 길을 걷게 하신 것을 기억하라 이는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네 마음이 어떠한지 그 명령을 지키는지 아니 지키는지 알려 하심이라 (신 8:3) 너를 낮추시며 너로 주리게 하시며 또 너도 알지 못하며 네 열조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네게 먹이신 것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너로 알게 하려 하8심이니라 매일 세 끼니를 먹어야만 생존할 수 있는 인간에게 해는 저물어 가는 빈 들판에서 먹을 것이 없다는 것은 중대한 위기가 아닐 수 없었습니다. 그렇다면 굶주린 오 천명의 무리를 빈 들판에서 머물게 하시는 예수님의 깊은 뜻은 무엇일까요? 과연 무엇을 깨우쳐 주시기 위해 예수님은 무리들을 잠자리와 먹을 것이 있는 마을로 보내지 아니하시고 붙잡고 계시는가 하는 것입니다.
2. 시험하시고자
예수께서 갈릴리 바다의 어부들을 택하시고 불러 제자로 삼으신 까닭은 그들을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기 위함이셨습니다. 예수님이 그동안 제자들에게 가르치시고 훈련시키신 목적도 바로 거기에 있었습니다.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기 위해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위기를 어떻게 극복해나갈 것인가하는 것이 가장 큰 관건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빈들에 굶주린 오천명을 어떻게 먹일 것인가 하는 것은 누구나 쉽게 해결하기 어려운 큰 문제요 해가 저물어간다고 하는 것은 큰 위기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의 제자들은 그 문제를 자신들이 해결하려는 긍정적이고 발전적인 생각을 하는 것이 아니라 할 수 만 있으면 그 짐을 벗어 던지려고 사람들을 마을로 보내자고 제안하였습니다. (막 6:36) 무리를 보내어 두루 촌과 마을로 가서 무엇을 사 먹게 하옵소서 여기서 우리는 제자들의 현실 도피적인 사고를 발견하게 됩니다. 많은 사람들이 골치 아프고 문제가 되는 것은 피하고 다른 사람에게 전가하려고만 합니다. 그렇게 될 때 설령 개인의 문제가 해결될지라도 전체의 문제는 더 어려워만 가게 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동안 가르치시고 훈련하신 제자들이 빈들에서 주린 오 천명을 어떻게 먹이는지 위기 관리 능력을 시험하시고자 \"너희가 먹을 주어라\" 고 말씀하셨습니다. (마 14:16) 예수께서 가라사대 갈 것 없다 너희가 먹을 것을 주어라 (요 6:6) 이렇게 말씀하심은 친히 어떻게 하실 것을 아시고 빌립을 시험코자 하심이라
1) 빌립의 계산
예수님의 여러 제자들 가운데 빌립은 가장 두뇌 회전이 빨랐는지도 모릅니다. 빌립은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무리들에게 먹을 것을 준 것이 아니라 계산부터 하였습니다. (요 6:7) 빌립이 대답하되 각 사람으로 조금씩 받게 할지라도 이백 데나리온의 떡이 부족하리이다 그러나 그러한 수학적인 빌립의 계산은 아무리 정확할지라도 위기를 해결하는데 있어서 전혀 도움이 되지 못하는 이론에 불과할 뿐입니다. 왜냐하면 제자들에게는 그만한 돈도 없을 뿐 아니라 돈이 있다고 할지라도 그곳은 광야이기 때문에 먹을 것을 살 수 없기 때문에 문제 해결의 열쇠가 될 수 없었습니다. 오늘도 마찬가지입니다. 문제가 생기면 계산부터 하고 믿음대신 돈을 앞세우는 물질만능주의 적인 사고 방식이 보편화되고 있는데 바로 빌립과 같은 사람입니다.
2) 안드레의 회의(懷疑)
\"너희가 먹을 것을 주어라\"고 하시는 예수님의 말씀 앞에 제자 안드레가 보인 반응은 빌립과는 좀 달랐습니다. 가만히 앉아서 계산만 하고 머리를 굴리기만 한 것이 아니라 문제 해결을 위해 떡과 고기를 찾는 중에 한 사람의 식사 분량에 지나지 아니하는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예수님께 드리고자 하는 한 아이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요 6:9) 여기 한 아이가 있어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졌나이다 그러나 그것이 이 많은 사람에게 얼마나 되겠삽나이까
안드레의 이와 같은 말속에는 깊은 회의가 숨어 있었으며 그는 냉소를 하듯이 한 아이가 예수님께 드린 오병이어를 과소 평가하였습니다. 인간은 불완전한 존재이기 때문이 누가 무슨 일을 하든지 따지자면 잘잘못은 다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어떤 시각을 가지고 보느냐에 따라 잘한 점을 보고 칭찬을 하거나 잘못한 것을 보고 비난을 하거나 둘 중에 하나는 마음의 자세 여하에 따라 달라지는 것입니다. 그러나 어느 누구를 막론하고 부정적인 사고를 가진 사람은 지도자가 될 수 없고 문제를 해결하기보다는 더 어렵게 만들게 됩니다. 과연 누가 굶주린 오천명을 먹이는 기적의 불씨가 되었을까요?
3) 한 아이
예수님께 보잘 것 없는 오병이어를 드린 사람은 제자도 어른도 아닌 무명의 한 아이의 아름다운 헌신이었습니다. 그 아이가 예수님께 드린 오병이어는
1) 적은 분량의 것이었습니다.
어린아이가 예수님께 바친 오병이어는 가난한 사람들의 주식으로 하찮게 보이는 매우 적은 것이었지만 예수님께 드렸을 때 예수님은 그것을 기쁘게 받으신 후 그것으로 오병이어의 기적을 일으키셨습니다.
2) 전부 다 드렸습니다.
물론 오병이어 정도는 아무리 가난한 사람도 마음만 먹으면 다 드릴 수 있는 적은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어린아이가 예수님께 드린 것은 먹고 남아서 드린 것이 아니라 먹을 것이라고는 아무것도 없는 빈 들판에서는 금은보화보다 더 소중한 양식입니다. 배고픈 것을 어른보다 참지 못하는 아이이기 때문에 당장 먹고 싶었으나 아까워하지 아니하고 일부가 아니라 전부를 주님께 드렸을 때 주님을 그것으로 오병이어의 기적을 일으키셨습니다.
3. 예수님의 기적
한 어린아이가 주님께 바친 오병이어는 사람들이 보기에 보잘 것 없는 적은 것이었으나 주님은 그것을 손에 잡고 하나님께 감사의 기도의 드리셨을 때 오천명이 배부르게 먹고도 남는 기적의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1) 예수님의 말씀에 사람들이 순종하고 기다렸을 때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막 6:39) 제자들을 명하사 그 모든 사람으로 떼를 지어 푸른 잔디 위에 앉게 하시니 (막 6:40) 떼로 혹 백씩, 혹 오십씩 앉은지라
2) 적은 것이지만 그것을 하나님께 감사할 때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요 6:11) 예수께서 떡을 가져 축사하신 후에 앉은 자들에게 나눠 주시고 고기도 그렇게 저희의 원대로 주시다
3) 제자들이 주님께 받은 것을 나누어주었을 때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막 6:41) 떡을 떼어 제자들에게 주어 사람들 앞에 놓게 하시고 또 물고기 두 마리도 모든 사람에게 나누어 주시매 한 아이가 예수님께 드린 오병이어는 겨우 한 끼니 정도의 식사에 불과한 것이었으나 예수님은 그것으로 오 천명을 배불리 먹이고도 열두 광주리가 남는 기적을 일으키셨습니다. 예수께서는 기도를 하신 다음, 직접 떡을 떼어 제자들로 하여금 각 사람들에게 나누어주게 하셨고 또 물고기도 그렇게 계속 나눠주어 분배케 하셨을 때 떨어지지 아니하고 계속 불어남으로 오천명을 골고루 먹이고도 열두 광주리가 남는 기적의 역사가 일어난 것입니다.
(요 6:12) 저희가 배부른 후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남은 조각을 거두고 버리는 것이 없게 하라 하시므로 (요 6:13) 이에 거두니 보리떡 다섯 개로 먹고 남은 조각이 열두 바구니에 찼더라 인간들은 큰 것과 많은 것과 새 것을 좋아하며 작은 것을 하찮게 여기지만 주님은 비록 한 알의 겨자씨처럼 작은 것이라고 할지라도 믿음이 있으면 귀하게 사용하십니다. 큰 믿음의 사람은 오늘도 하나님의 기적을 맛볼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은 오병이어의 기적은 사복음서에 모두 기록될 정도로 성경에 큰 비중을 두는 이유가 어디에 있을까요? 기적은 분명히 사람의 힘으로 되어지는 것이 아니라 천지를 만드신 전능하신 하나님의 사역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 이 같은 오병이어의 기적의 떡은 아무리 배불리 먹어도 또 먹어야하며 결국은 죽음에 이르게 되는 인생에게는 영적 오병이어가 필요한 것입니다. 오병이어의 기적은 예수님이 단순히 육신의 양식만을 공급해 주시는 분만이 아니라 아무리 육신의 떡을 배불리 먹어도 결국은 죄로 말미암아 죽어 지옥에 갈 수밖에 없는 우리 인생들에게 영원한 생명의 양식을 주셔서 영생을 얻게 하시는 구세주이심을 증거하는 것입니다. (요 6:51) 나는 하늘로서 내려온 산 떡이니 사람이 이 떡을 먹으면 영생하리라 나의 줄 떡은 곧 세상의 생명을 위한 내 살이로라 하시니라
결 론
빈 들판과 세상을 살아가는 인생들에게 문제와 위기가 없는 때와 장소는 없습니다. 죄인인 인간이 세상을 살아간다는 그 자체가 바로 문제의 핵심이 아닙니까? 그와 같은 위기는 오늘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 사회에서도 얼마든지 경험되고 있습니다. 주님은 오늘도 우리가 그러한 위기를 믿음으로 어떻게 대처하고 있는가 하는 것을 시험하고 계십니다. 오늘 우리들이 살아가는 현실 세계는 어떻습니까? 아마도 빈들을 발견하기가 어려울 정도로 방방곡곡에 사람들이 모여 살고 크고 작은 땅마다 주인들이 다 있고, 도심 속에서 수많은 인파들을 볼 수 있습니다.
분명히 우리는 그 무리 속에서 태어나 그 무리 속에서 살아가고 있지만 왠지 우리들의 처지는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경험한 고독함과 예수님을 찾아 빈들에 모인 오 천명처럼 진정한 자유와 풍요가 없는 삶을 살아가고 있다면 오늘 우리의 현실은 영락없는 빈들임에 틀림이 없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행하신 기적들 가운데 바람과 파도를 잔잔케 하시고, 병든 자를 고치시고, 귀신을 쫓아내신 기적은 누구의 도움 없이 단독적으로 행하신 것이었지만 오늘 성경의 오병이어 기적만은 제자가 아닌 한 아이의 헌신을 통해서 이루어졌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믿음에는 나이의 많고 적음이나 신분의 귀천에 차이가 없습니다. 누구든지 큰 믿음, 좋은 믿음을 가지면 기적을 체험하며 문제를 해결하는 열쇠가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성경에는 그렇게 많은 기적들 왜 오늘의 시대에는 잘 나타나지 않고 있는 것일까요? 그 이유는 빌립이나 안드레 같은 제자들은 많으나 오병이어를 예수께 드린 한 아이와 같은 헌신자가 없기 때문이 아닐까요? 그렇다면 오늘의 나는 이론만을 앞세우는 제자들입니까? 아니면 오늘 성경의 한 아이처럼 말없이 헌신하는 한 아이입니까? 자신을 돌이켜 보아야 할 것입니다. 비록 나의 지식과 신분과 재능이 한 아이와 같고 나 가진 것이 오병이어와 같이 보잘 것 없는 것일지라도 굶주린 오천명과 같은 불신의 영혼들을 살리는 일에 한 어린아이처럼 드려질 때 오늘도 주님은 그 사람과 더불과 민족과 세계를 살리는 기적의 역사를 중단없이 계속하시는 것입니다.
1) 개척교회가 대 교회로 부흥하는 기적이 우연이 아니며
2) 우상이 가득했던 복음의 불모지에 교회가 세워지고 부흥하는 기적이 우연이 아니며
3) 뒤늦게 출발한 기독교에 의해 세계가 복음화되고있는 기적이 우연이 아니라 오늘도 한 아이와 같은 이름없는 헌신자들을 통해서 기적을 일으키시는 성령의 놀라운 역사로 말미암은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내게 무엇이 있든지 한 아이처럼 주께 드리십시오. 주님의 손에 잡히십시오. 믿음과 순종과 작은 것을 놓고서도 감사하는 마음과 삶이 바로 기적을 일으키는 불쏘시개와 같은 믿음입니다. 빈들에 주리고 목마른 오천명의 무리와 같이 문제와 위기가 많은 현실 교회는 빌립이나 안드레와 같은 타산적인 지도자가 아니라 한 아이와 같은 단순한 헌신의 사람을 통해서 기적을 맛보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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