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 들에서의 기적 막6:34-44
핀란드에 훌륭한 왕이 있었습니다. 그는 지혜와 덕으로 나라를 잘 다스려서 백성들이 아무런 걱정 없이 행복하게 살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왕에게는 커다란 근심이 하나 있었습니다. 그것은 자기의 대를 이을 왕자가 없고 공주만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왕은 자신의 대를 이을 사윗감을 구한다는 彭磁?전국에 알렸습니다.
드디어 장차 왕이 될 사위를 뽑는 날 수천 명의 젊은이들이 몰려들었습니다. 첫 번째 시험은 말타기와 활쏘기였습니다. 그 시험에서 가장 탁월한 20명의 젊은이가 선택되었습니다. 두 번째 시험은 지혜의 시험이었습니다. 왕은 수수께끼 한가지를 20명의 젊은이들에게 물었습니다. \\\"높은 하늘과 땅을 잇고 이웃과 이웃을 연결하는 나무를 구해 오라. 기간은 100일을 주겠다\\\" 왕이 낸 문제는 정말 어려운 문제였습니다. 20명의 젊은이들은 \\\"하늘과 땅을 연결하려면 우선 키가 커야 하고, 이웃과 이웃을 연결하려면 나뭇가지 또한 길어야 할텐데 \\\"라고 생각하며 제각기 길을 떠났습니다.
그 젊은이들 중에는 수녀원에서 고아로 자란 존 페로라는 청년이 있었습니다. 페로 역시 다른 청년들과 같이 가장 커다란 나무를 구하려다가 결국은 찾지 못하고 수녀원 성당에 들어가 기도를 드렸습니다. 현명한 왕이 되어 불쌍하고 버림받은 이들을 위하여 일하게 해달라고 오랜 시간 기도를 마치고 밖으로 나오는데 갑자기 나무 십자가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그리고 그 십자가가 하늘과 땅을 이어주고 이웃과 이웃을 연결해 주는 나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페로는 그 길로 그 십자가를 가지고 가서 왕의 후계자가 되었고 선왕의 대를 이어 훌륭하게 나라를 다스렸다고 합니다.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은 하늘을 두려워할 줄 모르고 사회는 갈등과 반목으로 분열되어 구제 불능의 상태가 되어버린 듯 합니다. 바로 지금이 하늘과 땅을 연결하고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는 거룩한 십자가가 필요한 때입니다. 여인들의 장식품으로 전락한 그런 십자가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흔적이 남아 있는 거룩한 십자가가 필요할 때입니다.
오늘 본문은 예수님 당시의 시대의 양심이었고 하나님의 소리를 전했던 세례 요한이 헤롯왕에게 목베임을 당한 다음의 일입니다. 예수께서는 슬픔을 억제하면서 퇴수의 시간을 가지려던 참에 많은 사람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예수께서 만난 사람들은 가난하고 정치, 사회적으로 소외되어 그 어디에도 마음 붙일 틈을 찾지 못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예수께서는 그들에게 여러 가지로 가르치신 다음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오 천명을 먹이고 열 두 광주리가 남는 기적을 일으키셨습니다. 이 말씀을 통해서 오늘 우리의 삶에도 오병이어의 기적이 일어나기를 소망합니다.
1. 이 세상은 빈들입니다. 오병이어의 기적은 벳세다 들에서 일어났습니다. 그 곳은 갈릴리 호수의 동북쪽에 위치한 곳으로 먹을 것을 찾아보기 힘든 황량한 곳이었습니다. 또한 인적이 드문 곳이었기에 먹을 것을 구할 만한 시장도 없는 곳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빈들에 예수의 말씀을 듣고자 모인 사람들은 수 천명이나 되었습니다. 그들은 아침부터 저물어 가는 시간까지 그 곳에 있었기 때문에 모두가 허기진 상태였습니다.
오늘의 지구촌도 벳세다 빈들에 모인 사람들처럼 굶주린 사람들이 많습니다. 지금도 세계 도처에서 1분에 24명씩 굶어 죽어가고 하루에도 35,000명이 굶어 죽으며 1년에 1,300만명의 아사자들이 속출하고 있습니다. 과학자들은 2010년이 되면 지구촌이 물부족 현상으로 인류의 1/3이 물 때문에 고통을 받을 것이라고 예견하고 있습니다. 미래학자들은 인구증가, 환경오염, 이상 기후로 인해 닥칠 큰 재앙을 예고하고 있으며 이미 이러한 징후가 세계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는 실정입니다. 이 모든 것은 우리로 하여금 예수께서 말세에 \\\"처처에 기근이 있으리라\\\"(마24:7)고 하신 말씀이 실제로 이루어지고 있음을 깨닫게 합니다. 나아가 이러한 굶주림은 육신적인 문제만이 아니라 영적인 문제입니다. 정말 지금 이 시대는 영적으로 빈들과 같이 황량한 상태임을 실감하게 합니다.
예수께서는 벳세다에 모인 굶주린 사람들에게서 육적인 굶주림 뿐만 아니라 영적인 굶주림을 보시고 그들을 민망히 여기셨습니다. 그들은 로마의 지배하에서 집권하고 있는 권력자인 헤롯과 대제사장 그리고 종교 지도자들의 억압과 수탈로 고생하고 있었습니다. 게다가 당대의 의인인 세례 요한까지 처치해 버리고도 부끄러워하지 않는 그들의 지도자에게 환멸을 느끼고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찾아 온 무리들은 예수께 큰 기대와 희망을 걸고 찾아온 사람들이었습니다. 예수께서는 육적으로 영적으로 굶주린 그들을 보면서 가슴아파했습니다.
우리시대 역시 그 때와 다를 것이 없습니다. 진리와 정의가 숨겨지고 부정과 비리가 판을 치는 시대입니다. 자기 이익만을 추구하는 정치 지도자들 때문에 온 국민들은 환멸을 느끼고 있습니다. 이제 초등학교 학생들 입에서조차 국회의원들이 가장 믿지 못할 사람이 되어버렸습니다. 자국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미국의 여러 가지 정책이 우리에게 큰 짐이 되어 돌아오고 있습니다. 일본의 신군국주의 경향은 이미 그 위험 수치를 훨씬 넘어서고 있습니다. 올림픽을 개최하게 되었다고 기뻐하는 중국은 이제 군사대국이 아니라 경제대국으로 세계에 등장하고 있습니다. 역사를 통해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것처럼 주변 강대국들에 의해 우리가 얼마나 많은 아픔을 겪어왔습니까? 이러한 위기의 시대에 정말 나라 안 사정은 온 국민의 마음을 새카맣게 태우고 있습니다. 정치, 경제, 사회, 교육 어느 한 분야가 제대로 되는 것 같지가 않습니다. 영적으로도 온 국민이 혼돈 속에 빠져있습니다. 나라의 혼돈을 틈타 온갖 이단 신앙과 무속 신앙이 급속도로 온 사회에 퍼져가고 있습니다. 이제 초등학교 앞의 문구점에서도 스티커로 된 부적을 팔고 있으며 아이들은 그 부적을 필통과 가방에 붙여놓고 다닙니다. 영화나 TV와 같은 영상매체는 온갖 폭력과 살인으로 난무하며 보는 이들에게 반기독교적인 메시지를 강력하게 심어주고 있습니다. 정말 우리 시대는 영적으로나 육신적으로나 벳세다 들녁처럼 삭막하기만 합니다. 그 어디에서도 희망이 보이지를 않습니다. 정말 큰 일입니다.
2. 주님은 우리에게 먹을 것을 주라고 하십니다. 제자들은 굶주린 무리들로 하여금 촌과 마을로 가서 무엇인가를 사먹게 하자고 예수께 제안을 했습니다. 그 때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고 하셨습니다. 제자들이 아무 것도 없는 줄을 주님은 알고 계셨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제자 중에 한 사람은 \\\"우리가 가서 200데나리온의 떡을 사다 먹이리이까\\\"라고 말하며 예수께 불편한 심기를 숨기지 않았습니다. 실제로 200데나리온은 거금이었습니다. 장정 5,000명이 한끼 식사를 할 수 있는 정도의 액수이니까 대단한 돈이었습니다. 제자들에게 그런 거금이 있을 리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제자들의 시큰둥한 반응에도 불구하고 예수께서는 계속해서 \\\"너희에게 떡이 몇 개나 있느냐 가서 보라\\\"고 재촉하셨습니다. 주님께서는 제자들이 가지고 있는 것이 그 무엇이든지 내어놓기를 바라셨던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예수께서는 오늘 우리들에게 많은 어려운 이웃들을 도우라고 부탁하고 계십니다. 헐벗고 굶주린 이웃들에게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고 명령하고 계십니다. 우리들도 예수님의 제자들과 같이 많은 것을 갖지 못한 사람들입니다. 겨우 한 가족의 살림을 꾸려나갈 정도입니다. 남을 도울 수 있을 만큼 경제적으로 여유 있는 생활을 하는 성도들을 손으로 꼽을 수 있을 정도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은 우리 주위에 가난하고 병들고 소외된 사람을 도우라고 하십니다. 복음의 사각지대에서 영적으로 죽어가고 있는 사람들을 도우라고 하십니다. 우리는 어려운 이웃을 도우라고 명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응답해야 합니다. 복음 선교와 이웃을 돌보는 일을 우리에게 부탁하신 예수님의 요청에 응답해야 합니다.
남을 돕는 일은 내가 여유가 있어서 돕는 것이 아닙니다. 강도 만난 사람을 도왔던 사람은 잘 살고 지위가 높았던 제사장과 레위인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사회적으로 소외되었던 사마리아인이 강도 만난 사람을 도운 사실을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저는 TV 프로그램 중에 \\\"칭찬합시다\\\"라는 프로그램을 가끔 시청하곤 합니다. 그 프로그램은 우리 사회의 어려운 이웃들을 돕는 선한 사람들을 찾아가서 그들을 격려하고 후원하는 프로그램입니다. 그런데 한 가지 주목할 만한 사실은 그 곳에 출연하는 선한 이웃들 대부분이 자기들도 그렇게 넉넉하고 풍요로운 삶을 살아가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들은 사랑과 헌신의 마음을 가지고 실천에 옮김으로써 많은 이들을 돕고 살아가는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사랑과 봉사의 실천은 돈으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아무리 돈이 많더라도 마음이 없으면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비록 넉넉하지 않더라도 사랑의 마음이 있으면 그 곳에 나눔이 있고 기적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는 어려운 이웃에게 선한 이웃이 되기 위해서 한 달에 한 번씩 구제헌금을 통하여 그들을 돕고 있습니다. 가정 예배를 통하여 거두어진 헌금은 어려운 성도들과 이웃들을 돌보는 일에 쓰여지고 있습니다. 또한 영적으로 복음에 굶주린 영혼들을 위해 1년에 한 교회씩 개척하고 있으며 선교 헌금으로 50여 개의 교회를 돕고 있습니다. 이번에 한명수 목사님을 뉴질랜드 선교사로 보내게 되었고 이제까지 12명의 선교사를 협력하여 돕고 있습니다. 이와 같이 우리 교회가 봉사와 구제와 선교의 사명을 잘 감당하는 교회가 되도록 인도하여 주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와 영광을 드립니다.
3. 우리의 것을 다 드려야 합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제자들이 혹시 누가 떡을 가지고 있는지 알아보니까 어떤 소년이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내어놓았습니다. 이 소년도 역시 허기져 있었기 때문에 남을 도울 여유가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소년은 자기의 모든 것을 예수님께 내어놓았습니다. 자기가 넉넉할 때 남을 돕는 일도 쉽지가 않은 일인데 그 소년은 자기도 어려운 처지에서 자신의 것을 남을 위해 내어놓았습니다. 게다가 자기 것을 따로 떼어놓지 않고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다 내어놓았습니다. 소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참 헌신이 무엇인지를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예수님께 자기의 모든 것을 드릴 줄 아는 믿음의 사람이었습니다.
아마 예수님께서는 이 소년을 크게 칭찬하셨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전에 도 엽전 둘을 헌금함에 넣었던 과부의 헌금을 칭찬하신 적이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가난한 과부의 헌금이 많았기에 그녀를 칭찬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많이 바친 것으로야 바리새인들을 훨씬 크게 칭찬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헌금의 기준은 얼마나 많이 바쳤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많이 남아 있느냐였습니다. 과부는 자기의 모든 것을 다 드렸기에 가진 것이 없었지만 바리새인들은 비록 많은 헌금을 드렸어도 여전히 자신의 것으로 남겨놓은 것이 많이 있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참된 헌신은 일부분을 드리고 일부분은 자기 몫으로 남겨놓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모든 것을 다 주님께 내어 드리는 것입니다.
본문의 소년은 이와 같은 의미에서 참된 헌신을 한 사람이었습니다. 소년은 주님께 모든 것을 다 드렸고 자신의 몫이라고는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그 때에 예수께서 하늘을 우러러 기도하신 후에 그 떡과 물고기를 나누게되니 장정 오 천명이 먹고도 열두 광주리가 남는 놀라운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어린 소년의 참된 헌신이 이렇게 큰 기적을 일으킨 것입니다.
바비 힐(Bobby Hill)이라는 이름을 가진 13세의 소년이 미국에 살고 있었습니다. 그의 아버지는 미 공군 상사로서 유럽에 파견되어 근무중이었습니다. 어느 날 바비 힐은 독일의 유명한 슈바이처 박사가 아프리카에서 의료 선교 활동을 하고 있는데 의약품이 부족하여 곤란을 겪고 있다는 글을 잡지에서 읽게 되었습니다. 그 소년은 그 글을 읽고 유럽 지역의 미 공군 사령관에게 편지를 썼습니다. \\\"제가 산 아스피린 한 병을 보냅니다. 이 약을 아프리카에 계신 슈바이처 박사의 병원에 낙하산으로 떨어뜨려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어린아이다운 천진난만한 생각이었지만 그러나 너무나 아름답고 고귀한 생각이었습니다. 사령관은 이 소년의 이야기를 유럽의 각 방송국에 전해 주었고 이 이야기가 방송에 나간 후에 유럽 사람들 사이에서 의약품을 모으는 운동이 시작되어 무려 40만 달러 어치의 의약품을 모으게 되었습니다. 이후에 바비 힐이라는 소년은 40만 달러 어치의 의약품을 가지고 비행기로 슈바이처 박사에게 의약품을 전하게 되었습니다. 후에 슈바이처 박사는 이 일을 기억하며 \\\"어린아이가 이런 큰 일을 할 수 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비록 작은 어린아이의 헌신이었지만 이 일이 아프리카 선교의 가장 큰 일을 이루게 했다\\\"며 그 감격을 술회하였다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비록 작은 헌신이라고 할지라도 그 헌신이 순전하고 자신의 모든 것을 드릴 줄 아는 온전한 헌신이라면 이를 통해 하나님의 큰 역사가 반드시 일어날 것입니다.
어느 목사님이 장년 1,500명 정도 모이는 교회에서 목회를 하고 있었습니다. 다른 교회에 다니는 한 신도가 그 목사님께 \\\"목사님 교회의 성도 중에 몇 명이나 십일조 생활을 합니까?\\\"라고 물었습니다. 목사님은 \\\"우리 성도들 모두가 다 십일조 생활을 합니다\\\"라고 대답을 했고 이 대답에 놀라며 그 신도는 이렇게 되물었습니다. \\\"어떻게 그 많은 사람이 다 십일조 생활을 합니까?\\\" 잠시 침묵을 지키던 그 목사님이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실제로는 347명이 십일조를 하고 나머지 사람들은 십일조를 하기는 하는데 다른 방법으로 합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역경이나 질병, 사업실패나 실직 등을 통해서 십일조를 거두어 드립니다. 따라서 이들은 십일조를 하기는 하지만 직접 하나님께 드리지 않고 하나님께 빼앗기는 편입니다.\\\"
성도 여러분! 십일조는 하나님의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하나님께 드린 십일조를 통해서 하나님의 선한 사역들이 이루어지며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가 확장되어져 갑니다. 우리의 모든 것을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 마땅할진대 십일조마저 하나님께 드리지 못한다면 성도로서 하나님을 뵐 면목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것을 하나님께 드리는 것은 결코 성도의 자랑이나 공로가 아니요 성도의 의무입니다. 그리고 이 선한 의무를 우리가 잘 감당할 때 하나님의 크신 역사가 이 땅에 이루어지며 하나님의 크신 복이 성도들의 삶에 충만할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빈들과 같은 삭막한 세상에서 우리가 비록 가진 것이 적다 할지라도 우리의 어려운 이웃을 도울 것을 기대하고 계십니다. 오늘도 여전히 주님은 우리에게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고 명령하고 계십니다. 우리는 이 음성을 듣고 우리가 가진 것을 주님께 드려야 합니다. 우리의 시간과 정성을 드려 주님의 일에 헌신해야 합니다. 그 때 하나님은 부족한 우리를 통해서 세상을 아름답게 만들고 복음으로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어 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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