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의 표적은 분별할 수 없느냐? 마16:1-4
나이 드신 분들 중에는 신경통으로 고생하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신경통의 원인은 의학적으로 아직 정확하게 밝혀져 있지 않습니다. 하지만 대체적으로 우리가 아는 바에 의하면 젊은 사람보다는 중년기 이후의 분들이, 그리고 남자보다는 여자가 더 많은 것으로 압니다. 이로 미루어 보건대 여성들이 젊어서 산후조리를 잘 못했다거나 너무 힘든 일을 많이 해서 그 후유증으로 찾아오는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그런데 대개 신경통 환자들은 흐린 날씨나 비가 오는 날씨를 참 잘 맞춥니다. 그래서 제 기억에도 저희 할머님께서 맑은 날임에도 불구하고 \"야야 장독 뚜껑 닫아라\"라고 하시든지 \"마당에 걸려 있는 빨래 걷어라\"라고 하시면 그 날은 영락없이 비가 오는 날이었습니다.
아마도 흐린 날이나 비가 올 때 쯤이면 몸이 찌뿌둥 하다든지, 팔 다리가 저리거나 쑤시는 현상을 몸에서 느끼시는 모양입니다. 여기 계신 분들 중에도 더러 그러신 분들이 계실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주님은 이런 원리를 우리의 영적인 문제에도 적용이 된다는 사실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런 현상들이 나타나고 있음에도 깨닫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저희 집 둘째 아이가 이제 다섯 살인데도 불구하고 안경을 쓰게 되었습니다. 언제부터인지 알 수는 없지만 텔레비전을 볼 때 눈을 찌푸린다든지, 자꾸만 앞으로 가서 텔레비전을 보는 것이었습니다. 좀 이상하게 생각은 했지만 \'별 이상이야 있겠는가?\'하는 생각으로 한동안 그대로 두었습니다. 그런데 갈수록 눈을 찌푸리는 횟수가 많아졌습니다. 몇몇 집사님들께서 권유를 하셔서 안과에 데리고 가보았습니다. 결과는 난시가 좀 심한 편이고, 그대로 방치해 두었으면 \'약시\'가 될 가능성이 있었다는 것이 의사의 진단이었습니다.
대개 사람들의 몸에 이상이 있거나 병이 있을 때에는 평소와는 다른 어떤 징조가 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그것을 발견하지 못하거나 아니면 대수롭지 않게 생각해서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음으로 더 큰 병을 얻거나 돌이킬 수 없는 상태에까지 가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주님은 오늘 주님을 찾아온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을 향해 이런 사실을 지적하고 계십니다. 이미 예수님은 자신이 누군지에 대해 여러 가지 표적을 통해 보여주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깨닫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그런 사실을 지적하고 계십니다.
먼저 오늘 본문을 보면 이렇게 시작합니다. 1절에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이 와서 예수를 시험하여 하늘로서 오는 표적 보이기를 청하니\"라고 했습니다.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은 이 당시 유대교의 지도자들입니다. 그런데 지금까지는 주로 예수님을 찾아온 사람들이 바리새인과 서기관인 것으로 소개된 반면 오늘 본문은 바리새인이 사두개인들과 함께 예수님을 찾아온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왜 항상 그랬던 것처럼 바리새인들이 서기관과 함께 예수님께 나아와서 질문하거나 어떤 요구사항을 말하지 않고 이번엔 사두개인과 함께 온 것일까요? 그 당시 상황으로 볼 때 실상 이 두 부류의 사람은 이렇게 가깝게 지낼 수 있는 처지가 아닙니다. 왜냐하면 그들 상호간에 교리적으로 다른 점들이 너무 많았기 때문입니다.
오늘날로 말하면 바리새인들은 보수주의 자들이고, 사두개인들은 진보주의 자들입니다. 바리새인들은 전통주의 자들이고, 사두개인들은 자유분방한 자들입니다. 바리새인들은 부활도 믿고 천사의 존재도 인정했습니다. 그러나 사두개인들은 모세 오경의 율법에 기록된 것들만 타당한 것으로 받아들였기 때문에 부활이나 천사에 대한 교리를 부인했고 성공과 역경은 인간의 행동의 결과라고 믿었습니다. 그러니 그들은 결코 함께 자리를 같이할 수 있는 자들이 아닙니다.
하지만 지금은 그들이 함께 예수님께 나아왔습니다. 그 이유는 예수를 시험하기 위해서입니다. 이미 우리는 바리새인들이 서기관과 함께 예수님께 나아와서 예수님을 공격하다가 오히려 낭패를 당했던 사실을 살펴본 적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굳이 바리새인들이 사두개인과 함께 예수님께 나아온 이유를 설명한다면 두 번 다시 똑같은 망신을 당하고 싶지 않아서 파트너를 바꾼 것으로 보여집니다. 그들 생각에 파트너를 바꾸어서 예수를 찾아가 시험하면 예수를 좀 더 효과적으로 궁지에 몰아넣을 수 있으리라 생각을 한 모양입니다.
그들이 예수님께 찾아와서 요구한 것이 무엇입니까? \'하늘로서 오는 표적\'이었습니다. 아마도 이들은 지금까지 예수님께서 수많은 병자를 고치신 얘기를 들었을 것입니다. 아니 그들의 눈으로 목격도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예수님께서 병자를 고치신 일이나 기타 지금까지 예수님께서 행하신 일은 \'땅으로부터 온 것\'이라고 생각을 했던 모양입니다. 그리고 땅으로부터 온 것과 하늘로부터 오는 것을 비교해 볼 때, 땅으로부터 오는 것은 저급한 일이며 하늘로부터 오는 표적이야말로 너무도 확실한 증거가 된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지금 예수님께 하늘로서 오는 표적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이렇게 요구한 것은 구약시대때 많은 선지자들이 하늘로부터 오는 기적을 보여준 일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가령 예를 든다면 모세 때 광야에서 먹을 것이 없어 불평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만나가 하늘로부터 내려왔습니다. 그런가하면 여호수아가 아모리 족속과 싸울 때 해와 달이 일시에 정지하기도 했습니다. 엘리야가 갈멜산에서 바알 선지자들과 싸울 때 하늘에서 불이 내려왔습니다.
그들이 예수님께 요구하고 있는 것은 이와같은 일이었습니다. 병자를 고치고, 떡을 떼어서 많은 사람들을 먹이는 마술과 같은 일이 아니라 하늘에서 불이 떨어지든지, 만나가 내려오게 하든지, 하늘의 천체에 이상한 현상을 일어나게 하든지, 이런 일들을 나타내 보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실상 그들의 내면을 들여다 보면 설령 주님께서 그들이 요구하는 하늘로부터의 표적을 보인다 할지라도 그들은 믿을 사람들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지금 바리새인들은 예수님께서 지금까지 행하신 일들을 단순히 마술사의 마술정도로 취급하고 싶은 마음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그것도 아니면 귀신의 왕 바알세불의 힘을 빌려서 행한 일이라고 말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사두개인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들은 처음부터 이런 하늘에서 일어나는 기이한 어떤 현상을 믿는 자들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이 하늘로부터 오는 표적을 보여달라고 하는 것은 실제로 예수가 보일 수도 있다는 사실을 전제로 해서 말하는 것이 아니라 전혀 실현 가능성이 없는 일이라는 전제 하에 요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복음서의 저자인 마태도 앞부분에 \"예수를 시험하여\"라고 했습니다. 정말 그들은 예수를 시험하기 위해서 이렇게 하늘로부터 오는 표적을 요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때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2-3절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가 저녁에 하늘이 붉으면 날이 좋겠다 하고 아침에 하늘이 붉고 흐리면 오늘은 날이 궂겠다 하나니 너희가 천기는 분별할 줄 알면서 시대의 표적은 분별할 수 없느냐?\"라고 하셨습니다.
이 당시는 지금처럼 기상관측이 발달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참 놀라운 것은 우리나라 역사를 보면 신라시대 \'첨성대\'라는 것이 있었고 이곳에서 천체를 관측했다고 하니 놀라지 않을 수 없습니다. 오늘날은 어떻습니까? 언젠가 우리나라 기상대의 기상관측이 잘 맞지 않는다하여 문제가 된 일이 있었습니다. 왜 기상관측이 맞지 않을 때 문제가 됩니까? 여러 가지의 재난에 대비를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구름사진을 통해서 혹은 세계의 기상변화를 매시간 관측해서 정확하게 보도를 해야만 어떤 재난으로부터 보호를 받을 수 있는데 그렇지 못하면 엄청난 피해를 가져 올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제가 알고 있기로는 상당히 많은 돈을 들여서 우리나라도 기상관측에 있어서 가장 정확한 예측을 할수 있는 \'슈퍼 컴퓨터\'를 들여온 것으로 압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금씩 기상예측이 빗나가거나 맞지 않을 때가 가끔은 있습니다. 어쨌든 이 \'슈퍼 컴퓨터\'를 들여온 이후부터 그 전날 일기예보 시간에 다음날 오후부터 비가 온다고 하면 거의 정확하게 비가 오고, 날씨가 흐리고 황사현상이 있을 것이라고 예보하면 어김없이 그런 현상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 당시는 이런 컴퓨터가 발달한 것도 아니고 순전히 눈으로 하늘을 보면서 기상관측을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참 놀라운 것은 이렇게 관측을 해도 별로 틀리지 않는다는 것이 신기할 뿐입니다. 앞에서도 말씀드렸지만 신경통 환자들이 날씨의 변화를 기가 막히게 맞추는 것처럼 이 당시의 사람들도 그랬습니다. 일반적으로 하늘이 붉으면 날씨가 맑아집니다. 왜냐하면 하늘이 붉은 것은 해가 지고 있거나 이미 진 해 주변의 대기에는 폭풍우를 가져 올 만한 구름이 빽빽하게 몰려 있지 않다는 나타내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왜 이들이 이 당시 날씨의 변화에 민감했느냐? 하는 것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듯이 이 당시는 농경사회입니다. 그러므로 \'비\'는 농사에 있어서 절대적입니다. 오늘날과 같이 기계가 발달하거나 관개시설이 잘 되어 있으면 비가 부족할 때 지하수를 끌어쓴다거나 아니면 관개용수를 이용해서 농사를 짓겠지만 이 당시는 그러지 못했습니다. 오직 하늘에서 내리는 비에 의존을 해야만 했습니다. 물론 비가 올 때 물을 충분히 저장해 놓을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왜냐하면 그 만큼 이 지역의 강수량은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하늘의 기상을 읽는 것은 농사를 짓는 사람들 뿐 아니라 모든 사람의 관심입니다.
특히 종교지도자로서 백성들의 생활과 직결된 문제인 기상변화에 대해 지식을 갖는 것은 어쩌면 매우 당연한 일인지 모릅니다. 그런데 주님은 오늘 그들을 향해 말씀하시기를 \"너희가 천기는 분별할 줄 알면서 어찌하여 시대의 표적은 분별할 수 없느냐?\"고 하십니다. 이것은 그들이 종교지도자이면서 날씨 변화에 관심을 갖고 있다고 책망하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은 지금 그들에게 영적인 분별력이 없음을 지적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이들이 누굽니까?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이면 당대 최고의 학문과 지식과 종교적인 열정을 자랑하던 사람들입니다. 많은 사람들에게 존경과 신뢰를 한 몸에 받던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그들이 영적인 진리에 관한한 지금 어두움에 속해 있습니다. 천기는 분별할 줄 알면서 시대의 표적은 분별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사람들은 자기가 처한 장소에게 자신과 관련되어진 일에 대해서는 상당한 분별력이 있습니다. 농사를 짓는 농부는 아무리 \'슈퍼컴퓨터\'로 기상을 예보해도 나름대로의 경험을 바탕으로 농사일정을 잡고 하늘의 변화들을 읽어냅니다. 정치가들은 여론이나 혹은 대중의 감정 변화에 대해 민감하게 반응을 합니다. 주식 투자자들은 하루 종일 주식의 흐름과 장세를 읽고 그 변화에 따라 주식을 사고 파는 일을 합니다. 학부모들은 교육부의 교육정책이 어떻게 변화되고 그 변화에 따라 우리 자녀의 대학진학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할 것인지 너무도 잘 알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안산지역에 살면 적어도 어떤 집을 전세로 얻어야 하며, 얻은 후에 어떻게 서류를 갖추어야 하고, 경매에 들어갔을 때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이제는 거의 박사가 된 사람들이 많습니다. 마치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이 이 당시 천기를 분별할 수 있었던 것처럼 자기의 일에 대해 상당한 식견과 분별력을 갖추고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 주님의 책망이 어디에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그런 일에는 기가 막히게 분별력을 가진 자들이 정작 시대의 표적을 분별하지 못하는 것을 안타깝게 여기시고 책망하고 계신다는 사실을 알고 계십니까? 주님은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이 종교지도자이면서 천기를 분별하고 있는 것 자체를 문제 삼고 계시는 것이 아닙니다. 문제는 그렇게 천기는 분별할 줄 알면서 시대의 표적은 분별하지 못한다는 것을 책망하고 계십니다.
저와 여러분들이 인생을 살면서 여러 가지 주위의 일에 반응하는 것을 주님은 탓하지 않습니다. 내 자녀 대학 보내기 위해 교육부의 정책에 대해 반응을 보이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사업을 하는 사람이 좀더 사업을 성공적으로 이끌기 위해 여러 가지 계획을 세우고 그 일을 위해 열심히 노력하는 것을 책망하고 계시는 것이 아닙니다. 물건을 좀 더 값싸게 사기 위해 이 곳 저 곳을 돌아다니며 정보를 얻고 그 정보에 따라서 물건을 구입하는 것을 탓하는 것도 아닙니다. 문제는 그런 부분에 있어서는 너무도 잘 분별하고 반응을 보이면서 주님의 일, 영적인 일에는 분별력이 없다는 것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이들이 당대 최고지성과 종교적인 열정, 그리고 존경받는 계층에 속한 사람이라면 적어도 지금까지 예수님께서 많은 사람들에게 보이신 표적이 무엇을 의미하는 지 알아야 옳았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은 이 사실을 알기는커녕 도리어 예수를 시험하기 위해 하늘로부터 오는 표적을 요구하고 있으니 얼마나 어리석고 형편없는 삶을 사는 자들입니까? 그런데 오늘날 저와 여러분은 어떠한지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과연 우리들은 영적인 분별력이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시대의 표적을 분별할 줄 아느냐?하는 것입니다.
물론 자기의 인생에 어느날 갑자기 어려운 문제가 닥치면 그것이 하나님의 경고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더러 있습니다. 사업이 갑자기 어렵다든지, 건강을 잃어버린다든지, 멀쩡하던 자녀가 갑자기 말썽을 피운다든지, 집안에 걱정스러운 일들이 겹칠 때 그래도 신앙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의 고백은 \"하나님께서 나를 책망하고 계시는구나!\" \"하나님께서 내가 그 길로 가지 못하도록 막으시는구나!\" \"하나님께서 이 일은 원치 않으시는구나!\"라고 생각을 합니다. 그런데 언제나 거기까지입니다. 그 수준에 머물러 버리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다시 사업이 회복되거나, 잃었던 건강을 회복하거나, 걱정스러웠던 일들이 해결되면 언제 그런 생각을 했느냐?는 듯이 또 다시 과거의 모습으로 돌아가버리는 것이 우리들입니다. 우리들은 시대의 표적을 진정으로 읽지 못합니다. 물론 주님께서 여기에서 말씀하신 시대의 표적이 이런 것에 국한 된 것은 아닙니다. 그렇다면 주님께서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을 향해 말씀하신 시대의 표적이 무엇입니까? 많은 병자를 고치시고, 풍랑을 잠잠케 하시며, 물고기 두 마리 보리떡 다섯 개로 5000명을 먹이신 그 모든 기적은 주께서 유대인들이 지금까지 기다려 왔던 \'메시야\'라는 사실과 하나님나라 선포를 위한 표적이었다는 사실입니다.
구약 이사야 35장 5-6절을 보면 \"그 때에 소경의 눈이 밝을 것이며 귀머거리의 귀가 열릴것이며 그 때에 저는 자는 사슴 같이 뛸 것이며 벙어리의 혀는 노래 하리니 이는 광야에서 물이 솟겠고 사막에서 시내가 흐를 것임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병자를 고치시고, 장애인들을 낫게 하시며, 수많은 사람들을 먹이신 것은 모두 선지자 이사야의 예언을 성취하는 것이었습니다. 다시 말씀드려서 예수님이 메시야라는 사실을 세상에 선포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은 깨닫지 못했습니다. 깨닫지 못한 정도가 아니라 아예 예수를 시험하고 궁지로 몰아넣으려 하고 있습니다.
아직도 많은 사람들은 예수가 우리의 참된 구원자이시며 내 삶의 주인이라는 사실을 알지 못하거나 의도적으로 부인하려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 중에는 세상적으로는 나무랄 곳이 전혀 없는 사람들도 참 많습니다. 자신의 지식을 믿고, 자신의 능력을 의지하여서 예수 그리스도가 참 생명 되심을 인정하지 않을 뿐 아니라 인생을 자신의 힘으로 개척해 보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오늘 이 시대의 바리새인과 사두개인이 누구라고 생각하십니까? 세상 지식과 인생의 풍부한 경험으로 예수를 받아 들이지 않는 사람들일 것입니다. 또 자신의 일은 분별력을 갖고 열심히 감당하려고 노력하면서 영적인 일에는 거의 관심이 없거나 신경을 쓰려하지 않는 사람들 일 것입니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는 다른 사람에게 물을 것이 아니라 나 자신에게 물어 보아야 할 줄 압니다. 무엇을 말입니까? \"과연 나는 영적인 일에 관심이 있는가?\" 아니 관심 정도가 아니라 \"세상의 일을 분별하듯이 그 정도의 통찰력을 가지고 있는가?\", \"이 시대의 표적을 제대로 분별하고 있는가?\" 하는 질문입니다. 어떻습니까? \"예\"라고 자신있게 대답하실 수 있습니까?
주님은 이들을 향해 4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악하고 음란한 세대가 표적을 구하나 요나의 표적 밖에는 보여줄 표적이 없느니라\" 바리새인과 사두개인을 향한 주님의 평가는 \'악하고 음란하다\'는 것이었습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듯이 이들은 종교적으로 선하게 살려고 노력을 한자들입니다. 그래서 겉으로 보기에는 흠 잡을 만한 것이 별로 없습니다. 그런데 주님은 이들을 향해 \'악하고 음란하다\'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이들이 성적인 범죄를 저질렀다는 뜻은 물론 아닙니다. 그렇다면 무슨 말입니까? 영적으로 음란하고 악하다는 말입니다. 왜 이들이 영적으로 음란하고 악합니까? 그들의 관심이 다른 곳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주께서 보여주신 그 시대의 표적을 통해 영적인 삶으로 나아가야 함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그런 그들에게 주님이 보여주실 표적은 \'요나의 표적\'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들의 기대와는 사뭇 다른 표적에 대해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그들은 무엇을 요구했습니까? 하늘로부터 오는 표적입니다. 그런데 주님은 \'요나의 표적\'밖에는 보여줄 것이 없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면 요나의 표적은 무엇입니까? 이미 주님은 마태복음 12장 39-40절에 이 말씀을 한번 언급하신 바 있습니다. \"악하고 음란한 세대가 표적을 구하나 요나의 표적 밖에는 보일 표적이 없느니라 요나가 밤낮 사흘을 큰 물고기 뱃속에 있었던 것 같이 인자도 밤낮 사흘을 땅속에 있으리라\"고 하셨습니다. 주님은 지금 무엇을 말씀하고 계시는 것입니까? 진정한 표적은 주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는 것이란 말입니다. 왜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으심이 표적입니까? 십자가는 우리의 구원을 이루는 사건이기 때문입니다. 죄와 사망의 권세에서 우리를 해방시키는 사건이기 때문입니다. 도저히 하나될 수 없는 죄인인 우리를 거룩하신 하나님과 화목되게 한 사건이 십자가의 사건이기 때문입니다.
참 그렇습니다. 십자가는 주께서 보이신 최고의 표적입니다. 주님의 죽으심은 모든 죄인을 구원하고도 남음이 있는 놀라운 표적입니다. 물고기 두 마리 보리떡 다섯 개로는 5000명 밖에 먹이지 못했지만 물고기 두어마리와 떡 일곱 개로는 4000명 밖에 먹이지 못했지만 주님의 십자가는 온 인류를 구하고도 남음이 있는 일입니다.
어리석은 바리새인과 사두개인은 하늘로부터 오는 표적을 구했습니다. 맑은 하늘에 갑자기 천둥이라도 치고, 번개라도 한번 치기를 바랬는지 모릅니다. 아니면 갑자기 해가 사라지고 온통 세상이 어두워지는 기이한 일을 보고자 했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주님의 십자가 사건은 그것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더 놀라운 표적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저와 여러분이 이 자리에 있을 수 있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리스도의 십자가 때문이 아닙니까? 그리스도의 십자가 없이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께 나아올 수 있으며 그분과 화목을 이룰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 어떤 이들은 여전히 바리새인과 사두개인처럼 십자가외에 다른 것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눈에 보이는 뭔가 확실한 것을 달라고 떼를 쓰고 있습니다. 그것은 영적으로 분별력 없는 사람들의 요구입니다. 하늘로부터 오는 표적을 구하는 자들은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입니다.
오늘 여러분은 어떠합니까? 무엇을 구하고 계십니까? 여러분 인생에 펼쳐지고 있는 일들이 이 시대 내 삶에 어떤 표적인가를 생각하고 계십니까? 아니면 여전히 영적인 일에 냉담하고 분별력 없이 그저 세상의 삶에 만족하고 그것에만 매어 달리고 있지는 않습니까? \'악하고 음란한 세대에 하늘로부터의 표적을 구하고 있는 바리새인과 사두개인은 과연 누굽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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