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을 만드는 사람

기적을 만드는 사람/마14:13-21

기적을 만드는 사람
마14:13-21





오래 전에 이태리에서 있었던 재미있는 이야기입니다. 이태리 어느 시골 마을에 열세 살 먹는 어린 소년이 있었습니다. 어느 날 독일의 유명한 노벨 평화상을 수상했던 알버트 슈바이처박사의 아프리카 의료선교에 대한 글이 잡지에 실렸습니다. 그 글을 읽었던 시골소년은 어떻게 하면 슈바이처 박사님의 의료선교에 도움이 될 수 있을까 하고 곰곰이 생각을 했습니다. 그리고 곰곰이 생각한 결론으로 한 통의 편지를 썼습니다. 그리고 약국에 가서 조그만 한 병의 아스피린을 샀습니다. 그리고 자기 나라의 공군사령관에게 편지를 써 보내기를 “사령관님 제가 지금 한 병의 아스피린을 보냅니다.



우리나라 공군 비행기가 혹시 슈바이처 박사님이 선교활동을 하는 그 상공을 날아갈 때 이 약을 거기에 떨어뜨려주십시오.” 참 어처구니없는 글 아닙니까? 열세 살 먹는 아이치고는 참 철이 안들었다 생각됩니다. 왠만한 아이 같으면 말도 안되는 이런 일을 하겠습니까? 그런데 그 편지를 받은 공군사령관이 편지를 읽으면서 감동을 받았습니다. 이태리 비행기가 아프리카 상공을 날아갈 일은 거의 없지 않습니까? 그런데 이 이야기를 공군사령관이 방송국에다가 알렸습니다. 어떤 한 소년이 나에게 아스피린을 한 통 사 보내면서 이런 편지를 써 보낸 일이 있다. 그 이야기가 일순간에 방송국을 통해서 전국적으로 알려졌고, 그 방송이 나가자 얼마있지 않아서 얼마정도의 약품이 모여졌는가 하면 40만불 어치의 약품이 모여졌습니다. 불과 몇 달러도 안되는 작은 아스피린 한 통이 40만불의 어마어마한 의약품으로 모아져서 아프리카에 보내진 일이 있다고 합니다. 이 일을 통해서 소년이 세계적으로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슈바이처 박사가 한 번은 이 소년을 만나서 소년이 보낸 조그만 한 병의 아스피린은 예수님께서 사역하실 때 벳새다에서 예수님 앞에 내어놓았던 한 이름 없는 소년의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와 같은 기적을 일으켰다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고 합니다.




1. 오병이어 사건의 배경



오늘 본문으로 돌아가서 생각을 해 봅시다. 이 본문 사건을 우리가 흔히 오병이어의 기적 사건이라고 합니다. 예수님의 공생애 기간동안에 굉장한 많은 사역을 하셨기 때문에 조금씩 시간이 나는 대로 갈릴리 바닷가를 건너가서 벳새다 지역에 가서 거기서 휴식을 취하곤 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벳새다에 가서 휴식을 취한다는 소식이 사람들에게 알려지면서 사람들이 여기저기로 갈릴리 호수를 돌아서 벳새다로 몰려들었습니다. 거기에서 어쩔 수 없이 병자들을 고쳐주고 하나님의 천국 복음을 증거 하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하루는 해가 지고 어둠이 깔려올 무렵까지도 사람들은 떠나지 않고 예수님 곁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제자들이 그 광경을 바라보니까 매우 걱정이 되었습니다. 도대체 점심은 해결을 했지만 저녁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하고 고민을 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찾아와서 “선생님 지금 여기는 빈들이고 아무것도 먹을 것이 없고 날도 저물었으니 사람들을 마을로 보내어서 음식을 사먹고 오게 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하고 예수님께 간청을 드렸습니다. 그 때 예수님께서 “가게 할 것이 없다 너희들이 그들에게 먹을 것을 주어라.” 하고 말씀을 했습니다. 그 다음 중요한데 마태는 제자들이 “여기 우리에게 있는 것은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 뿐이니이다.” 이렇게 기록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요한복음을 보면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시험하는 장면이 나오고 특별히 빌립을 시험했습니다. 빌립은 즉각적으로 “이 사람들에게 빵 한 조각씩만 먹이려해도 이백 데나리온의 돈이 필요하겠습니다.” 하면서 부정적인 논리를 갔다대는 장면을 볼 수 있습니다. 마태, 마가, 누가, 요한 사복음서가 동일하게 오병이어의 사건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 만큼 오병이어의 사건은 예수님의 사역 가운데 중요하다는 것을 나타내기도 합니다. 우리가 오병이어 하니깐 다들 알아듣는데 요즘 신세대들은 한문을 공부를 안하니깐 오병이어하면 그게 무슨 말인지 물론 앞에서 떡 다섯 개 물고기 두 마리 하니깐 그게 오병이어구나 알아듣지만 무슨 말인지 모르는 경우가 있습니다. 떡 병(餠)자에 고기 어(漁)자를 써서 오병이어(五餠二漁)라 붙입니다. 사실 떡 이라는 단어도 한국식으로 붙였는데 요즘 새로 번역을 한다면 정확하게 빵 다섯 개로 하는 것이 좀더 쉽게 받아들일 수 있을 것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떡이라는 개념보다 빵이라는 개념으로 이해해야 됩니다. 그런 차이점이 있다는 것을 이해하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상상을 해 보시기를 바랍니다. 벳새다 들판에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었습니다. 그런데 해가 지고 있습니다. 날이 어두워져 오고 있습니다.



한 가족 몇 사람이 한 끼를 때우려고 해도 결코 쉽지 않은데 마태가 제공하는 정보에서 보면 어린아이들과 여자들을 제외한 수만 빵을 먹었든 사람이 오천 명이라고 했을 때 유대인들은 어린아이와 여자들은 사람을 셀 때 계수하지 않습니다. 순수 장정들만 오천 명이 먹었으니깐 어린아이와 여자들을 포함하면 학자들은 만오천 내지 이만명정도의 사람이었을 것입니다. 그 벌판에 그 정도 사람이 운집해 있다고 상상을 해 보십시오. 제자들이 걱정을 해서 선생님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가서 먹고 오게 합시다. 가장 간단한 방법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너희들이 먹을 것을 주라 하십니다. 분명히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시험하는 장면이라고 생각이 됩니다. 여러분 같으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타임머신을 타고 가서 벳새다 들판에 같이 예수님 곁에 서 있다고 생각을 해봅시다. 여러분에게 김집사, 박집사, 이집사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 아이고 예수님 말도 마십시오. 저 먹을 것도 없는데 그 많은 음식을, 빵을 어떻게 여기서 준비한다 말입니까? 갈릴리 바닷가에 빵 공장이 있는 것도 아니고, 돈이 있는 것도 아니고 어떻게 한다 말입니까? 아마 손을 설레설레 내 저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방법을 찾으면 있습니다. 저가 전도사를 할 때 입니다. 1981년도 정도 생각이 됩니다. 고등부 학생 400명을 데리고 수련회를 했습니다. 그런데 이와 유사한 일은 아니지만 식사문제가 생겼습니다. 그래서 기도를 하면서 하나님의 기적을 구했습니다.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식사문제를 해결하고 은혜롭게 수련회를 잘 마쳤던 일이 있습니다. 어떤 기적이었겠습니까? 아이들을 전부 한 끼 굶겼습니다. 금식의 기적을 일으켰습니다. 여러분 꼭 먹어야만 기적이 일어납니까? 안먹어도 마음속에 기쁨이 있고 감사가 있고 영적인 배부름을 체험하면 빵 한 조각 먹고 안먹고 문제가 아닙니다. 그 이후부터는 그 교회는 수련회를 할 때마다 아이들을 꼭 한 끼씩 금식을 했습니다. 그러니깐 예산도 절약되고 은혜도 받고 나중에는 어른집회까지도 그런 운동이 일어났습니다. 우리교회도 앞으로 집회를 계획할 때는 꼭 그렇게 한번 하시면 저가 굉장히 기쁠 것 같습니다. 그렇게 권면하니깐 잘 안하더라고요. 밥만 먹어도 충분한데 아이들 간식까지 챙겨 먹입니다. 집에 있을 때보다 더 잘 먹어요 꼭 그렇게 안해도 상관없습니다.




2. 제자들의 해결 방법 - 빌립과 안드레



오늘 이 장면을 우리가 생각을 해보면 마태는 예수님께서 가라사대 “갈 것이 없다 너희가 먹을 것을 주어라.” 했고 제자들이 가로되 “여기 우리에게 있는 것은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 뿐입니다.” 이렇게 대답합니다. 마태와 누가는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제자들이 가져온 것으로 기록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마가와 요한은 이 사실을 좀더 상세하게 구체적으로 기록하고 있고 요한은 우리에게 정확한 정보를 줄때 예수님께서 빌립을 시험했다고 합니다. 예수님이 제자들을 시험했다고 합니다. 빌립이라는 사람은 굉장히 머리가 좋았던 사람입니다. 예수님의 제자 중에서 어떤 면에서 가롯 유다보다 머리가 훨씬 더 뛰어났던 사람입니다. 빌립은 가장 마지막까지 예수님을 안믿었습니다. 예수님을 안믿으면서도 능청스럽게 예수님을 따라 다녔습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신 이후에 제자들에게 나타났을 때조차도 내 두 손으로, 두 눈으로 만져 보기 전에는 체험하기 전에는 부활하신 주님을 믿지 못하겠다고 까지 뻗대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머리가 굉장히 영리하니깐 예수님께서 이 말씀을 하셨을 때 빌립은 순간적으로 빨리 계산을 해서 이백 데나리온이 있어야 겨우 빵 한 조각씩이라도 이 많은 사람들이 먹을 수 있겠습니다. 얼마나 똑똑한 사람이고 합리적인 사람이고 얼마나 이성적인 사림입니까. 맞는 말입니다. 그런데 안드레는 참 무식한 사람이었습니다. 베드로의 동생이었습니다. 형님도 무식했지만 안드레도 무식해서 갈릴리 바닷가에서 고기 잡아먹는 전혀 교육을 받지 못했던 어부였습니다. 그러나 안드레는 그 상황에서 예수님이 저렇게 말했으니깐 그 말에 대해 어떻게 반응해야 할 것인가? 궁리를 하다가 주변에 빵하고 고기를 가진 사람, 식사를 할 수 있는 도시락을 가진 사람을 찾아서 한 아이를 예수님께 앞에 데리고 나왔고, 그것을 가지고 예수님께서 하나님 앞에 눈을 들어 하늘을 우러러 축사하시고 그 떡을 나누어 떼어줍니다. 그것이 기적을 일으켜서 오천 명의 장정들이 먹고 아이들과 여자들이 먹고 열두 바구니에 가득 차게 남았다는 내용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어떤 어려운 상황에 처했을 때 빌립과 같이 반응할 수 있고 안드레와 같이 반응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어떤 신앙인들이 되기를 원합니까. 여러분 빌립 같은 경우일 가능성이 훨씬 높습니다. 우리 현대인들은 합리적인 사고, 과학적인 사고, 이성주의에 익숙해져 있습니다. 그러니깐 안드레 같은 사람을 우습게 여기고, 오히려 부정하는 경우가 사실 없잖아 있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쉽게 남을 탓해 버립니다. 여러분 어떤 어려운 문제가 우리 앞에 봉착되었을 때 그 문제를 부정적으로 반응하고 원망하고 또 부정적인 방향으로 분위기를 몰아가는 사람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아주 그럴싸하게 빌립처럼 머리가 영리해서 겉으로는 반대하지 않는 것 같지만 반대하도록 분위기를 몰아가는 사람도 있습니다. 또 어떤 사람은 남을 원망하고 남을 탓하고 뭐 때문에 이런 일을 해서 어려움을 당하느냐 이러니 저러니 요즘 우리나라에 원망하는 일들이 참 많지 않습니까. 또 어떤 사람은 아무 대책없이 속수무책인 사람도 있습니다.



또 반면에 어떤 사람은 그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최선을 다해서 그 문제를 긍정적으로 풀어 나가려고 하는 노력을 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한 끼를 해결한다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각자 도시락을 다 싸와서 한 끼를 해결하면 문제가 없지만 그러지 않으면 남을 탓하고 남을 원망하고 이 많은 사람들을 왜 여기 모여가지고 이 고생을 하고 허기지게 만들고 얼마든지 그럴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마태복음에는 빠져있지만 요한복음에 안드레라는 사람은 한 아이를 데려나왔고 그 아이가 가지고 나온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고 예수님께서 하늘을 우러러 축사하시고 사람들에게 나누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바라고 기대했던 믿음은 큰 믿음, 위대한 믿음이 아니고 겨자씨만한 믿음을 요구했습니다. 오늘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에게도 예수님은 겨자씨만한 믿음을 원할지 모릅니다. 마태복음 17장 20절에 보면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만일 믿음이 한 겨자씨만큼만 있으면 이 산을 명하여 여기서 저기로 옮기라 하여도 옮길 것이요 또 너희가 못할 것이 없으리라.” 믿음이 있으면 너희가 못할 것이 없다.



여러분 우리가 인생을 살아갈 때 긍정적인 믿음을 가지고 반응을 하면 우리는 수많은 가능성을 발견하게 되고 그 일을 성취해 나갈 수 있습니다. 그런데 안된다 하고 부정적으로 반응하면 안되는 방법 하나밖에 없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안드레는 주님 말씀이 있자 여기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가? 이백 데나리온이 없으니깐 안된다. 여기 빵 공장이 없으니깐 안된다. 이 상황에서 할 수 없다. 이렇게 생각하지 않고 혹시 여러분들 가운데 빵을 가져오신 분이 없으십니까? 여러분 가운데 물고기를 가져오신 분이 없습니까? 혹시 도시락을 가져오신 분이 없으십니까? 이 분위기를 한번 상상해 보시기 바랍니다. 다들 안드레가 사람들을 향해서 말할 때 머리가 빨리 돌아가는 사람은 자기 도시락 꼬불쳐 놓고 눈치만 보고 있었을 것입니다. 내가 도시락 있다 내놓으면 어쩌면 내 입에 들어가기 전에 다른 사람 입에 들어가게 될지 모른다. 더 배고픈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자 그러면 체면에 안내어 줄 수도 없고 그래서 누가 도시락을 먼저 내 놓나 눈치만 보고 있었을 것입니다.



여러분 이만 명 정도 모였으면 아무리 대책 없는 사람이라 할찌라도 한 끼 준비해 온 사람이 없었겠습니까? 그 중에 분명히 준비성 있는 사람은 한 끼 준비나, 두 끼, 세 끼 준비해온 사람들이 많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무도 안내고 뻗대고 있습니다. 어린 아이가 들고 나왔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보십시오. 빌립은 이백 데나리온을 먼저 생각하니깐 기가막혀 가지고 아무도 거기에 대한 해답이 없습니다. 이백 데나리온도 없고, 그 돈이 있다 할찌라도 빵 공장에 가서 빵을 살수도 없고 그러니깐 여기는 방법이 없다는 아주 머리 좋은 사람의 부정적인 논리가 결과로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유명한 중세 철학자 가운데 어거스틴이라는 신학 겸 철학자가 있습니다. 이 어거스틴은 인간 이성의 결과는 아무리 그 사람이 지식이 있고 똑똑하고 뛰어나도 그 지식은 결국 무식한 지식에 불과하다고 말했습니다. “여호와를 아는 것이 지혜와 지식의 근본”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어거스틴은 이런 말을 했습니다. ‘박식한 무지’(docta ignorantia) 이 말은 요즘 식으로 말하자면 무식한 박사라는 말입니다. 박사라고 하면 많이 아는 것 같지만 하나님께서 주시는 지혜와 지식에 근거하지 않는 박사는 죄송합니다. 진짜 별 볼일 없는 박사라는 것입니다. 정말 이 세상에 눈꼽만큼 알면서 박사네 아무것도 내세울 것이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알고 하나님의 지혜를 알고 하나님의 지식을 우리가 바로 알 때 진짜 똑똑한 것입니다. 우리 한국말에 겉똑똑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 가운데 겉똑똑이가 진짜 많지 않습니까? 오늘 우리 사회를 병들게 하는 사람들은 겉똑똑이들입니다. 저는 최근에 우리 사회에 발표되는 통계 자료를 보면서 이 통계자료의 죄악, 부정적으로 사용하면 엄청난 해악을 끼칠 수 있다는 것을 느낍니다. 사실 사회과학이라는 것은 사회 현상을 통계적인 자료를 가지고 도구로 사용할 때가 많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최근에 토지문제라든지, 부의 편중 문제라든지, 맞는 말은 맞는 말인데 그것을 조금만 왜곡시키면 엄청난 무서운 결과가 나타납니다. 두 가지가 발표되었는데 하나는 부모가 경제력이 있으면 아이들이 수능 성적이 높게 나타나고 부모가 경제력이 없는 집 아이들은 수능 성적이 낮게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그 말은 통계상으로 맞는 말일 수 있습니다. 또 다른 통계는 부모가 교육을 많이 받고 공부를 많이 한 집 아이들은 성적이 좋고 부모가 공부를 못한 집 아이는 성적이 나쁘다는 것입니다.



이 통계가 설사 왜곡되지 않은 정확한 통계라 할지라도 지도자들은 그런 통계를 발표해 가지고 온 국민들의 정신을 병들게 만들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엄청난 역사의 죄악입니다. 한국교육평가원의 어느 박사가 연구를 해서 발표를 했는데 이것은 우리의 마음을 도적질해가는 무서운 죄악을 저질러는 것입니다. 이 사실을 본 아이들은 어떻게 생각하겠습니까? 내가 공부 못하는 것은 내가 열심히 안해서 못하는게 아니고 우리 부모가 못나서 공부를 못한다. 우리 부모가 많이 배우지 못해서 못한다. 부모가 돈이 많이 없어서 못한다. 핑계와 변명, 자기 합리화 시킵니다. 그럼 자라나는 세대들이 앞으로 자라서 어떻게 되겠습니까? 늘 남을 원망하고 불평하고 적대감을 가지고 살지 않겠습니까? 우리 한국사회에 아이들도 이런 부정적인 생각을 가진 반면에 오늘 여기 이 자리에 계신 분들과 이 방송을 듣는 청취자들께서는 이 함정에 빠져서는 안됩니다. 내가 이 부모가 못나서 뒷바라지를 못해서 너가 지금 이렇다. 이런 말은 자식들에게 하지 마시고 미안한 생각도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내가 낳아서 이만큼 키워준 것만 해도 이 부모에게 감사해야 된다. 이렇게 당당하십시오.



그런데 한국의 많은 부모들은 너 과외도 시켜주지 못하고, 너 유학자금도 돼주지 못하고, 뭐도 못하고 죄송하다 미안하다 합니다. 그러니깐 자식들이 버릇없이 나중에 부모를 함부로 대하는 것입니다. 나를 이 땅에 태어나게 해준 것 만해도 축복입니다. 여러분 할 짓 내가 다 못했다 물론 그런 마음도 아름다운 마음이지만 그 생각이 지나치면 아이들의 의식 속에 자기 책임성이 없는 인간이 인생을 살면서 책임성이 없어지면 그 만큼 무서운 정신적인 황폐화는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 사회가 그렇게 되고 있고, 사회 정치지도자들이 그렇게 사람들의 마음을 도적질하는 일들이 너무나 명백하게 일어나고 있는 것을 볼 때 안타깝기 짝이 없습니다.




3. 예수님이 베푸신 기적



여러분 오늘 이 상황에서 안드레와 빌립이 똑같은 예수님의 제자였지만 그들이 취했던 행동은 전혀 다른 것이었다는 것을 우리가 알 수가 있습니다. 작은 것 밖에 없습니다. 작은 것 밖에 없었지만 예수님께서는 나에게로 가져오라 하셨고 사람들을 잔디위에 앉히시고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들고 하늘을 우러러 축사하셨습니다. 축사하셨다는 말은 축복하고 감사하셨다는 말입니다. 이 말은 신학적으로 유카리스티(ευκαριστι)라고 하는데 이것은 성찬식을 가르칠 때 예수님께서 축사하시는 장면을 볼 수 있습니다. 유카리스티라는 말은 굉장히 신학적으로 의미있는 말입니다. 우리가 성찬에 참여할 때, 거룩한 음식에 참여하게 될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축복하시고 우리는 감사하는 현장이 되어져야 하는 것입니다. 그 빵 한 조각, 벳새다 들판에서 먹는 빵 한 조각이 축복의 현장이었고, 축복의 빵 덩어리였다는 것입니다.



아무도 자기 도시락을 안 내어 놓고 그냥 눈치만 보고 있는 그 자리에서 순진한 어린아이는 어머니가 정성들여 싸준 도시락을 그냥 통째로 내어 놓고 있는 장면을 보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기적을 일으키는 것입니다. 이런 믿음이 없이는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너무 합리적으로 이성적으로 똑똑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능력을 우리의 지혜로 우리 인간적인 지식으로 인간적인 능력으로 너무나 많이 제한하는 일들이 많다는 것을 우리가 알아야 될 줄로 생각합니다.

미국의 석유왕이며 유명한 재벌이었던 록펠러는 어머니로부터 이런 교육을 받았습니다. 너는 교회에 가거든 목사님의 설교 말씀을 목사님의 말씀으로 듣지 말고 하나님의 음성으로 들어라, 주일 반드시 지켜라, 예배 시간에는 제일 앞자리에 앉으라, 반드시 십일조 헌금을 드려라. 이것이 그 어머니의 마지막 유언이었고 한 평생 소원이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 예배시간에 제일 앞자리에 앉으신 분들에게 하나님의 축복이 배나 더하시기를 바랍니다.



록펠러가 자기의 성공비결을 어머니의 가르침 설교말씀을 들을 때 듣는 자세, 주일을 준수하는 자세, 예배시간에 앞자리에 앉는 자세, 하나님 앞에 예물을 드리는 자세, 이것이 자기의 성공의 비결이었다고 합니다. 여러분 우리의 신앙이 내가 주의 일을 하려고 할 때, 하나님께서 나를 사용하시고자 할 때 내가 비록 이름도 없고 힘도 없고 능력도 없는 한 사람에 불과하지만 어쩌면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제공할 만큼 밖에 안되는 능력이지만 하나님께서는 보잘 것 없는 우리를 들어 쓰셔서 축복하시고 많은 사람들에게 유익을 끼치고 많은 문제를 해결해 나가신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축복의 씨앗을 심었기 때문에 기적의 씨앗을 심었기 때문에 그 현장에서 벳새다에서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오늘 성경 본문을 보면 다 배불리 먹고도 열두 광주리가 남았었다. 여러분 너무 계산이 빠른 사람은 그 빠른 계산 때문에 실질적으로 지나친 탐욕 때문에 많은 것을 잃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 어린 아이는 이름도 없지만 그렇게 내 놓았든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가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중요한 사건들 가운데 하나로 중심에 자리 잡고 있을 뿐만 아니라 이 세계 종말이 올 때까지 예수 믿는 모든 사람에게 하나의 헌신의 귀감이 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슈바이처 박사를 위해서 한 병의 아스피린을 제공했던 그 아이의 헌신이 사십만 불 어치의 약품을 모아서 아프리카 의료선교에 헌신되었던 것처럼 오늘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삶의 현장에서 기적은 특별한 사람을 통해서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고 보잘 것 없고 힘없고 능력 없는 우리 자신의 작은 헌신 우리 자신의 작은 순종 우리 자신의 작은 긍정적인 반응이 놀라운 하나님의 기적을 일으킨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고 우리 모두가 우리에게 주어진 삶을 살아가면서 내 삶의 현장에서 항상 하나님께 감사하고 긍정적으로 반응하고 하나님께 순종하고 하나님께 헌신하고 최선을 다하는 믿음의 성도님들이 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