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황된 기적을 바라지 말라

허황된 기적을 바라지 말라/마4:1-11

허황된 기적을 바라지 말라
마4:1-11





우리는 일평생 예수믿고 살 사람들입니다.
우리 신앙은 점점 성장 발전 성숙해야 합니다.
영혼이 잘되어야, 믿음생활이 잘되어야 모든 게 잘 됩니다.
만사가 형통합니다.
신앙생활에 중요한 사항들이 있습니다.

(1)첫째는 신앙의 기초가 튼튼해야 하는 일입니다.
매사가 그러하지만 신앙생활에도 기초가 튼튼해야 합니다.
기초가 되는 중요한 것들이 있습니다.
주일성수, 십일조,목회자순종,협력등입니다.
주일성수는 예배생활입니다. 십일조생활은 헌신의 출발입니다. 목회자협력과 순종으로 교회에 충성하고 상급있는 삶을 살게 됩니다.

기초가 튼튼하지 않고, 제대로 되어 있지 않으면 계속 뻗어갈 수 없습니다. 기초가 부실하면 힘쓰고 노력하지만 매진하는 듯 하다간 좌절하고, 좌절하고 합니다. 크게 자랄 수 없습니다.
신앙이 처음부터 바로 들어가는 것이 좋습니다.
무슨 큰일을 할려고 하지 말고, 선교를 한다, 예배당을 지어 바친다등 큰 일보다는 기본적인 믿음생활을 잘 해야 합니다.

기초란 모르는게 아니라 아는 것이며 숱하게 듣는 사항입니다.
목사가 주일성수나 십일조, 또 주의종에 대하여 언급하면 거부감이 생기지 않아야 하고 마음에 가책이 없어야 합니다.

(2)다음은 시험에 들지 않는 일입니다.
하나님도 시험하시나 하나님의 시험은 학생들이 시험치는 것과 같은 그런 시험입니다. 축복을 위한 테스트입니다.
마귀의 시험이 있습니다. 마귀는 우리를 넘어지게 하고 망하게 하려고 시험합니다. 유혹하는 것이며 미혹하는 것입니다.

마귀가 그 졸병인 귀신들을 통해 하는 역사가 있습니다. 사람의 정신과 육체를 혼랍스럽게 하고 아프게 하는 귀신의 역사가 있습니다. 그러나 큰 문제는 아닙니다. 쫓아내면 됩니다. 우릴 망하게 하지 못합니다. 잠시 잠간 괴롭힐 뿐입니다.

마귀의 내적이고 영적이고 유혹적인 시험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시험에 들지 말게 해 달라, 악에 빠지지 않게 해달라 기도하라고 가르쳐 주셨습니다. 정말 중요한 일입니다. 이 시험에 빠져 악에 빠지지 않아야 합니다.

귀신을 쫓아내는 게 능력이긴 하지만 그게 그리 큰 게 되지 못합니다. 너무 큰 비중을 두면 안됩니다. 귀신을 쫓아냈다고 무슨 큰 능력자인양 자처하면 잘못 안 것입니다. 귀신은 어린 아이 기도에도 물러갑니다.
귀신은 바울을 보고 알았고 예수님앞에 벌벌 떨었지만 마귀는 예수님에게 찾아왔습니다. 떨지 않았습니다.
마귀는 정신적으로 시험하고 내적으로 유혹합니다.
아나니아와 삽비라가 귀신들리어 망한 게 아니라 마귀의 유혹에 넘어가 죄를 짓고 망했습니다. 가룟유다도 마찬가지입니다. 귀신들린게 아닙니다. 그 배후에 마귀의 역사가 있었고 유다는 넘어갔습니다. 망했습니다.

오늘 본문에도 마귀는 예수님을 찾아 왔습니다.
마귀의 첫 번째 시험은 하나님의 아들이라면 돌로 떡을 만들어 먹으라는 것이었습니다. 마귀는 우리의 먹고 사는 문제로 시험합니다. 우리는 먹기 위해서 삽니다. 살기 위해서는 먹어야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육신의 일입니다. 인간은 육체만이 아닙니다. 육신은 떡을 먹어야 살지만 우리의 영혼은 하나님으로 인하여 삽니다. 이것을 잊으면 안됩니다. 우리는 살려고 먹지만 먹어서 사는 것이 아닙니다. 결국은 다 죽습니다. 그러니까 결국 먹어서 죽는 것입니다.

에서를 보면 압니다. 에서는 먹고 사는 문제로 귀한 것을 놓친 사람입니다. 먹고 사는 문제가 항상 신앙보다 앞서는 사람들이 숱하게 많으니 다 시험에 넘어질 위태로운 자 들입니다.

오늘 읽은 본문의 두 번째 마귀의 시험은 성전꼭대기에서 뛰어내리는 기적을 행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수많은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아들되는 능력을 나타낼 수 있을 것입니다.
시장할 때 찾아온 시험과 달리 이 두 번째 시험은 높은 곳, 수많은 사람들이 보는 곳에서 찾아온 시험입니다. 이때는 자신을 드러내고 과시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때이며 헛된 영광을 사랑하는 자들은 쉽게 이 시험에 들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라면 뛰어내려라. 그러면 결코 죽지 않을 것이며 이미 성경에 있는 말씀과 같이 천사들이 와서 받들어 조용히 내려 주게 될 것이다..
기적에 대한 문제입니다.
신앙에는 기적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도우심이 나타날 때 이것이 우리에게 기적입니다.

이때 주님은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치 말라고 하심으로 마귀를 물리쳤습니다. 승리하셨습니다.

하나님을 시험치 말라!
이 말씀은 너희가 맛사에서 시험한 것 같이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를 시험치 말고(신6:16)의 말씀에서 따온 인용의 말씀입니다.
배경은 이것입니다.
이스라엘이애곱에서 나왔을 때 마실 물이 없어서 모세(하나님)를 원망하고 불평했습니다. “백성이 모세와 다투어 가로되 우리에게 물을 주어 마시게 하라 모세가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어찌하여 나와 다투느냐 너희가 어찌하여 여호와를 시험하느냐”(출 17:2) 고 했습니다.

그들은 여호와께서 우리 중에 계시나 안계시나 하면서 한번 물을 주어 먹게 해보라고 했는데 그게 하나님을 시험한 것입니다.
우리는 믿어야 합니다. 의심하지 말아야 합니다. 이스라엘은 더 이상의 기적이 필요하지 않았습니다. 충분히 보았고, 기적속에서 나왔고 홍해를 건넜고 구름기둥, 불기둥이 있는데 더 이상 무슨 기적이 필요하단 말입니까?

믿어야 하는데 믿지 않고, 자기의 필요에 따라 도와주시나 안 주시나 보자 이런 식의 자세는 하나님을 시험하는 것이 됩니다.
시78:18-19에도 이에 대하여 \'탐욕대로 구하면서 하나님이 광야에서 능히 식탁을 준비하시랴\' 했다는 것입니다. 이게 하나님을 믿지 않고 시험한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사랑하심을 더 이상 의심하지 말고 믿어야 합니다. 자기의 탐욕으로 구하여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아야 합니다.

주님은 무엇이든 하실 수 있지만 뛰어내리지 않으셨고 기적을 보고자 하는 자들에게는 기적을 보여주지 않았습니다.

허황된 기적, 필요없는 기적을 바라지 말아야 합니다.
성전꼭대기에서 뛰어내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럴 필요는 없습니다..
올라갈 필요도 없고 뛰어내릴 필요도 없으니 자살할 사람외에는 높은 곳에서 뛰어내리지 않을 것이며 내려오는 일이야 올라간 그 길로, 계단으로 내려오면 될 일입니다.

예수님이 뛰어내리시고, 참으로 천사들이 와서 받들었다면 가능한 일긴 하나 그건 예수님이 가셔야 할 십자가의 길은 아닙니다.

기적은 항상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하나님의 은총을 자신의 탐욕을 위하여 이용하려 해서는 안될 일입니다.
주님이 바다위를 걸으시긴 하셨으나 단 한번 있었던 일입니다. 평상시에도 주님께서 제자들을 데리시고 바다위를 걸어다니 신 것은 아닙니다. 갈릴리에 배를 타고 다닌 것이지요.
주님은 오병이어로 남자만 오천명을 먹이셨습니다. 그러나 항상 기적으로 떡을 만드셔서 제자들과 함께 먹은 것은 아닙니다. 사마리아 우물가에서는 제자들보고 빵을 사러 보냈지 않습니까? 평소에는 사서 먹으시고 대접을 받으시고 그렇게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광야에선 반석에서 물을 주시고 하늘에서 만나를 주시고 하셨지만 가나안에 들어간 이후에는 그 모든 기적을 거두셨습니다. 이제는 농사를 지어서 먹어야 되었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길은 십자가의 길입니다.
예수님을 잡으려고 군인들이 오고 그리고 베드로가 칼을 빼서 한 사람의 귀를 베는등 난리를 칠 때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내가 내 아버지께 청하기만 하면 당장에 열두 군단도 더 넘는 천사들을 보내어 우리를 지켜 주실 수 있다는 것을 모르느냐?”(마 26:53)

예수님이 힘이 없어 잡히어 죽으신 것이 아닙니다. 얼마든지 그 지경을 피하실 수도, 물리칠 수 있으시지만 죽으심의 길을 가신 것은 그 길이 저와 여러분의 구원을 위한 길이기 때문입니다.

허버트 선교사님이 계십니다. 6·25동란 때 북한 인민군에게 끌려가서 감옥에 갇혔습니다. 그때 하루는 그를 괴롭히는 인민군 간수가 한 손에는 성경을 들고 한 손에는 권총을 들고 감방으로 뛰어 들어와서 \"뒤로 돌아\" 하고 외치고는 돌아 선 선교사에게 \"네가 예수를 믿는다면, 네가 정말 예수를 믿는다면 내 말에 대답하라, 내가 지금 손에 권총과 성경을 들었는데 어떤 손에 성경을 들었는지 기도해서 맞추어 봐! 그러면 네가 진실로 하나님의 사람인 것을 내가 믿어주마\" 고 했습니다. 그때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하나님께 두 가지를 기도했소. 첫째로 내 마음이 분노로 흔들리지 않게 해 주소서. 둘째는 당당히 죽을 수 있는 힘을 주소서. 이렇게 기도했소.\"
그럴 때에 그 간수는 허버트 선교사를 발로 차고는 물러 나갔다고 합니다.

죽을 줄도 알아야 합니다.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는 그렇게 말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얼마든지이 풀무불에서 우리를 건져 내실 것이지만 그렇지 않다 하더라도 우리는 우상을 섬기지 않을 것이다.\'
그들은 사는 기적을 바란 것이 아니라 죽는 길을 택했습니다.


허황된 기적을 바라는 자는 일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눈물을 흘리며 씨뿌리고 거두어야 합니다.

아들이 은혜를 받고 교회 활동을 많이 했습니다. 그땐 난 걱정이 좀 되었습니다. 고3이니까요, 그때 아들은 말하기를 \"내가 주님의 일을 하는 것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공부에 조금 등한하다 할지라도 결코 성적이 떨어지지 않을 것이다. 하나님이 그렇게 해 주실 것이다, 나는 그렇게 믿는다\"라고 했습니다. 그때 나는 \"그렇지 않다. 아들아! 그건 잘못된 신앙이다. 그럴 때도 있다. 기적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신앙이란 선택이다. 내가 주의 일, 교회일 때문에 공부를 못하면 성적은 떨어진다. 그러나 그렇지만 기쁨으로 내가 그 길을 선택하는 것이 믿음이다. 그것이 아름다운 희생이며 기적적 축복은 훗날에 있을 것이며 그것은 하나님의 몫이다.\" 라고 했습니다.

기적은 일상의 일이 아닙니다. 결코 우리 믿음이 허황된 기적속에 뿌리를 두는 잘못된 신앙이 되지 않아야 합니다.
말씀을 시험하고 하나님을 시험하는 일이 없어야 합니다.

허황된 생각을 버려야 합니다.
알뜰하게 살아야 합니다.
엿새동안에 힘써 일해야 합니다.
학생이 공부를 잘 할려면 열심해 해야 합니다.
열심히 사업해야 합니다.
우리는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눈물을 흘리고 씨를 뿌리는 건전한 신앙을 가져야 합니다.
씨를 뿌리지 않는 자는 거둘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거둘 뿐 아니라 그때 하나님의 기적이 있을 것이니 남들이 30배를 거둘 때 우린 60배, 100배를 거둡니다. 이것이 삶속에 나타나는 기적입니다.

최선을 다하는 것이 좋은 믿음입니다.
눈물로 씨를 뿌려 하나님의 기적적 축복을 받았을 그때 넘치는 감격과 뜨거운 감사의 눈물이 있게 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