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하사 거룩하고 사랑 받는자

본문 내용
5. 그러므로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 곧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이니 탐심은 우상 숭배니라
6. 이것들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진노가 임하느니라
7. 너희도 전에 그 가운데 살 때에는 그 가운데서 행하였으나
8. 이제는 너희가 이 모든 것을 벗어 버리라 곧 분함과 노여움과 악의와 비방과 너희 입의 부끄러운 말이라
9. 너희가 서로 거짓말을 하지 말라 옛 사람과 그 행위를 벗어 버리고
10. 새 사람을 입었으니 이는 자기를 창조하신 이의 형상을 따라 지식에까지 새롭게 하심을 입은 자니라
11. 거기에는 헬라인이나 유대인이나 할례파나 무할례파나 야만인이나 스구디아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 차별이 있을 수 없나니 오직 그리스도는 만유시요 만유 안에 계시니라
12. 그러므로 너희는 하나님이 택하사 거룩하고 사랑 받는 자처럼 긍휼과 자비와 겸손과 온유와 오래 참음을 옷 입고
13. 누가 누구에게 불만이 있거든 서로 용납하여 피차 용서하되 주께서 너희를 용서하신 것 같이 너희도 그리하고
14. 이 모든 것 위에 사랑을 더하라 이는 온전하게 매는 띠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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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하사 거룩하고 사랑 받는 자” (골 3:5-15)


   우리가 살아가는데 있어서 ‘알고 행하는 것’과 ‘모르고 행하는 것’ 사이엔 엄청난 차이가 있습니다.  가령 우리가 길을 가는데 있어서도, 아는 길을 가는 것과 모르는 길을 가는 것은 분명히 다르지 않습니까?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는데 있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믿음이 무엇인지, 구원이 무엇인지, 크리스찬이란 누구인지’――이것을 확실히 알고 신앙생활을 하는 것과 그렇지 못한 것 사이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는 것입니다.

   “내가 누구냐?” 하는 것을 안다는 것은 우리 인생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 나는 무엇이냐?  도대체 나라고 하는 이 존재는 어떤 존재이냐?
   어떤 분은 나이 6-70이 다 되어서야 나의 나됨을 깨닫고는, 좀 더 일찍 알았더라면 좋았을 것을 하고 후회하는 분들도 많이 보게 됩니다.  진작 알았더라면 그의 삶이 지금과는 엄청나게 달랐을 것이란 것이지요.
   마찬가지로, 우리는 모두가 크리스찬이라고 불리는 사람들입니다.  크리스찬이란 누구입니까?  그 본질을 바로 깨닫는 것은 우리의 신앙생활에 있어서 엄청난 영향을 끼치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같이 읽으신 본문말씀에 보면, 사도 바울은 ‘우리 크리스찬이란 누구인가?’ 하는 것에 대하여 세 가지 호칭으로 부르고 있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12절에 보면 ‘선택된 자’,  ‘거룩한 자’,  그리고 ‘사랑 받는 자’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세 가지 ― 선택된 자, 거룩한 자, 사랑 받는 자 ― 이것이 우리 크리스찬의 삶의 뿌리요 존재의 근본이며, 우리의 신분증입니다.  우리는 이대로 알고 이대로 믿으며, 이대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것을 분명히 알고 믿을 때 우리의 믿음은 분명한 것이 되며, 세월의 흐름에 따라 변하거나 흔들리지 않는  ‘확고한 믿음생활’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먼저, 우리 크리스찬은 ‘선택받은 자’라는 것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오늘 본문말씀대로 하면 ‘하나님이 택하신 자’라는 말입니다.
   ‘선택하셨다’는 이 말은 ‘하나님의 주도적인 구원의 역사’를 의미하는 말입니다.  쉽게 말하자면 내가 크리스찬이 되는 것은―또는 내가 구원을 받는 것은,  내가 무슨 자격이 있어서―내가 무슨 잘난 것이 있어서 된 것이 아니고,  또한 내가 임의로 결정하여서 된 것이 아니라고 하는 말입니다.

   여기 ‘선택’이라는 말을 성경원어로 보면 수동형으로 쓰여 있습니다.  내가 선택한 것이 아니라  ‘선택 되어진, 선택을 받은 자’라는 말입니다.
   내가 믿고 내가 교회에 나오기에 내가 선택한 것 같지만, 그러나 내가 하나님을 선택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선택하여 주셨습니다.  내가 하나님을 먼저 사랑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나를 먼저 사랑한 것이라는 말입니다.

   여러분, 우리의 지난날의 모습을 생각해 보세요.  나는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지도 못했고, 또 배반하며 살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나를 끈질기게 붙드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주도적으로, 강권적으로 인도하셔서 오늘의 내가 있게 했다는 이 사실이  바로 “하나님의 선택받은 자”라는 말의 의미인 것입니다.  추호도 내가 주도한 것이 아닙니다.  오직 그가 주도하셨다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나로선 아무 것도 자랑할 것이 없는 것이지요.

   우리가 구원 받은 것이 그렇습니다.  우리 가운데 아무도 스스로 노력하여서 구원을 이룩한 사람이 없지 않습니까?
   우리가 잘 아는 대로 ‘불교’라고 하는 종교는 ‘해탈하여서 부처가 되는 것’을 궁극적인 목적으로 하는 종교입니다.  그런데 스님들 가운데서 그가 아무리 오랫동안 고행해온 분이라고 할지라도, 아니 오랫동안 고행한 고승일수록, 스스로 해탈했다고 자신하는 분을 찾아볼 수가 없습니다.
   아마도 여러분이 잘 아시리라고 생각합니다만, 우리나라에 ‘성철’이라고 하는 고승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가 죽으면서 마지막으로 남긴 말이 ‘자신이 지옥에, 그것도 제일 뜨겁게 불타는 그곳에 빠지게 된다’고 한탄하는 말이었다고 합니다.
   생각해 보세요.  성철과 같이 그렇게도 열심히 고행한 사람도 그러하였는데,  만약 우리의 구원이 내가 노력하여서 얻게 되는 그런 것이라고 한다면, 사실 구원받는다는 이 일에 우리는 얼마나 불안하겠습니까?
   그래서 에베소서 2장 8절에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하십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노력하여서 구원을 이룩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해 주셔서 우리가 구원을 받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구원받는 이 일로 인하여서는 자랑치 못한다고 말씀하십니다!!

   또한 나의 나됨의 자격도 그렇습니다.  이 모두는 그로부터 주어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랑하시기에 사랑받는 자가 된 것이지, 내가 무슨 사랑받을만한 자격이 있어서 사랑을 받는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이 사실에 대해서 요한일서 4장 10절과 11절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우리 다 같이 이 말씀을 찾아보도록 하겠습니다. (p.392)  먼저 10절을 보십시다.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속하기 위하여 화목제물로 그 아들은 보내셨음이라.”
   나는 참으로 무자격합니다.  그러나 ‘불가항력적인 절대적 은혜가 작용해서 오늘의 내가 있다!’ 라고 믿는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계속해서 요한일서 4장 11절을 읽겠습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하나님이 이같이 우리를 사랑하셨은즉,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도다.”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다!’ ― 이렇게 ‘마땅하다’는 것이 바로 ‘선택되었다’는 말이 우리에게 주는 뜻입니다.  내가 선택한 것이 아니라 선택받은 것이라는 이 ‘선택되었다’는 바로 이 사실을 깨달을 때, 우리의 믿음생활은 분명히 달라지게 되는 것입니다.

   어느 장로님이 이런 간증을 하시는 것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이 분은 의사로서, 좋은 집안에, 좋은 인물에, 일류학교만을 거쳐서 나온, 어려서부터 신앙생활을 해 오신 그런 분이었습니다.  평생을 거짓말이라고는 해보지를 않았고 곧고 바르게만 살아오셨기 때문에, 가끔 교회에 나오는 어떤 사람들이 도무지 마음에 들지 않을 때가 많았습니다.
   “뭐, 저런 사람도 예수 믿는다고 그러나!  좀 쓸 만한 사람들이나 교회에 나오지 이런 너절한 사람들이 나오나.  쯧쯧, 성경도 잘 모르고 저렇게 무식해서야 원!”
   그러든 어느 날 산상수련회 때,  남들과 어울려 기도하는 게 싫어서 혼자서 기도하겠다고 따로 산에 올라가 바위위에 앉아서 기도하고 있었는데,  처음엔 장로 체면상 하루만 올라왔다가 내려가려고 했던 것이, 기도하는 가운데 기도의 경지가 깊어지게 되어 끝날 까지 사흘 동안이나 기도하게 되었답니다.
   그러든 마지막에, 이제 하나님께서 그에게 무엇인가 보여주셨는데,  기도하는 중에 눈앞에 환한 빛이 보이면서 저 멀리서 무언가가 움직이는 것이 있더랍니다.  자세히 보니 한 사람이 점점 가까이 오고 있는데,  보니까 세상에!  어디서도 볼 수 없는 남루한 옷을 입은 거지더랍니다.  그것도 머리에서부터 발끝까지 상처가 나서 진물이 흐르고 피가 줄줄 흐르고 있는 병신 불구자입니다!  그래서 ‘세상에 불쌍하기도 이렇게 비참한 거지가 어디 있겠는가!’ 생각하고 있었는데, 이때 한 음성이 들려오기를 “저것이 바로 너다!” 그러더랍니다.  깜짝 놀라서 자세히 보니, 정말 자기의 얼굴이더랍니다.
   “아하, 나는 잘난 줄 알았는데……  아하, 나는 내가 잘나서 크리스찬이 된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구나!!”
   그 순간부터 참회의 기도를 드립니다.  그 순간부터 흐르는 눈물이――잠을 자도, 잠을 깨어도;  먹어도, 쉬어도, 길을 가도 계속 흐르는데――한 달 동안을 울었다는 것입니다.  “나는 내가 잘 난줄 알았는데 그건 내 착각이었을 뿐, 알고 보니 나라고 하는 것이 어쩌면 이렇게도 비참하고 불쌍한 존재이냐?!!”
   나 같은 죄인을 먼저 사랑해 주시고 구원해 주신 하나님!! ― 참으로 너무나도 황송하고, 너무나도 감사했습니다.  그래서 한 달을 울고, 아무것도 아닌 자기 자신이 선택되어진 것을 깨닫고 보니, 이제는 누구를 보아도 다 존경스럽더랍니다.  모두가 다 나보다도 훌륭한 분들이고, 다 귀한 분들이며 다 거룩한 분들입니다.  다 사랑하고픈 그런 분들이더라고 간증하였습니다.

   여러분, 이것이 바로 ‘내가 하나님으로부터 선택받았다’고 하는 의미입니다.
   무자격한 나입니다.  그런데도 하나님께서 나를 택하여 주셨습니다.  그런고로 이제는 나의 필요 ― ‘내가 필요하냐. 안하냐?’를 물을 필요가 없습니다.  그가 필요하다면 필요한 것입니다!!
   나의 삶의 목적도,  나의 쓰임도,  그에게 있는 것입니다.  그가 알아서 하실 것입니다!!
   그가 나를 선택하셨습니다.  이 선택받았음을 깨닫고, 그에게 감사를 드리며, 그에게 감격합니다!! ――  여러분, 이것이 바로 우리들, 그리스도의 사람인 것입니다!!


   다음 두 번째로, 우리 크리스찬은 “거룩한 자”라고 본문은 말해주고 있습니다.
   ‘거룩한 자’ 곧 ‘성도(聖徒)’라고 우리 크리스찬을 부르고 있는데, 이 성도라는 말은 ‘거룩히 구별된 사람들’이라는 뜻입니다.

   좀 죄송한 말씀입니다만, 요즈음에 와서 우리 크리스찬들 중에 어떤 분들은 ‘성도’라고 불리는 것을 꺼려하고, 오히려 불편해 하는 분들이 간혹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왜냐하면, 믿는다고는 하지만 그가 매일같이 하고 있는 생활이란 게 믿지 아니하는 사람이나 피장파장이니까 말이지요.  먹는 것, 마시는 것에서부터 욕심 부리는 것, 마음 씀씀이 하나하나에 이르기까지 다른 사람들과 구별될 게 하나도 없고 보니,  ‘성도’라고 부르기도 어색하고 불림을 받기도 거북합니다.  스스로 생각해 보아도 구별될게 없어 어색하기 때문인 것이겠지요.

   여러 해 전입니다만, 연세대학교 철학과의 명예교수이신 김 모 교수님께서, 이분은 사회에서 꽤 알려져 있는 분이십니다.  이 분이 우리 목회자들이 모인 어떤 모임에서 강연을 하시는 가운데 이런 뼈아픈 말씀을 하셨습니다.  옛날에는 ‘예수 믿는 사람!’하면 ‘거짓말 하지 않고, 나쁜 짓 하지 않는 사람!’하고 통했는데, 요즈음은 한국사람 네 명이 모이면 그 중에 한 사람은 예수 믿는 사람이라고 하지만, 그게 통 자랑스럽지가 않다는 것입니다.
   그 이유를 말씀하시는데, 친구인 상경대학의 한 교수가 자기 제자 한 사람을 취직시켜주기 위해서 친분이 있는 어떤 회사의 중역에게 소개하면서 하는 말을 옆에서 듣게 되었는데, 그런데 그 친구가 되는 교수란 분이 소개를 한다고 하면서 하는 말이 “이 사람은 예수를 믿기는 하지만 그래도 사람이 말수도 적고, 성실하고 괜찮다”고 하더랍니다.
   예수를 믿기 때문에 성실하다가 아니에요.  예수를 믿지만, 그래도 말수도 적고 사람은 괜찮다! ― 이 말이 무슨 뜻입니까?

   제가 어렸을 때 제 동무들은 저를 ‘예수쟁이’라고 놀렸습니다.  그러나 당시에 ‘예수쟁이는 거짓말 하지 않는다’하는 사실이 사회에서 통했습니다.
   요즈음은 어떻습니까?  아무도 예수쟁이라고 놀리지는 않습니다.  그런데 반면에 ‘예수 믿는 사람이 어째 저러냐?  예수 믿는다는 사람이 더한다.  예수 믿는다는 사람이 그럴 수가 있느냐?’ 하는 말을 듣고 있지는 않습니까?

   또 예수 믿는 사람들끼리 교회 안에서 이런 일들도 있지는 않습니까?  쑥덕거리는 것 말입니다.  어떤 분이 다른 분의 귀에다 입을 대고서는 “저, 말을 옮기는 것은 아닙니다만, 당신한테만 믿고 하는 말인데…”하면서 말이지요.

   우리 크리스찬은 ‘성도’라는 것 ― 거룩한 자, 구별된 사람이란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죄와 세상, 세속적인 가치로부터 구별된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진정 예수를 똑바로 믿었다면, 성경말씀 그대로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도 아니할 것입니다.  권모술수와 더러운 말들이 오가는 그런 자리에 앉지 아니할 뿐만 아니라, 앉아 있을 수가 없어요!  너무도 숨이 막혀서! ― 적어도 이 정도가 되어야 크리스찬이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같이 협잡하고, 같이 권모하고 같이 술수를 쓰고 같이 쑥덕거리고 돌아간다면 ― 무슨 성도라고, 무슨 교인이라고 하겠습니까?

   오늘 본문 7절 말씀을 보세요.  “너희도 전에 그 가운데 살 때에는 그 가운데서 행하였으나, 이제는 너희가 이 모든 것을 벗어버리라.” 하십니다. ― 옛날에는 그랬을는지 모르나, 지금은 달라져야 합니다!!
   5절부터의 오늘 본문말씀을 다시 읽어 드립니다.  표준 새 번역의 말씀으로 읽어드립니다.  우리의 마음속에 깊이 새길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러므로 땅에 속한 지체의 일들, 곧 음행과 더러움과 정욕과 악한 욕망과 탐욕을 죽이십시오.  탐욕은 우상숭배입니다.  이런 것들 때문에 하나님의 진노가 내리게 됩니다.  여러분도 전에 그런 것에 빠져서 살 때는 그렇게 행동하였습니다.  그러나 이제 여러분은 그 모든 것, 곧 분노와 격분과 악의와 훼방과 여러분의 입에서 나오는 부끄러운 말을 버리십시오.  서로 거짓말을 하지 마십시오.  여러분은 옛 사람을 그 행실과 함께 벗어버리고, 새 사람을 입으십시오.  이 새 사람은 자기를 창조하신 분의 형상을 따라 끊임없이 새로워져서 참 지식에 이르게 됩니다.”

   성도란 깨끗하게, 하나님 편으로 구별된 사람입니다.  크리스찬이기에 세상 사람들과는 구별되게 성실하고, 크리스찬이기에 정직하고, 크리스찬이기에 겸손하고, 크리스찬이기에 절제를 하는 이러한 삶!――이것이 거룩한 자, 곧 크리스찬임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바로 우리가, 바로 여러분이, 이러한 사람입니다!!


   그리고 세 번째로, 우리 크리스찬은 “사랑 받는 자”라고 말해주고 있습니다.   ‘사랑 받는 자’ ― 이 말은 수동태로 쓰여 있습니다.  내가 사랑을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사랑을 받는 자라는 말입니다.

   그런데, ‘사랑을 받는’이란 이 수동태는 또한 그 어법상 과거형이 아니라 ‘현재 계속되는 사실’을 나타내주고 있는 말입니다.  과거의 이야기가 아니라는 말입니다.
   ‘과거에 사랑을 받았다’하는 문제라면 이는 지식이요 기억이며, 하나의 추억이요 이야기에 불과할 것입니다.  본문의 뜻은 그런 옛날의 이야기로서 사랑을 말하자는 것이 아닙니다. 2천 년 전에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다고 하는 그때의 이야기만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십자가라고 하는 것은 ‘그때’가 아니라 ‘지금’ 나를 위해 이루어지고 있는 사건임을, 하나님은 ‘지금’ 나를 사랑하고 계신다는 것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사랑이란 언제나 ‘현재 진행적인 것’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가령 부부간에 사랑을 서로 고백한다고 생각해 보세요.  이때 만약 서로의 사랑을 얘기할 때마다 “우리 옛날에 신혼여행을 갔을 때, 그때가 참 좋았지”하고 그 옛날 얘기만을 자꾸만 한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때는 그때고, ‘지금’ 내가 어떠하냐? ― 이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겠습니까?

   사랑은 현재적으로 고백되어야 합니다.  이제는 늙어 쭈글쭈글하게 되었어도 그래도 당신이 좋다 하는 그것이 사랑입니다.  돈 한 푼 못 벌고 병들었어도, “오늘 이대로 나는 당신을 사랑합니다!”하는 이것을 가리켜서 사랑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우리는 현재 내가 받고 있는데서 깨닫고, 감사하며, 현재의 내 형편에서 내가 또한 사랑을 고백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이 사랑을 우리가 받아들이며 이해하는데 있어서,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내 뒤를 따르시며, ‘내 뜻대로, 내가 원하는 대로’가 아니라 ‘하나님의 선하신 뜻대로’ 사랑을 베푸신다는 것을 우리는 또한 깨달아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너무나도 ‘내 뜻대로 이해하고 바라는 잘못’을 범할 때가 많이 있는 것입니다.

   미국의 어느 일간지에 다음과 같은 기사가 실렸습니다.
   한 여인이 어느 날 밤 늦게 야근을 끝내고는 집으로 차를 몰고 오는데, 큰 트럭이 바짝 뒤를 따라오고 있습니다.  너무 가까이 따라옴으로 속력을 더 내었더니, 트럭도 속력을 더 내면서 따라옵니다.  이 여인은 무서워서 달리던 고속도로―Free Way에서 내려서 일반 길로 내려왔는데, 트럭도 여전히 뒤를 따라 계속 옵니다.
   이 여인은 너무나도 무섭고 당황하여 한 주유소로 차를 몰고 들어갑니다.  그리고는 비명을 지르며 뛰쳐나갔는데, 트럭 운전수도 같이 차를 멈추고는 뛰어나와 여인의 차로 달려가서 뒷문을 열었습니다.  그랬더니 놀랍게도, 바로 거기에는 그 여인을 헤치려던 강도가 몸을 움츠리고는 숨어 있었습니다!
   뒤에 따르던 트럭 운전수는 높이서 내려다보았기에 여인의 차 뒷좌석에 웅크리고 숨어있는 괴한을 보았고, 그래서 계속 뒤따라 온 것입니다.  여인은 자기를 괴롭히고 헤치려는 것인 줄 알았지만, 사실은 그 여인을 구출하려고 했기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우리에 대한 사랑도 이와 같습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지금 이 순간도 우리를 지키시고, 우리가 위험에 직면하는 것을 보고 계시며, 그래서 사랑하시기에 우리의 뒤를 쫓습니다.  때로는 때리시며 내 길을 막기도 하십니다!
   이것을 바로 깨달았다면,  달아나지 말고 선 다음에,  그에게로 가야하지 않겠습니까?!!


   오늘 본문말씀은 우리 크리스찬의 본질을 이렇게 세 가지로 가르쳐 주신 다음, 이에 따른 크리스찬으로서의 행동강령을 계속 말씀하십니다.  ‘긍휼과 자비와 겸손과 온유와 오래 참음,  그리고 용서와 사랑과 감사할 것’을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크리스찬 됨의 뜻’을 바로 깨닫는다면, 이와 같은 것은 자연히, 또한 마땅히, 우리에게서 나타나게 되는 바로 그러한 모습들인 것입니다.

   여러분, 생각해 보세요.  선택 받은 자가 무슨 할 말이 있겠습니까?  참으로 겸손하고 온유할 수밖에 없습니다!
   사랑 받는 자이기에 낮아지고, 또한 온유하며 굽힙니다.  그저 감사하니까 온유합니다!
   오늘 분문말씀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선택 받았으니 겸손하고 온유하라!  사랑 받고 있으니 사랑하라! ― 당연하지 않습니까?
   거룩한 백성이니 인내하라!―하나님 편에서 인내하고;  용서받았으니 용서하라!―용서하되 그 위에 사랑을 더하라! ―― 참으로 귀한 말씀이 아닙니까?

   우리가 즐겨 부르는 찬송 305장이 바로 이 뜻을 잘 나타내주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 찬송은 죤 뉴턴이라고 하는 목사님이 작사하신 것인데, 이 분은 1725년에 태어나 82세로 세상을 떠나신 분입니다.  이 분은 원래 크리스찬이 아니었고, 극악한 노예사냥꾼으로 지냈던 대표적인 악한이었다고 합니다.
   그러던 그가 예수 그리스도의 크신 은혜로 구원을 받고는, “예수님께서 나 같은 죄인을 위하여 십자가에서 돌아가셨다”고 하는 이 감격 속에서  나머지 생을 살았다고 합니다.
   그의 전기에 보면 이 목사님은 마지막에 이런 말을 남기셨다고 합니다.  “이제 내가 하늘나라에 가게 되겠는데, 거기에 가면 세 가지 사실로 놀라게 될 것이다.
   첫째는, 전혀 하늘나라에 올 수 없다고 생각했던 사람들이 그곳에 와 있는 것을 보고는 깜짝 놀랄 것이고,
   둘째는, 꼭 와야 될 것 같은 사람이었는데, 거기서 못 만나게 되어서 놀랄 것이고,
   셋째는, 무엇보다도 나 같은 죄인이 여기에 와 있는 것을 보고는 감격하며 놀라게 될 것이다.”

   그래서 그는 그 은혜를 감사하고 감격하면서 이렇게 찬송을 부릅니다.

   나 같은 죄인 살리신 주 은혜 놀라워
   잃었던 생명 찾았고 광명을 얻었네

   큰 죄악에서 건지신 주 은혜 고마워
   나 처음 믿은 그 시간 귀하고 귀하다

   이제껏 내가 산 것도 주님의 은혜라
   또 나를 장차 본향에 인도해 주시리

   거기서 우리 영원히 주님의 은혜로
   해처럼 밝게 살면서 주 찬양하리라!


여러분!
선택받은 자,  거룩히 구별 받은 자, 사랑을 받고 있는 자!
그에게는 감사와 찬송이 있을 뿐입니다.
원망도  미움도  원수도 없습니다.  그리고 절망도 없습니다!
이제는 오직 그 감사와 그 찬양으로 모든 시험과 죄악을 이기며,
날마다 승리의 길을 가는 것입니다!!

   이 은총,  이 기쁨,  이 감격이 여러분에게 항상 함께 하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