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난의 신비 출1:15-22 엊그제는 3.1운동이 일어난 지 83주년이 되는 날이었다. 종로를 비롯해서 전국 각 지에서 그 날의 숭고한 뜻을 기리는 기념행사가 있었다. 1910년 8월 22일 일본은 \"병합\" 조약을 강요하여 우리나라를 식민지로 만들었고, 그들은 최고통치기구인 조선총독부를 설치하여 폭압적인 무단통치를 실시했다. 언론, 출판, 집회, 결사의 자유 등 근대적인 기본권은 모조리 박탈당하였고, 민족교육은 물론, 종교의 자유도 탄압을 당하였다. 극소수의 친일파. 친일지주, 예속자본가를 제외하고는 지극히 비인간적 대우와 민족차별을 받는 중에, 일본제국주의에 대한 전민족적인 분노와 저항이 고조되고 있었다. 이 때 마침 1918년 1월 미국의 윌슨 대통령이 제1차 세계대전 패전국가의 식민지 처리에 민족자결주의를 적용하자고 주장했다. 이것은 식민지 약소민족을 크게 고무하였고, 민족해방운동을 고양시켰다. 1918년 11월 여운형, 김규식, 장덕수 등이 신한청년당을 결성하고 독립청원서를 작성하고 중국에 온 미국특사에게 전달하였고, 일본에서는 1919년 2월 조선유학생학우회가 중심이 되어 조선독립청원단을 결성하고, 민족대회소집청원서와 독립선언서를 발표했다. 이러한 움직임을 알게되자 국내에서 33인이 중심이 되어 독립선언서가 작성되고, 3월 1일 태화관에서 낭독하고, 학생들이 탑골공원에서 만세시위 운동을 전개함으로 3.1운동은 전국적으로 확산되어 갔다. 3월 1일에 시작하여 4월 30일까지 두 달 동안 집중적으로 일어난 이 운동은 1,542회의 시위 집회에 202만명이 참가하였으며, 7,509명이 살해당하고, 1만 6천 여명이 부상당하였다. 52,770명이 피검되었고, 교회47개소, 학교 2개소, 민가715채가 불탔다. 이 운동은 극소수의 친일파들을 제외한 전민족적 항일 독립운동, 계몽운동, 의병운동, 민중생존권 투쟁운동으로 역사상 최대규모의 민족운동이었다. 1차 세계대전 이후 전승국 식민지에서는 최초로 일어난 반제국주의 민족운동으로 한민족의 독립의지를 대내외에 널리 알릴 뿐만 아니라, 주변나라들의 해방운동에 영향을 미쳤다. 우리나라는 고난과 가난의 역사라고 말할 정도로 많은 전쟁을 치렀고, 불과 30년 전만 해도 당장 먹을 끼니를 걱정해야만 했었다. 단군기원 4,336년 동안 약 930여 회의 전쟁이 있었으니, 4-5년마다 한번씩 전쟁이 있었고, 15-20 간격으로 크게 외침을 당했다. 고구려 시대의 광개토왕이 만주를 한 번 징벌한 것 외에는 모두 다른 나라들로부터 침략을 당한 것들이다. 평화를 누리고 살아온 세월이 6.25이후의 약 50년간뿐이다. 우리는 사람을 만나면 \"진지 드셨습니까?\" 라고 인사했다. 끼니를 걱정하는 인사였다. \"좋은 아침입니다\" 라는 미국사람들의 인사는 우리들에게는 사치스러운 것이었다. 이런 역사 속에 형성되어져 온 우리민족의 문화를 한의 문화라고 말한다. 이 잔인한 고난과 가난의 역사 속에서도 오늘처럼 살아있는 것은 기적이다. 어떻게 보면 우리민족은 뜨거운 풀무 불 속에서 강하게 연단 된 무쇠 같은 민족이라 할 수 있다. 그래서 우리민족의 특성을 \"은근과 끈기\" 라고 말하기도 한다. 이 정신을 집약해서 온 세계에 밝히 드러낸 것이 바로 3.1운동이다. 고난과 가난을 통과한 민족은 결코 소멸되지 않는다. 오늘의 성경은 이스라엘민족이 애굽에서 종살이하던 시대의 한 실상을 전해주고 있다. 요셉이 애굽의 총리로 재직하던 시대에 애굽으로 이주한 70여명의 이스라엘 백성들이 400여년을 지나는 동안 거대한 민족을 형성했다. 요셉을 알지 못하는 바로 왕이 즉위하자, 이스라엘 자손의 많고 강함을 두려워하여 탄압정책을 실시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은 학대를 받을수록 더욱 번식하고 창성하였다. 애굽사람이 이스라엘 자손으로 인하여 근심하다가, 마침내 인구감소정책을 강제로 실시하기에 이르렀다. 산모가 아들을 나으면 산파들에게 모조리 죽이도록 명령했다. 그러나 히브리 산파들은 위협을 무릅쓰고 히브리인들의 아들을 살려주었다. 하나님께서 그 산파들에게 은혜를 베푸셔서 그들의 집을 왕성케 하셨고, 이스라엘민족은 생육이 번성하여 심히 강대하였다. 이스라엘은 우리 민족 못지 않게 주변국들로부터 수많은 전쟁의 위협과 침략을 받는 속에 살아온 민족이다. 주전 2,350년 경, 샘족의 사람 아브라함을 믿음의 조상으로 하여 시작된 이스라엘은 이삭과 야곱의 대를 이은 요셉의 떼에 애굽으로 이주하여 430년을 종살이하다가, 출애굽하여 광야를 거쳐 가나안에 정착한 후 주전 1,000년경에 국가를 형성하였다. 사울을 첫 왕으로 세운 이후, 다윗과 솔로몬까지 통일 왕국을 이어가다가 주전930년경 남북으로 분열되어, 북 이스라엘은 주전 722년에 앗수르에 의하여 망하고, 남 유다는 주전 586년경 바벨로니아 제국에 의하여 망하였다. 그 이후 주변 강대국들의 각축전 속에 메대와 파사에게 국권이 넘어갔고, 그리고 헬라에게 넘어갔다가, 주후 70년에는 로마에 의하여 완전히 망하고 난 다음 세계 제2차 대전 때에는 독일의 히틀러에 의하여 600만 명이 학살당함으로 민족 생존이 위협을 당하기도 했다. 1948년 전 세계에 흩어져 있던 유대인들이 다시 예루살렘으로 돌아와 독립을 선언했다. 그리고 1967년에는 겨우 300만 명의 인구로 5억의 아랍권과 전쟁을 해서 6일만에 대승리를 거둔 이후, 오늘까지 끊임없이 전쟁을 계속 하고 있는 민족이다. 세계에서 유일한 분단 냉전국가인 우리보다 더 심각한 전운이 감돌고 있어, 세계의 화약고라고 불려지고 있는 나라가 바로 이스라엘이다. 이 나라 역시 고난의 역사를 살아온 민족이다. 이 시간 우리는 이 성경의 말씀을 통하여 고난 속에 있는 하나님의 섭리를 찾아보고자 한다. 어려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큰 은혜가 되기를 바란다. 오늘의 성경이 말하고 있는 한 가지 사실은, 그 극한 고난 가운데서 민족이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의 은혜이다. 자기 백성을 도롭시는 하나님의 돌보심이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강성한 민족을 만드시기 위하여, 요셉의 시대에 애굽으로 이주하게 하셨다. 그 곳에서 400여년을 지나는 동안에 이스라엘은, 70명에 불과했던 한 가족이, 전쟁에 동원될 수 있는 남자만 60만 명에 이를 만큼 큰 민족이 된다. 이것은 그들을 애굽 땅에 정착하도록 하기 위함이 아니라,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으로 인도하여 들이시기 위함이었다. 그러나 애굽 땅에서 거대한 민족으로 일어선 이 민족은 가나안으로 갈 생각은 꿈도 꾸지 아니하고, 그 기름진 고센 땅에 영원히 정착하려 하였다. 이 때 하나님은 그들의 자리를 불편하게 만드시기 시작했다. 그 자리를 떠날 수밖에 없도록 만드셨다는 말이다. 조류의 왕자인 독수리는 그 보금자리를 만들 때에 바닥에 찌르는 가시를 놓은 후 부드러운 깃털로 덮고 그 위에 알을 낳아 새끼를 깐다고 한다. 그리고 새끼들의 날개가 어느 정도 자라서 날 때쯤 되면 큰 날개로 보금자리에 깔았던 깃털을 모두 날려버린다고 한다. 그래서 새끼들이 불편한 그 보금자리에 더 이상 머물 수 없도록 하여, 밖으로 나가서 나는 연습을 시킨다고 한다. 그래서 조류의 왕자가 된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애굽에서 강대한 민족으로 육성된 후, 그곳에 더 이상 머물 수 없도록 하기 위하여 그들에게 고난의 역사를 섭리하셨다. 이방민족과는 다르게 살아야 하는 거룩한 백성이 세상 재미에 깊이 빠져서 세속화되어져 가는 모습을 그대로 방치해 두시는 하나님이 아니시다. 하나님은 바로의 마음을 강팍하게 하시어 이스라엘의 백성들을 괴롭히기 시작했다. \"내가 바로의 마음을 강팍케 하고 나의 표징과 이적을 애굽 땅에 많이 행하리라마는\"(출 7:3, 4:21, 8:18, 9:12...) 성도들은 하나님의 특별한 부르심과 은혜를 입은 사람들이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살아야 할 특별한 사명이 있는 사람들이다. 에베소서1:3-6의 말씀이다. \"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복으로 우리에게 복 주시되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이는 그의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려는 것이라.\" 베드로전서2:9에도 말씀하셨다. \"오직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완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자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그런데, 거룩한 백성이 하나님의 영광을 찬미하지 않는다든지,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지 못한다면, 다시 말하면 소금이 그 맛을 내지 못한다면, 밖에 버려서 사람들에게 밟히게 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다. 마태복음5:13에 하신 주님의 말씀이다.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후에는 아무 쓸데없어 다만 밖에 버리워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 이것이 고난이다. 고난은 공연히 오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사람을 하나님의 사람답게 살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뜻 가운데서 이루어지는 하나님의 훈련과 연단의 기회이다. 이것이 출애굽기 1장에서 주시는 하나님의 교훈이다. 그리고 본문이 게 주는 또 하나의 영적인 교훈은 고난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백성은 결코 망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하나님은 고난 중에서도 돌보시는 손길을 펴고 계시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졸지도 아니하시고 주무시지도 않으시고, 그 백성을 눈동자와 같이 지키신다. 오늘 성경의 본문은, 애굽의 바로 왕이 이스라엘의 번성을 보면서 민족억제 정책으로 히브리 산파들에게 이스라엘의 산모들이 아들을 낳으면 죽이라고 명령했다. 그러나 산파들이 하나님을 경외하였으므로, 하나님을 두려워하여, 이스라엘의 아들들을 죽이지 않았다. 다시 말하면 고난받는 하나님의 백성들을 산파들을 통하여 돌보게 하신 것이다. 비록 그 백성이 하나님의 뜻대로 거룩한 백성으로 살지 못하여, 바로 왕으로부터 고난을 받고 있으나, 그 백성에게 베푸는 산파들의 사랑을 하나님은 귀중하게 보셨다. 그래서 하나님이 그 산파들에게 은혜를 베푸셔서, 산파들의 집은 왕성케 하셨다. 하나님의 백성들을 위하는 일은, 어느 시대나 쉬운 일이 아니다. 힘이 있다고, 돈이 있다고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이것은 사명을 깨닫는 자들이 할 수 있는 일이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으로 할 수 있는 일이다.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들을 위하여 숨은 봉사자들을 예비해 두셨다. 그리고 그 일을 위하여 헌신하는 사람들에게 축복하신다. 히브리파 산파들처럼! 사무엘하 6장을 읽어보면, 오벧에돔이라는 사람을 만날 수 있다. 다윗이 나라를 견고히 하고 삼만의 사람들을 선택하여 바알레유다에 있는 하나님의 궤를 모시고 오도록 명령했다. 웃사와 아효가 중심이 되어 법궤를 새 수레에 싣고 오다가 웃사의 실수로 인하여 하나님이 진노하심으로 그 자리에서 죽고 말았다. 그 때에 다윗이 법궤를 모시기를 두려워하자, 가드 사람 오벧에돔이 자기 집에 모시기로 결심하였다. 사무엘하6:11의 말씀이다. \"여호와의 궤가 가드사람 오벧에돔의 집에 석 달을 있었는데 여호와께서 오벧에돔과 그 온 집에 복을 주시니라\" 웃사의 죽음으로 인하여, 모두가 꺼려하는 법궤모시는 일을 자청한 오벧에돔에게 하나님은 소문날 정도로 큰복을 내려주셨다. 하나님을 향한 우리들의 숨은 봉사까지 하나님은 축복하신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골고다 언덕으로 십자가를 지시고 가실 때, 억지로 십자가를 대신 짊어지고 간 구레네 사람 시몬을 기억할 것이다. 그는 정말 뜻밖에, 아니 억지로 그 주님의 십자가를 지게 되었다. 그러나 주님은 이 사람과 그 가정에 특별한 은혜를 베푸셨다. 그 아들 알렉산더와 루포는 처음 교회에서 귀한 일꾼들이 되었고, 그의 아내를 바울 사도는 내 어머니라고 까지 말하면서 교인들의 돌봄을 당부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막15:21, 롬16:13) 주님은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까지도 결코 잊지 않으신다. 냉수 한 그릇을 대접한 사랑까지도 기억하시는 하나님이시다. 이것이 산파들의 수고에 대한 하나님의 배려였고, 우리들에게 주시는 교훈이다. 오늘 본문의 말씀이 우리들에게 주시고자 하시는 가장 귀중한 교훈은 이것이다. 고난을 통하여 주시는 하나님의 교훈을 잊지 말라는 것이다. 성경은 많은 부분 이스라엘의 고난의 역사를 기록한 책이다. 하나님은 왜 이 고난의 역사를 기록하여 두고 그 백성들로 읽게 하시는 것일까? 1. 죄를 각성하게 하신다. 에스라9:13-14의 말씀이다. \"우리의 행한 행실과 큰 죄로 인하여 이 모든 일을 당하였사오나, 우리 하나님이 우리 죄악보다 형벌이 경하게 하시고 이만큼 백성을 남겨 주셨사오니, 우리가 어찌 다시 주의 계명을 거역하고 이 가증한 일을 행하는 족속들과 연혼 하오리까? 그리하오면 주께서 어찌 진노하사 우리를 멸하시고 남아 피할 자가 없도록 하시지 아니하시리이까?\" 오늘의 고난이 죄의 결과라는 사실을 분명히 깨닫게 하시어, 다시는 죄 가운데 빠지지 않게 하시기 위해서 죄로 말미암은 고난을 기억하게 하시는 것이다. 망각의 존재인 우리들이 과거를 잊기 쉽다. 그러나 하나님의 징계를 결코 잊지 말 것이다. 2.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하게 하신다. 고난의 역경 속에서 구원받은 것은 결코 내 자신의 힘으로 된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하나님의 은혜이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해방되었다\" 라는 수동태를 쓴다. 하나님이 하셨다는 말이다. 신명기 6:12의 말씀이다. \"너는 조심하여 너를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내신 여호와를 잊지 말고...\" 다시 기억하거니와 다윗을 이스라엘의 왕으로 삼으시고, 전쟁에서 승리에 승리를 거듭하게 하신 분은 하나님이시다. 그런데 어느 한 순간 다윗은 그 은혜를 망각했다. 그리고 부하 우리아의 아내를 취하여 범죄하고, 부하를 고의적으로 살해하는 중죄를 지었다. 하나님이 다윗에게 하신 말씀이 무엇인가? 목동이었던 그를 이스라엘의 왕으로 삼으시고 때를 따라 은혜를 베푸시고 부족한 것 없이 주셨는데, 감사를 잃고 죄를 범하다니 하나님은 그 죄를 괘심 하게 여기셔서 책망하셨다. 무엇이 부족했단 말인가? 만일 부족하다 했으면 더 주었을 것인데! 은혜를 망각하는 일은 자신을 죄에 빠지게 하는 시작이다. 하나님은 고난의 때를 기억하게 하신다. 3. 더 큰 재앙을 막게 하신다. 역사는 반복된다는 말이 있다. 그러므로 역사는 우리들에게 소중한 교과서이다. 지난날의 일을 통하여, 오늘의 삶의 지침이 되게 하는 것이다. 우리가 박물관을 세우는 가장 중요한 까닭은 여기에 있다. 옛 일을 기억하고 원수를 갚기 위해서가 아니라, 다시는 똑같은 고난의 역사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이다. 오늘 우리는 북한의 현실을 보며 쇄국 정책이 남긴 결과가 얼마나 무서운 결과를 가지고 오는지를 생각한다. 최근에 세계 종교인의 통계를 낸 것을 보면, 기독교가 33.3%로 약 20억명, 이슬람이 13억 명, 힌두교가 9억명,....그런데 북한은 주체사상종교로 1,900만 명으로 세계10위 종교로 분류한 것을 보았다. 백성들은 굶어 죽이면서까지 전쟁에 광분하여 증오와 미움으로 가득한 폐쇄적인 국가체제는 한 사상을 넘어서 하나의 종교를 를 만든 것이다. 역사적인 교훈을 망각한 처사이다. 역사조차 조작한 민족의 비극이다. 4. 희망을 갖게 하신다. 그 극심한 고난의 역사 가운데서도 소멸되지 않도록 지켜주신 하나님께서 오늘의 고난의 역사 가운데서도 지켜주실 것을 바라보며 견디어 낼 수 있는 힘을 기르기 위해서이다. 유대인들의 기억하는 이야기 중의 하나이다. 사막 길은 뜨겁고 목마르고 죽음이 있는 곳이다. 그러나 사막을 여행하다가 묘지를 발견하게 되면 반가워한다. 무덤 근처에는 반드시 동네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절망의 죽음 뒤에는 반드시 희망이 있다고 믿는다. 무덤 앞에서 희망을 갖듯이 말이다. 이것이 우리가 십자가를 사랑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오늘 3.1절 83주년을 기억하면서 우리는 고난과 가난으로 점철된 민족의 역사를 기억한다. 그러나 그 오랜 역사의 어둠 속에서, 소중한 영적인 교훈을 잊지 말아야 한다. 고난은 죄의 결과이다. 하나님의 은혜를 망각하지 말라. 더 큰 재앙을 대비하라. 어떤 상황에서도 절망하지 말라.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다. 고난을 통과한 민족답게 겸허한 마음으로 하나님의 자녀다운 긍지를 가지고 살아야 할 것이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