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난 뒤에 숨은 하나님의 섭리 출1:8-14 \"요셉을 알지 못하는 새 왕이 일어나 애굽을 다스리더니, 그가 그 백성에게 이르되 이 백성 이스라엘 자손이 우리보다 많고 강하도다, 자, 우리가 그들에게 대하여 지혜롭게 하자 두렵건대 그들이 더 많게 되면 전쟁이 일어날 때에 우리 대적과 합하여 우리와 싸우고 이 땅에서 나갈까 하노라 하고, 감독들을 그들 위에 세우고 그들에게 무거운 짐을 지워 괴롭게 하여 무거운 짐을 지워 괴롭게 하여 그들에게 바로를 위하여 국고성 비돔과 라암셋을 건축하게 하니라, 그러나 학대를 받을수록 더욱 번성하여 퍼져나가니 애굽 사람이 이스라엘 자손으로 말미암아 근심하여, 이스라엘 자손에게 일을 엄하게 시켜, 어려운 노동으로 그들의 생활을 괴롭게 하니 곧 흙 이기기와 벽돌 굽기와 농사의 여러 가지 일이라 그 시키는 일이 모두 엄하였더라\"(출1:8-14) 야곱의 가족 70인은 7년 대 기근의 때에 애굽의 총리가 된 요셉을 통하여 애굽으로 이주해 갔습니다. 그들은 그곳에서 하나님의 은혜로 생육이 중다하고 번식하고 창성하고 심히 강대하여 온 땅에 가득하게 되었습니다. 맨 처음 애굽으로 이주한 그들의 숫자는 70인 이었는데 430년이라는 세월동안에 12장37절에 가보면 여자와 아이의 수를 제하고서도 60만 명이나 되었습니다. 이것은 인간의 생물학적인 방법으로는 도저히 불가능한 계산입니다. 이 놀라운 일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내가 네게 큰 복을 주고 네 씨로 크게 성하여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게 하리니 네 씨가 그 대적의 문을 얻으리라(창 22:17)\"고 하신 약속을 지키신 것입니다. 7절에는 이러한 모습을 이렇게 말합니다. \"이스라엘 자손은 생육이 중다하고 번식하고 창성하고 심히 강대하여 온 땅에 가득하게 되었더라.\" 고 말입니다. 그런 그들에게 끔찍한 환난이 닥쳐왔습니다. 요셉을 알지 못하는 새 왕이 일어나서 애굽을 다스리게 되었을 때, 이스라엘 백성들을 노예로 삼고, 강제노역을 시키며, 이스라엘 백성 멸종정책을 썼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항상 좋은 일만 있을 수는 없습니다. 때로는 고난과 역경에 처할 때가 있습니다. \'고난\'이란 원어에 보면 \'훈련받는 과정\' 혹은 \'학대와 억압을 당하는 경험\'이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본문에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왕 바로에 의해 온갖 고난과 학대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러한 시련을 통하여 고난 뒤에 숨은 하나님의 섭리를 발견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고난 뒤에 숨은 하나님의 섭리가 무엇인지 오늘 말씀을 통하여 생각하는 중에 하나님의 섭리를 발견하는 기회가 되기를 축원합니다. 1. 하나님의 사람을 더욱 강하고 담대하게 훈련하였습니다. 8절을 보면, \"요셉을 알지 못하는 새 왕이 일어나서 애굽을 다스리더니.\"라고 했는데, 여기 \'일어나서\'란 말은 \'반기를 들고일어나다\'란 뜻입니다. 그리고 이 \'요셉을 알지 못하는 새 왕\'이란 애굽의 힉소스 왕조를 몰아내고 들어선 제 18왕조(B.C. 1580-1314)의 세 번째 왕인 투트모스 1세(Thutmose Ⅰ, B.C. 1539-1514)를 가리킨 것입니다. 힉소스 왕조는 셈족으로 애굽 왕을 몰아내고 왕국을 세웠습니다. 그래서 셈족인 요셉과 이스라엘에게 호의를 베풀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애굽인들이 이 힉소스 왕조를 몰아내고 제 18 왕조를 세웠습니다. 이들은 그 동안 유대인들이 누리던 모든 특권을 박탈했습니다. 그런데 이 새 왕이 \"이 백성 이스라엘 자손이 우리보다 많고 강하도다. 자 우리가 그들에 대하여 지혜롭게 하자. 두렵건대 그들이 더 많게 되면 전쟁이 일어날 때에 우리 대적과 합하여 우리와 싸우고 이 땅에서 갈까 하노라.\"(9-10) 고 함을 보아 두려워한 것입니다. 왕은 이스라엘 자손이 심히 창성하는 것을 보고 위기의식을 느꼈습니다. 특히 유대인들이 쫓겨난 힉소스 왕족들과 합세하여 애굽을 대적할 것을 두려워했습니다. 또 이스라엘은 종교적으로도 애굽 사람들과 같지 않고, 문화적으로 전혀 이질적인 생활을 했기 때문에 더욱 경계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들은 묘책을 구하던 중 이스라엘을 노예로 삼아 경제번영에 이용하고자 했습니다. 또 강제노동을 시켜 이스라엘을 괴롭혀 번식을 억제하여 이스라엘의 수를 줄이고자 했습니다. 이때부터 이스라엘은 모든 특권을 상실하고 바로의 노예로 전락하게 되었습니다. 바로왕은 이들 위에 감독을 세우고, 왕의 국고성인 라암셋과 비돔을 건축하게 했습니다. 거기에 잉여 곡식을 저장하고, 또 군량미와 무기도 보관하여 동방제국의 침략을 대비하고, 원정을 준비하고자 했습니다. 그런데 중노동에 시달리며 괴로움을 당한 이스라엘은 \"그러나 학대를 받을수록 더욱 번성하여 퍼져나가니 애굽 사람이 이스라엘 자손으로 말미암아 근심하여....\"(12) 두려워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학대를 받을수록 몸과 마음이 더욱 튼튼해졌습니다. 양만 치다가 힘든 운동을 하니 몸이 더욱 건장해졌습니다. 이스라엘은 중노동으로 많은 괴로움을 당했으나 오히려 더욱 번성하고, 애굽 사람들은 이스라엘로 인하여 근심하게 되었습니다. 그리스의 유명한 윤리학자이며 전기작가인 [풀루타르코스]는 \"인간의 위대성은 그가 고통을 어떻게 견뎌내는가에 따라 결정됩니다.\"라고 했습니다. 고난이 온다고 낙심만 하지 말고 믿음으로 극복하는 성도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학대를 받으면서도 결코 좌절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을 포기하거나 신앙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끝까지 신앙을 지키는 자에게 더욱 강하고 담대하게 해줍니다. 우리도 고난을 달할 때 더욱 강하고 담대하게 만드시는 하나님의 섭리를 발견해야 할 것입니다. 2. 이스라엘 백성들을 더욱 뭉치게 하였습니다. 바로 왕은 당황했습니다. 그래서 왕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더욱 엄하게 일을 시켰습니다. \"이스라엘 자손의 역사를 엄하게 하여 고역으로 그들의 생활을 괴롭게 하니 곧 흙 이기기와 벽돌 굽기와 농사의 여러 가지 일이라 그 시키는 역사가 다 엄하였더라\"(13-14) 했습니다. 엄하다는 말은 \'산산조각을 내다\', \'부수다\'는 뜻으로 노예와 같이 철저히 부려먹고, 조금이라도 말 안 들으면 사정없이 때려죽일 만큼 잔인하게 학대했다는 뜻입니다. 당시 벽화 중에는 나체가 된 노예들이 땅에 엎드려 있고, 가죽 채찍을 든 감독들이 사정없이 내려치는 그림들이 있습니다. 그 그림 중에는 \"내 손에 채찍이 있다. 게으르지 말라!\"는 문구가 적혀 있는 그림도 있습니다. 이를 보면 애굽 왕이 얼마나 잔혹하게 이스라엘을 괴롭혔는지 알 수 있습니다. 흙이기, 벽돌 굽기, 운하를 파고 댐을 건설하는 일, 또 높은 곳으로 물을 퍼 올려 농장에 물을 대는 일도 노예들이 하는 일이었습니다. 고대 절대 군주들은 이런 일에 엄청나게 많은 노예들을 동원했습니다. 알렉산드리아 운하를 팔 때 동원된 인원이 15만 명이나 되는데 그 중에 2만 명의 노예들이 희생되었다고 합니다. 아마 거대한 피라밋 같은 것을 쌓을 때도 수많은 노예들이 목숨을 잃었을 것입니다. 바로왕은 혹독한 강제 노역을 통해 이스라엘 자손의 인구 증가와 번성을 억제하려던 자신의 시도가 실패로 돌아가자(8-14) 이번에는 이스라엘 자손 가운데 새로 태어나는 남아들을 살해함으로서 이스라엘을 점차 고사시키고자 한 것입니다. 따라서 이스라엘 백성들의 고통은 극에 달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우리가 이러한 사실을 표면적으로만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참으로 절망적인 상황에 처해 있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절망적인 순간에도 하나님의 섭리의 손길은 작용하고 있었습니다. 즉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멸절시키려는 바로의 악한 계교까지도 도리어 그의 백성들을 위한 당신의 원대한 뜻을 이루는 방편으로 사용하신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바로의 악한 계교로 인해 이스라엘 백성들이 당해야만 했던 고통은 그들이 가나안으로 들어가기 위한 일종의 준비 과정이었던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고난이 있기 전에는 제각기 자기의 삶을 영위해 나갔습니다. 그러나 고난에 부딪혔을 때 저들은 힘을 모으기 시작했습니다. 요셉을 알지 못하는 새 왕이 일어나서 애굽을 다스릴 때에 바로왕은 이스라엘 자손이 자기 백성보다 많음을 보고 감독들을 세워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더 힘든 일을 시켰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이 학대를 받을수록 더욱 번식하고 창성하자 바로왕은 히브리 산파 십브라와 브아를 시켜 이스라엘 여인들이 조산할 때에 남자아이는 다 죽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산파들은 하나님을 두려워하여 에굽왕의 명령을 어기고 남자아이를 살렸습니다. 그러자 바로왕은 다시 산파를 불러서 문책한 후 이제는 남자아이를 나면 모두 하수에 던지라고 명령하였습니다. 이때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산파를 중심으로 더욱 한데 뭉쳤습니다. 힘이 없고 나약한 현실을 탓하지 아니하고 할 수 있는대로 뭉쳐야 합니다. 힘을 함께 모을 때에 살길이 열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강한 힘을 중심으로 뭉치는 성도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3. 하나님은 더욱 큰 축복을 누리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위기에서 건져 주십니다. 15-16절에서 애굽 왕 바로의 히브리 남아 살해 명령은 이스라엘 자손에게는 실로 위기 중의 위기라고 아니할 수 없습니다. 바로의 히브리 남아 살해 명령은 곧 이스라엘 자손의 씨를 말리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결코 당신의 백성을 멸망 받도록 내어버려 두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은 십브라와 부아라고 하는 두 히브리 산파를 들어 이스라엘 자손을 멸망의 위기에서 건져 주셨습니다(17).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백성의 고난의 때는 또한 하나님의 구원의 때임을 믿습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견디기 힘든 고난을 만날 때 하나님의 구원의 때가 가까이 이른 줄로 알고 하나님의 구원의 손길을 바라보며 인내로 고난을 극복해 나가야 합니다. 특별히 성도들은 말세에 임할 고난을 잘 이겨내야 합니다. 성경은 말세가 되면 성도들에게 큰 고난이 임하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마 24:21; 딤후 3:1). 그러나 말세는 또한 자기 백성에 대한 하나님의 구원의 때이기도 합니다(히 9:28). 그러므로 성도들은 말세를 당하여 닥친 고난으로 인하여 낙심하고 탄식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구원의 때가 가까이 이른 줄로 알고 아무리 암울한 상황을 만난다 할지라도 도리어 기뻐하며 소망 가운데 즐거워해야 할 것입니다. 욥 5:12-14에 보면 \"하나님은 궤휼한 자의 계교를 파하사 그 손으로 하는 일을 이루지 못하게 하시며 간교한 자로 자기 궤휼에 빠지게 하시며 사특한 자의 계교를 패하게 하시며 그들은 낮에도 캄캄함을 만나고 대낮에도 더듬기를 밤과 같이 하느니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내가 내려가서 그들을 애굽인의 손에서 건져내고 그들을 그 땅에서 인도하여 아름답고 광대한 땅, 젖과 꿀이 흐르는 땅 곧 가나안 족속, 헷 족속, 아모리 족속, 브리스 족속, 히위 족속, 여부스 족속의 지방에 데려가려 하노라\"(출3:8) 했습니다. 이 말씀처럼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부르짖음을 들으셨습니다. 그들의 고통을 기억하셨습니다. 감당하기 어려운 현재의 상황을 오리려 축복의 기회로 삼으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온갖 역경에서 승리했을 때 하나님은 그들을 인도하여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에 들어가는 축복을 허락하셨습니다. 성도 여러분! 어떤 고난을 당할 때에 하나님의 축복이 연결되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하고 하나님께 기도함으로 고난에서 승리하시기를 바랍니다. 바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중노동을 시킴으로서 한편으로는 이스라엘의 번성을 막고 그들을 연약하게 할 수 있었을 뿐만 아니라 또 한편으로는 그들의 중노동을 통해 상당한 경제적 이익을 얻을 수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따라서 만일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도우시지 않았다면 이스라엘 백성들의 수는 서서히 감소되고 결국에는 멸망할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보십시오. 바로의 간계는 그의 뜻대로 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바로가 당신의 백성들을 해하도록 방치해 두지 않으셨습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을 해하려는 악한 자들의 간계를 폐하시고 자기 백성을 보호하십니다. 사실 오늘도 우리 성도들이 사단이 공중 권세를 잡고 있는 이 세상의 한복판에 살아가고 있으면서도, 그리고 악한 자들이 끊임없이 성도들을 해하기 위해 간계를 꾸미는 가운데서도(시 38:12) 진멸되지 아니하고 오히려 더욱 번성할 수 있는 것은 다 하나님께서 성도들을 해하려는 악한 자들의 간계를 폐하시고 성도들을 보호하며 지키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이 사실을 바로 알아 비록 악한 자들이 우리를 해하기 위해 에워싼다 할지라도 두려워하거나 낙심하지 말고 끝까지 믿음을 지키며 소망 가운데 거해야 하겠습니다. 그리할 때 우리는 하나님의 놀라운 구원의 은혜를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 시편기자는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고난 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말미암아 내가 주의 율례들을 배우게 되었나이다\"(시119:71)라고 말입니다. 끝으로 고난을 받을 때 우리가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고난이 없을 때는 하나님을 찾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바로의 통치하에서 흙 이기기와 벽돌 굽기와 농사 등 여러 가지 일들을 하면서 가혹한 통치를 받았을 때 그들은 비로소 하나님께 부르짖게 되었던 것입니다(출2:23). 유명한 과학자 파스칼은 자기의 뛰어난 지식을 가지고 영의 세계를 무시하며 과학적인 이론만을 주장하다가 어느날 말을 타고 가다가 다리에서 떨어져 중상을 입고 죽음 직전에까지 들어가서 병원에서 여러 날 치료를 받다가 비로소 주님을 만나게 되어 유명한 명상록을 저술하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고난과 역경에 처하게 될 때 다른 사람이나 자기 자신 혹은 환경을 원망하지 말고 하나님께 부르짖어야 할 줄 믿습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현재의 고난 뒤에 감추어진 그 보화를 우리에게 상급으로 주시는 줄 믿습니다. 자기가 참으로 사랑했던 첫 사랑의 여인이 죽자 그 실연의 상처를 달래기 위해서 정치를 해 봐야겠다고 정계에 투신했던 한 젊은이가 있었습니다. 이 사람은 정계에서 상당한 지위를 차지했지만 곧 더럽고 추한 정치 게임에 말려들어 누명을 쓰게 되었습니다. 그는 결국 자기 고향인 이태리의 피렌체라는 도시에서 추방을 당하여 다시는 고향에 돌아갈 수 없는 몸이 되어 거지생활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사랑도 정치도 모두 실패하고 고독한 방랑길에 들어선 그는 어느날 밤 하늘을 보고 누워 꿈을 꾸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자기가 진정으로 사랑했던 여인인 베아뜨리체가 자기를 영원한 세계로 안내하는 꿈이었습니다. 그는 붓을 들어 작품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이렇게 해서 탄생한 장편의 서사시가 유명한 단테의 [신곡]이라는 작품이 되었습니다. 인간에게 좌절은 금물입니다. 희망을 버리지 않는 한 기회는 반드시 찾아올 것을 믿습니다. 삶의 위기를 극복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하나의 공통점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의 꿈이 사라졌을 때 그들은 자기의 꿈이 사라진 잿더미 위에 주저앉아 버리지 아니하고 새로운 꿈을 꾸기 시작한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의 꿈이 인생의 전부는 아닐 것입니다. 하나님이 내리시는 꿈들의 수효는 하늘의 별 만큼이나 많습니다. 사라진 하나의 꿈을 인하여 별처럼 많은 그 많은 꿈들을 포기하고 말 것입니까? 내일의 꿈을 포기할 이유는 없습니다. 지금은, 하나의 꿈을 잃고 고통스러워하고 있는 지금은 또 다시 찬란한 꿈을 꾸어야 할 창조적인 시간임을 알고 현재의 고난의 뒤에 숨어있는 하나님의 섭리를 발견하는 성도가 되기를 축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