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난을 잘 이기자/벧전2:18-25
사람마다 고난이 없는 인생을 원합니다.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고난을 만나지 않는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러나 세상에는 고난이 있기에 사람들이 여러 가지 고난을 당하게 됩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우리에게 이 세상에는 고난이 있음을 말씀하고 있고 그 고난을 이기며 살아갈 수 있는 지혜를 또한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오늘의 본문은 로마제국 시대에 쓰여진 그런 본문입니다. 그 당시 로마제국 내에는 자그만치 6천만 명이라고 하는 많은 노예들이 살고 있었습니다. 로마시민은 얼마 되지 않는데 전체가 노예였습니다. 이 노예들이 바깥일과 집안 일을 전부 다 했습니다. 노예들은 스스로 생각하기를 아무 아름다움도 없는 참으로 별 볼일이 없는 그런 인생이라고 생각을 하고 그들은 살았습니다. 그러나 노예들 사이에 복음이 퍼지기 시작했습니다. 노예들이 많이 예수를 믿게 되었습니다. 아무런 가치도 없다고 생각하던 그들이 복음 안에서 참된 아름다움이 무엇인지를 깨닫기 시작했습니다. 복음은 바로 그들에게 아름다움은 멀리에 있는 것이 아니라는 걸 깨닫게 해 주었습니다. 자기들이 지금 처한 노예라고 하는 상황, 그들이 만나고 있는 사람들, 그들이 섬기고 있는 주인, 자기들에게 악을 행하고 호되게 야단만치는 그 주인들, 그 모든 상황이 있는 바로 그 자리에서 복음은 아름다운 것을 발견하게 해 주는 능력으로 그들은 깨달을 수가 있었습니다. 물론 오늘 이 시간 우리는 노예가 아닙니다. 다 자유인들입니다. 그러나 우리도 어찌할 수 없는 요소들이 많이 있습니다. 마치 그 로마의 노예들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노예로 태어났듯이 원하지 않는 가운데도 노예가 되었듯이 우리들에게는 내가 어찌할 수 없는 그런 요소들이 많이 있습니다. 우리의 출생을 우리가 어찌할 수 없습니다. 남자로 태어나셨지만 원해서 태어난 분은 없습니다. 여자로 태어나셨지만 태어나고 보니 여자였습니다. 이런 우리가 태어나면서부터 타고난 모든 것들에 대하여 어찌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만난 사람들, 우리가 만난 부모님들을 우리가 어찌할 수 없이 만났습니다. 만나고 보니 우리의 부모님들이었습니다. 그 뿐만 아닙니다. 우리 인생 가운데 찾아오는 여러 가지 고난도 갑자기 우리가 원치 않는 가운데 나타납니다. 이미 맺어진 인간관계를 우리가 어찌할 방법이 없습니다. 그 런데 복음은 이 모든 것을 무시하고 다시 저 멀리에서부터 새로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 여기에서 내가 만나고 있는 사람, 내가 당하고 있는 모든 현실 가운데서 아름다움을 발견하게 하고 그 가운데 위대한 가치를 발견할 수 있도록 하는 능력, 그런 능력을 우리에게 주는 것입니다. 그런고로 오늘 이 아침에는 우리가 우리 눈앞에 펼쳐지고 있는 여러 가지 사건과 사람들을 바라보면서 그들 가운데 있는 아름다움을 바라볼 수 있는 그런 신령한 눈이 필요합니다. 오늘 여러분 다 현미경을 잘 사용하시기를 바랍니다. 영적인 현미경이 필요합니다. 자세히 보시기를 바랍니다. 생물학도들이 바라보는 그 미생물 가운데 움직이는 아름다운 모습을 볼 수 있듯이 오늘 이 시간 하나님 말씀을 통해서 깊이 우리 인생을 바라보십시다. 그러면 그 속에, 사건 속에, 사람 속에 하나님이 우리에게 허락하신 아름다운 것들이 충만하게 된 것을 발견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오늘은 그런 아름다운 것들을 바라보는 시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이 말씀이 여러분에게 큰 힘과 위로와 소망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첫째로, 어떤 고난입니까?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에는 여러 가지 고난 (4가지 고난) 이 있습니다. 질병이나 사고, 폭력이나 고문 강제노동으로 인한 ① 육체적 고난이 있는가 하면 손해와 실패를 만나고 도적과 사기로 인한 ② 경제적 고난이 있습니다. 그리고 자녀의 반항, 형제간의 갈등, 죄책감과 좌절감, 가정불화와 같은 ③ 정신적 고난도 있습니다. 더구나 신앙의 문제로 욕을 먹고, 미움을 사고 핍박을 당하게 되는 ④ 영적인 고난도 있습니다. 어느 고난은 가벼우나 때로는 감당키 어려운 큰 고난도 있습니다.
둘째로 왜 고난을 당합니까? 본문 말씀에 보면 고난을 당하게 되는 몇 가지 이유들을 밝혀주고 있습니다. ① 애매한 고난이 있습니다. 19절에 \"애매한 고난을 받아도\"라는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자기에게 아무 잘못이 없는데도 애매하게 고난을 당하는 경우를 말합니다. 주인이 까다로워서 고난을 당하게 됩니다. 남보다 성실하고 양심적인 것이 미움을 사게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가난하고 무식하다고 멸시와 천대를 받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지나치게 똑똑하고 잘난 것이 흠이 될 때도 있습니다. 여자이기 때문에 힘이 없고 약한 민족이기 때문에 억울하게 고난을 당하는 때도 있습니다. ②죄로 인한 고난이 있습니다. 20절에 \"죄가 있어 매를 맞고\"라는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사람들이 자기의 허물과 범죄한 것 때문에 고난을 당하게 됩니다. 가인은 동생 아벨을 죽인 죄로 평생을 방황하며 고난의 인생을 살았고, 고라는 욕심의 눈이 어두워 금덩이를 훔쳤다가 전 가족이 죽게 했으며, 아나니아는 성령을 숙이고 거짓말 하다가 아내와 함께 불행을 당하게 됩니다. 그런데 죄로 인한 고난은 2가지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나는 죄의 징벌로 오는 고난, 즉 범죄의 대가요 다음은 죄를 깨닫게 하시고 돌이켜 새사람을 만들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의 채찍으로 오는 것입니다. ③ 선을 행하다가 당하는 고난이 있습니다. 20절에 \"오직 선을 행함으로 고난을 받고\"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선을 행한다고 해서 모든 사람이 환영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것은 이 세상이 악하기 때문이요 어두움이 빛을 싫어하는 것처럼 악인은 선행을 싫어하고 미워합니다. 그래서 선을 행하는 자들이 세상에서 고난을 당하게 되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경말씀 디모데 후서 3:12에 \"무릇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핍박을 받으리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④ 남을 위한 고난이 있습니다. 21절 말씀에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입었으니 그리스도도 너희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사\"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는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대신 십자가에서 고난 당하신 것으로 자원해서 당하신 희생적이고 거룩한 고난입니다.
셋째로, 어떻게 고난을 이길 수 있습니까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면서 고난을 이기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고난을 이기는 비결을 본문에서 몇 가지 찾아 볼 수 있습니다. 고난을 이기려면 ① 하나님을 생각해야 합니다. 19절에서 \"애매한 고난을 받아도 하나님을 생각함으로\"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과거 우리 조상들은 고난이 오면 운명이나 팔자로 돌리고 순응하는 소극적인 자세를 가졌던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이제는 보다 적극적인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그러한 자세의 하나가 하나님을 생각하는 것입니다. 창조주이시고, 역사의 주관자이시며 사랑과 자비가 풍성하신 사랑의 아버지 하나님을 생각하고 위로와 용기와 소망을 가지고 일어설 때 고난을 이길 수 있는 졸로 믿으시길 바랍니다. 애매하고 억울한 사정이 사람에게는 감춰어져 있어도 하나님은 아시고 언젠가 고난을 돌이킬 수 있는 때가 온다고 하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요셉은 애매하게 종살이와 감옥살이로 고난을 당했으나 하나님을 생각하고 소망 중에 믿음을 지켜 살 때 고난을 이기게 된 줄로 믿으시길 바랍니다. ② 오래 참아야 합니다. 본문에 보면 \"참으면\"이라는 말씀이 3번 나오면서 고난을 참을 것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리고 고난을 참는 것은 곧 \"아름다운\" 것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욥이라는 사람은 사람에게서 감당하기 어려운 큰 고난을 당했지만 오래 참음으로 고난을 이기고 아름다운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는 육체의 질병과 자녀의 죽음, 아내의 배신, 친구들의 비난까지도 끝까지 참아냈습니다.
그런데 여기에 참는다고 하는 말씀을 오해하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참는다고 하는 것은 팔장을 끼고 \'어떻게 되나보자\' 하고 바라보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자포자기하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불평하고 아주 낙담한 자리에 앉아 있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이것은 고난에 직면하여 고난을 변화시킬 수 있도록 참고 견디는 것을 의미합니다. 여러분, 참는 것은 굴복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모두 내가 던져버리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분을 억지로 삭이면서 서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를 뿌득뿌득 갈면서 \'어디 두고 보자\' 하면서 있는 상태를 참는 것이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고난 중에 우리는 슬픔을 참아야합니다.
여러분, 성도라도 울 수 있습니다. 특별히 고난 당하고 초상을 당한 성도를 찾아가서 울지 말라고 말씀하지 마세요. 좀 울어야죠. 사람이 울지 않으면 아무 재미가 없습니다. 슬플 때는 울 수도 있습니다. 여러분, 어려움 중에 있을 때 우실 마음이 있으면 좀 우십시오. 그러나 많이 울지 마시고 슬픔이 찌르는 가시에 찔리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잘못하면 슬퍼하다가 비관적인 그런 존재로 변할 수 있습니다. 참으로 우리는 주님과 함께 하시니 기뻐해야 하고 주님도 당하신 고난, 나도 당하니 감사해야 하고 이 고난을 통해 더욱 더 아름답게 하셔서 우리 고난을 통해 하나님께 영광 돌릴 수 있게 된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하나님 앞에 영광을 돌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A.D 300년경에 마카리우스라고 하는 유명한 수도사가 있었습니다. 얼마나 존경을 받았던지 동네 사람들이 마카리우스를 대단히 존경했습니다. 그런데 동네 한 여자가 있었는데 불의한 일을 하고 임신을 했는데 이 마카리우스의 아이라고 소문을 퍼뜨리기 시작을 했습니다. 이 마카리우스를 얼마나 두들겨 팼든지 온몸이 피투성이가 되었습니다. 한마디도 하지 않았습니다. 조용히 묵묵히 참았습니다. 그는 일어났습니다. 열심히 노동해서 번 돈을 자기를 모함한 그 여자에게 갖다주었습니다. 그 다음날도 찾아가서 위로하고 귀한 그리스도인의 인내를 보여 주었습니다. 얼마 뒤에 변화가 생겼습니다. 여자가 마음이 변하고 회개하고 자기의 잘못을 온 동네에 자복했습니다. 마카리우스는 다시 존경받는 수도사의 자리에 설 수가 있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참는다고 하는 것은 가만히 있는 것, 낙심하고 쓰러져 있는 가운데 있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직면하는 것입니다. 고난을 직면하고 그리스도 안에 있는 참으로 놀라운 인내를 보여주시는 것, 그것이 바로 진정한 의미의 참는 것이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고난을 만났습니까? 오래 참음으로 이겨내는 자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③ 소망을 가지고 적극적으로 살아야 합니다. 고난의 내용이 어떠하든지 그 앞에서 절망하고 낙심하거나 자포자기 할 것은 없습니다. 고난이 올 때 소망을 가지고 열심히 노력하면 고난을 이겨낼 수 있으며 기쁨과 축복의 열매를 얻게 될 줄로 믿으시길 바랍니다. 고난 뒤에는 영광도 있음을 알고 소망을 가지고 열심히 살아 승리하시기를 바랍니다. ④ 예수님을 따라가는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예수님은 23절에 \"욕을 받으시되 대신 욕하지 아니하시고 고난을 받으시되 위협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공의로 심판하시는 자에게 부탁하셨다\"고 했습니다. 성도 여러분! 고난은 지금도 우리에게 찾아옵니다. 천재지변이나, 불의의 사고, 신앙의 핍박이나 환난이 그칠 사이가 없습니다. 여러분은 십자가를 지고 주님의 뒤를 따라가는 성도들로서 믿음 안에서 오래 참고 소망을 가지고 기도하시길 바랍니다. 그래서 고난은 피하거나 고난 앞에서 절망하는 자가 아니라 고난을 이기며 살아가는 인생의 승리자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우리 주님의 도우심의 은총이 함께 하실 줄로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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