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고난

아름다운 고난/벧전2:18-25




벧전2:20 죄가 있어 매를 맞고 참으면 무슨 칭찬이 있으리요 오직 선을 행함으로 고난을 받고 참으면 이는 하나님 앞에 아름다우니라

인생은 고난을 위하여 태어났다고 성경은 증거합니다(욥5:7) 고난은 누구에게나 예외일수 없는 그리고 피할 수 없는 보편적이며 숙명적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크고 작고의 차이는 있겠으나 고난은 실존입니다. 다만 고난을 왜 당하게 되었는지? 그리고 그 고난의 의미가 무엇인지 고난에 대한 자세가 중요합니다. 그러나 고난은 다 같은 고난은 아닙니다.
오늘 본문에는 고난에 세 가지 종류의 고난이 있다고 가르쳐 줍니다.

1. 부끄러운 고난이 있습니다.
\"죄가 있어 매를 맞고 참으면 무슨 칭찬이 있으리요\"
죄를 인해 당하는 고난은 당연한 고난입니다. 능욕 받을 짓을 했기 때문에 능욕을 받고, 고통을 당할 일을 했기 때문에 고통을 당하는 경우입니다. 게으른 탓으로 굶주리고, 술과 담배로 병고에 시달리고 신음을 하고, 포악하여 옥살이를 치른다면 이는 다 부끄러운 고난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부끄러워 할 줄 모릅니다. 자신의 잘못을 아예 인정하려고도 하지 않습니다. 혹자는 이를 자기의 책임이 아니라고 변명과 책임을 전가 그리고 원망까지 합니다.
혹자는 마치 그것이 나라와 민족을 위한 희생이라고 대견스럽게 여기고, 열사라고까지 착각을 합니다. 혹자는 그것이 자기의 십자가라고 도리어 만족해하며 자랑스럽게 여기기까지 합니다. 이는 모두 스스로 속는 행위로서 부끄러움에 부끄러움을 더할 뿐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살고있는 세상이 암담한 이유는 능욕을 받을 짓을 하고, 능욕을 받는 사람들이 수를 헤아릴 수없이 많기 때문이요. 우리 사회가 슬픈 이유는 능욕을 받을 일을 하고도 표창장을 받고, 앉아 있어서는 안 될 자리에 앉아 있는 사람들이 많이 보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마음이 역겨워 지는 것은 칭송을 받을 일을 하였다고 칭송을 요구하는 사람들을 보기 때문입니다. 고난이 있을 때 자신을 살피고 죄를 회개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2:20 죄가 있어 매를 맞고 참으면 무슨 칭찬이 있으리요 .

2. 아름다운 고난이 있습니다.
\"애매히 고난을 받아도 하나님을 생각함으로 슬픔을 참으면 이는 아름다우나\"(2:19)
애매한 고난이란 부당한, 불합리한 고난이라는 말입니다. 아무리 생각을 해 봐도 고난을 당해야 할 아무런 이유가 없습니다. 법률에 위배되는 일을 한 적도 없습니다.
도덕적으로 벗어나는 일을 저지른 적도 없습니다. 양심에 어긋나는 짓을 한 일도 없습니다. 오히려 국가와 민족을 위하여 이웃과 사회를 위하여 많은 봉사를 하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표창장을 고사하고 능욕과 공격을 받아야 할 때가 있습니다.
이럴 때 묵묵히 하나님을 생각함으로 참으면 이는 아름답다고 하였습니다
마땅히 받아야 할 고난조차도 억울하다고 하는 판국에 억울한 고난을 당하면서도 잠잠 할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러나 그리스도의 고난은 억울하고 애매한 고난입니다. 선지자와 사도들의 고난도 애매한 고난입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 믿는 성도들의 고난도 역시이 애매한 고난을 받으신 주님의 뒤를 따라가는 것입니다.
2:19 애매히 고난을 받아도 하나님을 생각함으로 슬픔을 참으면 이는 아름다우나
2:20 오직 선을 행함으로 고난을 받고 참으면 이는 하나님 앞에 아름다우니라
아름다운 고난을 받는 작은 예수들이 많으면 나라도 아름답고, 교회도 아름다울 겁니다.
기림을 받을 일을 하고도 수모를 당하며 그것을 참는 사람이 있다면, 세상을 아름답게 미화시키는 사람입니다. 그것은 아름다운 고난이기 때문입니다.

3. 선한 고난 이 있습니다.
이는 자원적 고난입니다. 이것은 순수한 고난입니다. 세상은 선을 시기합니다. 죄인은 죄인을 찾고 의인을 싫어합니다. 의인은 불의한 사람들 속에 미움을 받습니다. 모두가 주변에 죄인이고 불의 한 사람들이 있으면 자신이 정당화되는 심리적인 작용이 생깁니다.
죄인은 혼자 죄짓기를 싫어합니다. 악을 행하는 자마다 빛을 미워한다고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요3:20)
바울은 우리가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받아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은 불가피하여 어쩔 수 없이 당하는 것이 아니라 자원하여 스스로 찾아가서 당하는 십자가의 고난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를 피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습니다.
빌라도의 법정에서 몇 마디 변명만 하면 정적들을 다 집어넣고 풀려 나오실 수 있었으나, 묵묵히 침묵하시며 고난을 스스로 선택하셨습니다. 그는 무지해서도 무력해서도 결코 아니었습니다. 대속 제물로 죽으러 오신 것이 오신 목적이기 때문입니다.

지금 우리는 사순절 기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주님이 우리를 부르신 이유가 바로 우리로 하여금 이 길을 따라오라고 본을 보여 주신 것입니다. 2:21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입었으니 그리스도도 너희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사 너희에게 본을 끼쳐 그 자취를 따라오게 하려 하셨느니라
우리 주님의 가신 길을 따른다고 하면서 억울한 수난은 손톱만큼도 당하지 않으려고 노발대발하면서 십자가를 내가 지고 주를 따르리라고 찬송과 기도만 되풀이한다면, 이는 우리 모두를 우울하게 하는 일입니다.
2:19 애매히 고난을 받아도 하나님을 생각함으로 슬픔을 참으면 이는 아름다우나
2:20 죄가 있어 매를 맞고 참으면 무슨 칭찬이 있으리요 오직 선을 행함으로 고난을 받고 참으면 이는 하나님 앞에 아름다우니라

(기도)
은혜로우신 아버지 하나님, 저희를 위하여 십자가를 지시고 죽으신 주님의 그 크고 놀라운 은혜를 다시 한번 생각하옵나이다. 이 모순되고 부조리한 현실 속에서 고난을 극복하게 하기 위하여 길 되신 주께서 친히 보여 주신 그 놀라운 역사를 생각하며 감사드립니다.
주께서 고난을 당하실 때 변명도 책임 전가도 원망도 하지 않으시고 참고 침묵하심 같이
주의 뒤를 따르는 저희들에게 새 힘을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이제 우리의 약한 것을 돌아보아 주시고 넘어질 때 더욱 건강한 믿음을 주셔서 고난을 통하여 더 큰 은혜에 들어가도록 은총을 베풀어주옵소서.
욕된 더러운 영광보다는 애매한 고난을 받고 참아내는 아름다운 고난을 추구하는 성도가 되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