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메한 고난 으로 부터의 승리

애매한 고난으로부터의 승리/벧전2:19

애매한 고난으로부터의 승리/벧전2:19


\"애매히 고난을 받아도 하나님을 생각함으로 슬픔을 참으면 이는 아름다우나\"(벧전 2:19)

<序言>
지난 주간에는 테러에 대한 응징이라는 명목으로 미국이 아프가니스탄을 공격했습니다. 수차례 폭격을 가했습니다. 아프가니스탄 내의 북부동맹 반군도 공격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아프가니스탄의 텔레반 정권과 오사마 빈 라덴의 조직은 지하드(聖戰)를 선포하고 범 이스람 권에 항전을 촉구하고 있습니다. 각 이스람권에서는 반미 유혈 데모가 일어나고 무자헤딘(전사)이 모집되고 있습니다. 그로 인하여 민간인 사상자가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또 수많은 난민이 발생하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전쟁이 장기화되면 더 많은 사람들이 죽어가고 고통을 당하게 될 것입니다.

이번 전쟁의 원인을 ①테러에 대한 응징으로 보는 이도 있고, ②세계 질서 변화에 따른 정치적 실리추구의 현상으로 보는 이도 있고, ③기독교와 이슬람 문명의 충돌로 보는 이들도 있고, ④하나님의 구속운동과 사단의 적개심에 의한 방해로 보는 이도 있습니다. 모두가 맞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어떤 원인을 가지고 있든지 일반 백성들은 그 전쟁의 숨겨진 원인을 모른채 자신들과 직접적 상관이 없는 일로 인하여 고난을 당하고 있습니다.

<本論>
1. 애매히 고난받을 때가 많이 있습니다.

베드로는 사람이 고난을 받게 되는 원인을 3가지로 말하고 있습니다(19-20절 ). ①죄 때문에 받는 고난이 있습니다. ②선을 행하므로 받는 고난이 있습니다. ③애매히 받는 고난이 있습니다. 그중 애매히 받는 고난은 자신에게 직접적 잘못이 없이 다른 사람이나 다른 원인에 의해서 당하는 고난입니다.

당시 로마의 압제를 받는 유다 백성들이 그랬듯이 압제국과 그에 이용 당하는 앞잡이들에게 백성들이 받는 핍박이 있습니다. 그리고 18절에 \"사환들아 범사에 두려워함으로 주인들에게 순복하되 선하고 관용하는 자들에게만 아니라 또한 까다로운 자들에게도 그리하라\"는 말씀이 나온 것 처럼 당시 사환(종)들이 그랫듯이 존들이 주인의 부당한 처사로인해 받는 고난이 있습니다. 이는 구조적인 환경에서 당연히 발생하는 고난입니다.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환경은 우리의 직접적 잘못이 아니더라도 우리에 생활에 영향력을 미치는 사람들과 구조적 제도에 의해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고난들이 많이 있습니다. 우리가 국가, 직장, 교회, 가정, 동아리라고 하는 공동체에 속해 있기 때문에 그 책임자의 잘못으로 당하는 고난을 경험하며 살아갑니다. 또한 자연적 재해나 사고등으로 고난 당하기도 합니다.

2. 하나님을 생각함으로 참아야 합니다

애매히 고난을 받아도 하나님을 생각함으로 참으면 아름답다고 했습니다(19절下 하반절에 \"애매히 고난을 받아도 하나님을 생각함으로 슬픔을 참으면 이는 아름다우나\"라고 했습니다. 우리 자신의 죄 때문이거나 우리가 선을 행함으로 받는 고난이 아니라 애매히 받는 고난이라해도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생각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애매한 고난을 허락하신 원인과 목적을 생각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애매한 고난을 허락하실 때는 우리가 알지 못하는 의도와 섭리 속에서 허락되어 집니다.

특히 성도에게도 애매한 고난을 당하게 하는 의도는 고난 속에서 연단시키고 성장시키려 함입니다. 그래서 큰 뜻을 이루려 함입니다. 베드로전서4:1-2에 \"그리스도께서 이미 육체의 고난을 받으셨으니 너희도 같은 마음으로 갑옷을 삼으라 이는 육체의 고난을 받은 자가 죄를 그쳤음이니- 그 후로는 다시 사람의 정욕을 좇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뜻을 좇아 육체의 남은 때를 살게 하려 함이라\"고 했고, 5:10에는 \"모든 은혜의 하나님 곧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부르사 자기의 영원한 영광에 들어가게 하신 이가 잠깐 고난을 받은 너희를 친히 온전케 하시며 굳게 하시며 강하게 하시며 터를 견고케 하시리라\"고 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애매한 고난을 받아도 하나님을 생각함으로 참으면 아름답다고 한 것입니다.

카프만 부인의 [광야의 샘]이란 글에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나는 누에고치들을 관찰하고 있었다. 마침 여러 마리의 누에고치가 나비로 탈바꿈을 하는 중이었다. 너무도 작은 구멍을 통해 나오려고 애쓰는 그 모습을 보면서 나는 불가능 하리라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한 마리,두 마리, 그토록 작은 구멍을 통해 천신만고 애쓰더니 결국은 빠져 나와서 공중으로 훨훨 날아 올랐습니다. 나는 마침 또 나오려고 애쓰는 고치를 발견하고 가위로 그 구멍을 넓게 잘라 주었다. 그러면서 내가 하나님보다 더욱 사랑과 자비가 많다고 자족하면서 혼자 웃었습니다. 내가 넓게 열어준 구멍으로 나비는 쉽게 나왔으나 문제가 생겼습니다. 공중으로 솟아 오르려고 몇 번 시도하면서도 결국 오르지 못하고 땅바닥에서만 맴돌 뿐이었다. 앗차!! 나는 깨달았습니다. 작은 구멍에서 고통하며 힘쓰면서 나와야 그 몸의 영양분을 날개 끝까지 공급하게 되고, 날개가 나올때 심하게 마찰되면서 날아 오를 만큼 강건해 진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시편기자는 이렇게 고백하지 않았던가? \"고난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말미암아 내가 주의 율례를 배우게 되었나이다. 아멘\"(시119:67,71).

그러므로 애매한 고난도 하나님의 의도를 생각하고 참으면 감사와 은혜의 가치를 가져다 줍니다. 본문에서 \'아름다우나\'에 해당하는 헬라어 τουτο γαρ χαριs는 \'왜냐하면 이러한 것은- 감사한 일이기 때문이다, 은혜이기 때문이다. 유익이 되기 때문이다\' 등의 의미입니다(For this [is] thankworthy -KJV, For this [finds] favor -NASB).

세계적으로 유명한 설교가 S박사가 한국에 와서 특별집회를 가지고 있는 동안에 그의 13살 난 딸이 오토바이 사고로 왼쪽다리를 절단하고 수술을 받고 있다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지금은 무릎 아래쪽만 잘라내었지만 상처가 심하여 다시 한번 절단수술을 해야 할지 모르며, 수술하는 동안에 여러번 맥박이 멈추고 숨이 멈추었으나, 계속적인 응급조치와 수혈로 생명은 건졌다는 것이었습니다. 비행기를 타고 미국 아이오와 주의 고향으로 돌아가는 동안에 그들 부부는 그 어린 딸의 절망하는 모습을 그리며 어떻게 위로할수 있을까 하는 생각으로 가득하였다. 아이오와에 도착하여 병원문에 들어설 때 그의 아내는 울고 있었으며, S박사는 그래도 하나님을 찬미할 수밖에 없지 않느냐는 생각 때문에. 마음에서는 진정으로 찬미하고픈 생각이 없었으나 억지로 \'할렐루야, 주님 홀로 영광을 받으소서\' 하는 기도를 드렸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예상과는 달리 뜻밖에도 S의 딸은 오히려 기쁨에 넘치는 표정으로 “안녕, 아빠! 안녕, 엄마!”하고 인사를 했습니다. “아빠, 엄마, 내가 왜 사고를 당해 다리를 자르게 되었는지 이제 깨달았어요. 하나님께서는 나와 같이 불구가 된 장애자들을 위해 일하게 하시려는 특별한 뜻을 가지고 계셨던 거예요.” 얼마 후 의사는 그들 부부에게 다시 한번 절단수술을 받아야 할지 모르니 딸을 잘 설득시켜달라는 부탁을 했습니다. S박사가 다시 절단수술을 받아야 될지도 모른다고 그의 딸에게 이야기하자, 그의 딸은 오히려 담대하게 다음과 같이 대답했습니다. “아빠, 걱정하지 말아요. 나의 다리를 더 많이 잘라낸다고 해도 하나님께서 나를 위해 가지고 계신 계획은 조금도 달라지지 않을 거에요.”

3. 예수님의 고난을 모본 삼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갖은 고난을 당했습니다. 물론 선을 행함으로 당하는 고난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행하기 위해 당하는 고난이었습니. 24-25절에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 저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나니- 너희가 전에는 양과 같이 길을 잃었더니 이제는 너희 영혼의 목자와 감독 되신 이에게 돌아왔느니라\"라고 했습니다. 그는 그 고난을 당할 때 항거하거나 대적하지 않았습니다. 핍박을 가하는 자들에 대해서는 오직 공의로 심판하시는 하나님게 부탁했습니다. 그리고 자신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한 자신의 길만 갔습니다. 22-23절에 \"저는 죄를 범치 아니하시고 그 입에 궤사도 없으시며- 욕을 받으시되 대신 욕하지 아니하시고 고난을 받으시되 위협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공의로 심판하시는 자에게 부탁하시며\"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그 고난으로 순종을 배워 온전케 되었습니다. 히브리서5:8-10에 그가 아들이시라도 받으신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워서- 온전하게 되었은즉 자기를 순종하는 모든 자에게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시고- 하나님께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은 대제사장이라 칭하심을 받았느니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당하는 고난이 비록 예수님이 당하는 고난 처럼 하나님의 뜻을 적극적으로 이루기 위한 고난이 아니라 할찌라도 예수님께서 고난을 승리적으로 통과했던 그 정신을 본받아야 하겠습니다. 우리가 당하는 애매한 고난 속에서도 하나님의 선하신 뜻이 이루어진다는 확신 아래 예수님의 고난에 동참하는 믿음으로(벧전4:13) 인내해야 합니다.

어느 교회 장로님이 광야 생활에서 쓴물이 단물로 변하는 놀라운 체험을 했습니다. 그 장로님은 다른 사람이 경영하던 공장을 인수받았는데 3년동안 계속 적자였다고 합니다. 그런데도 끈질기게 포기하지 않고 언젠가는 반드시 하나님이 은혜를 주실 것을 확신하며, 어려운 생활 속에서도 십일조 하는 것은 물론 주일성수까지 철저히 하였습니다. 어려움이 가슴을 짓누르면 공장에서 밤새도록 하나님께 부르짖었습니다. 그 결과 주변의 모든 공장들이 문을 닫았으나 그 장로님의 공장은 흑자를 내는 유일한 공장이 되었습니다. 그것을 본 주변 사람들은 “저 공장은 일요일도 쉬는데 이상하게 흑자를 내니 그 이유를 모르겠다”고 했습니다. 이 말에 대해 장로님은 “하나님께서 그동안 나에게 시련을 주셨고 3년 동안 나는 하나님 앞에서 믿음을 점검받았습니다. 이제 하나님은 놀라운 은혜를 베풀고 계십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와 같은 고난을 통하여 믿음을 키워주시고 교만해지거나 세상 쾌락에 빠지는 위험을 미리 막아주신 것입니다.

<結言>
우리는 애매한 고난이 있을 때 고난 속에서 오히려 큰 영적 유익을 얻을 수 있습니다 고난 당하지 않는 것보다 오히려 고난당하는 것이 유익이었다는 고백을 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당연히 오는 고난을 유익으로 바꾸시기 바랍니다(마5:10-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