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난에 대한 성도의 태도

고난에 대한 성도의 태도/벧전4:12-16

고난에 대한 성도의 태도/벧전4:12-16


이 주간은 고난주간 입니다. 예수님은 애굽에서 고통하던 이스라엘을 구원하기 위하여 대신 죽었던 유월절 양처럼, 바로 그 유월절날 십자가에 달려 죽으사 죄로 인하여 영원히 죽고 멸망할 우리 인류를 구원 하셨습니다. 주님은 당신이 당하신 고난을 통해서 우리들을 구원하신 것입니다.

우리는 고난을 싫어하고 피하지만 고난이 우리에게 무익하고 괴로운 것만은 아닙니다. 세상 사람들 모두가 영생을 원하지만 죽음이 있고, 선하게 살고 싶지만 죄악 속에서 살고 있고, 행복하게 살고 싶지만 눈물, 근심, 고통 등 불행 속에서 살고 있습니다. 인류는 고난을 벗어날 길이 없는 존재입니다.

독일의 철학자 라이프닛츠는 인간을 괴롭게 하는 해악이 셋이 있다고 했습니다. 하나는 인간의 유한성에서 오는 불행으로, 죽음, 무지 등의 형이상학적 해악이요, 둘째는 자연계와의 부조화에서 오는 고난으로 지진, 사고, 질병, 흉년 등 물리적 해악이며, 셋째는 인간의 죄악성에서 오는 것으로 죄, 수치, 근심 등의 도덕적 해악이 있다고 하였습니다. 석가모니나 쇼펜하우어 같은 사람은 생 자체가 해악이므로 이세상의 모든 존재를 부정해 버리고 떠나가는 것, 해탈하는 것으로만 고난을 해결할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그러나 인간이 이 세상을 떠난다 해도 세상에서 지은 죄에 대한 형벌의 고난은 벗어날 수 없다고 성경은 말씀했습니다.



그런데, 이런 고난에 대한 철학적 고찰이 불행의 원인을 찾는 데는 일조하지만 그 고난의 참된 원인과 해결책은 제시하지 못하고 있으며 고난의 유익에 대하여서도 말하지 못하였습니다. 고난은 인간의 죄악 때문에 온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어떤 고난은 죄로 인하여 상하고 그릇 행하는 인간에게 크나큰 유익을 주기도 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성경이 가르치는 고난관은 어떤 것인가? 그리고 참다운 신앙을 가지고 있는 성도가 고난을 만날 때, 어떤 태도를 취하여야 하는가? 그것을 이 고난주간에 생각합시다.

고난에는 크게 나누면 두 가지 종류가 있습니다.



1. 죄의 삯으로 당하는 고난이 있습니다.

고난의 근원적인 원인은 인간의 죄악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범죄하고 타락하기 전에는 이 세상에 고난이 아예 없었고, 모든 환경은 완전히 선했고 아름다웠습니다.

그래서 본문 15절에는 이런 고난을 당하지 말아야 한다고 말씀합니다. \"너희 중에 누구든지 살인이나 도적질이나 악행이나 남의 일을 간섭하는 자로 고난을 받지 말려니와\" 라고 하였습니다. 남의 개꼬리를 잡아당기면, 개에게 물리는 것이 당연하듯이 죄를 지으면 그 죄 값으로 막대한 고통을 당하게 됩니다. 그런 고통은 백해무익한 것입니다.



아나니아와 삽비라는 하나님의 성령을 속이고 거짓말을 하다가 내외가 한날에 즉사하였고 다윗의 밧세바취한 범죄는, 그 가문에 칼이 떠나지 않게 되었습니다. 아간의 범죄는 이스라엘 전 국민으로 크나큰 고통과 대가를 치르게 했고, 열 정탐꾼의 불 신앙적 주장은 이스라엘로 40년의 고통과 죽음을 가져왔으며, 아담과 하와의 불순종의 죄악은 인류 전체에게 죽음과 고통을 물려주었습니다.



우리 중에 \"내가 지금 너무 큰 고통을 당한다\" 고 생각하는 성도들이 있습니까?

혹시 내가 저지른 죄악 때문에 당하는 고난이 아닌지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사업의 부진으로 인한 고통, 소외로 인한 고통, 질병으로 인한 고통, 이러한 고난들을 겪게 될 때에 그것은 종종 자신이 저지른 죄악이 자신에게로 되돌아온 경우가 많습니다. 그렇다고 깨달았다면, 속히 자기의 죄를 하나님 앞에 솔직히 내어놓고 회개해서 용서를 받아야 하고 하나님이 기대하시는 바른 생활을 하여서 하나님의 채찍으로부터 벗어나야 합니다.

하나님의 사랑도 알만큼 알고 하나님의 채찍도 맞을 만큼 맞은 성도가 아직도 깨달음이 없어서 계속하여 어리석은 죄를 짓고 고통을 당하고 있다면 자신에게는 불행한일이요 하나님도 안타까워하시지 않겠습니까?

고난중에 있습니까? 마음이 너무 복잡해서 교회에 와서 예배는 드려도 마음이 가눌 길이 없을 정도로 답답한 일을 만나셨습니까? 사람들을 괴롭히는 모든 고난의 원인은 죄라는 것이 성경의 첫째공식 입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고난을 당할 때에는 부지런히 죄를 찾아내어 회개하여야 합니다. 회개하지 않으면 하나님은 일곱 배나 굵은 매로 징계하십니다.



예수님의 은혜로 구원받고 천국을 향하여 나아가는 성도가 또다시 죄를 짓는 일로 인하여 고통을 당하고 세월과 정력을 낭비하지 말아야합니다. 이 고난주간에 나를 위하여 대신 죽음을 당하신 주님 앞에서, 지금도내가 죄를 버리지 못하여 고난당하며 십자가에 달리셨던 주님을 지금도 마음 아프게 하지는 않는지 살펴보고, 고난을 몰고 오는 숨은 죄악을 찾아내어 버리는 일에 힘쓰는 이 한주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2. 의를 이루기 위한 고난이 있습니다.

예수님이 당하신 고난은 의를 이루는 고난의 가장 대표적인 예 입니다.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 이 땅에 인간이 되어 오신 이유는 사단에게 매여 사단이 씌워주는 죄의 그물에 얽혀 살면서 그 죄 값으로 당하는 고생을 지긋지긋하게 당하고 결국 지옥으로 가는 인생들을 살려주려고 오셨습니다. 죄인을 살리는 비결은, 사람들이 죄를 지어서 당할 고난, 형벌, 죽음을 대신 당하여 죄의 형벌을 없애주는 방법이었습니다. 예수님은 바로 그 일을 하려고 고난을 당하셨고 십자가에 죽으셨습니다.

그 일이 얼마나 고통스러웠느냐 하면, 예수님께서 하나님이요 왕이신데도 종의 모양을 입고 죽기까지 복종하셨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 과정에서 주님은 십자가를 지셨는데, 십자가는 로마나라에서 가장 극악무도한 죄인을 죽이는 사형 틀이었습니다. 예수님이 당하신 그 형벌은 우리가 당해야 할 것이었기에, 예수님에게는 그게 너무 치욕이었습니다.

그래서 전날 밤에 성만찬을 행하며 당신이 우리들을 위해 대신 죽으실 것을 약속 하시고서도, 겟세마네 동산에 올라가서 밤새워 기도하실 때에는 “할 수만 있으면 이 잔을 내게서 옮겨 달라”고 애원도 하셨던 것입니다. 그러나 결국 하나님께서 다른 길을 주시지 않으시니 내 뜻대로 마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되기를 원한다고 자기의 소원을 포기하시고 계획한 대로 십자가에 죽는 길을 택하셨으며, 예수님이 그 길을 가시는 동안, 하나님은 예수님을 당신의 아들로 보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거역한 인생들의 대표로 보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외면하셨습니다. 그 외면하신 증거로 하늘의 태양도 세 시간동안이나 빛을 잃었습니다. 그때 예수님은 그 고통, 그 부끄러움, 그 대접을 받는 것이 너무 힘들어서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라고 본의 아니게 절규하셨던 것입니다.

그가 그렇게 고난을 대신 당해 주심으로서, 우리가 그의 공로로 구원을 받았고, 그가 잠시 버림을 받아주신 덕택에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로 받아들여지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라고 분명히 설명해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고난은, 전적으로 의를 이루기 위한 고난이었습니다.



잘 사는 나라에서 살던 사람이 가난한 나라에 선교사로 나아가서 생활하는 것도 힘들고 고생스러운 일입니다. 그러나 사람이 사는 곳에 사람이 가는 일입니다 마는, 예수님은 하늘나라에서 인간 세상에 오셔서, 자기가 짓지 않은 죄, 우리가 지은 죄의 형벌을 짊어지고 사면하기 위한 고난을 받으셨습니다. 우리주님이 그 고통을 대신하지 않으셨다면 우리들에게는 죄 사함과 구원과 영생의 선물을 받을 수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당하신 고난은 의를 위한 고난이며, 값지고 고귀한 고난입니다. 그런데 이런 고난이 인생에게도 있습니다. 그걸 알아야 합니다.

성도가 예수의를 믿어 죄 사함을 받고 이제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자고 결심하고서 최선을 다하여 하나님의 뜻을 이루고자 하는 데도 불구하고, 고난이 끊이지 않고 시련을 당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런 고난도 의를 이루는 고난인 경우가 많습니다.



욥이 당한 고난도 그런 종류였습니다. 하나님은 욥이 당하는 시련을 통해서 참된 신앙이란 환경에 얽매이지 않는 신앙이라는 것을 드러내려 하셨으며, 또한 어떤 고난들은 고난을 견디고 감당한자를 정금 같은 신앙이 되도록, 다듬어주는연단의 도구가 되기도 한다는 사실을 보여주셨습니다. 수많은 선교사들이 일신의 불편과 고통을 마다하지 않고 고통스러운 선교지에 찾아가서 가장 낮은 자세로 살아가면서 자신을 드려 봉사하며 삽니다. 그들의 고난과 수고로 말미암아 수많은 영혼들이 구원을 받고 천국을 향하여 가고 있습니다. 이런 모든 고난들은 의를 이루기 위한 고난입니다. 성도들은 고난을 당하려면 이런 고난을 당해야 됩니다. 그리고 우리가 살다가 그런 \"의를 이루기 위한 고난\"을 당하게 되었다면, 당연한 것으로 받아 들여야 합니다.

본문은 그런 고난을 당했을 때의 태도를 이렇게 가르쳐 줍니다.

너희를 시련하고 오는 불 시험을 이상히 여기지 말라 -12  

너희가 그리스도인으로 고난 받은즉 부끄러워 말라 -16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동참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 -13

도리어 그 이름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 16



\"이상히 여기지 말고, 부끄러워하지도 말고, 도리어 즐거워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이것이 택함 받은 성도들이 가져야 할 고난에 대한 태도며, 바른 생활을 하다가 고난을 받을 때 취해야 될 태도라는 것입니다. 왜 그렇게 해야 합니까?

\"그의 영광을 나타내실 때에 너희도 기뻐하고 즐거워 하게하려 함이라\" 라는 것입니다.



\"그의 영광을 나타내실 때\" 라는 말씀은 어떤 때를 두고 하시는 말씀입니까?

근본적으로는 예수님의 재림시를 두고 말합니다. 만왕의 왕으로 심판주로서 재림하시는 그날의 영광은 우리가 상상 못할 것입니다. 그날에 주님도 영광스러우시지만 주님과 함께 하나님나라 건설위하여 힘써 복음의 증인 노릇을 하다가 고난을 당한 성도들이 주님과 함께 영광을 누릴 것입니다. 그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주를 위해 고난도 당한 성도가 주님이 재림하시는 날에 얻게 될 그날의 영광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힘이 들지라도 그 영광스런 날을 위하여 힘써 말씀대로 살며 인내의 삶을 살아야 하겠습니다.



그러나 \"그의 영광을 나타내실 때\" 를 달리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고난을 받던 사람이 회개하고 죄를 끊어버리고 돌아오거나, 연단을 받던 성도가 연단을 굳건히 견디고 나서 마침내 그 \"시련이 끝났을 때\", 하나님은 그를 영광스럽게 하여주십니다. 축복하십니다. 그러면, 고난을 이겨낸 성도만 아니라 그를 연단하신 하나님도 영광을 받으십니다. 그러므로 이 말씀은 \"하나님의 연단이 끝나고 하나님께서 의도 하신 축복을 주시기 시작하셨을 때\" 라고 해석할 수 도 있습니다.



고난을 당하던 사람이, 그 고난 속에서 깨달은 것이 있어서 하나님께로 돌아와 회개하고 은혜의 하나님께 의지하고 바른 신앙을 가지면, 하나님은 그에게 축복 하십니다.

또한 모진 연단을 받던 성도가 그 고난을 견디고 견고하게 서면, 하나님은 그에게 놀라운 사랑을 붓기 시작합니다. 그러면 그 고난과 절망 가운데서 견뎌내고 성공한 것이 하나님의 은혜인 것이 드러나서 하나님께 영광이 됩니다. 우리는 오늘의 고난을 통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낼 때가 있다는 것을 믿고 흔들리지 말아야 합니다. 그리고 고난을 당했을때,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돌이켜서, 고난을 감당한 후에 찾아오는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실  날\" 을 만들어 나아가는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오늘의 고난을 바탕으로 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본문12절은 \"너희를 시련하려고 오는 불 시험을 이상히 여기지 말라\" 고 말씀하십니다.

고난은 하나님이 내게 주시려고 작정 하셨으나, 나의 죄악 때문에 유보하셨던 축복을 받을 자격을 갖춰주는 도구가 된다고 강조 합니다. 고난을 통하여 주님을 만나고 자신의 죄악과 교만과 어리석음을 돌이키고 주님의 능력을 의지하면 틀림없이 복을 받게 됩니다.

고난을 견디고 순종한 후에 복을 받은 이들의 실례들...

채찍 맞고서 깨달은 후에 복을 받은 이들의 실례들...

실패 속에서 예수 만나고 복을 받은 이들의 실례들...

질병 속에서 항복하고서 복을 받은 이들의 실례들... 얼마든지 많습니다! 여러분은 그런 실례들을 주변에서 찾아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고난을 축복으로 알고 감수하시기 바랍니다.



사업에 실패한 사람들이 하나님께 돌아와서 말씀을 받고 순종하여 새로운 자세로 살아서 하나님께서 그의 영광을 나타내실 때를 맞이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오랜 질병을 앓는 사람들이 고난을 인내하며 나를 위해서 생 살을 찢기신 주님의 고난을 이해하는 기회가 되다가,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실 때를 맞이 하시를 바랍니다.

물질로 인해 고통하던 사람이 고난 속에서 주님의 뜻을 깨닫고 겸손하고 성실하게 다시 일어선 뒤에, \"이것은 주님이 주신 것이니 주를 위해 사용 하겠습니다\" 라면서 봉사와 구제와 선교를 위하여 마음껏 물질을 드릴 수 있는 사람들이 많이 나오기를 바랍니다.

절망을 경험한 사람들이 고난 통해서 연단을 받으면서 사랑의 주님을 만나게 하시고

이제는 주님 말씀의 약속을 희망삼아서 살아가 는 인생의 승리자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그들의 입으로 고백하기를, “나에게 닥쳐왔던 그 고난이 오히려 나에게 복이 되고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기회가 되었다”고 고백하며, 고난의 매로 자신의 방향을 바꾸어주신 하나님께 찬미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이유를 모르는 고난속에서 몸부림치던 사람들이 고난을 통하여 사랑의 하나님을 발견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실 때\" 를 만나서 감사하며 즐거워하게 하소서.



고난은 겉보기와는 달리 아름다운 열매들을 맺는 나무입니다. 고난의 결과가 이렇게 아름다울진대 어찌 고난을 재앙으로만 여기며 고난을 두려워하고 외면하려고만 합니까?



고난은 의를 이루며 지혜를 가져다주며 사람을 사람 되게 하는 하나님의 위대한 도구이며, 성도들의 변함없는 친구입니다. 그러므로 고난 중에 있는 성도님들은, 고난을 나에게 보내시고, 그것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실 때\" 를 만들어 주실 선하신 주님을 찬양하면서, 이 한 주간 동안은 나에게 있는 고난을 돌아보며 고통의 근본 원인은 찾아내어 버릴 것은 버리고 붙들 것은 붙들며 인내할 것은 인내하면서 주님을 따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주님이 당하셨던 고난의 의미를 깊이 새기는 보람 있는 한 주간을 보내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