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성하신 예수 그리스도 마21:10-11
고난주간이 시작되는 종려주일을 맞게 되었습니다. 종려주일(Palm Sunday)은 예수에서 예루살렘으로 승리의 입성을 하셨을 때 군중이 자기들의 겉옷을 길에 펴고 종려나무 가지를 베어 펴면서 \"호산 나 다윗의 자손이여\"하고 환호성을 울리던 사실을 기념하는 주일입니다 지금도 해마다 종려주일이 되면 벳바게라고 하는 작은 마음에서 예수 믿 는 사람들이 모여서 거기서부터 종려나무 가지를 손에 들고 호산나 찬송 을 부르면서 감람산을 넘고 기드론 시내를 건너서 예루살렘 성으로 들어가 는 행사가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신 골고다가 있는 곳에는 예수님의 시 신을 모셨던 곳에 세워진 기념교회가 있는데 거기까지 가서 하나님께 예배 드리고 있다고도 합니다. 성경을 보면 복음서의 기자들은 한결같이 예수님의 승리적인 예루살렘 입 성을 기록하고 있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유대인의 큰 명절인 유월절에 예수님의 제자들뿐만 아니라 수많은 사람들 이 유월절을 지키기 위해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갈보리에 계시다가 여리고를 거쳐 베다니 마을에 이르게 되었습 니다. 그리고 벳바게라고 하는 마을에 가시기 전에 두 제자를 보내시면서 맞은편 마을에 가서 어린 나귀를 구하여 오도록 하셨습니다. 그때 예수님을 따라서 함께 가고 있던 여러 제자들과 많은 사람들은 나뭇 가지를 꺾어 땅에 펴며 옷을 벗어 길에 깔고 어린아이들은 종려나무가지 를 꺾어 들고 소리쳤습니다.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 찬송하리로다. 주 의 이름으로 오시는 왕이여\" 이렇게 예수님이 예루살렘성에 입성하시는 것 을 대대적으로 환영했습니다. 예수님은 어린 나귀를 타시고 벳바게라고 하는 마을에서 예루살렘성에 입 성하시게 되신 것입니다.
많은 무리의 환영 속에 입성하십니다
무리의 대부분은 그 겉옷을 길에 펴며 다른 이는 나뭇가지를 베어 길에 펴고 (마 21:8)앞에서 가고 뒤에서 따르는 무리가 소리질러 가로되 호산 나 다윗의 자손이여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가장 높은 곳에서 호산나 하더라 (마 21:9)
무리의 대부분(호 데플레이스토스 오클로스)은 \'아주 많은 무리들\'입니 다. 예수님의 앞에서 가고 또 뒤에서 따라가고 있습니다. 그 이튿날에는 명절에 온 큰 무리가 예수께서 예루살렘으로 오신다 함을 듣고 (요 12:12)종려나무 가지를 가지고 맞으러 나가 외치되 호산나 찬송 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 곧 이스라엘의 왕이시여 하더라 (요 12:13)한 말씀을 보면 예루살렘으로부터 무리가 예수를 맞으러 나왔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갈릴리에서부터 예수를 따라 예루살렘 순례의 길을 나선 무리들과 예루살렘 주민들로 구분될 수 있는 두 무리들이 모여 환호의 물결을 이루었으며 또한 이들은 메시야를 대망하는 열정이 가장 고 조된 상태에서 예수를 맞이하였을 것입니다. 예루살렘에서 유월절을 보내기 위하여 순례의 길을 떠나온 종교적인 열망 이 가득찬 이 무리들은 입성하시는 예수님을 그들이 고대하던 메시야, 곧 로마의 압제에서 해방시켜줄 정치적 메시야로 정권을 잡을 통치자로서 환 영하였던 것으로 이해합니다. 예수님이 탄생하실 때는 천군 천사와 박사와 목자가 환영하였지만 세상 을 떠나실 때는 어린아이와(마21:16) 제자들과 수많은 군중들이 환영하였 습니다. 주님이 천사장의 나팔소리와 함께 천군 천사들과 재림하실 때, 택함 받 은 성도 중에서 기름 준비한 다섯 처녀처럼 준비된 성도들의 환영 속에서 오실 것입니다. 준비된 자는 \"아멘 주 예수여 어서 오시옵소서\"(계 22 : 20)하고 영접하 며 환영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지 못한 자들은 \"산아 날 가리워라 언덕 아 내 위에 무너지라\"하며 이를 갈며 탄식할 것입니다. 우리의 믿음은 뜨겁게, 생활은 경건하게, 사명은 즐겁게 할 수 있도록 주님이 입성하게 해야 합니다. 가난한 심령에 부요로, 병든 심령에 치유하시는 의사로, 약한 심령에게 강하심으로 입성하시게 해야 합니다. 우리를 위하여 입성하신 주님을 기억하며 성령을 통한 그리스도의 입성 을 맞이하여, \"그는 나로 더불어 나는 그로 더불어 먹고 마시는\" 평화와 복락을 누리는 모두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겉옷을 벗어 드리는 가운데 입성하십니다
자기들의 겉옷을 그 위에 걸쳐 두매 예수께서 타시니 (막 11:7)많은 사람 은 자기 겉옷과 다른 이들은 밭에서 벤 나뭇가지를 길에 펴며 (막 11:8)라 고 합니다 제자들은 자기들의 겉옷을 나귀등에 걸쳐 안장을 대신했습니다. 겉옷을 나귀에 얹어 놓는 것은 나귀를 탈 사람에게 대한 엄청난 경의와 순종의 태 도를 보이는 것입니다 겉옷을 길에 편 것은 예수를 왕으로 영접한다고 하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할 것입니다.
아프리카의 구세주요 세계의 성자인 슈바이쳐 박사는 열 살 때 활을 쏘 아 짐승과 새 종류를 잡다가 고난주간에 들리는 교회 종소리에 감동을 받 아 십계명 중 제6계명인 \"살인하지 말라!\" \"흑인을 구하라! 아프리카는 구 라파 문전에 있는 나사로다!\" 라는 기도의 감동을 따라 그의 일생을 흑인 을 위해 불살랐다고 합니다.
에덴동산의 하나님의 율법은 아담과 하와의 양심의 거울이요, 베들레헴 의 주님의 탄생은 사망에 떨고 있는 인생들에게 기쁜 소식이요, 주님의 죽 으심과 부활의 소식은 사망에서 생명으로 이끄는 능력의 역사요, 예수님 의 재림은 천국건설에 최후 마감인 것입니다. 겉옷을 드린 제자들과 무리들처럼 이 땅 위에서 부름 받은 성도들은 종려 주일에 최대의 소망인 동시에 은혜 받을 기회로 삼고 부활의 주님을 맞이 하기 위해 정성껏 준비하고 헌신하며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정성껏 기도 하고, 성경 읽으며, 금식하고, 철야하며, 최선을 다하여야 합니다. 그리 고 이 정성을 부활절 헌금으로 나타내어 모든 사람에게 구원의 빛을 전해 주어야 하겠습니다.
종려나무로 환영하는 가운데 입성합니다
종려나무 가지를 가지고 맞으러 나가 외치되 호산나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 곧 이스라엘의 왕이시여 하더라 (요 12:13) 예루살렘에 가까이 옴에 따라 예수를 옹위하는 무리들의 감정도 점차 고 조되어 가지를 밟고 지나가는 것에 따라 사람들은 계속해서 다른 나무에 서 가지들을 꺾고 그것들을 자꾸 길에 깔아놓으며 환영합니다. 종려나무는 그리스도의 승리와 악마를 대적하는 상징물로써 축복의 나무 가 되고 있으며, 중세에 와서는 이 행진이 한 교회에까지 가는 풍습이 되 었는데, 종려나무를 축복하고 분배해 주면서 교회로 돌아왔다고 합니다. 승리를 상징하는 종려 나뭇가지를 길에 펴거나 손에 들고 흔드는 것도 왕 을 영접하는 고대의식중의 하나였습니다. 종려나무는 상당히 크게 자라며, 꼭대기에만 잎이 나서 투구 모양이 되 고, 대추와 같은 열매를 맺으며, 애굽과 이스라엘에 많이 있고, 신성한 나 무로 평화를 상징합니다 그들이 엘림에 이르니 거기 물 샘 열둘과 종려 칠십 주가 있는지라 거기 서 그들이 그 물 곁에 장막을 치니라 (출 15:27) 종국적인 영광과도 결부되고 있습니다 이 일 후에 내가 보니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에서 아무라도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가 흰 옷을 입고 손에 종려가지를 들고 보좌 앞과 어 린 양 앞에 서서 (계 7:9)큰 소리로 외쳐 가로되 구원하심이 보좌에 앉으 신 우리 하나님과 어린 양에게 있도다 하니 (계 7:10)모든 천사가 보좌와 장로들과 네 생물의 주위에 섰다가 보좌 앞에 엎드려 얼굴을 대고 하나님 께 경배하여 (계 7:11)가로되 아멘 찬송과 영광과 지혜와 감사와 존귀와 능력과 힘이 우리 하나님께 세세토록 있을지로다 아멘 하더라 (계 7:12) 고 우리도 왕 되신 주님께 영광 돌리되 모든 여건 환경 속에서 주님을 주님 되게 해야 합니다
남편 엘리옷을 뒤따라서 남미의 아우카 인디언 들에게 가서 선교하던 엘 리자베스 엘리옷은 이런 절망적인 사건을 이야기한 적이 있다. 그녀는 매 일 아침마다 인근 지역에서 보내는 전파를 받아서 종합하여 소식을 전달하 는 일을 맡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엘리자베스는 충격적인 소식을 받았다. 엘리옷이 선교하 는 인디언 지역에 대홍수가 나서 지역은 물바다가 되었으며 일 년 동안 모 든 노력을 다하여 거의 완성 단계에 있던 선교 센터가 송두리째 홍수에 밀 려가 버렸다는 것이다. 엘리자베스는 엘리옷이 일 년 동안 이 선교 센터 를 짓기 위해 얼마나 동분서주하며 땀과 눈물을 흘렸는지를 잘 알고 있었 다. 이제 그 모든 노력의 결실이 눈앞에 있었으나 송두리째 물에 휩쓸려버 렸던 것이다. 엘리자베스는 이 전보를 받고는 너무나 어처구니없어서 하나 님께 부르짖었다. \"하나님. 도대체 무엇 때문입니까. 엘리옷이 무엇을 잘 못했습니까. 하나님. 이해할 수 있게 가르쳐주시옵소서.\" 얼마 후 엘리자 베스는 엘리옷으로부터 편지를 받았다. 그 편지에는 홍수에 떠내려가는. 피나던 노력의 열매인 선교 센터를 보면 서 그가 얼마나 허탈에 빠져 있었는지를 적었다. 그런데 엘리옷은 이렇게 그 편지를 마치고 있었다. 내가 절망의 눈으로 도도히 흘러가는 홍수의 파 괴를 보고 있을 때 흐르는 물결과 함께 주님의 음성이 들려 왔다. 엘리옷 아 이런 때에라도 나를 믿을 수 있느냐 그때 내 심령이 열리며 나는 감격 하여 무릎을 꿇었다. 주여. 내가 믿나이다. 주님은 하나님이십니다(하나님 을 하나님 되게 하라)
어떠한 경우에도 주님만 바라보며 의지하며 주님이 하나님이심을 믿고 함 께 하는 모두가 되어야 합니다
호산나 찬송 속에 입성하십니다.
호산나(Hosannas)는 히브리어 \'호시안나\'(Hosianna)라는 말을 헬라적 표 현으로 발음한 것인데, 본 뜻은 \'이제 우리를 구원하소서\' 또는 \"아무쪼 록 구원해 주십시오\"라는 기도입니다. \"여호와여, 구하옵나니 이제 구원하소서\"(시118:25)에서 기원한 말씀으 로 이해합니다. 그런데 이 말씀이 구약 후기와 초대교회에 와서 메시야 소 망과 결부되어 여호와의 이름으로 오는 사람을 메시야로 이해했습니다. 신약성경 가운데 여러 번 사용하였는데,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실 때에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 가장 높은 곳에서 호산나\"(마21:9, 막 11:10)라고 하였으며, \"호산나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 여\"(요12:13, 막11:9)라고 하여 역시 환호의 소리로 사용하였습니다. 백성들이 호산나를 외친 것은 높은 곳에 계신 하나님을 불러 내려오시게 하는 것입니다. 메시야를 통하여 조상 다윗의 나라가 임한다고 합니다. 앞에서 가고 뒤에서 따르는 자들이 소리지르되 호산나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막 11:9)찬송하리로다 오는 우리 조상 다윗의 나라 여 가장 높은 곳에서 호산나 하더라 (막 11:10)고 합니다 이스라엘의 왕이시라고 합니다, 종려나무 가지를 가지고 맞으러 나가 외치되 호산나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 름으로 오시는 이 곧 이스라엘의 왕이시여 하더라 (요 12:13)고 합니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왕이라고 합니다 기뻐하며 큰 소리로 하나님을 찬양하여 가로되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 으로 오시는 왕이여 하늘에는 평화요 가장 높은 곳에는 영광이로다(눅 19:37) 고 큰 소리로 외쳤다고 했습니다.
바리새인들이 예수님께 찬양하는 제자들을 책망하라고 하니까, \"만일 이 사람들이 잠잠하면 돌들이 소리지르리라\"고 하셨으니 마땅히 해야 할 찬양 이라는 말씀인 줄 믿습니다.
호산나 찬송은 군중들의 소리이자 하나님의 소리입니다. 제자들과 군중들은 남녀노소 구별 없이 소리칩니다. 주님께서 평화의 왕이심을 온 세상에 선포하는 엄숙한 외칩입니다. 예수 님의 3년간에 공생활에 마무리를 하는 엄숙한 시간을 알리는 외칩입니다. 십자가의 구속사업을 위해서 예루살렘에 마지막 입성하심을 알리는 외침입 니다.
엄청난 과업을 가지고 입성하신 주님이시지만, 하나의 역사적인 사건으로 만 끝나면 이 종려주일은 우리와 아무 관련도 없습니다. 주님은 지금 성령을 통하여 우리의 마음 문을 열고 입성하시는 주님을 맞 아야 합니다. 계3:20에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 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고 하십니다. 우리의 심령의 문을 열고 우리도 소리 지르며 \"호산나 찬송하리로다 주 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찬송하리로다\"하고 외쳐야 합니다.
나귀를 타고 입성하십니다.
나귀와 나귀 새끼를 끌고 와서 자기들의 겉옷을 그 위에 얹으매 예수께 서 그 위에 타시니 (마 21:7)라고 합니다 이는 시온 딸에게 이르기를 네 왕이 네게 임하나니 그는 겸손하여 나귀, 곧 멍에 메는 짐승의 새끼를 탔도다 하라 하였느니라 (마 21:5)하신 말씀 의 성취라고 합니다 멍에 메는 짐승의 새끼(휘포쥐기온)는 \'짐을 나르는 짐승\'을 의미하는데 팔레스틴에서는 보통 나귀(donkey)가 그 역할을 담당했다고 합니다. 전반부는 이사야 62:11를, 후반부는 슥 9:9에서 인용한 것으로 봅니다. 여호와께서 땅 끝까지 반포하시되 너희는 딸 시온에게 이르라 보라 네 구 원이 임하느니라 보라 상급이 그에게 있고 보응이 그 앞에 있느니라 하셨 느니라 (사 62:11)하신 구원 선포에 의하면 구원자는 마치 개선장군이나 정복군주 또는 강력한 통치자의 모습으로 승리의 개가가 울려 퍼지는 가운 데서 입성하고 있습니다. 시온의 딸아 크게 기뻐할지어다 예루살렘의 딸아 즐거이 부를지어다 보 라 네 왕이 네게 임하나니 그는 공의로우며 구원을 베풀며 겸손하여서 나 귀를 타나니 나귀의 작은 것 곧 나귀새끼니라 (슥 9:9)는 메시야는 평강 의 왕으로, 온 세상에 평화를 선포하시기 위하여 겸손히 입성하심을 보입 니다. 예수께서 이스라엘의 사사들과 평화를 전하는 전령들이 사용하던 짐승인 나귀(삿 5:10;10:4)를 타고 오신다고 표현함으로써 예수가 모든 피조물들 의 고대하던 진정한 구주이며 평화를 주시는 분이심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막 11:2에는 \'아무 사람도 타보지 않은\'으로 되어 그 순결성과 순수성이 강조되고 있으나 마태는 그 나귀가 아직 멍에를 메고 있지는 않으나 곧 무 거운 짐을 메야 할 것임을 부각시키고 있습니다. 따라서 나귀는 평화와 고난을 동시에 상징하는 짐승으로 그리스도의 십자 가의 수난을 예표하며, 상징하고 있습니다. 자신의 고난을 통해서 사람들에게 하나님과의 화평의 길을 열어 주시려 고 예루살렘에 입성하시는 예수의 모습은 멍에를 메야 할 나귀와 참으로 유사하다 할 것입니다.
빛이 없는 도성, 사랑이 없는 백성들, 죄악이 관영하여 저주와 죽음만 남 은 인생들에게 우리 주님은 십자가를 향하여 입성하고 계신 것입니다. 그것은 저주와 죽음과 심판만이 남은 백성에게, 생명과 부활과 영생을 주 시려고 어린 나귀에 실리여 입성하고 계신 것입니다. 인간의 생명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자신의 생명을 버리시려고 입성하고 있 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생존해 계신 동안에 예루살렘에 몇 차례 올라가셨습니다. 출 생 40일 만에 결례를 행하시기 위하여(눅2:22) 12살 때에 유월절을 지키시 기 위하여(눅2:42) 첫 번째 유월절에 올라가서 성전 숙정하셨고(요2:13) 두 번째 유월절에 앉은뱅이를 일으키셨고(요5:1-9) 장막절에 올라가서 간 음한 여인과 소경을 구원하셨고(요7:2, 요8:1-11, 요9:1-7) 수전절에 올라 가셨고(요10:22) 이제 고난 받으시기 위해 올라가십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 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요 12\'24)고 하신 희 생적인 말씀을 남기시고 십자가에 죽음을 통한 구속사업에 완성을 향하여 예루살렘으로 입성하시던 날입니다. \"나는 이스라엘에 잃어버린 양을 찾으러 왔노라 나는 선한 목자라 선한 목 자는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노라\"하신 우리 주님은 길 잃어버린 인생의 목자 장으로서 죽음을 향하여 예루살렘에 담대하게 입성하셨습니다.
빌라도의 처 클라우디야의 편지가 라틴어로 된 것을 고전 영어로 번역된 것이 지금도 보관되어 있다 합니다. 그 내용은 \"나는 예수를 정죄한 자의 아내\"란 제목의 편지로 빌라도의 아들 \"필로\"가 발에 마른병(지금의 소아 마비)으로 고생하는 것을 예수님께 와서 고침을 받고 남편 빌라도를 회개 시키려 했으나 그는 고전 철학주의로 흘러 실패하고 클라우디야만 회개하 고 주께로 돌아왔다고 한다는 것입니다. 이 사건을 보아 하나님은 어떤 큰 죄인이라도 주께로 돌아만 오면 용서 를 하고, 구원을 주시며 건강과 축복주심을 알 수가 있습니다.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주님 지금 우리 속에도 입성하여야 합니다. 종려 주일에 주님이 내 심령 속에와, 가정과, 일터와, 교회와, 국가 속 에 평화의 왕으로 승리의 왕으로 입성하시게 해야 합니다. 우리의 가정과 일터 위에도 입성하셔야 합니다.
주님은 예루살렘에 입성하시어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고 만 것이 아니라 지금도 살아 계시며 계속적으로 우리 안에 입성하고 계시며 또 입성하시기 를 원하고 계십니다.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함께 있으리라\"(마 28: 20).
주님이 우리 마음에 입성하시도록 문을 열어야 합니다. 주님께서 지금 우리의 가난과 절망과 질병의 문을 활짝 열고, 평화와 부요 와 건강의 소식을 가지고 입성하시도록 하는 종려 주일 되시기 바랍니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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