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귀를 타신왕 예수

나귀를 타신 왕 예수/마21:1-11

나귀를 타신 왕 예수
마21:1-11





오늘은 전 세계 교회들이 함께 지키는 종려 주일입니다. 예수님께서 나귀를 타시고 예루살렘에 입성하실 때, 많은 사람들이 자기들의 걷 옷을 길에 펴고 종려나무 가지를 베어 흔들면서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 찬송하리로다”하고 예수님을 왕으로 오신 것을 환영하였기 때문에 종려 주일이라고 부릅니다. 그래서 영어로는 ‘Palm Sunday’라고 부릅니다. 그리고, 부활주일을 한 주일 앞두고 고난 주간이 시작되는 주일 입니다.

그러면 이 세상에 왕으로 오신 것을 공식적으로 선포하시는 예루살렘의 입성에서 예수님은 왜 하필이면 나귀를 타셨을까요?

첫째로, 예수님은 겸손한 왕으로 오셨기 때문입니다.

본문 5절로 7절의 말씀은 구약의 스가랴 9절과 10절의 말씀에 나오는 예언의 말씀입니다. “시온 딸에게 이르기를 네 왕이 네게 임하나니 그는 겸손하여 나귀, 곧 멍에 메는 짐승의 아기를 탔도다 하라 하였느니라 제자들이 가서 예수의 명하신 대로 하여 나귀와 나귀를 끌고 와서 자기들의 겉옷을 그 위에 얹으매 예수께서 그 위에 타시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겸손하여 나귀를 타시고 겸손한 왕으로 오셨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예수님의 생애를 보면, 한마디로 겸손의 생애였습니다. 예수님은 거룩하신 하나님의 아들이지만 피조물인 인간의 육신을 입기까지 겸손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베들레헴 작은 마을의 비천한 마구간에서 탄생하였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조그마한 나사렛 마을에서 겸손하게 부모님께 순종하며 자랐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하나님이시지만, 세례 요한에게 겸손하게 요단강에서 세례를 받으셨습니다. 그리고, 12 제자를 삼으시고, 그 제자들을 섬기는 종의 겸손한 삶을 사시다가 마지막 제자들과의 만찬회에서는 친히 모든 제자들의 발을 씻겨 주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마지막 십자가에서 고난과 모욕을 당하시며 겸손하게 죽기까지 하나님의 뜻에 복종하신 것 입니다.

빌립보서 2장 6절로 8절에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의 죽으심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 보다 더 겸손하게 이 세상을 살아간 사람이 없었습니다. 또한 예수님 보다 더 위대한 생애를 살아간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 나귀를 타고 입성하신 것은 곧 예수님의 겸손한 생애를 단번에 보여 주신 것 입니다.

우리는 겸손한 왕되신 예수님의 삶을 본받아야 하겠습니다. 그리스도인의 겸손에는 세가지 특징이 있습니다.

첫째는 겸손은 부족한 것을 솔직하게 인정하는 것입니다

겸손이 성공의 첫 걸음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자기의 부족을 알고 알고 겸손하게 하나님께 기도하며 지혜를 얻는 자가 삶에 성공하는 것 입니다.

미국의 땅콩 농사법을 개발한 죠지 카버가 “하나님, 저에게 우주의 비밀을 가르쳐 주옵소서” 라고 기도하였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 지식은 나만이 가지고 있다” 라고 마음에 응답을 주었습니다. 다시 카버는 “하나님, 그러면 땅콩을 잘 농사지을 수 있는 비밀만이라도 가르쳐 주셔요.” 라고 기도하였을 때 하나님은 “그래 죠지야. 그 정도는 네가 구할 수 있는 지식이다.”라고 응답해 주시며 그에게 땅콩 재배의 특별한 기술하는 지혜를 주셔서 지금 미국의 남부 지방 땅콩 농사에 큰 역사를 이루게 한 것 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겸손하게 하나님께서 기도하면 하나님은 우리에게 필요한 지혜를 주시는 것 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어린아이와 같이 겸손하고 낮아져서 주님을 영접할 때, 하나님이 주시는 지혜와 명철을 얻고 성공적인 삶을 살아가게 되는 것 입니다.

둘째는, 겸손은 다른 사람을 섬기는 것 입니다.

마태복음 11장 29절에, 예수님은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교만한 사람은 자기만을 생각하고, 다른 사람을 섬기지 않습니다.

그러나, 겸손한 마음을 가진 사람은 먼저 다른 사람을 생각하고, 다른 사람의 필요에 따라 섬기는 것 입니다. 예수님은 섬김을 마땅히 받아야 할 분이지만, 제자들을 섬기는 사역을 감당한 것 입니다.

셋째로, 겸손은 하나님의 기쁘시게 하는 것입니다.

빌립보서 2장 3절과 4절에 보면,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 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각각 자기 일을 돌아 볼 뿐더라 또한 각각 다른 사람들의 일을 돌아 보아 나의 기쁨을 충만케 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겸손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데 필수적인 조건 입니다. 우리가 싸우고 다투는 것은 남을 나보다 더 낫게 여기는 겸손한 마음이 없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 겸손한 마음이 있었기 때문에, 하늘의 모든 영광과 보좌를 버리고 비천한 인간의 몸을 입으시고 이 세상에 오셨고, 또한 오늘 종려 주일에 나귀를 타시고 겸손하게 십자가상에서 죽으시기 위하여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것 입니다. 우리도 겸손한 왕으로 오신 예수님의 겸손한 삶을 본받아야 하겠습니다.

둘째로 예수님은 평강의 왕으로 오신 것 입니다.

예수님께서 나귀를 타시고 예루살렘에 입성하는 것은 예수님께서 평강의 왕으로 오신 것을 말해 주는 것입니다.

스가랴 9장 10절에, “내가 에브라임의 병거와 예루살렘의 말을 끊겠고 전쟁하는 활도 끊으리니 그가 이방 사람에게 화평을 전한 것이요 그의 정권은 바다에서 바다까지 이르고 유브라데 강에서 땅끝까지 이르리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신 것은 우리를 위해 희생 제물이 되셔서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죄의 담을 허무시고 하나님과 참 평화를 누리게 하신 것 입니다.

그러므로, 구약의 선지자들은 예수님께서 평강의 왕으로 오실 것을 자주 예언하였습니다. 이사야 9장 6절과 7절에, “이는 한 아기가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 이름을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 임이라 그 정사와 평강의 더함이 무궁하며 또 다윗의 위에 앉아서 그 나라를 굳게 세우고 자금 이후 영원토록 공평과 정의로 그것을 보존하실 것이라 만군의 여호와의 열심이 이를 이루시리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우리에게 평안을 주시기 위해 이 세상의 평강의 왕으로 오셨습니다. 그리고, 주님께서 주시는 평안은 세상이 주는 것과 다른 평안인 것 입니다.
사람들은 지금 마음의 평안을 원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종교에 심취하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마약 중독에 빠지기도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진정한 평안을 얻지 못하고 있습니다.

오직 진정한 평안은 평강의 왕이 되신 예수님께서 주시는 것 입니다. 요한복음 14장 27절에,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세상의 모든 사람이 행복을 추구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행복을 잡기가 어렵습니다. 이 세상의 어느것도 우리의 마음을 만족시켜 주지 못합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 만이 어떤 상황이나 환경을 초월하는 참 평안을 주시는 것 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평강을 주기 위해 평강의 왕으로 오신 것 입니다.

셋째로, 예수님은 만왕의 왕으로 오셨습니다.

본문 8절과 9절에, “무리의 대부분은 그 겉옷을 길에 펴고 다른 이는 나뭇가지를 베어 길에 펴고 앞에서 가고 뒤에서 따른 무리가 소리질러 가로되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며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가장 높은 곳에서 호산나 하더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나귀를 타시고 입성하신 것은 왕적 권위를 가지신 메시야로 오신 것 입니다. 예수님께서 이렇게 수 많은 군중들에게 환영을 받으며 자신이 만왕의 왕으로 오신 것을 공식적으로 천명하였습니다.

그러므로, 많은 군중들은 종려 나무 가지를 들고,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라고 찬송을 부른 것입니다. 호산나는 히브리말로 “구원하소서”라는 기도와 찬양인 것 입니다. 왕으로 오신 예수님을 찬양하고 그의 구원을 간구한 것 입니다.

예수님은 다윗의 왕위를 계승하는 왕으로서 온 세상의 왕으로 오신 것 입니다 (마. 2:2; 눅 1:32, 33). 예수 그리스도가 전 세계를 다스리는 영원한 권세를 가지신 왕으로 오셨고 공의로 지혜로 통치하시는 왕으로 오신 것 입니다.

다니엘 7장 13절과 14절에, “내가 또 밤 이상 중에 보았는데 인자 같은 이가 하늘 구름을 타고 와서 옛적부터 항상 계신 자에게 나아와 그 앞에 인도되매 그에게 권세와 영광과 나라를 주고 모든 백성과 나라들과 각 방언하는 자로 그를 섬기게 하였으니 그 권세는 영원한 권세라 옮기지 아니할 것이요 그 나라는 폐하지 아니할 것이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동방의 박사들이 왕으로 오신 예수님께 찾아와서 예물을 드리며 경배하였고, 총독이 예수님께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고 물었을 때, 주님은 ‘네 말이 옳도다’고 대답하신 것 입니다.(마 27:11).

그런데, 마태는 본문 10절에,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들어가시니 온 성이 소동하여 가로되 이는 누구뇨 하거늘”이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예루살렘에 모든 사람들이 예수님에 대하여 ‘이 사람이 누구인가’라고 물었습니다.

오늘날 어떤 사람은 예수를 하나의 성자나 종교 창시자로 보고 예수님을 믿지 않습니다.우리가 예수님의 주장에 대해 세가지 가능성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첫째 가능성은 예수님께 거짓말을 한 위선자인 것 입니다.예수 그리스도께서 자신이 하나님이라고 주장하셨는데 만일 그의 주장이 거짓 이였고, 예수님 자신도 거짓인 것을 알았다고 하면, 예수는 거짓말쟁이고 위선자인 것 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거짓말쟁이가 될 수 없는 것은 거짓말쟁이는 다른 사람에 대한 관심이나 사랑이 없고 언제나 사람을 이용하고 악용하며 다른 사람을 도와주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언제나 다른 사람을 사랑하고 관심을 가졌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하나님이라고 거짓말 하면서 거짓을 위해 죽는 사람은 없습니다. 예수님 처럼 사시고 가르치고 죽은 사람이 거짓말쟁이 일수는 없습니다.

둘째 가능성은 예수님께서 정신병자인 것 입니다.예수님 자신이 하나님이라고 한 것이 거짓이지만, 그 자신이 하나님이라고 믿었다고 하면 예수는 망상에 사로잡힌 정신병자나 미친 사람이였을 것 입니다.

그러나, 철저한 유일신 문화권속에서 과대 망상에 빠져 자신이 하나님이라고 생각하며, 다른 사람들에게 그들의 영원한 운명이 자신을 믿는데 달려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자기 망상에 빠져 있는 정신병자임이 틀림없는 것 입니다.

지금 2000년의 역사를 보면, 수 많은 사람들의 예수를 믿고 변화하고 교회가 세워지고, 가정과 국가가 변한 것을 보면, 예수님은 거짓말하는 위선자나, 정신병자가 될 수 없습니다. 만일 그렇다면 저와 여러분은 위선자이거나 정신병자 예수의 제자가 되기 위해 살아가고 있는 것 입니다.

그러므로, 마지막 한가지 가능성 밖에 없습니다. 즉, 예수님은 하나님이시고 우리의 구원자이십니다. 예수님께서 주장하신 대로, 그는 우리의 구원자이신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는 두 가지 선택의 여지 밖에 없습니다. 하나는 예수님을 나의 구원의 주님으로 영접하는 것과, 또 하나는 믿지 않고 불신의 결과를 내가 받는 것입니다. 오늘 주님을 영접하지 아니하고 아직 구원의 확신이나 영생의 확신이 없으신 분은 왕으로 오신 예수님을 마음에 영접하고 놀라운 하나님이 주시는 구원의 은혜와 축복을 받으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