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의 십자가가 주시는 뜻

예수님의 십자가가 주시는 뜻/벧전2:18-25/종려주일설교





오늘은 『예수님의 십자가가 주시는 뜻』이라는 제목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본문 24절을 보겠습니다.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 저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입었나니\"

친히 나무에 달렸다는 것은 십자가에 달리셨다는 말입니다. 달린 이유는 무엇입니까? 우리의 죄를 담당하시기 위함입니다. 달린 사람은 누구입니까?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이 모든 문제는 죄의 문제 때문입니다.

먼저 죄가 어떻게 시작되었는지를 정리해보고자 합니다. 죄의 시작은 교만과 불순종으로 인해서였습니다. 하나님께 불순종한 루시퍼 천사가 공중의 권세를 잡고 인류의 조상 아담과 하와를 미혹한 것입니다. 아담, 하와는 사단의 미혹을 받아 하나님과 같아지려는 마음이 생겨 하나님께 불순종하고 말았습니다. 이것이 죄의 시작입니다. 하나님께 불순종한 결과 아담, 하와는 에덴동산에서 쫓겨나고 말았습니다. 죄의 삯은 무엇입니까? 사망입니다. 그래서 결국 이 세상에는 사망이 들어오고 말았습니다.

인간들은 이 죄 문제를 해결하려고 많은 노력을 해보았습니다.
먼저 선악과를 따먹은 아담, 하와는 벌거벗은 것을 부끄럽게 생각되었습니다. 그래서 무화과 나무 잎사귀를 따서 몸을 가렸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곧 시들고 말라버려서 오랫동안 가릴 수가 없었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인간적인 방법으로서는 해결책이 될 수 없다는 말입니다.
인간들은 죄의 문제를 해결해 보려고 종교를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인간이 만든 어떤 종교도 죄의 값인 \'죽음\'의 문제를 해결할 수가 없습니다. 인간의 고뇌가 여기에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에 인간이 죄 값으로 멸망함을 원치 아니하시고 해결의 길을 주셨습니다.

첫째, 아담과 그 아내를 위하여 가죽옷을 지어 입히셨습니다. 그 가죽옷의 재료는 양입니다. 양을 잡아 피 흘려 죽게 한 후 그 가죽을 벗겨 옷을 지은 것입니다. 세례요한이 예수님을 증거할때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요 1:29)이라고 했습니다. 그것은 어린양이 에덴동산에서 피 흘려 죽어 아담과 하와의 부끄러움을 가리워주었듯이 예수님이 어린양이 되셔서 인간의 죄를 깨끗이 씻어주시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인간을 구원하는 방법입니다.

둘째, 하나님은 인간들을 죄에서 구원하기 위하여 예수님을 여인의 후손으로 보내셨습니다. 인간들은 모두 남자의 후손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여인의 후손입니다. 하나님의 거룩한 성령이 마리아에게 잉태하심으로 예수님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남자의 후손을 모두 죄인이고 죄인은 남의 죄를 속죄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죄 없는 여인의 후손으로 오신 것입니다. 죄를 없이 하는 구체적인 방법은 오늘 본문 24절에 있습니다.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

예수님은 로마정권과 유대교권주의자들에 의하여 억울하게 죽은 것이 아니라 스스로 십자가를 선택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생명을 버릴 권세도 있고 얻을 권세도 있으셨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친히 나무에 달려 우리의 죄를 담당하셨습니다. 갈라디아서 3장 13절에는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다\"고 했습니다. 고린도전서 15장 3절에는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셨다\"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온 인류의 죄를 담당하시고 그것 때문에 저주를 받으시고 또한 십자가에 죽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 달리실 때 세 가지 고통을 당하셨습니다.
첫째, 육신의 고통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가시관을 쓰셨습니다. 양손과 양발에는 못이 박혔습니다. 옆구리는 창으로 찔렸습니다. 얼굴과 양손, 양발, 옆구리에 피가 흘러내렸습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의 뺨을 때렸습니다. 얼굴에 침도 뱉었습니다. 그리고 욕을 퍼부었습니다. 얼마나 큰 모욕입니까? 예수님은 인간으로 오셔서 너무나 고통스러운 육신의 고통을 당하셨습니다. 이것은 누구 때문에 당한 고통입니까? 이사야의 예언대로, 예수님이 찔림은 나의 허물을 인함이요, 예수님이 상함은 나의 죄악을 인함입니다. 예수님이 징계를 받음으로 내가 평화를 누리고 예수님이 채찍에 맞음으로 내가 건강한 인생을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간단히 말하면 나를 위한 고통이었습니다. 이를 믿을 때에 주 예수님께서 나의 고통을 몸소 져주시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이 당한 두 번째 고통은 정신적인 고통입니다. 예수님이 당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에 입성할 때는 \"유대인의 왕으로 오시는 이여, 호산나 만세!\"를 부르며 무수한 사람들이 왕으로 대접했던 그들이 정치가들의 놀음에 넘어가서 갑자기 예수님을 죽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돌이켜 생각해보십시오. 예수님을 통하여 병 고침 받은 자가 한 둘이 아닙니다. 불치병을 고침 받은 자도 많습니다. 예수님을 통해서 죽었다가 일어난 자도 세 명이나 있고 그 가족들도 있습니다. 기적을 체험한 자도 한 둘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열 두 제자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모두 달아나 버렸습니다. 육신의 고통과 함께 이들의 배신을 생각할 때 예수님의 정신적인 고통은 헤아리기 힘들 정도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는 어떠합니까? 큰 은혜를 받아 구원의 은총을 주셨는데 내 마음대로 말하고 행동하며 불순종에 빠지고 있지는 않습니까?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당하신 세 번째 고통은 심령의 고통입니다. 마태복음 27장 46절에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라고 말씀하신 데서 그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 뜻은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입니다. 온 세상이 모두 나를 버릴지라도 하나님 아버지만 나를 버리지 않으면 되는데... 하나님마저도 예수님을 버리셨습니다. 이는 죄 값은 사망임을 확실하게 보여주시는 것이며 그를 통해 우리를 죄악에서 구원해주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피 흘리심은 십자가에서만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위하여 네 곳에서 피 흘려 주셨습니다.
먼저 겟세마네 동산에서 흘리신 보혈입니다. 누가복음 22장 44절입니다. \"예수께서 힘쓰고 애써 더욱 간절히 기도하시더니 땀이 땅에 떨어지는 핏방울 같이 되더라\" 예수님은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실 때에 \"나의 원대로 마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하고 기도하시다가 피를 흘리셨습니다. 이것은 자기의 뜻과 의지를 하나님의 뜻과 의지로 바꾸는 보혈입니다. 인간의 시조 아담, 하와가 하나님께서 먹지 말라는 선악과를 먹음으로서 하나님의 뜻을 어기고 마귀의 말을 따른 결과 범죄하여 죽고 망하게 된 것이기 때문에 예수님께서는 자기 뜻과 의지를 포기하고 하나님의 뜻과 의지를 따르기 위해 보혈을 흘리신 것입니다. 그래서 이 보혈은 자기 뜻을 하나님의 뜻으로 바꾸는 피 흘림입니다. 그래서 이 피를 믿으면 죄 씻음 받습니다. 천국의 복을 받습니다. 마귀의 자식에서 하나님의 아들로 바뀌어지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둘째로, 예수님은 빌라도 법정에서 보혈을 흘리셨습니다. 매를 맞아 흘린 피입니다. 예수님을 법정으로 끌고 갈 때 그들은 가죽에 27개의 작은 못을 박아 그것으로 예수님을 후려쳤습니다. 예수님은 채찍에 맞을 때마다 살이 뜯겨져 나갔습니다. 그 맞은 자리에선 피가 줄줄 흘렀습니다. 오늘 본문은 말합니다.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나니\"
성도 여러분! 건강하십니까? 우리에게 건강 주시려고 예수님께서 채찍에 맞으면서 피 흘려주셨습니다. 그 피가 오늘 여러분과 저를 건강하도록 복을 주시는 것입니다.
세 번째 예수님이 흘리신 보혈은 가시관에서의 보혈입니다. 예수님을 사형 집행하던 로마병정들은 가시로 관을 만들어 예수님 머리에 씌였습니다. 가시관이 씌여진 머리에는 피가 줄줄 흘러내렸습니다. 그 피는 무슨 피입니까? 죄 값으로 오는 저주를 물리치고 복을 주시는 보혈의 피입니다. 특별히 우리가 생각으로 지은 죄를 씻어주시는 피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가시관을 쓰신 것입니다.

네 번째, 예수님께서 흘리신 보혈은 십자가 상에서 흘리신 보혈입니다.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은 머리에는 가시관이 씌여진 채 두 손과 두 발에는 못이 박히셨습니다. 옆구리는 창으로 찔리웠습니다. 머리에서 흘리신 피가 있습니다. 두 손과 두 팔에 흘리는 피가 있습니다. 옆구리에서 흘리는 피가 있습니다. 이것이 한마디로 십자가에서 흘리신 예수님의 보혈입니다. 이 보혈은 하나님께 버림받은 자를 회복시키시는 보혈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을 죄와 사망에서 구원하기 위해 예수님을 십자가에 버리셨습니다. 십자가에서 피를 흘리게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이 피를 믿으면 죄 씻음 받습니다. 우리의 죄와 허물이 없어집니다. 우리가 평화를 누리게 됩니다. 건강한 인생을 살아가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예수님의 보혈을 찬양해야 합니다. 이 예수님을 간증해야 합니다. 우리는 항상 십자가를 든든히 붙잡고 날마다 전진해야 하는 것입니다.

십자가 든든히 붙잡고 날마다 이기며 나가세
머리에 면류관 쓰고서 주 앞에 찬양할 때까지
예수는 우리를 깨끗케 하시는 주시니
그의 피 우리를 눈보다 더 희게 하셨네.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실 때 세상은 네 가지 큰 사건을 만났습니다.
첫째, 태양이 세 시간동안 빛을 잃었습니다. 마태복음 27장 45절에 \"제 육시로부터 온 땅에 어두움이 임하여 제 구시까지 계속하더니\"
이때는 하나님 아버지가 얼굴을 돌리신 때입니다. 하나님 아버지가 죄인을 심판하시고 완전히 버리실 때입니다. 부모가 자식이 죽은 것을 차마 볼 수가 없어서 얼굴을 돌린 것과 같습니다. 빛의 근원은 하나님 아버지이십니다. 그 하나님께서 죄인을 심판하시고 예수 그리스도를 버리실 때 온 땅이 어두워진 것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릴 때 일어난 두 번째 사건은 성전휘장이 위로부터 아래로 찢어진 사건입니다. 마태복음 27장 51절입니다. \"이에 성소휘장이 위로부터 아래까지 찢어져 둘이 되고 땅이 진동하며 바위가 터지고\"
예루살렘 성전에는 성소와 지성소가 있었습니다. 그곳에는 휘장이 드리워져 있었습니다. 휘장이 쳐진 안쪽 지성소에는 대제사장만 들어가 사람들의 죄를 위해 제사를 드립니다. 그런데 그 휘장이 위에서 아래까지 찢어져 둘이 된 것입니다. 이것은 어떤 죄인이라도 이제는 하나님 앞에 나가서 회개하고 예수 믿고 구원받을 수 있다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인하여 하나님 아버지와 나 사이의 막힌 담이 허물어졌음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께 직접 기도 드릴 수가 있는 것입니다. 천주교에는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 드리는 것이 아니라 마리아에게 기도합니다. \'마리아에게 드리는 기도문\'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왜 마리아에게 기도하는가? 물었더니 마리아는 예수님의 어머니이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아들과 어머니는 가깝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런 말은 성경에 없습니다. 잘못된 것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릴 때 그 밑에서 일어난 세 번째 사건은 땅이 진동하고 바위가 터진 것입니다. 땅이 진동하고 바위가 터진 것은 마귀의 주권이 무너졌음을 뜻합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림으로 지옥은 천국으로, 마귀의 역사는 성령의 역사로 바뀌어졌습니다. 그래서 죄와 고통과 괴로움은 없어지고 평화만 주어지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릴 때 그 밑에서 일어난 네 번째 사건은 무덤이 열리고 자던 성도들이 많이 일어났습니다. 마태복음 27장 52절입니다. \"무덤이 열리며 자던 성도들의 몸이 많이 일어나되\"
자던 사람은 죽은 사람을 말합니다. 예수님께서 죄 값을 청산해 주셨으므로 무덤에 잠들어 있던 사람들이 많이 일어난 것입니다. 예수님은 사망과 음부의 열쇠를 가졌다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사망을 이기기도 하시고 음부의 열쇠를 열고 들어가서 꺼내기도 하시는 권능이 있기 때문에 그런 엄청난 일이 일어난 것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사건은 나를 위한 것임을 믿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피 흘려 주심은 나를 위한 것임을 믿습니다. 그 피로 내가 죄씻음 받았습니다. 내가 구원받았습니다. 내가 평화를 누리며 살고 있습니다. 내가 건강한 인생을 살고 있습니다. 2002년 종려주일에 이 고백이 확실하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이 은혜가 있으시기를 주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