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귀를 타신 주님의 모습 마21:1-11
종려 주일 아침입니다. 내일부터 한 주간 고난 주간 또는 수난주간으로 보내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마지막 예루살렘에 입성하실 때 나귀를 타시고 입성하시며 그때 많은 사람들이 주님이 가시는 길에 옷을 벗어 깔고 종려나무 가지를 흔들며 열열히 환영했기 때문에 이날을 종려 주일이라 부르게 되었습니다.
유대인들은 흩어져 살면서 유월절이 되면 예루살렘에서 유월절을 지키는 것이 소원이었습니다. 그래서 유월절날 많은 유대인들이 모이고 그 인구는 평소보다 약 여섯배나 많아서 다 수용할 수가 없어 순례자들은 성밖에도 천막을 치고 유숙했다고 합니다. 그때 예수님이 나귀새끼를 타고 예루살렘으로 입성하실 때 몇 명의 소수 외에는 그가 하나님의 아들이며 인간의 죄를 짊어지고 십자가를 죽어야하는 대속주 믿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세례 요한이 분봉왕 [헤롯]에 의해 순교하자 예수님께서는 메시아로서의 사역을 본격적으로 시작하셨고, 공생애 기간동안 복음을 선포하시며, 많은 병자들을 고치시며, 이적을 베푸시며,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드러내셨습니다.
그래도 모두가 예수님을 평가하기를 정치적인 메시야로 아니면 유명한 랍비로만 아는 사람이 많았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가 나사렛 요셉 목수의 아들임을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를 그저 세례요한처럼 인간 목수이며 무명의 회개 운동가로만 알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의 공생애 3년동안 많은 무리들이 따랐으나 예수님의 고난의 십자가를 이해하는 사람은 적었습니다. 더욱 예수님과 3년동안이나 동고동락하던 제자들조차 믿지 아니하려 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많은 사람들이 여러 가지로 평가해도, 아니면 제자들이 주님의 마음을 몰라주어도 주님의 목적은 분명했습니다.
(마20:28절)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는 분명한 목적이 있었습니다. \"선지자가 예루살렘 밖에서는 죽는 법이 없느니라.\" 눅13:33절 말씀대로 예수님은 예루살렘으로 올라가고 있습니다. 누가 어떤 말하든지 어떻게 평가하든지 상관이 없었습니다. 이는 자신이 가야할 길이라는 사명이 뚜렷했기 때문입니다. 또 슥 9:9의 말씀의 예언대로 나귀 새끼를 타고 입성하셨습니다.
⊙ 우리는 오늘 종려주일 아침에 나귀 새끼를 타고 입성하시는 예수님의 모습 속에서 참 구세주의 모습을 발견하고 우리의 신앙을 고백하는 시 간이 되기를 원합니다.
나귀를 타신 주님의 모습에서 첫째, 죄인을 구원하기 위한 온유한 마음과 겸손의 모습을 보게됩니다. 우리는 예수님께서 나귀새끼를 타시고 예루살렘에 입성하시는 것을 보면서 우리 주님의 온유하시고 겸손하신 모습을 보게 됩니다. 예수님이 입성하시는 장면은 팡파레가 울리는 소리도 들리지 않습니다. 장엄한 군인들이 도열하고 있는 것도 아닙니다. 사람들이 기대하는 것처럼 근엄하고 화려하고 오만해서 세상을 내려다보는 모습이 아닙니다. 오히려 전혀 상상할 수 없는 초라하고 겸손한 모습으로 오시므로 도리어 죄악으로 가슴아파 어두움에 살고 있는 백성들에게는 더 없는 희망과 소망을 주는 장면이었습니다.
언제나 주님의 복음의 말씀은 역설적이었습니다. 어린아이와 같아야 천국에 들어간다는 것입니다. 낮아져야 높아진다는 것입니다. 남을 섬겨야 섬김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목숨을 버리면 다시 살아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군대를 모을 수 없는 것이 아닙니다. 세상이 깜짝 놀라도록 행차할 수 없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평화이십니다. 정치적으로 해방 시키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얽어매고 있는 죄악의 사슬을 풀어주어 마귀로부터 해방시켜주는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스가랴 9장 9-10절에서 왜 주님께서 아주 힘없는 오합지졸들을 데리고 나귀 새끼를 타시고 입성했는지 잘 나타내 주고 있습니다. \"시온의 딸아 크게 기뻐할지어다. 예루살렘의 딸아 즐거이 부를지어다. 보라, 네 왕이 네게 임하나니 그는 공의로우며 구원을 베풀며 겸손하여서 나귀 를 타나니, 나귀의 작은 것 곧 나귀새끼니라.\" \"네가 에브라임의 병거와 예루살렘의 말을 끊겠고 전쟁하는 활도 끊으리니, 그가 이방 사람에게 화평을 전할 것이요 그의 정권은 바다에서 바다까지 이르 고 유브라데 강에서 땅 끝까지 이르리라.\"
주님은 평화의 왕이시며 겸손과 온유한 주님이시기 때문에 굳이 나귀 새끼를 선택하신 것입니다. 종려주일 아침을 맞이하면서 우리도 평화를 가슴에 담으십시다. 겸손한 무릎으로 살아가십시다. 온유한 마음으로 다른 사람을 만나십시다. 지난해 9·11미국 뉴욕에 빌딩 폭파 사건은 곧 전쟁이 지구에 일어날 것 같이 만들었습니다. 지금 우리의 삶은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살고 있습니다. 서로 미워하고 싸우고 죽이고 가족끼리 집안끼리 단체끼리 나라끼리 전쟁으로 온통 야단입니다.
이제 시대 말이 되니 교회끼리도 빼앗고 빼앗기는 크고 작은 전쟁이 있는가 하면 교회 안에도 성도끼리도 미움과 시기와 질투로 온통 금이 가 있습니다. 우리는 지금 보이지 않는 총소리를 들으며 살고 있습니다. 언제 어디에서 터질지 모르는 폭탄을 안고 살고 있습니다. 이때 이 지구촌에 절실히 요구되는 것은 평화입니다. 각종 범죄는 날이 갈수록 더 지능적이 되고 흉악해져 가고 있습니다. 살아 숨쉬고 있다는 것이 기적으로 느끼고 살고 있는 시대입니다. 모두가 남을 지배하려고 하고 남 위에 군림하려고 하니 전쟁은 끝나지 않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어느 때 보다도 주님의 겸손과 온유한 모습이 요구되는 시대입니다. 이때 주님을 믿고 또 종려주일을 맞는 우리 모두는 다시 한번 새로운 각오와 결심을 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 모두 이 아침에 주님께 서원 합시다. 나도 주님처럼 낮아지고 남을 높이며 살겠습니다. 할렐루야! 나는 남을 지배하며 군림하는 자세가 아니라 겸손의 무릎으로 섬기며 살겠습니다. 결국 나는 한 알의 밀 알이 되어 이름 없이 썩어 죽으므로 많은 영혼을 구원하는 주님이 가장 기뻐하는 주님의 종이 되겠습니다. 아멘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확실히 해야 합니다. \'인류의 구원은 평화의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 한 분밖에 없다\'는 사실 말입니다. 예수 앞에 무릎꿇을 때 평화가 오고 구원이 임한다는 사실을 믿으십니까? 지금 주님이 가장 여러분에게 바라시는 것이 무엇인줄 아십니까? 여러분의 마음에, 가정에, 교회에, 이 민족에, 세계위에 평화가 임하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왜 교회 오셔서 짜증을 내십니까? 주님이 내 마음에 안 계시기 때문입니까? 우리는 모두 너 나 할 것 없이 모두 평화를 전하는 평화의 전령이 되어야 합니다.
나는 우리 상모교회 성도들이 평화의 사람이 되고 가는 곳마다 만나는 사람마다 평화를 심는 성도가 되시기를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겸허한 삶을 사십시오. 예수님이 그러셨던 것처럼 \'자기 자신을 비움\'의 존재방식을 택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그렇지 않고서는, 자기의 것을 고집하고 자기의 것을 포기하지 않고서는 절대 겸허한 사람이 될 수 없고, 평화의 사람도 될 수 없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여러분들이 겸허한 마음으로 서로를 섬길 때 진정한 평화가 임하는 것을 아시기 바랍니다. 오늘 종려주일을 맞이하여 나귀 새끼를 타고 가장 힘없는 자의 모습으로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만 왕의 왕 예수님을 기억하며 예수님의 발자취를 가만가만 밟아나가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나귀를 타신 주님의 모습에서 둘째, 십자가를 지기 위하여 배신과 고난을 피하지 않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한 떼의 무리들이 예수를 기다린 것은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이 \'누구든지 예수 있는 곳을 알거든 고하여 잡게 하라\'고 명령했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요11:57절) 그런데 지금 올라가시는 것은 십자가를 지기 위한 때가 다 되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3년 동안 믿었던 제자에게 배신을 당해야하는 아픔이 있음을 알고 있습니다.
이렇게 안전하지 못하고 적대자들의 위험 수위가 극에 달해 있는 줄 알면서도 자신을 온전히 노출시킨 채 호랑이 굴로 들어가고 있습니다. 지난번 유월절 때는 조용히 무리속에 섞여 상경했는데 이번에는 많은 사람들의 주목을 받으며 위험한 길을 가고 있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또 얼마 전에 독립 투쟁으로 나라가 촉각을 세우고 예의 주시하며 이미 주모자들은 잡혀 사형언도를 받고 처형될 날만 기다리고 있는 중입니다. 이때 이런 모습의 주님의 예루살렘의 입성은 위험 천만한 일입니다.
그러나 이미 예수님께서는 십자가를 지시기로 결단하셨고 자신이 평화의 왕이심을 만방에 고하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의 주목을 받으며 고난이 기다리고 있어도 십자가를 향하여 당당하게 나아가신 것입니다.
이렇게 겸손하지만, 그러나 당당한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을 바라보면서 각처에서 몰려든 무리들은 환호하며 호산나를 외치며 구원을 호소했습니다. 군중들은 종려나무 가지를 꺾어 흔들며 열광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안타깝게도 군중들의 이 열광은 예수님께 기쁨이 되지 못하는 것이었습니다. 무리들의 생각을 꿰뚫고 계시면서도, 지금 자신을 환영하는 저들이 자기를 결국 십자가에 못 밖을 것을 다 알고 계시면서도 아무 말씀도 하지 않으시고 나귀 새끼 위에 타신 채 당당하게 고난을 길로 나아가시는 예수님을 보십시오. 고난에 정면으로 맞서시는 예수님의 용기입니다.
그런데도 당당하게 고난과 맞설 수 있는 예수님의 용기는 어디서 나온 것입니까? 한 사람의 희생이 많은 사람을 살릴 수 있다는 믿음과 희생 정신에서 나온 것입니다.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게 된다\"(요12:24절)는 진리에서 나온 용기였습니다. 내가 십자가에서 만인의 대속의 재물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진정한 용기, 진정한 당당함은 예수님처럼 십자가를 지는 것입니다.
십자가를 지기 위해 죽음을 바라보면서도 스스로 죽음을 향해 나아가는 것입니다. 우리는 오늘 다시 한번 결심합시다. 주님의 온유하시고 겸손한 마음을 배워 우리도 실천에 옮기며 삽시다. 주신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서는 사람들에게 미움을 받아도 미워하지 말고 사명의 십자가를 생각하십시오. 나를 배신하므로 억울함이 하늘에 닿아도 죄 없으신 주님이 나의 죄를 인하여 십자가를 지심을 생각하고 이겨 냅시다.
고난이 나를 가로막아도 평화의 주님을 모시고 당당히 앞으로 나아갑시다. 주님의 이름으로 손해도 감수하십시오. 주님 때문에 희생도 각오하십시오. 부활의 새 아침 승리를 향하여 주신 사명의 십자가 지고 용기 있게 전진 하는 여러분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 아 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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