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매를 맺으라

열매를 맺으라/마21:18

열매를 맺으라
마21:18





예수님께서 어린 나귀를 타시고 예루살렘 성으로 입성하셨습니다.
백성들로부터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요! 당신은 우리를 구원하실 왕이십니다. 만세! 만세!” 하는 찬송을 받으시면서 행진을 하셨는데 한 주간이 지난 뒤에 가장 흉악한 죄인들이 처형 당하는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셨습니다.

지금 우리가 나누고 있는 말씀은 십자기를 지시기 전 한 주간 동안의 사건입니다.

주님께서 예루살렘 성에 입성하신 뒤 성전에 들어가셨습니다.
거룩한 하나님의 성전에서 세상 재물에 눈이 어두운 제사장들이 상인들과 결탁하여 양과 비둘기를 팔고, 돈을 바꿔 주는 장사판으로 만들어 놓았습니다.
주님께서는 장사꾼들의 상을 엎으시고, 장산꾼들을 다 내어 쫓으시면서, 내 집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성전을 떠나신 예수님께서는 성밖 베다니 마을로 가셨습니다.
베다니 마을은 예수님이 사랑하시는 마리아 마르다 자매와 오라비 나사로가 살고 있는 곳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과 함께 그 집에 머무셨을 것입니다.

다음 날 이른 아침에 예수님께서 베다니 마리아 집을 떠나 예루살렘 성으로 들어가십니다.
오늘 말씀을 보니 이른 아침에 성으로 들어오실 때에 예수님께서 몹시 시장하셨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마리아 마르다 집에 머물다 나오셨는데 왜 시장하실까요?
마리아 마르다가 예수님을 위하여 조반을 준비하였을 것입니다.
살림이 넉넉지 못한 집이라 아침 식사로 먹는 빵을 넉넉지 못하게 내어 놓았을 수 있고,
넉넉하게 내어 놓았지만 예수님께서 어려운 살림 살이를 아시고 양 것 드시지 아니하시고 조금만 드시고 나오셨을 수 있습니다.

어쨓든 이른 아침 마리아 마르다 집을 떠나신 예수님께서는 많이 시장하셨습니다.
시장하신 예수님께서 무화과 나무를 보셨습니다.
가까이 가셔서 무화과 나무의 열매를 따서 주린 배를 채우시려 하셨습니다.
그러나 잎은 푸르른데 열매가 달려 있지 않은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무화과 나무를 향하여 “이제부터는 영원토록 네게 열매가 맺지 못하리라” 말씀하셨습니다.
그러자 무화과나무가 곧 말랐습니다.
푸르렀던 잎이 말라 떨어져 앙상한 가지만 남게 되었습니다.
이를 본 제자들은 깜짝 놀랐습니다.


무화과 나무는 보통 5-8m 정도 자라는 나무이고, 가지가 길고 잎이 무성하여 더운 여름 사람들에게 시원한 그늘을 제공하고, 많은 열매가 맺히기 때문에 무화과는 팔레스틴에서 가장 \'사랑받는 나무\' 중의 하나입니다.
신8:8을 보면 약속의 땅 가나안을 가리켜 “밀, 보리, 포도, 무화과의 땅\'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가나안 땅을 돌아본 정탐꾼들이 가나안 땅이 비옥하고 아름다운 땅이라는 증거로 포도와 석류열매와 무화과 열매를 가져왔습니다.


예수님께서 유월절 명절을 앞에 두시고 예루살렘 성으로 들어갔는데, 그 때는 이른 봄입니다. 이 시기에는 무화과 나무에 잎에 돋아날 때이고 열매가 맺힐 때가 아닙니다. 열매는 6월쯤에 맺힙니다. 아직 1-2달은 더 기다려야 합니다.
그래서 마가복음 11:13절에서 \"이는 무화과의 때가 아님이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시장하셔셔, 무화과 열매를 따 드시기 위하여 무화과 나무 앞에 가셨고, 무화과 철이 아니기에 열매가 맺히지 않은 것인데, 잎만 무성한 무화과 나무라고 책망하시고 마르게 하신 것입니다.


왜 예수님께서 무화과가 열릴 때가 아닌데, 열매를 맺지 못한다고 무화과 나무를 말라 죽게 하셨을까요?

예수님께서는 이를 통하여 제자들에게, 그 당시 유대인들의 종교지도자들에게, 그리고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열매 맺는 생활을 해야 한다.
마3:10 “이미 도끼가 나무 뿌리에 놓였으니 좋은 열매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지우리라.”의 말씀 대로 열매를 맺지 못하면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 없는 것입니다.


예수님 당시의 신앙인들은, 특별히 종교 지도자들인 바리새인, 제사장들은 열매는 없는 잎만 무성한 무화과 나무 같았습니다.

그들은 큰 소리로, 자주 하나님께 기도를 드렸습니다. 그러나 그 기도는 하나님께 드리는 기도가 아니었습니다.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시장통에서,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시간에, 사람들이 들을 수 있도록, 큰 소리로 기도하였습니다.
그들의 기도는 하나님께 드리는 기도가 아니라 사람들이 들으라고 한 기도였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골방에 들어가 은밀한 가운데 보시는 하나님께 기도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들은 수시로 금식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금식은 하나님 앞에서 통회하며, 자복하는 회개의 금식이 아니었습니다.
사람들 앞에서 몹시 배가 고픈 슬픈 표정을 지으며, 얼굴을 흉하게 하여 자신의 금식하는 것을 나타내 보였습니다.
그들의 금식은 하나님 앞에서 경건을 위한 금식이 아니라, 사람들에게 보여 주기 위한 금식이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금식할 때에 머리에 기름을 바르고, 얼굴을 씻고, 몸을 단정히 하고, 은밀히 보시는 하나님 앞에서 가슴을 찢으며 금식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들은 구제하는 일, 선행하는 일에 열심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선행은 하나님의 자녀로서 마땅히 행하여야 하는 선행이 아니라, 사람들에게 자신의 의로움을 나타내기 위한 선행이었습니다.
그들은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구제하였습니다. 그들은 사람들이 볼 때에만 선행을 베풀었습니다. 자그마한 선행에도 크게 나팔을 불고 다녔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선행을 할 때에 오른 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은밀히 해라. 그러면 은밀히 보시는 하나님께서 갚아 주실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들은 성전에서 헌금을 드렸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헌금은 하나님을 사랑하여 드리는 헌신이 아니라, 사람들에게 헌신의 사람으로 보이기 위한 자기 의를 위한 헌금이었습니다.
많은 사람들로 헌금궤에 돈이 들어가는 것을 보게하고, 돈이 떨어지는 소리를 듣게 하였습니다. 사람들이 없을 때는 헌금 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은밀히 보시는 하나님 앞에서 정성을 드리고, 보물을 땅에 쌓아 두지 말고, 하늘에 쌓아 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성직자로서 경건한 삶을 살아야 하는데
크고 웅장하고 화려한 성전에서, 엄숙하게 백성들을 위하여 제사를 드리지만,
하늘에 소망 대신에 세상의 재물에 욕심을 두고, 세상에 명예에 관심을 가지고 살기에
거룩한 성전을 양과 비둘기 파는 장사판으로 만들고, 돈을 바꾸어 주는 시장 바닥으로 만들었습니다.
가장 거룩한 하나님의 성전을 자신의 경제적 이익을 위하여 속되게 만들어 버리고 만 것입니다.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이 없습니다.
잎은 무성하여 보기는 좋은데 막상 중요한 열매는 맺혀 있지 않은 것입니다.


마틴 부버가 “나와 너, Ich und Du!” 란 책을 썼습니다.
부버는 이 책에서 사람과 사람과의 관계는 나와 너, 인격대 인격, 가슴과 가슴으로 만나야 진정만 만남이어야 한다.
그러나 그 사람 자체가 아니라,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재물,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권세,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능력 등을 보고, 그 사람을 통하여 내가 얻게 될 이득, 유익함을 생각하면서 만남을 갖게 되는데, 이러한 만남은 “나와 너”의 만남이 아니라 “나와 이것”의 만남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만남은 쉽게 깨어집니다. 이러한 만남 속에서는 진정한 사랑, 진실된 섬김, 상대방에 대한 이해, 상대방에 대한 배려 등을 기대할 수 없습니다.

돈을 보고 결혼하였는데 돈이 없더지면 부부 관계도 없어지고
권세를 보고 결혼하였는데 권세가 떨어지면 부부 관계도 떨어지게 됩니다.
이는 나와 이것의 결혼입니다.

나와 너의 결혼은?
돈이 많은 때는 함께 풍족하게 살고, 돈이 떨어지면 함께 어리띠를 졸라매고 삽니다.
기쁠 때에 함께 기쁨을 나누고, 슬플 때에는 함께 슬픔을 나눕니다.


어느 농부 부부가 열심히 일하여 채소를 잘 가꾸어 거둘 때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번 3월 폭설처럼 때아닌 서리가 내리는 바람에 애써 가꾼 채소가 다 망가져 버렸습니다.
남편 농부가 크게 낙심하였습니다. 어찌할 바를 몰라 하였습니다.
이 때에 아내가 남편에게 다가가 자그마한 소리로 이렇게 말했습니다. “서리가 내려 농사를 다 망쳐 버렸네요! 그러나, 여보! 우리 사이에는 서리가 내리지 않았잖아요!”
나와 너의 만남이요, 나와 너의 가정입니다.


신앙이란 나와 너의 만남처럼 나와 하나님과의 만남입니다.
그러나 신앙이 변질되면 나와 하나님과의 만남이 아니라 나와 이것의 만남이 됩니다.
진정한 신앙은 “주 예수 보다도 귀한 것은 없네, 이 세상의 부귀, 이 세상의 명예, 이 세상의 즐거움, 이 세상의 어떤 것과도 바꿀 수 업습니다. 주님이 저에게 제일 소중합니다. 주님이 저에겐 제일 귀합니다” 고백을 합니다.
그러나 변질된 신앙은 “주 예수 보다도 세상의 부귀가 소중합니다. 세상의 명예가 소중합니다. 세상의 즐거움이 소중합니다.
주님을 믿습니다. 능력이 많으신 주님께서 나에게 부귀를 주십시오. 명예를 주십시오. 세상의 즐거움을 주십시오” 간구합니다.


예수님 당시의 신앙인들, 특별히 종교 지도자들은 나와 하나님과의 신앙이 아니라, 나와 사람의 신앙이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을 경외히고, 하나님 앞에서 부끄러움이 없이 살고, 하나님을 존귀히 여기는 것이 아니라
사람으로부터 높임을 받고, 사람에게 칭송을 듣고, 사람 앞에서 자신의 의를 나타내는 자기 중심의 신앙이었습니다.

진실한 신앙인 같지만 신앙은 없습니다.
경건한 것 같지만 경건이 없습니다.
의로운 자 같지만 하나님의 의가 아니라 자신의 의를 세우는 것입니다.

외식하는 자들이요, 회칠한 무덤이요, 잎만 무성한 열매 없는 신앙인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러한 외식한 신앙인들에게, 제자들에게, 그리고 우리들에게
열매 없이 잎만 무성한 무화과 나무를 책망하시고 마르게 하시는 것을 통하여
열매 맺지 못하면, 형식적인 신앙생활을 하면, 진실하지 못하면 이렇게 하나님의 심판을 피하지 못할 것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잎만 무성해서는 안된다. 열매 맺고 살아야 한다.
말만 잘해서는 안된다. 행동이 따라야 한다.
외식하는 자가 되어서는 안된다. 진실한 신앙인이 되어야 한다.
회칠한 무덤이 되어서는 안된다. 가슴으로 하나님을 사랑해야 한다.
성전뜰만 밟고 다녀서는 안된다. 성전에 와서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 드려야 한다.” - 이 주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시기를 바랍니다.



이사야 5장을 보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향하여 말씀하시기를 “내가 좋은 포도 맺기를 기다렸거늘 들포도를 맺힘은 어찜인고? 이제 내가 내 포도원에 어떻게 행할 것을 너희에게 이르리라. 내가 그 울타리를 걷어내고, 담을 헐어 짓밟히게 할 것이요, 황무케 하리라.”
-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포도나무로 비유하고 계십니다.
포도나무 이스라엘로 좋은 포도 열매를 맺도록 젖과 꿀이 흐르는 비옥한 땅에다 심고, 거름을 주고, 김을 매었습니다. 다른 이들이 나무를 상하게 하지 못하도록 담을 쌓고 울타리를 쳤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이 좋은 포도를 맺지 아니하고 들포도를 맺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좋은 포도가 맺히기를 기다렸지만 기다려도 기다려도 들포도를 맺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좋은 포도 맺지 못하는 이스라엘 포도 밭의 울타리를 걷어내시고, 담을 헐어 버리셨습니다. 황무지가 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 이스라엘을 포도나무로 비유하셨고, 또한 무화과 나무로 비유하셨습니다.
포도나무나 무화과 나무의 공통점은
크게 자라는 나무가 아니라 목재로는 사용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아름다운 꽃을 피우지 않기 때문에 꽃을 보고 향기를 맡는 정원수로 심을 수 없습니다. 무화과는 말 그대로 꽃도 없이 열매를 맺는 나무입니다.
나무의 자태가 아름답지 않기 때문에 조경수로도 부적합합니다.
귀한 땅에다 포도나무, 무화과나무를 심는 목적은 오직 하나, 열매를 따기 위한 것입니다.
그런데 열매를 맺지 못한다면 아무 짝에도 쓸모 없습니다.
베어 땔감으로나 사용해야 합니다. 땅만 버리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게서 자기 백성 이스라엘을 포도나무, 무화과나무로 비유하신 것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로 열매 맺는 생활 하기를 원하시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세의 인도함을 받아 애급 땅에서 나와 가나안 땅을 향하여 광야를 행진합니다.
그러나 애급을 나와 하나님의 약속의 땅을 향하여 걸어가던 사람들 가운데 여호수아와 갈렙을 빼고는 아무도 약속의 땅을 밟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이 힘이 없으시기 때문입니까?
광야에 먹을 것이 없었기 때문입니까?
가나안 땅에 사는 원주민들이 강하기 때문입니까?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합당한 열매를 맺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애급에 살던 때의 우상 숭배의 열매를 맺었기 때문입니다.
새로운 땅에 들어갈 살만한 합당한 경건의 열매, 믿음의 열매를 맺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약속의 땅, 가나안에서 오래도록 평안하게 살았습니다.
그런데 북 이스라엘 나라가 하나님을 모르는 이방 나라, 앗수르에 멸망을 당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이요,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이스라엘이요, 하나님이 도우시는 이스라엘이 어찌 이방 나라 앗수르에 짓밟힐 수 있단 말입니까?

150여년이 지난 뒤에는, 너의 나라가 영원할 것이라는 하나님의 약속을 받은 다윗 왕국, 유대 나라가 역시 하나님을 모르는 이방 나라 바벨론에 멸망을 당합니다.
하나님의 백성이요, 하나님의 약속을 가지고 있는 나라요, 하나님께서 영웒까지 함께 하시겠다는 다윗의 나라가 어찌 바벨론 나라에 유린 당할 수 있단 말입니까?

이방 나라의 신들이 여호와 하나님보다 강하기 때문입니까?
살아 계신 여호와 하나님이 힘이 약해지셨기 때문입니까?
아닙니다.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합당한 열매를 맺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의의 열매를 맺었어야 했고, 사랑의 열매를 맺었어야 했고, 경건의 열매를 맺었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의의 열매 대신에 불의의 열매를 맺고, 사랑의 열매 대신에 미움의 열매를 맺고, 경건의 열매 대신에 우상 숭배의 열매를 맺었기 때문입니다.

좋은 포도가 맺기를 기대하였지만, 들포도를 맺힌 포도원의 울타리를 허물고 담을 허신 것처럼
앗수르 나라를 도구로, 바벨론 나라를 도구로, 열매 맺지 못하는 이스라엘의 심판하신 것입니다.


제가 목사가 되어서 결혼 주례를 많이 섰습니다.
저에게 주례 받은 사람은 어쩜 그렇게 다 똑같은지 모르겠습니다.
아이를 낳는데 아들 아니면 딸입니다.
현민이, 영민이, 진혁이, 지원이, 결이, 샘이, 은혜, 은수, 예은이 ---아들 아니면 딸입니다.

갈라디아서 5장을 보면, 이 세상에 살고 있는 사람들 모두가 원하든 원치 않든 열매를 맺으며 살고 있는데 둘 중의 하나입니다.

육체를 따라 살아서 육체의 열매를 맺으며 사는 삶입니다.
육체의 열매는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우상 숭배와 술수와 원수를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짓는 것과 분리함과 이단과 투기와 술 취함과 방탕함과 또 그와 같은 것들입니다.

그러나 성령을 따라 살면 성령의 열매를 맺게 되는데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입니다.”

갈5:23에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 성령을 따라 살면,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면, 경건에 힘쓰면 반드시, 분명히 아름다운 열매를 맺게 되어 있다는 말씀인 것입니다.

성령을 따라 살면 성령의 열매가 맺힙니다.
육체를 따라 살면 육체의 열매가 맺힙니다.
성령을 따라 살지 않으면 육체의 열매가 맺힙니다.
육체를 따라 살지 않으면 성령의 열매가 맺힙니다.


나의 신앙 생활을 돌아보십시오!
열매 맺는 신앙생활을 하고 있습니까?
아니면 잎만 무성한 열매 없는 신앙생활입니까?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경건한 신앙생활을 하고 있습니까?
아니면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능력이 없는 신앙생활을 하고 있습니까?


굴으는 돌에는 이끼가 끼지 않습니다.
흐르는 물은 깨끗합니다.
환기기 잘 되면 신선합니다.
피가 잘 돌면 건강합니다.

그러나 가만 있는 돌에는 이끼가 끼고, 고인 물은 썩고, 막혀 있으면 공기가 탁해지고, 피가 잘 돌지 않으면 병이 생깁니다.

벌새라는 작은 새가 있습니다. 이 새가 꽃에 가서 뾰족한 주둥이로 꿀을 빨아 먹는데, 꿀을 빠는 동안 움직이지 않고 가만 떠 있는 것입니다.
새가 날지 않고 어떻게 가만 서 있습니까?
새가 가만 있는 것 같아도 가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1초 동안에 날개를 50여번이나 퍼득인답니다.
만약에 날개짓을 하지 않는다면 땅으로 곤두박질을 칠 것입니다.


열매 맺는 신앙 생활을 위하여는
가만 있으면 안됩니다.
자신을 돌아보고, 새롭게 되기 위하여 애쓰고, 경건을 위하여 힘써야 합니다.

유리창을 가만 놔 둬 보십시오.
먼지가 뽀얗게 앉습니다.
가끔 닦아 주어야 합니다.

우리의 마음의 창을 닦아야 합니다.
말씀을 읽고 듣고 묵상함으로 닦고, 기도로 닦고, 찬송으로 닦고, 섬김으로 닦고, 봉사로 닦고, 충성으로 닦아야 합니다.


제가 교우 여러분들을 지켜보면서
예전보다 믿음의 진보가 있는 분들을 보면 얼마나 감사한지!
그 분들의 공통점은 경건에 힘쓰고 있다는 것입니다.
봉사하는 일, 섬기는 일에 열심을 내고 있다는 것입니다.

예전보다 믿음의 퇴보가 있는 분들, 언제나 늘 그렇고 그런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분들을 보면 얼마나 안타까운지!
그 분들의 공통점은 경건에 힘쓰고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봉사는 자리, 섬기는 자리, 기도하는 자리, 충성하는 자리에서 좀처럼 뵙기가 힘들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신 것은, 자녀로 삼으신 것은, 천국 백성이 되게 하신 것은 열매 맺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무엇을 드리여 하겠습니까? 성령의 풍성한 열매를 드려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열매를 통하여 영광을 받으실 것입니다.
기뻐하시며 더욱 풍성한 열매를 맺게 하실 것입니다.

우리가 열매 맺지 못하는 생활을 한다면, 잎만 무성하고 열매 없는 무화과를 마르게 하신 것을 결코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어디에서 본 글을 읽어드림으로 말씀을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인생의 무대 위에서 연기하지 말라
너희는 배우가 되어서는 안 된다!
사람을 감동시키는 배우가 되지 말고, 하나님을 감동시키는 신실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사람 앞에서 연기를 하지 말고, 하나님 앞에서 은밀하게 행해야 한다. 사람에게 영광을 얻으려고 하지 말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한다. 거짓된 연기를 그만하고 진실되게 살아가야 한다.
연기자가 되지 말라. 종교인이 되지 말라. 진실된 신앙인이 되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