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큰 소리 지르시고 고난주일 마27:32-50
작년 2000년 1월 31일 캘리포니아 연안에 비행기가 추락했습니다. 그 비행기는 Alaska Airline Flight 261이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순식간에 목숨을 잃었습니다. 그러나 그 짧은 비행기가 추락하는 시간에 비행기 안에는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비행기가 고장난 후 비행기 기장(Pilot)는 앞으로 몇 분이 남지 않은 줄 알았습니다. 이때 어느 목사님 부인이 마지막 남은 시간 마이크를 자기에게 달라고 기장에게 제의했습니다. 기장은 intercom 마이크를 목사님 부인에게 주었습니다. 목사님 부인은 남은 시간인 9분 가량 죽음을 코앞에 둔 승객들에게 복음을 전합니다. 이 중 예수님을 믿지 않았던 90명의 승객이 주님을 영접합니다. 90명의 승객이 주님을 영접한 후 비행기는 태평양 바다에 수장되었습니다. 얼마나 멋진 순간이었겠습니까? 사순절 기간 특별히 주님의 고난을 생각하며 부활을 기다리는 크리스챤들이 듣고 또 들어야 할 귀한 간증이야기입니다. 그런데 한편 궁금하지 않으십니까? 어떻게 이 사실이 알려지게 되었는지... 존 윌리암즈(John Williams)라는 분에게 어느 분이 E-mail 이야기를 보냈습니다. 존 윌리암즈는 internet을 통하여 여러 가지 이야기들을 수집하는 분인데 그것을 알고 어느 분이 그분에게 보낸 것입니다. 존 윌리암즈는 궁금해서 이 이야기의 근원을 찾아가기 시작합니다. 드디어 목사님과 그 부인의 신원을 확인하게 되었습니다. 이 목사님 부부는 워싱톤주 Monroe시의 \'The Rock Church\'에서 목회하시는 분이었습니다. 그들은 휴가갔다가 이 비행기를 타고 귀가하는 중에 변을 당했습니다. 그후 이 귀한 이야기가 시애틀 포스트(Seattle Post)지에 실렸습니다. 존 윌리암즈씨는 계속 추적해 보았습니다. 누가 이 일의 증인인가? 불행히도 목사님의 아들이 이 이야기를 만들어 낸 것임을 밝혀냅니다. 아들은 자기 마음대로 꾸민 이야기를 시애틀 포스트지에 기고한 것입니다. 목사님의 아들은 분명 당신의 어머니가 비행기 마이크를 통해 복음을 전했을 것이고, 많은 사람들이 복음을 믿었을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고 고백합니다. 한편 연방정부에서 조사한 결과 아무런 음성도 비행기 녹음기에 녹음되지 않았다고 발표했습니다. 갑자기 부모를 잃은 아들의 심정은 이해가 갑니다. 그러나 자기의 상상대로 이야기를 만들어 신문에까지 발표하는 것은 좀 지나치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문제는 거기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무엇인가 새롭고 신기한 이야기를 듣기를 좋아하는 세상은 그 신기한 이야기들을 아무 생각 없이 받아드립니다. 신문에 게재합니다. E-mail에 e-mail을 통하여 퍼지고 퍼져 나갑니다. 존 윌리암즈씨에게 왔을 때 처음으로 이 이야기는 분석되어 진 것입니다. 왜 이러한 이야기가 이처럼 쉽게 전파되나요? 우리는 이상하고 신기한 이야기를 듣길 좋아합니다. 또 전파하길 좋아합니다. 특히 크리스챤들은 더 합니다.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의사가 환자에게 뇌를 이식하여야겠다고 말했습니다. 실질적으로는 뇌 이식이 불가능하니 이 이야기도 만든 이야기이긴 합니다만... \"$5,000에 아주 저명한 물리학자의 두뇌를 이식 받을 수 있습니다.\" 의사는 말합니다. \"$10,000이면 아주 훌륭한 대학교수의 두뇌를 이색받을 수 있죠. 여유가 있으면 $50,000짜리 두뇌는 어떻습니까? 이 두뇌는 크리스챤의 두뇌입니다.\" \"왜 크리스챤의 두뇌가 가장 비싸죠?\" \"한번도 사용되지 않았기 때문이죠.\" 크리스챤들은 생각없이 소리를 듣기를 좋아하고 또 들은 소리 내뱉기를 좋아하기에 나온 유우머 같습니다. 미국 정부에 Federal Communication Commission이 있습니다. 모든 방송 내지 광고를 주관하는 기관인 줄 압니다. 이 F.C.C.에 20년간 3천만개의 청원서가 접수되었습니다. 그 청원의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메들린 오헤어(Madalyn O\'Hair)라는 무신론자가 방송에 전혀 기독교 내용이 담긴 내용을 방송하지 못하도록 하는 작업을 시작하였다고 합니다. 이 소식을 들은 크리스챤들이 1975년부터 1995년까지 이에 항거하는 편지를 F.C.C.에 계속적으로 보냈다고 합니다. 아직도 계속 청원서가 접수될 지 모릅니다. 나중에 밝혀진 것은 그것이 사실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메들린 오헤어가 아니라 작은 방송국 사람들이 교육방송을 위한 시간에 종교방송이 들어가지 못하게 하자는 제의뿐이었습니다. 사실 이 청원을 정부는 받아드리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크리스챤들은 20년 동안 3천만장의 편지를 써보냈습니다. 막대한 자원의 낭비는 두말할 것도 없습니다. 왜 오늘 크리스챤들은 이래야 할까요? 들어야 할 참 소리는 듣지 않고 이상야릇한 소리에만 귀를 기울이기 때문이 아닐까요? 오늘 고난주일을 맞아 우리가 듣고 또 들어야 할 소리를 듣게 되시길 바랍니다. 오늘은 종려주일이자 고난주일로 지킵니다. 오늘 우리 주님께서 나귀타고 예루살렘성에 입성하시는 날입니다. 예루살렘에서 3일간 마지막으로 여러 가지 말씀을 제자들에게 가르치십니다. 목요일 저녁에 다락방에서 유월절 만찬을 드시고 그 유명한 세족식을 거행하십니다. 그후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시고는 가롯 유다와 대제사장들이 보낸 군인들에게 붙잡히십니다. 밤새껏 재판 받으신 후 금요일에 빌라도 법정으로 끌려가십니다. 그곳에서 마지막 사형판결을 받으십니다. 그리고는 당신의 십자가를 지시고 골고다로 행하십니다. 골고다 산상에 이르러 로마군인들은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습니다. 예수의 머리 위에 \'유대인의 왕\'이라는 팻말을 붙여 놓았습니다. 십자가에 못박힌 예수에게 모든 사람이 조롱합니다. \"성전을 헐고 사흘이면 다시 짓는 다던 자야 네 목숨이나 건져라. 네가 정말 하나님의 아들이거든 어서 십자가에서 내려와 보아라.\" 대제사장들과 율법학자들은 조롱합니다. \"남은 살리면서 자기를 못살리는구나. 저 사람이 이스라엘의 왕이래. 십자가에서 한번 내려와 보시지. 그러면 우리가 믿고 말고. 저 사람이 하나님을 믿고 또 제가 하나님의 아들입네 했대. 하나님이 원하시면 어디 살려 보시라지.\" 십자가에 달린 예수의 귓속에 들려오는 소리는 인간들의 조롱소리였습니다. 이 조롱소리는 계속 예수의 귓전을 울립니다. 때를 같이 하여 12시경부터 갑자기 어둠이 덮여 오후 세시까지 계속됩니다. 어두움을 통하여 예수는 하나님께서 당신을 버리시는 고통을 느끼십니다. 세시간 가량 하나님께서 당신을 버리시는 고통 속에 있다가 큰 소리로 부르짖으십니다.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 몇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엘리 엘리\"하니까 엘리야를 부르는 줄 알아듣습니다. 그래서 옆의 사람들에게 \"엘리야가 와서 구해주나 봅시다\"라고 말합니다. 잠시후 예수는 다시한번 큰 소리를 지르시고 숨을 거둡니다. 우리가 주님께서 십자가 위에서 일곱 마디의 말씀을 하셨다고 생각합니다. 4 복음서를 종합하면 일곱 마디 말씀이 나옵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마태복음에는 두마디 말씀을 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고 실제 내용이 기록된 것은 한 말씀 밖에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다. 마태에 의하면 먼저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외치셨습니다. 두 번째로는 다시 한번 크게 소리 지르시고 숨을 거두셨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주님의 마지막 마디를 요한 복음에는 \"다 이루었다\"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누가복음에 보면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맡기나이다\"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분명히 주님은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외치신 후 다른 외침을 하셨습니다만 마태는 그저 \"다시 한번 큰 소리를 지르셨다\'로만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마지막 주님의 외침은 무엇일까요? 마태는 마지막 외침에 관심이 없습니다. 마태의 입장에서 보면 예수님의 일곱 마디 말씀 중에 가장 중요하고 당신 복음서에 의미가 있는 외침은 하나였습니다.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이 외침을 마무리 짓기 위해 마지막으로 또 한번 크게 무엇인가 소리를 지르신 것입니다. 그러면 왜 마태는 이 한 마디에만 관심을 가졌을까요? 마태복음은 유대인들을 상대로 해서 쓰여진 복음서입니다. 마태복음 시작을 보면 유대인들의 유대인인 아브라함에서 시작되는, 그리고 예수까지 이르는 족보가 나옵니다. 이 예수가 참 유대인임을 증명하는 족보입니다. 또한 예수님의 탄생기사를 보면 유일하게 동방박사들이 황금, 유황, 몰약을 가지고 찾아와 경배하는 모습이 나옵니다. 바로 유대인의 왕의 모습이 그려져 있습니다. 이 장면은 유일하게 마태복음에만 나옵니다. 마태는 복음서를 통하여 예수님은 참 유대인으로 오셨고 또 유대인의 왕으로 오셨음을 강조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보면 예수님의 마지막 모습은 어떠합니까? 예수님은 유대인에게 조롱 당하십니다. 유대인들에게 버림받습니다. 그런데 유대인들에게 버림받으시는 것까지는 좋은데 끝내 하나님에게 버림받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십자가 위에서 외치십니다.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그리고 마태는 예수님이 숨을 거두시기 전 한번 더 소리지르셨다고 말합니다. 이 두 번째 소리 지르심은 버림받으시는 고백의 연속적인 고백임을 우리는 느낄 수 있습니다. 마태에게는 이 두 번째 소리는 첫 번째 소리의 메아리에 불과합니다. 마태는 예수님은 실로 한가지 외침을 하셨음을 증언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버림받으시는 모습을 증언합니다. 마태는 독자들에게 예수님의 하나님께 버림받으시는 고통의 소리를 메아리와 함께 두 번 들려주고 있는 것입니다.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리.\" 유대인의 왕으로 오신 이가 자기 민족인 유대인들에게 버림을 받으셨습니다. 하나님의 아들로 오신이가 하나님께서 버림을 받으셨습니다. 고난주일 이 아침에 버림받으시는 예수님의 고통의 절규가 우리들의 귓전을 울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들의 마음도 울리고 있습니까? 엘리 비젤(Elie Wiesel)이라는 노벨 평화상을 수상한 유명한 유대인 문학가가 있습니다. 홀로코스트를 겪은 그의 경험이 그를 세계평화에 공헌케하는 사람으로 만든 셈입니다. 홀로코스트에서 겪은 고통 중 가장 큰 고통을 그는 다음과 같이 고백합니다. \"나는 모든 겪어야 할 고통을 겪었습니다. 그런데 모든 고통 중에 가장 큰 고통은 아무도 내가 살아있다는 것을 알지 못한다는 사실이 주는 고통이었습니다. 나를 아는 모든 사람이 나에게 대해 포기했음을 알았습니다. 나는 버림받은 느낌이었습니다. 그리고 버림받은 느낌이 인간의 고통 중 가장 큰 고통이었습니다. \" 월남전 포로들이 다음과 같이 고백합니다. \"가장 고통스러웠던 것은 친구들과 떨어뜨려 놓은 후에 월맹군인들이 \'아무도 네가 살아 있다고 생각 안해. 모두가 너를 잊어 버렸어\'라고 쇄뇌시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와 같은 고통 중에서도 포로들이 살아 나올 수 있었던 이유가 있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은 자기를 버리지 않았다는 믿음이었다고 합니다. 미군 포로들은 모든 사람들에게 잊혀진 바 되고 버림받은 고통을 겪었지만 승리할 수 있었던 이유는 하나님은 자기를 버리지 않았다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놀라운 주님의 사랑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주님은 이 미군 포로들에게 참 소망을 주시기 위하여 주님 스스로는 하나님께 버림받으시는 고통을 치루셨습니다. 유대인의 왕으로 오셔서 인간들에게 버림받으셨는데 그것만으로는 부족하였습니다. 하나님에게 버림 받으셨습니다. 하나님께 버림받는, 다시말하면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고통을 겪으셨습니다. 그 이유는 우리들로 하여금 결코 하나님께 버림 받음되지 않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우리 주님은 우리가 하나님께 버림받지 않도록 당신이 하나님께 버림받으시는 상상할 수 없는 고통을 겪으신 것입니다. 사실 주님은 십자가 위에서 육신의 고통으로 절규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인간들을 대신하여 하나님께 버림받으시는 고통을 안고 절규하십니다.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 사랑하는 교우여러분, 이 주님의 외침을 들으십니까? 우리의 귓전으로만 듣지 말고 마음으로 들으십시다. 우리가 귓전으로만 들을 때 우리는 세상에서 들려오는 변질된 소리를 듣기를 좋아합니다. 처음 말씀드린 것처럼 잘못된 말들에 귀를 귀울이고 또 그것을 전파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을 위한 것으로 생각합니다. 거짓에 속고 또 속이는 자들이 됩니다. 그러면 사랑하는 교우여러분, 우리가 진정 들어야 할 소리가 있습니다. 이번 고난주간동안 마음으로 주님의 절규를 들으십시다. 우리를 대신하여 하나님께 버림 받으시는 주님의 고통의 소리를 들으십시다.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 정호승 시인이 지은 항아리란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느 젊은이가 처음으로 항아리를 만들었습니다. 이 항아리는 처음 만든 항아리라 아주 잘못 만들어졌습니다. 이 항아리는 곧 주인에게 잊혀집니다. 버려진 항아리가 되었습니다. 이 항아리는 눈과 비를 맞으면서 지냅니다. 낙엽이 그 안에 고입니다. 어느날부터 젊은이는 이 항아리를 오강으로 사용합니다. 오가는 사람들이 대소변으로 이 항아리를 채웁니다. 오랜 시간이 지나서 젊은이는 나이가 들었고 그후 세상을 떠납니다. 항아리는 더 이상 오강 신세를 면하게 됩니다. 그런데 어느날 사람들이 와서 근처에 종각을 세웠습니다. 에밀레 종과 비슷하나 작은 종을 달았습니다. 종소리는 날마다 달과 별이 마지막까지 빛을 뿜는 새벽하늘로 높이 울려 퍼졌습니다. 그 종소리는 새소리처럼 아름다웠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종소리가 아름답지 않다고 야단들입니다. 종각 주인은 어떻게 해야 아름다운 소리를 할까 고민에 고민을 거듭합니다. 어느날 종각 주인이 항아리 옆에 와 섰습니다. \"으음, 이건 아버님이 만드신 항아리야. 이 항아리가 아직 남아 있다니. 이 항아리를 묻으면 좋겠군.\" 항아리는 두려움에 떨며 종각의 종 밑에 묻히게 되었습니다. 항아리는 무엇이 되기 위하여 종 밑에 묻히는지 알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항아리를 묻고 종을 치자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항아리의 고백입니다. \"종소리가 내 몸 안에 그득 들어 왔다가 조금씩 조금씩 숨을 토하듯 내 몸을 한바퀴 회돌아 나감으로써 참으로 맑고 고운 소리를 내었습니다. 처음에는 주먹만한 우박이 세상의 모든 바다 위에 떨어지는 소리 같기도 하다가, 나중에는 갈대 숲을 지나가는 바람이나 실비 소리 같기도 하고 그 소리는 이어지는가 싶으면 끝나고 끝나는가 싶으면 다시 계속 이어졌습니다. 나는 내가 종소리가 된 게 아닌가하는 착각에 몸을 떨었습니다. 그러면서 그제서야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내가 이 세상을 위해 소중한 그 무엇이 되었다는 것을... 아름다운 종소리를 낸다는 것, 그것이 바로 내가 바라던 내 존재의 의미이자 가치였습니다.\" 참으로 아름다운 이야기입니다. 버림받은 항아리가 끝내 아름다운 종각 밑에 심겨지어 아름다운 종소리를 내는 항아리가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교우여러분, 우리의 마음의 항아리를 울리는 소리는 어떤 소리입니까? 세상의 속고 속이는 불확실한 소리들은 아닙니까? 세상의 소리가 우리의 마음의 항아리를 통해 더욱 커져서 세상으로 퍼져 나가고 있지는 않습니까? 그래서 세상을 더욱 어지럽게 하고 있지 않습니까? 사랑하는 교우여러분, 우리의 마음의 항아리로 주님의 절규를 들으십시다. 고난주간 주님의 음성을 들으십시다. 우리의 존재도 바로 버림받은 항아리와 같습니다. 수정교회 담임목사인 로버트 슐러 목사님이 상처받은 자들을 위한 책을 썼습니다. 로버트 슐러 목사님은 그 책에서 자신의 버림받은 상처를 고백합니다. 무려 11번의 큼직큼직한 사건들을 나열하고 있습니다. 로버스 슐러 목사님 뿐이겠습니까? 우리 모두에게도 큼직큼직한 상처가 있지 않을까요? 버림받은 고통의 상처로 가득 채워져 있지 않을까요? 그러면 이 버림받은 항아리에게 버림받으시는 주님의 절규가 들려질 때 놀라운 사건이 일어나지 않을까요? 우리들의 상처난 항아리가 필요한 소리는 세상의 소리가 아닙니다. 주님의 버림받으시는 고통의 음성입니다. 주님의 절규가 우리의 마음속에 들어와 오장육부를 다 휘감아 돌아 더욱 아름다운 소리가 되어 세상으로 뻗어 나가게 하십니다. 주님의 외침이 우리의 마음의 항아리 속에 들어와 메아리 치게 하십니다.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우리들 몸 안에 세포세포마다 주님의 절규를 듣게 하십시다. 그리고는 온 세상에 주님의 아름다운 절규를 들려주십시다. 십자가 아래 거하노라면 우리는 주님의 고통의 소리를 듣게 될 것입니다. 우리를 통하여 주님의 절규는 온 세상으로 메아리칠 것입니다.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말씀을 거둡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버림받는 주님의 외침은 마음의 항아리에 받으면서 사셨던 분이 있습니다. 빌 윌슨(Bill Wilson)이라는 분의 어린 아이시절 이야기입니다. 하루는 엄마가 산책하러 나가자고 해서 밖으로 같이 나갔습니다. 엄마는 길거리 한 지점에 오더니 \"잠깐 여기 앉아 있으면 금방 올께\"하고는 가버렸습니다. 빌은 그 자리에서 엄마가 오기를 기다렸습니다. 하루 종일 기다렸습니다. 밤새껏 기다렸습니다. 길거리에서 잠을 잤습니다. 그 다음날도 깨여서 그 자리에서 계속 기다렸습니다. 3일간을 계속 기다렸습니다. 더 기다릴 심산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떤 신사가 오더니 빌에게 무엇을 하고 있느냐고 물었습니다. 엄마는 3일간 기다렸다고 말합니다. 그 신사는 \"나는 주일학교 선생이야. 나와 함께 가지 않으렴. 네가 아주 좋아할꺼야. 너 배고프지?\" 신사는 빌에게 먹을 것을 주었습니다. 그리고 주일학교에 데리고 갔습니다. 빌은 예수님을 알게 되었고 크리스챤이 됩니다. 그후 빌은 버림받은 아이들을 위해 헌신하기로 결심합니다. 빌은 세계에서 제일 큰 주일학교(Sunday School)를 세우게 됩니다. 뉴욕에서 매주일 2만명의 어린아이들을 위한 주일학교가 되었습니다. 그는 요즘도 몸소 주일이면 버스를 운전하면서 아이들을 찾아 나섭니다. 길가에 버려진 아이들을 찾아 나섭니다. 빌은 자기처럼 버려진 아이들을 찾아 나섭니다. 빌은 누구보다도 버림받은 자의 고통을 잘 아는 분이었습니다. 누구보다도 하나님의 버림받으시는 주님의 절규를 가슴 속 깊게 들었던 분입니다. 버림받은 빌의 마음속에 주님의 고통의 절규가 울려 퍼지게 된 것입니다. 빌의 마음의 항아리를 채운 주님의 절규는 아름다운 소리가 되어 뉴욕의 길거리를 울리게 된 것입니다. 빌은 자기를 위해 버림받으시는 주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자기의 마음의 항아리를 통하여 온 세상에 울리게 하였습니다. 사랑하는 교우여러분, 주님은 우리를 위하여 하나님께 버림 받으셨습니다. 우리의 마음의 귀를 열어 주님의 절규를 들으십시다. 우리를 통하여 주님의 절규는 아름다운 소리가 되어 온 세상에 퍼지게 하십시다.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