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십자가 마10:34-39
오늘은 종려주일입니다. 예수님 나귀 타고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주일입니다. 사람들이 이 때 종려나무 가지를 흔들며 예수님을 환호하였다고 해서 오늘을 종려주일이라 부릅니다. 생각해보면 지금 예루살렘에서는 주님을 죽이려는 음모가 진행 중입니다. 원수들이 기다리고 있고 십자가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주님은 무서운 죽음의 도성을 향해 과감하고 당당하게 입성하시는 것입니다. 그것도 그냥 조용히 가신 것이 아닙니다. 선지자를 통해 예언된 말씀대로 새끼 나귀를 타고 많은 사람들의 환호 가운데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셨습니다. 새끼 나귀를 탔다는 것은 구약의 예언에 의하면 이스라엘의 왕이요, 동시에 이스라엘의 구원자의 입성행사입니다.
이 때 수많은 사람들이 둘러서서 \"호산나\"를 외치면서 종려나무 가지를 흔들었습니다. 종려나무는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있어서 승리의 상징입니다. \"호산나\" 라는 말은 \"우리를 구원하소서\" 하는 뜻입니다. 우리 식으로 하면 만세를 외치면서 예수님 주위에 무리를 지어 환호하며 가는 것입니다. 이렇게 입성을 하신 다음, 고난을 당했고, 십자가에서 죽임 당하시고, 부활절 새벽에 부활하십니다.
종려주일에서 십자가로 그리고 부활로 이어지는 이 한 주간이 주님의 생애에 가장 중요한 한 주간입니다. 예루살렘에 들어오신 것이 주일날이요, 부활하신 것이 그 다음 주일날이니까 한 주간인데, 이 한 주간 동안에 사실상 기독교가 이루어졌습니다. 따라서 이 한 주간은 예수님의 전 생애의 결론이요, 온 생애를 함축시킨 것과 같은 그런 중요한 의미를 갖습니다. 우리가 복음서를 살펴보면 복음서도 바로 이 한 주간 동안에 일어난 일을 집중적으로 기록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복음서의 1/3 이상이 바로 이 한 주간 동안의 사건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렇게 예수님의 생애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이 한 주간을 고난주간이라 부릅니다. 주님이 이 때에 고난을 당하셨기 때문입니다. 물론 주님의 생애는 전체가 고난으로 가득 차 있지만 특별히 이 한 주간 동안에 많은 고난을 당하셨고 고난의 절정인 십자가의 고난을 당하셨습니다.
생각해보면 우리 기독교는 고난과 뗄 수 없는 관계를 갖습니다. 기독교 자체가 고난을 통해 이루어졌습니다. 주님의 고난을 통해 복음이 완성되었습니다. 그리고 이제 이 복음을 받는 자도 고난을 받습니다. 진정으로 주님을 믿고 따라는 자에게는 고난이 있다는 것이 성경의 가르침입니다.
우리가 고난 주간에 다시 한번 분명히 해야 할 것이 바로 이 주님을 믿는 자가 받는 고난입니다. 우리는 지난 날 고난주간이 되면 주님을 고난을 묵상하면서 스스로 금욕하며 절제하기도 했습니다. 제가 어릴 때 고난 주간이 되면 고기를 먹지 않았던 기억이 있습니다. 하지만 깊이 생각해 보면 고기 안 먹는 이런 것이 우리가 받아야 할 고난이 아닙니다. 고난 주간에는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 받아야 할 진정한 의미의 고난을 생각해야 합니다. 주님 십자가의 고난을 당했는데 주님을 따르는 우리는 어떤 고난을 받아야 하는가 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예수님 말씀하십니다.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지 않는 자도 내게 합당치 아니하니라\" 마태복음 16장에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 십자가를 지지 않고는 누구도 주님은 온전히 따를 수 없다는 말씀입니다. 오늘도 주님은 바로 따르려면 자기 십자가를 져야한다는 뜻입니다. 바로 이 자기 십자가, 이것이 그리스도인의 진정한 고난이요, 고난 주간에 우리가 다시 한번 생각해야 할 진리입니다.
지금 우리는 십자가를 진다고 하면 무슨 의미인지 얼른 실감이 나지 않습니다. 십자가가 아주 친근하게 여겨지기 때문입니다. 예배당마다 십자가가 달려 있고 병원의 표식이 십자가요 평화의 상징이 십자가입니다. 십자가 목거리, 십자가 뱉지, 십자가 반지, 그야말로 사랑 받는 장식품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주님이 이 말씀을 하실 당시 십자가는 결코 친근할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당시로서는 가장 잔인한 사형틀이었기 때문입니다. 특별히 갈릴리 사람들에게 십자가는 익숙한 것이었다고 합니다. 요세푸스라는 역사가에 의하면 예수님 바로 직전에 갈릴리에 큰 사건이 있었습니다. 유다라고 하는 사람이 로마제국에 반대하여 정치적인 반란을 일으켰습니다. 로마에서는 마리우스라는 장군을 보내어 이 반란을 진압했는데 반란은 실패로 돌아가고 그 결과 이 조그마한 갈릴리 지방에서 무려 2천명이 붙잡혀 십자가에 처형을 당했다고 합니다.
한번 상상을 해 보십시오. 2천명을 길거리에다 쭉 십자가에 못박아 놓았을 때 그 광경이 어떠했겠습니까? 피비린내와 신음소리, 그리고 가족들의 통곡소리, 말로는 다 형용할 수 없는 비참한 모습이었을 것입니다. 갈릴리 사람들은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다 그 비참한 십자가의 죽음을 지켜보았습니다. 바로 그 갈릴리 사람들에게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나를 따르려면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쫓을 것이니라\" 이 얼마나 무서운 말씀입니다. 그들의 눈앞에 나타났던 그 처절한 죽음, 시체가 찢겨지며 매달려 있던 그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라야한다는 말씀입니다. 주님을 따르는 자가 받는 고난이 얼마나 무섭고 힘든 것인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먼저 생각해야 할 것 있습니다. 십자가는 결코 인간적인 일반적인 고통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성경은 우리가 병들어 고생을 하든가, 혹은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당 하든가, 아니면 살아가면서 당하는 이런저런 고난을 가리켜 십자가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어떤 사람 자기가 잘못해서 가난하게 살면서도 \'십자가를 진다\' 그러고 제 실수로 욕을 먹을 때도 \'십자가를 진다\' 고 합니다. 결혼을 잘못하여 남편에게 시달려도 십자가를 진다고 합니다. 물론 다 힘든 것 사실입니다. 그러나 힘든다고 해서 다 십자가는 아닙니다. 십자가는 결코 일반적인 고난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자기 십자가는 무엇입니까? 무엇이 나의 십자가입니까? 그것은 무엇보다 먼저 바른 길, 의의 길입니다. 의의 길에서 당하는 고난과 아픔 그것이 십자가입니다.
본문 35,36절에 예수님께서는 내가 온 것은 사람이 그 아비와, 딸이 어미와 며느리가 시어미와 불화하게 하려 함이니 사람의 원수가 자기 집안 식구니라\" 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이 무슨 뜻입니까? 예수 믿으면 무조건 부모와 자식이 싸워야하고 며느리와 시어머니가 다투어야 된다는 의미이겠습니까? 그런 의미는 아닐 것입니다. 보십시오. 예수를 믿으면 이제는 이전처럼 살 수 없습니다. 주님의 뜻을 따라야 하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표준으로 삼고 순종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이것은 절대로 양보할 수 없습니다. 이것이 가장 사랑하는 사람의 마음마저도 그슬리게 할 수 있습니다. 믿지 않는 가족의 마음을 아프게 할 수 있습니다. 결국 사람이 그 아버지와 딸이 어머니와 며느리가 시어머니와 원수가 될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할 수만 있으면 모든 사람과 화목해야 합니다. 특별히 그리스도인은 가족을 사랑하고 부모를 공경해야 합니다. 이 일에 최선을 다 해야 합니다. 그러나 양보할 수 없는 것이 있습니다. 생각해보십시오. 부모님을 사랑한다고 해서 제사를 지내라고 하면 지낼 것입니까? 아무리 부모님을 사랑해도 제사지낼 수는 없지요. 귀신을 섬기는 것인데 어떻게 제사를 지냅니까? 이것이 아픔이 되고 고통이 됩니다. 바로 그 아픔이 십자가입니다. 그러므로 십자가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려고 하다가 당하는 불편함입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기 위해 고통과 고난의 길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 예수 잘 믿는 것이 어떻게 하는 것이라 생각하십니까? 진정 예수 잘 믿는 것은 이 평안한 시대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기 위해 기꺼이 불편함을 감수하는 것입니다. 오늘도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기 위해 바른 길을 가고, 의의 길을 좇을 때 거기 많은 불편함이 있습니다. 아픔이 있고, 고통이 있습니다. 그것이 주님을 따르기 위해 내가 져야할 십자가요, 그 아픔이 십자가의 고난입니다.
현대는 삶의 표준이 없는 시대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의 마음에도 좋은 것이 좋은 것이라는 생각이 만연해 있습니다. 적당하게 다 타협해 버리고, 여기서는 이렇게 저기서는 저렇게 편리한대로 살아갑니다. 그러니 십자가가 있을 리가 없습니다. 주님을 온전히 좇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마7장 13,14절에 예수님은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고 했고 좁은 길을 가라고 했습니다. 좁은 문에서 좁은 길로 이어집니다. 좁다는 말은 제약이 있다는 뜻입니다. 아무런 제약 없이 예수 믿고 있다면 좁은 길로 가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좁다는 말은 또한 험하다는 뜻입니다. 주님을 온전히 따르는 것은 험하고 어려운 길을 가는 것입니다. 그것이 십자가의 길입니다. 이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라야 합니다.
나아가 자기 십자가는 주님 사랑입니다. 본문에 예수님 말씀하셨습니다. \"아비나 어미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는 내게 합당치 아니하고 아들과 딸을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는 내게 합당치 아니하다\" 여기 중요한 것이 더 사랑한다는 \"더\" 라는 말입니다. 주님을 더 사랑하는 것, 더 사랑하기 때문에 어느 결정적인 순간에는 가족에 대한 사랑을 포기해야 할 수도 있습니다. 그 아픔이 곧 십자가라는 말씀입니다.
누가복음 14장 26절 이하에서는 본문과 같은 내용의 말씀을 좀 더 자세하게 설명하셨습니다. 우리 본문에는 \"아비나 어미를 나 보다 더 사랑하는 자는 합당치 않다\" 고 하셨습니다만 누가복음에는 \"아비나 형제나 자매나 혹은 자기 목숨까지도 미워해야 나를 사랑할 수 있다\" 고 말씀하셨습니다. 결정적인 순간에는 가족마저 미워해야만 예수님을 진정 사랑할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 나라 기독교역사에 일제시대 때의 신사참배는 지울 수 없는 사건입니다. 그 숱한 고난과 마지막에 죽음까지 무릎 쓰고 끝까지 신사참배를 거부하고 신앙을 지킨 사람들도 있었지만 많은 사람들이 실패했습니다. 해방이후 이것이 문제되었을 때 신사참배를 한 사람 중에는 회개하기를 거부하고 신앙의 사람들을 배척한 사람들마저 있었습니다. 그러나 신사참배를 한 그 사실 때문에 평생을 두고 괴로워했던 사람도 있었습니다. 어느 목사님 한 분은 결국 마지막에 신사참배를 하고 말았는데 이유가 바로 처자식 때문이었다고 말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모든 핍박과 시험을 다 이겼습니다. 매를 때리는 것도 이겨내고 고문하는 것도 이겨내었습니다. 회유하는 것도 이겼습니다. 아무리 때리고 고문을 해도 안되니 나중에는 회유를 합니다. 상처를 딱아주고 치료도 해주고 한 상 잘 차려서 먹여줍니다. 그러고는 절 한번만 하라는 것입니다. 참 어려운 순간입니다. 그러나 이 어려움도 이겨내었습니다. 그런데 마지막에 아이들과 아내를 데려다가 울게 만드는데 여기서 실패하고 말았다고 했습니다. 불쌍한 아이들과 아내를 보니 그만 마음이 녹아내려 약! 해져 신사 참배를 하고 말았다는 이야기입니다.
여러분, 예수님을 더 사랑하는 것을 쉬운 일로 생각지 마십시다. 예수님을 더 사랑하기 위해서 때로는 아내와 자식까지 미워해야 할 경우도 있습니다. 주님 더 사랑하기 위해서는 결정적인 순간에 모든 것을 버려야 할 수도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자기 십자가라는 말씀입니다.
자기 십자가는 또한 주님을 위한 헌신입니다. 십자가는 주님을 위해 봉사하며 헌신하는 삶을 뜻합니다. 주님을 따르는 삶은 그냥 주님을 따라가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 주신 사명을 감당하며 따라야 합니다. 이 사명은 그냥 가만히 앉아 이룰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시간을 투자해야 하고 물질을 투자해야 합니다. 정성을 쏟아야 합니다. 그 만큼 세상적인 것을 버려야 합니다. 이러한 봉사와 헌신 또한 우리가 져야할 십자가입니다.
그래서 오늘 주님에게 필요한 사람은 십자가를 지는 사람입니다. 주님을 위해 교회를 위해 희생하고 헌신하는 사람입니다. 썩어지는 밀알이 되는 사람입니다. 현대인들은 썩어지지는 않으면서 내가 썩어진다고 소리만 지르고 있습니다. 말없이 희생하는 사람, 그 사람이 바로 십자가를 지는 사람입니다.
마지막으로 자기 십자가는 자기 부정입니다. 우리 본문에는 그냥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으라고 했지만, 마태복음 16장에는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으라\" 고 했습니다. 자기 십자가는 곧 자기를 부정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속에는 옛 사람의 욕망이 있습니다. 세상 사람 따라가기를 원하는 욕구가 있습니다. 이제는 이것을 버려야 합니다. 그래야 주님을 온전치 좇을 수 있습니다. 먹고 싶은 대로 다 먹고, 하고 싶은 대로 다 한다면 예수를 바로 믿는 것이 아닙니다. 내 옛사람이 원하는 것과 주님이 원하는 것은 결코 같을 수가 없습니다. 이것을 부인하지 아니하고는 십자가를 질 수 없고, 주님을 따를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십자가는 자기와의 싸움입니다. 자기 신뢰, 자기 교만, 자기 자랑과 자기 정욕과의 싸움입니다. 이런 것들을 죽이는 것이 바로 십자가를 지는 것입니다.
어느 교회에 여 집사님이 한 분 있었습니다. 외모도 빼어나고 여러 가지로 훌륭한 분인데 집안이 늘 편치가 않았습니다. 남편과의 사이에 아이가 둘이요 나이도 먹을 만큼 먹었는데 늘상 티격태격입니다. 몇 달 함께 사는가 싶으면 또 별거를 합니다. 별 것 아닌 문제로 싸움이 끊어지지 않습니다. 목사님이 한 번은 조용히 만나 이야기를 해보았습니다. \"행복하게 살기에도 짧은 세상인데 어떻게 원만하게 살 수 없겠습니까?\" 여 집사님 대답을 합니다. \"목사님 내가 실천을 못해서 그렇지 방법은 있습니다.\" 목사님이 묻습니다. \"그 방법이 무엇입니까?\" 그러자 여 집사님이 정곡을 찌르는 대답을 합니다. \"목사님, 내가 죽으면 됩니다\" 맞습니다. 내가 죽으면 됩니다.
여러분, 그렇지 않습니까? 내가 죽으면 되는 것 아닙니까? 깊이 생각해보십시오. 마음의 고민, 가정에 문제, 아직도 내가 살아 있기 때문이 아닙니까? 내가 죽으면 됩니다. 그러면 억울할 것도 없고 분할 것도 없습니다. 별것도 아닌 이 자존심, 교만 이런 것들이 살아남았기 때문에 힘든 것입니다. 죽어야 합니다. 철저하게 죽어보세요. 죽는 그것이 바로 십자가입니다. 자기를 부인하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이렇게 자기를 부인할 때 새로운 세계가 열린다는 사실입니다. 죽을 때 죽는 것이 아니라 살게 됩니다. 죽을 때 문제가 해결됩니다. 그래서 본문에 예수님도 말씀하셨습니다. \"자기 목숨을 얻는 자는 잃을 것이요, 나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잃는 자는 얻으리라\" 잃을 때 얻습니다. 죽을 때 열매를 맺습니다. 진실로 그리스도를 위하여 온갖 것을 다 죽여버리고 완전히 희생해 버리며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를 때 참된 생명, 참된 능력이 함께 합니다.
나아가 여기 얻는다는 말 꼭 땅에서만 얻는다는 뜻이 아닙니다. 하늘나라에서 얻는다는 뜻이 있습니다. 마태복음 16장에서도 주님, \"누구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 고 하신 다음, 인자가 아버지의 영광으로 그 천사들과 함께 오리니 그 때에 각 사람의 행한 대로 갚으리라고 하셨습니다. 십자가를 진 사람들이 하늘나라에서 영광 받게 된다는 진리입니다. 그렇습니다. 땅에서 주님을 위해 고난을 당할수록 하늘나라에서 영광 받게 됩니다. 그래서 바울은 지금 받는 고난은 장차 받을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어느 시골에 여집사님 한 분이 몹시도 힘들게 신앙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집사님은 기도할 때마다 \"주님, 너무 힘듭니다! 주님, 너무 힘듭니다!\" 부르짖었습니다. 한 번은 꿈을 꾸는데 자신이 커다란 십자가를 질질 끌고 가고 있었습니다. 그 때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집사님은 예수님에게 부탁했습니다. \"주님, 주님은 목수이시지 않습니까? 이 십자가 조금만 잘라 주세요.\" 주님은 빙그레 웃으시면서 잘라 주셨습니다. 그런데 매어보니 그래도 큽니다. 다시 잘라 달라고 했습니다. 집사님은 몇 번씩이나 주님에게 자기의 십자가를 잘라 달라고 했고, 주님은 그 때마다 말없이 십자가를 잘라 주셨습니다. 그러다가 마침내 천국에 왔습니다. 천국에 와 보니 주님이 상을 주십니다. 그런데 가만히 보니 상을 주시는데 십자가 크기만큼 상을 줍니다. 자기의 십자가를 얼든 들여다보았습니다. 손안에 들어올 정도로 조그만한 십자가였습니다. 깜짝 놀라서 꿈에서 깨어났습니다. 그 때 귀전에 주님의 음성이 들려 옵니다. \"누구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좇을 것이니라.\" 집사님은 얼른 무? ??꿇었습니다. 그리고 기도했습니다. \"아멘! 주님, 감사합니다. 십자가 지고 주님 따르겠습니다\"
다시 한번 생각해보십시다. 십자가를 지셨습니까? 주님의 음성을 들어보십시오.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
기도: 종려주일을 맞이해서 주님이 가신 십자가의 길을 바라보면서 내가 져야할 십자가를 생각했습니다. 의의 길을 가지 못했고 주님 더 사랑하지 못했고 주님을 위해 헌신하지도 못했습니다. 자기를 죽이지 못했던 저희들이었습니다. 그래서 마땅히 져야할 십자가를 지지 못했었습니다. 이제 다시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님 따르려고 다짐합니다. 의의 길을 걸으면 주님 사랑하는 마음으로 주님을 위해 헌신하며 자신을 부인함으로 말없이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르는 저희들 다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