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가 /종려주일/ 성찬식

십자가/종려주일 - 성찬식/막8:34

십자가
종려주일 - 성찬식
막8:34





한 조류학자가 깊은 숲 속에서 앵무새 새끼를 잡아다 새장에 넣어 마당 한쪽의 나무에 매달아 놓았습니다. 그리고 아침마다 그 앵무새의 노래 소리를 들으며 기분 좋게 눈을 떴습니다. 그런데 며칠 후 앵무새 어미가 나타나더니 새끼에게 부지런히 먹이를 물어다 주었습니다.

그는 어미새의 모정에 감동했습니다. 그러나 며칠 후 새장 안의 앵무새는 죽은 시체가 되었습니다. 조류학자가 사인을 분석해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어미새는 새끼에게 독이 든 과일을 물어다 먹인 것입니다. 새장에 갇혀서 처량하게 울고 있는 자신의 새끼를 차마 눈뜨고 볼 수 없었던 것입니다.

우리가 어떤 울타리 안에 갇혀 있을 때 예수님은 때로 우리에게 독이 들어 있는 열매를 주시기도 합니다. 예수님을 깊이 믿고 신뢰하는 자는 이 독 열매를 거절하지 않고 받아 먹습니다. 그리고 죽습니다. 내 자존심, 고집, 거짓말하는 것, 내 소유, 내 자랑, 돈, 경력, 지식 등등 육신의 소욕으로 난 것들이 죽습니다. 이런 것들이 죽어버릴 때 나는 진정한 자유를 경험하게 됩니다.

내가 죽어야 내 안에서 예수님이 일하십니다.
내 생각이 죽어야 주님의 생각과 뜻이 나를 통해 나타납니다.
내 지식과 능력이 죽어야 주님의 전능하신 능력이 나타납니다.

예수님은 바로 자신이 죽어야 온 인류가 구원받을 수 있다는 것을 알고는 기꺼이 십자가를 졌습니다. 이 십자가를 예수님은 “잔”이라고 표현했습니다. 십자가를 앞에 두고 하늘에 계시는 아버지를 향하여 절규했습니다. “내 아버지여 만일 할 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마26:39). 여기서 잔이라고 한 것은 바로 십자가에 달리심을 의미합니다. 이 십자가를 종려주일을 맞이해서 고난주간을 시작하면서, 성찬을 받으면서 다시 한 번 깊이 묵상해 봅시다.

여러분은 십자가를 생각하면 제일 먼저 무슨 생각을 하십니까?

십자가는 용서와 구원, 치유와 영생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십자가 종탑에서 울려 퍼지는 종소리는 언제나 내면 깊숙이 남아 있습니다. 교회와 십자가는 희망의 아이콘입니다. 시인 윤동주 선생이 일제 강점기 그 암울했던 시대에 쓴 ‘十字架(십자가)’란 시를 한번 볼까요?

쫓아오던 햇빛인데,
지금 교회당 꼭대기
십자가에 걸리었습니다.

첨탑(尖塔)이 저렇게도 높은데,
어떻게 올라갈 수 있을까요.
종 소리도 들려오지 않는데
휘파람이나 불며 서성거리다가,
괴로웠던 사나이,
행복한 예수 그리스도에게 처럼
십자가가 허락된다면

모가지를 드리우고
꽃처럼 피어나는 피를
어두워 가는 하늘 밑에
조용히 흘리겠습니다.

뒤처져 있던 희망이 이제 십자가에서 빛나고 있다는 메시지였습니다. 십자가가 희망이라는 뜻입니다. 윤동주 선생은 자신도 그 희망의 십자가에 매달려 돌아가신 예수님처럼 그렇게 살고 싶다는 것입니다. 조국을 위해서 말입니다. 십자가는 언제나 희망입니다. 예수님은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하여’(히 12:2) 십자가의 고난을 받으시고 부활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오늘 읽은 본문 말씀을 통하여 하신 말씀은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고 하십니다. 예수님을 믿고 예수님이 이룬 구원과 영생의 삶과 부활의 영광을 누리려고 하는 사람들은 우선적으로 자기의 십자가를 지고 좇으라고 했습니다. 당신의 십자가는 무엇입니까? 당신의 십자가는 너무 무겁다고 느껴지는 분 계십니까?

「어느 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하던 한 성도가 항상 심중에 \"내가 진 십자가는 너무 무거워, 좀 더 가벼운 십자가였으면,,,\" 하는 불평이 늘 있었다고 합니다. 그러던 어느 날 꿈에 무거운 자기의 십자가를 지고 언덕길을 올라갔는데 너무 힘겹게 가다보니 한 곳에 여러 개의 십자가가 있었습니다. 어디서 음성이 들여오길 \"네가 진 십자가가 그렇게 무겁다면 불평만하지 말고 여기 많은 십자가 중에서 하나 골라서 져라\"는 것이었습니다.

그 사람은 신이 나서 이것저것 살펴보다가 번쩍 번쩍 빛나는 조그만 십자가가 있어 그것을 골라 져보았습니다. 그런데 이 황금으로 된 십자가는 어찌된 일인지 일어 서기 조차 힘들 정도로 무거웠습니다. 겉으로 볼 땐 멋지고 화려해 보였는데 막상 져보니 전혀 그렇지가 않았습니다. 그는 실망하고 내려놓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다시 음성이 들리길 \"다시 골라 보라\"고 했습니다. 이번에도 눈에 들어오는 것은 역시 조그만 십자가인데 아름다운 장미꽃이 활짝 피어있는 십자가였습니다. 아주 예쁘고, 아름다운 향기도 나고 해서 져보았습니다.

이 십자가는 황금 십자가처럼 무겁지는 않았는데 지고갈 수가 없었습니다. 가시가 등을 어찌나 찌르는지 너무 고통스러웠습니다. 도저히 견딜 수 없어 하는 수 없이 다시 내려놓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다 져보니,,,, 그 많은 십자가 중 자기가 지던 십자가가 가장 가볍고 좋더라는 것입니다.

그런 것 같습니다. 우리들은 남이 진 십자가가 훨씬 가벼워 보이고 더 아름다워 보여 내가 진 짐을 불평하게 되지만 모두 벗어 한 자리에 놓고 본다면 자신이 가진 짐이 가장 가볍고 견디기 쉽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주님께서도 \"너의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 오너라\" 하셨습니다. 당신에게 지워진 각자의 십자가를 소중히 지고 주님을 따르는 십자가 군병들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예수님과 그의 나라를 사모하는 사람은 많이 있지만, 그의 십자가를 지는 사람은 매우 적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것이 있습니다. 여러분이 무겁게 느끼면 벗었으면 좋겠다고 생각되는 짐, 즉 십자가가 없이는 도저히 갈 수 없고 목표에 이르지 못할 경우가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물살이 센 냇물을 건널 때는 등에 짐이 있어야 물에 휩쓸리지 않습니다. 화물차가 언덕을 오를 때는 짐을 실어야 헛바퀴가 돌지 않습니다. 마찬가지로 내 등의 짐이 나를 불의와 안일의 물결에 휩쓸리지 않게 했으며 삶의 고개 하나하나를 잘 넘게 하였다는 사실도 부인할 수 없습니다. 내 나라의 짐, 가족의 짐, 직장의 짐, 이웃과의 짐, 가난의 짐, 몸이 아픈 질병의 짐, 슬픈 이별의 짐들이 내 삶을 감당하는 힘이 되어 오늘도 최선을 다하는 삶을 살게 하였음을 알아야 합니다.

십자가를 지지 않고는 예수님의 제자가 될 수 없습니다.
누가복음14:27 “누구든지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지 않는 자도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
십자가를 벗어던지는 자가 승리하는 것이 아니라 결국은 십자가를 묵묵히 지고 가는 자가 승리합니다.
골로새서 2장15절 “통치자들과 권세들을 무력화하여 드러내어 구경거리로 삼으시고 십자가로 그들을 이기셨느니라”
고린도전서1:18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얻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시카코에 있는 템플 교회의 종탑이 세계에서 가장 높다고 합니다. 그런데 하루는 교통이 마비될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거리에 써 종탑을 쳐다보고 있었습니다. 이유는 종탑위에 십자가가 있는데 마침 그 십자가를 수리하기 위해 사람이 올라가 매달려 있었기 때문입니다. 수십 년 동안 십자가는 거기에 있었으나 한 번도 쳐다보는 사람들이 없었는데 이렇게 엄청난 인파가 몰려든 것은 십자가에 사람이 매달렸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매달린 십자가이어야 사람들의 관심을 모을 수 있다는 진리를 우리에게 가르쳐 줍니다. 예수님 없는 십자가는 어느 누구도 관심을 갖지 않았다. 사실 로마의 사형틀로서 십자가였지만 그것이 온 인류가 관심을 갖게 된 것은 그리스도가 매달렸기 때문입니다. 오늘도 십자가는 얼마든지 만들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십자가에 우리가 매달려 있을 때 사람들은 관심을 갖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십자가를 지고 좇으라고 했던 것입니다. 십자가에 매달린 예수님처럼 십자가에 매달린 삶을 우리에게 요구하고 계십니다.

따라서 우리가 자랑삼아야 할 신앙은 십자가 신앙이어야 합니다. 자신이 십자가를 지고 있다는 것은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자신이 십자가를 지고 있다는 것은 많은 사람들의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다는 증거가 됩니다. 따라서 사도 바울은 오직 십자가의 공로로 살았고, 십자가를 지고 가기 위해 살았고, 십자가를 지는 삶을 자랑스럽게 여기고 자기가 십자가를 진 것을 자랑하기 위해 살은 사도입니다.
갈라디아6장14절 “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고린도전서2장2절 “내가 너희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
세상이 요동치고 당신의 삶이 너무 고통스럽고 너무 힘들게 느껴지는 분 계십니까? 세상이 살기가 싫어지고 나 혼자만 겪는 고난이라고 느껴지는 분 계십니까? 당신만이 가장 무거운 십자가를 지고 간다고 생각하는 분 계십니까?

제가 어릴 때는 수도 물이 없었습니다. 시골에서는 모두가 우물가에 가서 물을 길러다가 먹었습니다. 물을 길러러 가서 어머님들이 물동이를 이고 다녔거나 남자들이 물통을 져다가 날랐습니다. 그런데 물동이나 물통을 이고 오거나 지고 올 때 물이 출렁거리면 물이 넘쳐서 옷을 다 적시고 애서 길러오는 물이 흘러 넘쳐버려서 한 동이를 가져왔는데 집에 도착하면 41정도는 흘러버렸습니다. 그래서 어른들이 물이 출렁거리지 않게 하기 위해서 사용한 방법이 그 물속에 바가지를 엎어서 넣거나 아니면 다른 큰 나뭇잎 또는 작은 나무토막을 물에 띄우면 훨씬 덜합니다.

우리는 얼마나 자주 흔들리는 마음의 물통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까? 두려움으로 흔들리는 마음, 고통으로 심하게 요동하는 마음, 절망으로 부서지는 마음, 이것은 마치 심하게 흔들리고 출렁거리는 물통과 같은 것입니다. 그러나 거기에 십자가라는 막대기를 던져 보십시오. 마음이 공포로 짓눌리고 요동할 때는 십자가를 붙들라는 말입니다. 십자가가 마음의 요동을 잠잠케 해 줍니다.

그렇습니다. 사람의 삶속에는 누구에게나 힘들고 어려운 문제들이 있습니다. 고통과 좌절, 두려움과 절망감이 앞을 막을 때도 있습니다. 그럴 때 예수님을 찾으세요. 흔들리고 요동하는 마음에 그분이 안정을 주시고 평안을 주실 것입니다.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