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가를 바라보라 눅23:25
오늘 우리는 종려주일을 기념하고 있습니다. 이 날 예수님은 예루살렘으로 들어가셨습니다. 가시던 길에 예수님은 호산나의 찬양과 종려가지를 흔드는 환호를 받으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받으셨던 이 잠시 동안의 개선 환영은 덧없는 것이었습니다. 곧 심히 불행한 밤이 닥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종려주일에 우리는 우리들대로 호산나 찬양을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예수님이 가지는 길에 드리워져 있는 십자가의 그림자를 보지 않으면 안 됩니다.
우리들 대부분은 그 날 갈보리에 있었던 사람들과 꼭 같습니다. 누가는 그들에 대하여 말했습니다. “백성은 서서 구경하며···” 그들은 십자가의 구경꾼들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들 가운데 대부분은 그 구경조차도 충분한 시간 동안 하고 있지 않았습니다. 이 십자가가 인류를 구속하기 위한 하나님이 갖고 계신 계획의 중심인 것을 알아 볼만큼 구경하지 않았습니다.
1. 인간의 비인간성 (1) 우리가 십자가를 잘 바라보면 그 때의 종교 지도자들이 눈이 멀어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들은 더 큰 진리를 알아보려고 하지도 않았고 알아볼 수도 없었습니다. 종교에 있어서 예수님의 대적이 되고 있었던 그들은 예수님이 갖고 계셨던 바로 그 신앙의 지도자들이었습니다.
오늘 우리들의 눈은 감겨져 있지 않습니까? 평화를 위해서는 전쟁도 할 수 있다고 믿고 있습니까? 우리가 신실하기만 하면 신조 같은 것은 필요 없다고 믿습니까? 윤리란 상대적이어서 우리의 필요와 관심에 그 윤리를 맞추어야 한다고 믿습니까? 우리가 이러한 믿음을 갖게 될 때 우리는 진리를 구석진 곳에다 몰아붙이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까?
(2) 사업하는 사람들의 자기만을 생각하는 마음이 그리스도께서 십자가를 지시게 했습니다. 이 사람들은 신앙의 진리와 순결보다는 물질적인 이득을 얻는 데 더 마음을 썼습니다. 예수님은 성전 뜰에서 돈 바꾸는 사람들과 맞부딪치셨습니다. 이 사건으로 사업에 마음을 쓰고 있었던 성전의 지도자들은 예수님을 미워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주의 일을 방해하는 자이다”라고 그들은 말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의미하는 것은 예수님이 자기들의 수입을 위협하고 계신다는 것이었습니다(막 11:15-18). 우리들 가운데에는 그런 사람이 없습니까? 돈벌이만이 모든 것을 좌우한다고 생각하는 그런 사람들 말입니다.
(3) 유다의 배신은 어떤 것이었습니까? 예수님을 배반한 그의 행위를 어떻게 설명한다 하더라도 유다는 자기의 장래에 관하여 마음을 쓰고 있었음이 틀림없습니다. 십자가에 못 박히게 될 죄인을 가까이 따라다녔던 그는 자기의 장래가 위태로운 것이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리하여 예수님을 못 박히시게 한다면 자기는 살아남을 것이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4) 다른 제자들은 어떠했습니까? 십자가를 지시는 예수님은 자기를 가장 가까이 따르던 자들로부터 버림을 당하셨습니다. 자기들에게 생겨날 일에 대한 두려움은 그들이 갖고 있었던 믿음보다 어했습니다. 위급할 때 그리고 일어서서 심문을 받아야 할 때 애매한 태도를 취한 적인 없습니까? 한사코 피하고자 어물쩡거리지는 않았습니까?
2. 하나님의 자기표현 (1) 만일 우리가 십자가 사건 가운데 보여지고 있는 인간 본성의 이 어두운 면 저 너머를 볼 수 있다면 우리는 한 놀라운 사실을 발견할 것입니다. 여기 이 십자가 사건 속에서 하나님은 우리 인간의 생명과 역사 속으로 친히 들어오셨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십자가로 인하여 우리는 하나님이 인간의 상황 안쪽으로부터 우리들과 같은 인간을 향하여 말씀하시는 그 말씀을 듣습니다.
십자가는 하나님으로부터 떠난, 죄 때문에 숨이 막히고 쓸쓸하여 비참하게 된 우리들을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과 연합하는 자들로 바꾸어 놓을 수 있습니다(롬 5:8,10).
(2) 십자가는 우리 모두를 위한 하나님의 조건 없는 사랑에 대한 상징이 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당하게 될 그 처지에 계셨습니다. 하나님은 이 사랑을 십자가 위에서 나타내어 주셨습니다.
(3) 우리가 십자가를 잘 바라보면 우리는 하나님이 갖고 계신 큰 능력을 볼 수 있습니다. 악을 선으로 바꾸시는 그 능력을 말입니다. 죽음의 상징인 십자가가 죽음에 대한 하나님의 승리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이 사실은 역설적입니다.
(4) 그러므로 십자가 위에서 있었던 하나님의 자기표현은 우리를 위한 하나님의 신성한 사랑의 완전하고 궁극적인 계시가 되고 있습니다. 스탱스터는 “십자가가 악을 선으로 바꾸는 하나님의 최고 능력을 보여준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십자가가 우리 하나님께서 얼마나 사랑의 하나님이신지를 보여주고 있는지를 말했던 것입니다.
(5) 십자가를 잘 바라보는 사람은 예수님의 순종을 보게 됩니다. 예수님의 순종을 보면서 우리는 온통 헌신하고자 하는 마음을 갖게 됩니다. 예수님의 순종은 값진 것이었습니다. 극심한 고통을 참아내야 하는 순종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겟세마네에서 자신의 사명을 다하기 위하여 할 수만 있으시면 다른 방법이나 수단을 주시도록 하나님께 기도하신 사실은 조금도 이상하게 보이지 않습니다. 이 십자가에서 우리는 그 사랑이 요구하는 바를 위한 예수님의 조건 없는 굴복을 봅니다.
3. 확신과 도전 (1) 여러분과 저는 십자가에서 그리스도인이 갖는 희망에 대한 확신을 보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리고 순종하는 그리스도인의 제자정신에 대한 도전을 보지 않으면 안 됩니다. “서서 구경하는 사람들”은 그때나 지금이나 이 확신과 도전을 보지 못합니다. 그러나 이 확신과 도전을 보는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구원의 능력은 세상에서 궁극적인 능력이라는 확신을 갖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신성한 사랑은 하나님이 창조하신 우주의 가장 중심부에 있다는 확신을 갖습니다.
(2) 십자가에는 우리의 혼돈된 세계의 어두움 속에 빛과 희망이 있게 되리라는 약속이 있습니다. 성경에는 예수님이 십자가 위해서 돌아가실 때 정오인데도 어두움이 있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어떤 의미에 있어서 이 어두움은 부활의 아침에 해가 뜰 때까지 계속되었습니다. 해가 뜰 때 우리 주님 예수께서는 죽음을 이기시고 이미 살아나 계셨기 때문입니다.
(3) 우리는 하나님의 궁극적인 능력과 사랑의 보장을 마음속에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순종하는 제자의 정신을 가져야 하겠습니다. 이 제자의 정신은 십자가에 달리신 그분이 보여 주신 희생적인 사랑을 그 안에 담고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이 선물로 주시는 생명과 그리스도를 통한 사랑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그리고 받아들이기 전에는 십자가는 우리의 생명을 구속하는 능력을 갖지 못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선물로 주시는 사랑과 능력뿐만 아니라 우리 시대에 하나님의 사람이 되려는 도전의 마음도 받아들여야 합니다. 이 도전의 마음이란 이것입니다. 즉 우리가 매일의 생활 형식 속에서 적극적으로 예수님을 따르고자 하는 마음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정신이 우리들 속에서 그리고 우리 주위에 있는 사람들 속에서 살아 움직이게 하는 마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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