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의 주님

부활의 주님
눅24:1-6





할렐루야! 오늘은 뜻깊은 날이다.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죽어 장사지낸 지 사흘만에 무덤을 깨뜨리시고 다시 사신 부활주일이다. 오늘 뜻깊은 부활주일에 여러분의 모든 슬픔과 절망의 무덤, 실패와 질병의 무덤, 미움과 증오로 닫혀진 무덤, 어둡고 침울한 모든 무덤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의 능력으로 깨어지고 부활하신 생명의 능력만이 여러분의 삶 속에 충만하게 되길 축원한다.

애굽에 가면 피라밋이 있다. 그 규모가 대단하다. 신이라 여겨졌던 바로왕 - 파라오의 무덤을 그렇게 어마어마하게 만들어 놓은 것이다.
기자지구의 피라밋은 쿠푸왕의 피라밋으로 4600년전에 만든 것이다. 2.5~ 2톤 짜리 돌 230만개를 쌓아 올렸다. 15톤 짜리도 있다. 15km 밖에서 운반해 왔다는 것이다.
피라밋 속으로 들어가 볼 수 있게 해 놓았다. 여행 가이드가 \"안 들어가 보아도 후회하고 들어가 보아도 후회한다\"고 어떻게 할 것이냐고? 한국 사람은 \'기왕에 왔는데\' 하면서 본다. 좁고 냄새나고 덥고 답답해서 숨이 막히고 사람은 많고..... 보고 나니 정말 후회가 된다. 공연히 돈 내고 무덤 구경한 것이다. 그 사람들 보니까 조상들 무덤 갖고 돈벌어 먹고산다.

기독교는 무덤 없는 생명의 종교이다. 기독교는 무덤을 보여주는 종교가 아니고 삶을 보여주는 종교이다.

북한은 단군 묘를 크게 만들어 놓았다. 우리나라 왕릉도 크지만 중국의 왕릉들 대단히 크다. 작은 동산이다. 공산주의자들은 레닌이나 모택동 김일성 시체를 썩지 않게 만들어 놓고 참배시키는 데 우리 기독교는 무덤 없는 생명의 종교이다.

이스라엘에 가면 예수님 무덤이라고 하는 곳이 두 곳인데 정확히 어떤 것인지 모른다. 중요하지 않으니까...... 저는 작년 성지 순례를 갔을 때가 마침 정교회의 고난주간이었다.
우리보다 한 주간이 늦다. 골고다 언덕에도 교회가 서 있는데 새벽부터 일찍 일어나서 들어가려고 하니 10만 명 이상이 몰려있다고 들어가지 못하게 경찰이 막았다. 그래서 할 수 없이 그냥 되돌아 와서 나중에 올 때 잠깐 시간을 내어 감명 깊게 둘러보았다. 물론 예수님이 고난의 길을 걸으시고 십자가에 달린 곳이기 때문이지 무덤 때문은 아니다.

무덤을 거창하게 만들고 돈을 많이 들이는 사람들을 보면 부질없는 짓을 하고 있구나! 하고 생각하게 된다. 그러나 믿는 사람들은 - 부활 신앙을 가진 사람들은 장례식을 거창하게 하면서 과시하려고 할 필요 없다. 오죽 과시 할 것이 없어 장례식 할 때 과시하는가? 천국의 소망을 갖고 예배드리고 돌아가신 분에 대한 예를 표하면 되는 것이다. 천국의 소망을 바라보는 장례식이 되어야지 조화나 조문객 조의금 그런데 관심 갖는 장례식이 되어선 안 된다는 말이다.
현대의 고 정주영 회장 장례식도 화환이 그 집 들어가는 길목을 막았다고 한다. 아무리 화려하면 무엇하나? 거기에 소망이 있는가? 생명이 있는가?
또 무덤을 거창하게 장식하는 모습을 본다. 다 부질없는 일들을 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 예수님은 금요일 십자가에서 온몸의 피를 다 쏟으시고 일곱마디 말씀을 남기시고 운명하셨다. 아리마대 요셉이란 사람이 자기 무덤을 미리 파 놓았는데 그곳에 예수님을 장사 지냈다. 갈릴리에서부터 온 여인들이 향품을 준비해서 안식후 첫날(주일날) 무덤에 갔더니 무덤을 막았던 돌이 굴려있고 시체가 없어졌다. 근심할 때 두 천사가 어찌하여 산 자를 죽은 자 가운데서 찾느냐? 그는 살아나셨느니라. 예수님은 살아나셨는데 무덤에서 왜 예수님을 찾느냐?
부활의 의미를 생각하며 은혜를 나누고자 한다.

1. 주님은 십자가의 고난을 통과하시고 부활하셨다.

고난을 통과해야 부활이 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고난 당하셨다. 육체의 고통도 심하셨지만 심적 고난을 당하셨다.
배신의 아픔을 당하셨고 수치와 모욕을 당하셨다. 죽음보다 더한 것이 수치를 당하고 모욕당하는 것이다.
지난주간 예수님 십자가를 지시는 영화의 한 장면을 보았다. 군중들은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언덕을 향해 가시는 예수님을 향해 예수님이 자기들을 배신했다고 욕을 한다. 예수님께 기대를 하고 믿었는데 배신했다는 것이다.
선을 행하다가 억울한 일을 당하고 주님을 따르다가 오해받고 고난 당해 보았는가? 그래야 성도가 된다. 누가 섭섭한 말 한마디만 해도 발끈하는 것이 우리다. 조금도 손해 보려하지 않는다. 고난 없는 영광만을 추구하고 있지 않은가?

알프레드 월레스(Alfred Wallace)라는 영국학자가 하루는 산누에나방의 일종인 천잠나방이 고치를 뚫고 나오려고 애쓰는 것을 관찰했다. 그 나방은 고치를 뚫기 위해 너무 애처롭게 보일 정도로 온힘을 다해 고생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분이 그 다음 나방은 쉽게 나오도록 고치를 찢어주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쉽게 나온 고치는 날개가 제대로 나오지도 않고 아름다운 색깔과 무늬도 생겨나지를 않고 얼마 안되어서 날아보지도 못하고 죽어버리고 말았다. 고치를 뚫고 나오려고 애쓰고 발버둥치는 그 일이 바로 날개를 튼튼히 자라게 하고 몸의 힘을 길러주며 아름다운 색채가 나게 만들어주는 자연의 과정이었던 것이다. 죽은 나방은 애처로운 고생의 과정은 면제받았지만 그로 인하여 빨리 죽어갔던것이다.

필요한 고난이 있다. 세상에 속한 염려와 근심과 걱정은 우리를 죽음에 이르게 하는 것이지만 주님과 함께 당하는 고난은 생명에 이르게 하는 고난이다.
시편 기자는 시편 119편에 \"고난 당하기 전에는 내가 그릇 행하였더니 이제는 주의 말씀을 지키나이다.\" \"고난 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인하여 내가 주의 율례를 배우게 되었나이다.\"고 고백했다. 고난을 통과한 뒤 부활이 있음을 기억하라. 고난을 통해서 부활이 있다.

2. 죽음을 통과하고 부활하셨다.

일본의 성자 하천풍운 선생은 \"사선을 넘어서\"라는 그의 책에서 \"그리스도인이 그리스도인답게 살려면 한 번은 죽어야하고 한번은 살아나야 한다.\" 했다.

어떤 사람이 한 교부신학자를 찾아와 \"예수 안에서 죽는 것이 어떤 것이냐고 물었다.\"
그는 \"당신이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굉장히 미운 사람 무덤에 가서 하루종일 욕을 하고 돌아 오라. 그리고 평소에 지극히 사랑하던 사람이 죽었다면 그 무덤에서 하루종일 사랑한다고 칭찬하고 애정 어린 말을 하고 돌아 오라\"고 했다. 그들이 뭐라고 대답하던가? 무응답이다.
죽은 것은 그런 것이다.

여러분, 걱정 근심이 있는가? 왜? 이유가 있다면 단 한 가지 - 죽지 못해서 그렇다. 영적으로 욕심과, 자존심과, 명예와, 소유욕과, 자기 중심적인 생각을 지워버려야 한다. 죽어버렸으면 아무 일도 없다. 그런데 아직도 꿈틀꿈틀한다. 다 죽은 줄 알았는데 누가 뭐라고 한마디, 비위를 건드리면 발끈 일어난다....덜 죽어서 그렇다.

기도의 사람, 조지 뮐러 (George Muller)는 \"나는 어떤 날 죽었다, 조지 뮐러에 대해서 죽고 세상이나 친구들의 칭찬에 대해서 죽고, 책망에 대해서도 죽었다\"고 했다.
우리 옛 사람이 죽었다는 믿음으로 살 때에 불쾌할 것도 없고 실망할 것도 억울할 것도 없는 것이다. 칭찬을 듣는 다고 우쭐하고 교만할 것도 없고 책망이나 비방을 듣는다고 실망하거나 불쾌할 것도 없다. 다같이 한번 따라 하자. \"십자가 밑에서 죽자.\"\"나는 죽었다.\"
바울은 날마다 죽는다고 했다. 못난 자아, 혈기, 육에 속한 것들이 죽어야 한다.
날마다 옛사람은 죽고 날마다 새사람이 주님과 함께 부활하는 영광된 삶을 사시기 축원한다.

3. 패배 같으나 승리하신 것이 예수 부활의 의미이다.

⑴ 부활은 정의의 승리이다. 십자가를 보면서 모두들 정의가 패배한 줄 알았다.
모두가 짜고 예수님을 여러 가지로 고소했다. 가룟유다는 예수님을 팔았고 종교인 정치인 군중들 모두가 예수님을 정죄했다.
빌라도는 예수에게는 아무 죄가 없다고 하고서 사형언도를 내린 사람이다. 기회주의자이다.
그의 아내가 사람을 보내 예수와 상관하지 말라고 꿈에 그 사람으로 인해 애를 많이 썼다고 했다. 그러자 빌라도는 예수를 놓아주려고 몇 번 시도해 보았으나 군중들이 십자가에 못박으라고 소리지르니까 명절 때 죄수 하나를 놓아주는 전례가 있었는데 결국 바라바라고 하는 죄수를 놓아주고 예수는 죄는 없다고 해 놓고 사형을 언도해 버렸다.

그리고 그 핏값을 유대인들이 담당하라고 하고 자기는 아무 죄없다고 대야에 물을 떠다가 손을 씻었다. 그러나 사도신경에는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사\' 라고 해서 수십억의 입을 통해 불의한 재판을 한 빌라도를 고발하고 있는 것이다.
오늘도 수많은 사람들이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셨다\'고 신앙고백을 했다.
지옥에서도 귀가 따가울 것이다.
불의가 승리하는 줄 알았다. 악이 승리하는 줄 알았다. 그러나 정의가 승리한다. 선이 승리한다. 예수님이 부활하셨다.

⑵ 생명의 승리이다.
죽음은 모든 것을 굴복시킨다. 영웅호걸도 소용이 없다. 진시황은 불로초를 구하기 위해 500명을 금강산까지 보냈다고 한다. 그러나 죽었다. 죽음 앞에 예수님도 굴복하는 줄 알았다. 그러나 예수님은 살아나셨다. 예수님은 영원한 생명 되신다. 죽음도 생명의 능력 앞에는 꼼짝 못한다.

⑶ 부활은 마귀를 이기는 능력이다. 결국 마귀는 패배했다.
예수님을 죽이고자 하는 음모는 완벽했다. 로마제국의 힘을 빌어 십자가에 못 박았다.
그러나 주님은 부활하심으로 완전히 승리하셨다. 할렐루야!

4. 주님은 우리가 날마다 부활의 능력으로 살게 하신다.

월남 이상재 선생이 독립운동을 하면서 흔들리지 않고 꿋꿋하게 살아가니까 조선 총독부에서는 한 신문기자를 시켜 돈으로 매수해 보려고 했다.
그 기자가 돈을 한 뭉치 들고 이상재 선생을 찾아가서 \'고생하지 마시고 이 돈으로 시골 가서 편히 사시라고 했다.\' 그러자 이상재 선생은 \"나는 돈으로 사는 자가 아니다. 나는 말씀으로 산다.\"고 대답했다. \"선생님, 몇 살이나 사시겠습니까?\" 그때 월남 이상재 선생은 젊은 기자의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다보며 \"이 사람아, 사람이 한 번 났으면 영원히 살지 죽긴 왜 죽나?\"라고 하셨다. \"진시황은 불로초를 구했으나 결국 죽었는데 무슨 불사약이라도 잡수셨습니까?\" 하고 기자가 다시 물으니 \"나는 먹었지. 너희 천황이 먹지 못한 것을 내가 먹었지, 영생 불사약을 먹었기에 나는 죽지 않을 것이고 일본이 망하고 군국주의자들이 죽는 것을 다 볼 거야\"라고 대답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하고 묻자 선생은 그 옆에 있는 성경을 가리키며 \"이것이 예수님의 말씀이다. 나는 이 말씀으로 산다\"고 대답하셨다.

성도 여러분도 이렇게 산 자의 신앙으로 영원을 품에 안고 사시기 바란다.
죽은 자는 살아나지 못한다. 산 자만이 살아난다. 마치 잠들 때 산 자는 다음날 아침에
깨어나는 것처럼 산 자는 죽지 않는다.
마틴 루터는 종교개혁 운동을 하다가 어려움에 부딪칠 때는 큰소리로 \"예수님은 부활하셨다. 예수님은 부활하셨다.\" 외치며 이겨냈다고 한다.

부활신앙으로 고난도 잘 감당하시고 죽음도 이기고 불의도 이기고 사탄의 세력을 이기시고 주님과 함께 승리하시는 성도 여러분 되시길 축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