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의 부활
본문 요5:24-29
설교내용
인생의 최대의 문제는 죽음의 문제입니다. 예나 지금이나 앞으로 가장 큰 문제는 죽음의 문제입니다.
사형을 받으러 가는 한 죄수가 길이 패인 것을 모르고 가다가 발을 헛디뎠습니다. 그때 그 사형수가 뭐라고 말한줄 아십니까? \"어이쿠 하마터면 죽을뻔 했네.\" 죽음이 얼마나 싫으면 죽으러가는 중에 자기도 모르게 이렇게 말했겠습니까
시간이 지나고 세월이 지나면 모든 인간은 늙어지고 죽습니다. 우리 인간의 삶의 연수는 70이요, 강건하면 80입니다. 그러나 그 연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뿐입니다. 세월이 얼마나 빨리 지나가는지 로케트와 같이 날아가고 있습니다. 이 날아가는 시간과 함께 낡아지는 것이 인간입니다.
스코틀랜드의 어느 노인 병동에서 숨을 거둔 한 할머니가 쓴 시가 있습니다. 할머니의 소지품을 정리하다가 발견된 시인데 한번 들어보시기를 바랍니다.
간호사, 당신은 무엇을 보는가요? 당신은 나를 볼 때마다 까다로운 한 늙은이, 시선은 먼 곳에다 박은 채 변덕스런 성격을 가진 한 늙은이라고 생각하겠지요? 음식이나 질질 흘리고 \"다시 한번 해봐요!\"하고 당신이 아무리 소리쳐 보아도 반응이 없는... 끝없이 스타킹과 신발을 잊어버리는 그런 늙은이라고 생각하겠지요? 그것이 당신이 생각하는 것인가요? 당신 눈에 보이는 게 그것인가요?
그렇다면 간호사, 눈을 뜨고 날 바라봐요. 내가 이곳에 꼼짝 않고 앉아 있을 때.... 내 안에 누가 있는가를 당신에게 말해 줄 테니. 당신의 명령에 따라 음식물을 받아먹을 때...... 내 안에는 아직 열살 먹은 어린아이가 숨쉬고 있다오. 어머니와 아버지가 있고, 서로를 사랑하는 형제 자매가 있는.
내 안에는 또 머지 않아 사랑하는 사람을 만날 것을 꿈꾸는 두 발에 날개를 매단 열 일곱살의 소녀가 있다오. 그리고 자신이 지키기로 약속한 맹세들을 기억하는 심장이 약동하는 스물한살의 신부도 그곳에 있지요....
서른살 때, 내 아이들은 빨리 자라고 오랫동안 지속될 그런 끈으로 함께 연결되어 있었지요. 마흔살에 내 젊은 아들들은 성장해서 떠났고, 하지만 남편이 내 곁에 있기에 난 울지 않았다오. 쉰 살이 됐을 때 또다시 갓난아이들이 내 무릎 위에서 놀고있군요...
하지만 곧이어 어두운 날들이 내게 닥쳤다오. 내 남편이 세상을 떠났지요. 내 자식들은 그들의 자식들을 키우고 있고 나는 그 모든 세월들과 내가 알았던 사랑하는 이들을 생각한다오.
난 이제 한 사람의 늙은이, 자연은 그토록 잔인하지요.... 육신은 서서히 무너지고 우아함과 활기는 떠나갔다오. 한때 심장을 갖고 있던 자리에 이젠 돌덩이를 갖고 있지요. 하지만 이 늙은 몸뚱이 속에는 아직도 어린 소녀가 살고 있답니다... 그러니 간호사, 당신의 눈을 열고 나를 봐요....(작자미상)
무엇이 보이십니까? 시간이 흐른다고 하는 것은 그 만큼 나이를 먹는 다는 뜻입니다. 죽음에 더 가까이 다가간다는 것을 의미하지요. 결국 이 낡아지는 인간의 역사에 비극이 있습니다. 새로워지지 못한다고 하는 데에 인간의 고뇌가 있습니다. 과학이 발달하여 인간을 새롭게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전혀 그렇지 못합니다. 그것 때문에 더 불행해지고 있다고 하는 것이 우리의 경험이요, 성경의 가르침입니다. 그래서 불교에서는 이 인생의 삶을 허무라고 말합니다
부처님이 음식을 잘못 드셔서 식중독으로 돌아가셨습니다. 이 부처님이 식중독의 고통을 당하고 있을 때에 울고 있는 제자들에게 이런부탁을 하셨습니다 \"인생이란 허무하고 허무한 것이다 그러므로 너희들은 나처럼 인생이 그렇게 허무하다는 것을 깨닫고 항상 허무를 늘 염두해 두고 수행 정진하라 나는 너희들과 똑같은 평범한 사람이다. 나는 무신론주의자다. 그러므로 나를 신으로 숭배하지 마라. 나를 신으로 숭배하는 사람은 나의 제자가 될 수 없다. 부처님이 열반하면서 하신 말씀입니다. 내가 지금 바로 극락으로 갈 것이라고 소망적인 말을 하지 않으셨습니다. 마지막의 말이 바로 허무하다는 말만을 계속 하시고 죽으셨습니다.
인간이 아무리 노력을 해도 시간을 거슬러 올라갈 수는 없습니다. 이것이 인간의 무능력이요, 인간의 한계성입니다 이 인간의 무능력과 한계성 때문에 시간을 붙들어 맬 수가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쩔수 없이 인간은 죽을 수 밖에 없는 것이요. 결국 인간의 역사는 무덤을 향한 역사일 수 밖에 없습니다. 이런 비극의 원인을 성경은 죄 때문이라고 합니다.
사람이 죽음을 두려워하는 가장 큰 이유는 무엇입니까? 죽음이 끝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죽음 다음에 또 다른 세상이 있다는 것을 무의식적으로 인식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죽음은 존재의 중단이 아닙니다.
죽음은 무엇인가? 죽음은 분리입니다. 이것이 성경이 말하는 죽음의 의미합니다. 영혼과 육체가 분리된 것을 죽음이라고 정의합니다. 이 죽음은 육체의 죽음이요, \'첫째 사망\'이라고 성경은 표현합니다. 그런데 우리에게는 또다른 죽음이 있습니다. 그것은 둘째 사망인데 이 둘째 사망은 영적인 죽음을 의미합니다. 이 영적인 죽음은 \'하나님과의 분리\'를 말합니다. 이 하나님과의 분리가 \'둘째 사망\'이요, \'영적인 죽음\'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 영적인 죽음은 영원한 지옥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지금 그 하나님과 관계를 맺고 있잖아요. 이것이 영생입니다.
그러면 이 둘째 사망으로 들어가지 않는 비결은 무엇입니까? 요한복음 5장 24절에 나와 있습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여기서 중요한 단어가 하나 나오는 데 영생입니다. 영생이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과의 관계를 말합니다. 이 관계는 믿음으로 이루어지는 사건입니다. 이 하나님과의 관계 때문에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지는 것이요. 심판을 받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이 영생이 우리 안에 있습니다.
어떤 분은 영생에 대해서 이렇게 생각합니다. 영원히 죽지 않는 것이다. 오래 오래 사는 것이다. 그런데 오래오래 살고 죽지도 못하고 그러면 그 삶이 얼마나 지루하겠는가\' 이것은 영생에 대한 오해입니다. 영생은 오래 오래 사는 것이 아닙니다. 천국에는 시간의 개념이 없습니다.
C. S. Lewis가 천국을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천국은 날마다 만나도 가슴 설레이는 첫 사랑의 향연(잔치)이다.\" 이해가 되십니까? 천국을 인간의 언어로 \'날마다 새롭게 설레이는 가슴\'이라고 표현을 하였습니다. 이 표현은 성서적인 사실입니다. (요17장에서 다음에 자세한 설명을 할 것임)
천국에 무슨 지루함이 있습니까? 지루함이나 권태는 인간이 범죄한 다음에 온 것입니다. 하루 종일 뱀이 또아리를 틀고 있어도 뱀에게는 권태가 없습니다. 반복적으로 반추하고 있는 소가 있습니다. 그것은 그 소가 음식을 열심히 잡수시고 있는 도중일 뿐입니다. 그 소는 권태가 무엇인지 몰라요.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권태가 없습니다. 연애하는 두 사람이 서로 웃고 떠드는 소리를 들어보세요 별 내용도 없어요, 그 별 내용도 없는 것 때문에 즐거워한 것이 아니라 마음이 즐거우니까 뭐든지 기뻤던 거예요. 천국의 삶이 그렇습니다. 날마다 가슴 설레이는 첫 사랑의 향연입니다. 이 향연은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극치를 이루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일이 언제 일어납니까? 25절입니다. 죽은 자들이 하나님의 아들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듣는 자는 살아나리라 ... 그 다음에 28절과 29절을 봅니다. 이를 기이히 여기지 말라 무덤 속에 있는 자가 다 그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오리라 (25, 28-29)
죽음이 끝이 아닙니다. 모든 인간은 다 부활합니다. 예수 믿는 사람도 부활하고, 예수 안 믿는 사람도 부활합니다. 똑같이 부활하는데 그 부활의 의미가 달라요 한 사람의 그룹은 생명의 부활로, 또 다른 사람의 그룹은 심판의 부활로 나오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우리는 생명이신 예수님을 내 마음속에 모시고 사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생명이 우리 속에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때가 되면 우리 모두는 심판의 부활이 아니라 생명의 부활로 일어날 줄로 믿습니다.
오늘은 부활주일입니다. 이 부활의 사건이 주는 의미가 무엇입니까? 우리는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못박혀 죽은 존재요, 예수님과 함께 부활한 존재입니다. 이 부활의 사건은 시간을 초월한 사건이요, 장소를 초월한 사건입니다. 시공간의 얽매임에서 자유한 사건입니다. 시공간을 초월할 때에 우리 인간은 예수님처럼 새로워질 수 있으며 낡아지지 않게 됩니다. 왜요! 시간 속에서는 모든 것이 낡아지기 때문이지요. 그러나 영원 속에서는 낡아지는 법이 없고 모든 것이 새로워지는 차원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아직 이 시간과 이 영원 사이에서 긴장된 삶을 살고 있습니다. 하나는 시간의 제약에 매인 삶이고 또 다른 하나의 삶은 영원 안에서 자유하는 삶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겉 사람은 시간 속에 매여 있습니다. 그래서 그 존재는 날이 갈수록 썩어질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속사람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죄 사함을 받고 영원한 세계에 살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지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육신은 시간 속에서 죽어가고 있습니다. 날로 날로 쇠하고 낡아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예수님과 함께 부활한 존재이기에 영원을 바라보며 그 영원안에서 살아가고 있는 존재들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영혼은 날로 날로 새로워지고 있습니다. 거기에 죽음도, 늙음도 초월되어지는 것입니다. 이것이 생명의 부활이 주는 신비의 능력인 줄로 믿습니다. 여기에 또한 우리의 자유함이 있고요.
예수님께서 부활하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제 새로운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되었습니다. 날마다 하나님의 도우심과 임재를 체험하며 살아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제 여러분들은 역사의 새로운 창조의 주인공으로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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