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과 부활
죽음과 부활
갈2:20
어떤 사람이 깊은 산 속에 갔다가 산불을 만났습니다. 산불이 멀리서부터 포위해 타들어 오고 있을 때, 성냥을 꺼내어 자기가 서있는 곳에 불을 놓고, 타버린 그 자리 그 안에 들어가 섰습니다. 그 불이 점점 퍼져 나가다가 포위해 들어오는 산불과 만나니까 더 이상 산불이 쳐들어 오지를 못했습니다. 왜냐하면 다 타버렸기 때문에 더 이상 타들어오지 못한 것입니다. 그래서 이 사람이 살게 되었습니다.
1. 죽음은 죽음으로 정복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죽음은 죄로 말미암아 이 세상에 들어왔습니다. 이것은 제일 큰 원수요, 마지막 원수입니다. 이 죽음을 정복하고, 생명과 부활을 주시기 위하여 죄 없으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이 육신 입고 이 세상에 오셔서 우리 대신에 죽어주신 것입니다. 그리고 부활하셨습니다. 마치 산불이 포위하고 타들어 와 다 죽게 되었는데도, 먼저 그 자리에 불을 놓아서 그 안에 들어감으로 안전하게 살 수 있게 된 것처럼, 예수님은 우리를 대신하여 죽어주시고, 우리 대신하여 심판을 받으셨기 때문에, 그 분을 믿고 그 분 안에 들어감으로 우리가 살게 된 것입니다. 예수 믿고 생명과 부활을 얻게 된 것입니다. 우리를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주셨고, 어두움에서 빛으로 옮겨주셨습니다. 그럼으로 우리를 심판 받지 않게 하신 것입니다.
요 5:24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우리를 위하여 우리 대신 죽으시고, 피 흘리시고 대신 심판 받으신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가 믿고 영접하면 이 시간에라도 영생 얻고 생명과 부활을 얻게 되고, 죽음이 없는 천국에 들어갈 수 없는 것입니다.
2. 반드시 죽음을 거쳐야 영광의 부활이 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 같이 죽고, 그리스도 안에서 산 자와 같이 다시 살아야 합니다.
롬 6:11 이와 같이 너희도 너희 자신을 죄에 대하여는 죽은 자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을 대하여는 산 자로 여길지어다
죽지 않고는 부활의 새 생명으로 살 수가 없습니다. 죽지 않은 사람은 하나님의 일에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아무 가치가 없습니다. 죽지 않은 옛사람이 아무리 잘나고, 아무리 학식이 있고, 아무리 배운 것 많고, 세상 경험 많아도 하나님 앞에 아무 가치가 없습니다.
영적으로 믿음 안에서 날마다 살아야 합니다.
고린도전서 15:31 나는 날마다 죽노라 사도 바울이 단언한 것처럼 나는 죽고 예수가 내 안에 살아서 그분이 사는 것, 이것이 영적인 삶입니다.
우리의 옛사람은 죽었다. - 이 믿음 속에서 항상 긴장하면서 살아야 하는데, 이 믿음 식어지고 믿음 해이해 질 때 마귀사단이 역사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 안에서 산다고 그랬습니다. 이런 긴장 속에서 살아야 믿음생활에 승리할 수 있습니다.
3. 내가 많이 죽으면 남을 많이 살릴 수 있습니다.
사람이 한번 죽으면 그만이지 적게 죽고 많이 죽는게 뭐냐? 라고 의문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내가 많이 희생하고, 내가 죽어지는 범위가 넓고, 죽어지는 시간이 많으면 그만큼 나 때문에 많은 사람이 생명을 얻게 되고 살아나게 된다는 뜻입니다. 우리 중앙교회 교인들이 많이 죽게 되면 그만큼 천안시민이 많이 구원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믿는 사람들 가정에서 많이 죽어져야 합니다. 가정에서 많이 죽어질수록 인가귀도가 그만큼 빨라집니다. 믿는 자들 옛사람이 내 안에서 많이 죽어져야 합니다. 그럴 때 새 생명의 역사가 일어나게 됩니다.
날마다 죽어져 예수 십자가를 짊어지면 새 생명의 역사가 나타난다는 뜻입니다. 12절 그런즉 사망은 우리 안에서 역사하고 생명은 너희 안에서 하느니라 무슨 뜻입니까? 죽어지는 사람이 많으면 많을수록 다른 사람들 살아나는 일이 많이 일어난다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많이 죽을수록 다른 사람들이 많이 살아납니다.
죽음을 거쳐야 나도 살고, 남도 삽니다. 죽음을 거치지 않고는 생명의 역사가 일어나지 않습니다. 이것이 새 생명의 역사입니다. 죽음이 없이는 생명이 살아나는 일이 절대로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