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어 다시 사는 진리

죽어 다시 사는 진리
롬8:31-39





오늘 아침, 길가의 벚꽃이 벌써 지고 있었습니다. 꽃이 지고 떨어지는 것은 누구에게나 아쉽습니다. 그러나 꽃이 진 그 자리를 자세히 보십시오. 바로 거기가 열매가 열리는 자리입니다. 어느 시인은 가슴이 아파 눈물이 나는 그 절망의 자리, 꽃이 진 자리야말로 열매의 자리라고 말합니다.

사실 십자가는 꽃이 진 자리입니다. 부활은 열매입니다. 십자가는 사람들의 눈에는 모욕과 절망의 자리로 보일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고전 1:18에서 말씀하십니다.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멸망하는 자들은 십자가가 절망의 자리라고 여기기 때문입니다. 죽음은 끝이고 심판이라고 여기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무엇을 죽였느냐에 따라 다릅니다. 꽃이 졌다고 그 나무가 끝났다고 여기는 사람, 그래서 그 나무를 베어버린다면 곧 이어 맺힐 열매는 없을 것입니다. 삶이 버겁다고 목숨을 팽개치는 사람들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절망을 죽인 자는 소망으로 일어섭니다. 게으름을 죽인 자는 부지런함으로 일어섭니다. 탐욕과 정욕을 죽인 자는 순결함으로 일어섭니다. 나아가 죽임을 죽이면 영원한 생명으로 갑니다.

예수님은 ‘힘이 곧 정의’라는 폭력의 신화에 짓눌린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십자가의 길을 걸으셨습니다. 세상을 움직이는 가장 근원적인 힘은 사랑과 그 사랑을 이루기 위한 희생임을 일깨우기 위해 애쓰시다가 주님은 십자가에 처형당하셨습니다. 그러나 십자가는 사랑과 희생이 실은 얼마나 무력한 것인지를 드러내는 상징처럼 보였습니다. 십자가는 우리의 현실입니다. 그래서 십자가 아래 서있던 사람들은 한결같이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조롱했습니다. 죄 없이 고통당하는 이의 죽음 앞에서 그들이 보인 조롱과 멸시는 힘이라는 ‘물신’ 앞에서 사람들이 얼마나 허약한가를 드러내는 표징이었습니다. 힘이 정의라고 믿는 순간, 우리에게 남는 길은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힘을 손에 쥐는 것입니다. 둘째는 힘 있는 자 앞에 납작 엎드리는 것입니다. 문제든 어느 경우이든 우리가 인간다운 삶으로부터 멀어진다는 사실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힘이 정의가 아님을 단적으로 증언하고 있습니다. 주님의 부활은 얼어붙었던 대지를 뚫고 솟아나는 새싹처럼 우리 마음에 경이로움을 안겨줍니다. 부활은 세상의 질서를 뛰어넘는 또 하나의 질서를 보여줍니다.

새싹은 결코 약하지 않습니다. 부활의 주님을 믿는 이들에게 더 이상 죽음은 지배권을 행사할 수 없습니다. 부활은 흔히 죽음 이후의 문제인 줄만 아는 이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부활은 지금 여기에서 우리가 경험해야 할 현실입니다. 어느 날 季路가 孔子에게 죽음에 대해 묻자, 공자는 “삶을 모른다면 어떻게 죽음을 알겠는가?”(未知生이면 焉知死리오, <<論語>>, 先進編 11章) 하고 대답했습니다. 어떤 이들은 이 문답을 두고 유교는 죽음의 문제를 다루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공자의 이 대답은 ‘지금 여기’의 삶을 소홀히 하면서 죽음의 문제에만 집착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는 뜻이라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우리에게 정말 중요한 것은 한번 주어진 인생을 제대로 사는 것입니다.

공자님은 “아침에 도를 들으면 저녁에 죽어도 괜찮다”고고 했습니다. 굉장히 비장하지요? 하지만 구도자의 자세는 이러해야 합니다. 이런 목마름이 없다면 진리를 찾을 수가 없습니다. 여기서 그가 말하는 ‘道’는 사물의 당연한 이치일 겁니다. 만일 그것을 알고 그것을 거스르지 않고 살 수 있다면 죽어도 여한이 없다는 것입니다. 주님은 그 뜻을 알고 사신 분이십니다. 요한복음에 나오는 몇 마디 말씀은 참 사람답게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우리에게 보여줍니다.
부활신앙을 갖고 산다는 것은 세상이 만들어놓은 쳇바퀴 속에서 살아가기를 거부하면서,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인간에 대한 예의가 지켜지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도구는 친절과 따뜻함, 너그러움과 감사입니다. 우리가 할 수 있을까요? 할 수 있습니다. 바울의 고백이 큰 울림이 되어 다가옵니다. 본문 37절의 말씀입니다.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여러분, 우리가 지금 힘든 삶을 산다면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는 증거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일으키고 싶어 궁지로 몰아넣습니다. 이스라엘을 노예로 몰아넣고 광야로 몰아넣듯이 말입니다. 그래서 세워진 이스라엘입니다.

우리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 지고 있는 꽃자리에서 열매가 맺힌다는 사실을 잊지 마십시오. 오늘 성가대의 찬양을 다시 되새기십시오. 모욕과 천대, 어린 양의 희생과 같은 절망 속에서 사망 권세를 이기는 기쁨과 부활을 맞이합니다.

그냥 얻어지는 것은 결코 축복이 아닙니다. 쉽게, 편하게 이루어지는 것치고 값진 것은 없습니다. 우리의 삶이 버겁다면 그것은 우리의 인생의 값입니다. 여러분, 원망, 불평, 탐욕, 시기, 체념, 게으름, 무절제를 죽입시다. 죽여 다시 사는 부활의 승리와 힘이 오늘 우리에게 있음을 잊지 말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