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의 증인

부활의 증인/행5:17-32/부활주일설교

부활의 증인
행5:17-32
부활주일설교





17 ○대제사장과 그와 함께 있는 사람 즉 사두개인의 당파가 다 마음에 시기가 가득하여 일어나서 18 사도들을 잡아다가 옥에 가두었더니 19 주의 사자가 밤에 옥문을 열고 끌어내어 가로되 20 가서 성전에 서서 이 생명의 말씀을 다 백성에게 말하라 하매 21 저희가 듣고 새벽에 성전에 들어가서 가르치더니 대제사장과 그와 함께 있는 사람들이 와서 2)공회와 이스라엘 족속의 원로들을 다 모으고 사람을 옥에 보내어 사도들을 잡아오라 하니
22 관속들이 가서 옥에서 사도들을 보지 못하고 돌아와 말하여 23 가로되 우리가 보니 옥은 든든하게 잠기고 지킨 사람들이 문에 섰으되 문을 열고 본즉 그 안에는 한 사람도 없더이다 하니 24 성전 3)맡은 자와 제사장들이 이 말을 듣고 의혹하여 이 일이 어찌 될까 하더니 25 사람이 와서 고하되 보소서 옥에 가두었던 사람들이 성전에 서서 백성을 가르치더이다 하니 26 성전 3)맡은 자가 관속들과 같이 가서 저희를 잡아 왔으나 강제로 못함은 백성들이 돌로 칠까 두려워함이러라 27 저희를 끌어다가 공회 앞에 세우니 대제사장이 물어 28 가로되 우리가 이 이름으로 사람을 가르치지 말라고 엄금하였으되 너희가 너희 교를 예루살렘에 가득하게 하니 이 사람의 피를 우리에게로 돌리고자 함이로다 29 베드로와 사도들이 대답하여 가로되 사람보다 하나님을 순종하는 것이 마땅하니라 30 너희가 나무에 달아 죽인 예수를 우리 조상의 하나님이 살리시고 31 이스라엘로 회개케 하사 죄 사함을 얻게 하시려고 그를 4)오른손으로 높이사 임금과 구주를 삼으셨느니라 32 우리는 이 5)일에 증인이요 하나님이 자기를 순종하는 사람들에게 주신 성령도 그러하니라 하더라





1. 부활 주일을 지나고 3일째 되는 날입니다. 오늘 우리는 시간적으로 보면 부활의 감격이나 기쁨이 아주 짧은 것 같아요. 고난주간이 끝나고 부활주일이 끝이 나면서 마치 큰 일 하나가 지나간 듯하게 다시 무덤덤해지는 같습니다. 그만큼 예수님의 부활에 대하여 막연한 느낌을 가지고 있나 생각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제자들의 모습을 상상해보면 제자들이 느낀 부활의 놀라음과 기쁨은 구체적이고 대단했을 것입니다. 예루살렘 입성할 때는 전쟁에서 이긴 개선장군처럼 호산나 승리를 노래하며 마치 큰 일이 일어날 것처럼 기대감을 가지고 들떠있었는데. 예수님은 단지 군졸 몇 명에 의해 붙잡히고 십자가에 아무런 저항없이 맥없이 그렇게 죽으셨습니다. 제자들의 절망은 말로 표현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심지어 그들의 목숨조차 위태로워 모두가 숨어지내야 하는 비참함이란 죽고 싶은 심정이였을 것이고, 그들은 낙담과 절망으로 침통하여 서로간에 말조차 붙이지 않을 정도로 침묵만 있었을 것이다.

그런 절망과 죽음의 두려움속에 끝이라고 생각하던 그 순간에 예수님이 다시 살아나시고 그들의 눈앞에 보였다고 하는 것은 정말로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놀라운 일이였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죽은 영이 아니라 부활의 몸으로 나타나시어 자기들과 대화하고 먹고 서로 만지고 느끼고 했으니 말입니다. 그래서 막에는 제자들이“처음에는 믿지 아니하였다”라고 하였습니다.

이 놀라운 일을 체험한 제자들의 감격, 환희라고 하는 것은 우리의 상상을 넘어서는 것이요 말로 형언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런 예수의 부활의 기쁨과 감격속에 있는 제자들에게 예수님은 “세상으로 가라”고 명령하였습니다. 마-갈릴리로 가라. 막-복음을 전파하라. 눅-이 일의 증인이 되라. 요-나도 너희를 세상에 보내노라 하시며 예수의 부활을 목격하고 기쁨에 들떠있고, 놀라고 있는 제자들을 하늘로 데려가시지 않고 여전히 제자들의 목숨을 노리고 핍박하고 있는 세상의 현실 속으로 보냈습니다. 세상에서 부활의 증인이 되라고 하십니다.




2. 오늘 말씀에는 그렇게 부활의 증인으로 세상에 보내진 제자들의 삶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줍니다. 베드로와 사도들이 예수를 죽인 대제사장과 함께 있는 사람들(사두개파)에 의해 감옥에 갇히고 핍박을 받고 목숨의 위협을 받습니다. 말씀은 대제사장과 함께 있는 이들이 “마음에 시기가 가득하여”(17절)라고 하였습니다. 그들은 죄없는 예수를 죽일 때에도 시기가 가득하여 빌라도에, 십자가에 넘겨주었다고 성경은 말씀합니다.

제자들은 시기가 가득한 현실속으로 보내졌고 고난의 연속이였습니다. 그럼에도 하나님은 제자들을 옥문을 열어서 그들에게 생명의 말씀을 전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옥문을 여시고는 삶의 현실이 어둡고 핍박이 극심하니 적당히 타협하여 목숨을 부지하라거나 목숨을 유지하기 위하여 산속에 숨어라고 하시지 않고, 옥문을 열어서까지 하나님은 제자들을 생명의 위협, 죄와 어두움이 여전히 존재하는 세상속에 부활의 증인으로 보내고 계십니다.

베드로와 사도들도 마찬가지입니다. 핍박하고 죽이고자 하는 삶의 현실에 대하여 두렵다거나 주저함이 없습니다. 스스로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의 증인이라고 하는 자신의 정체성을 생명을 위협하는 시기가 가득한 자들 앞에서 거침없이 해내고 있습니다.(32절) 성령께서도 그것을 증거하며 우리를 그렇게 인도하신다고 고백합니다.




3. 제자들에게 삶의 어두움의 현실이라는 것은 안중에도 없습니다. 오직 죽음을 이기고 승리하신 하나님의 현실만이 있었습니다. 예수를 죽음에서 살리신 승리의 하나님의 현실만이 있고, 그것만을 바라보았기에 조금의 두려움도 주저함도 없습니다. 현실에 타협하거나 굴복한다고 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였습니다.

오히려 자신들을 꺽고자 하고, 죽이고자 하는 어두움을 향하여 강력하게 말합니다. 사람보다 하나님을 순종하는 것이 마땅하도다(29절) 다시 말해서 부활의 증인은 삶의 어두움의 현실에 굴복하는 것이 아니라(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을 순종한다. 곧 승리하신 하나님의 현실을 바라보고 소망하며 살아가는 것이다는 말씀입니다.




부활의 증인으로서 제자들은 여전히 목숨을 위협하는 고난과 어려움이 닥쳐오더라도 승리하신 주님을 보았기에 낙담하거나 비관하거나 절망하지 않았습니다. 회피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것을 넘어 부활의 희망, 부활의 기쁨 부활의 승리를 보았고 그것을 향해 살았습니다.




4. 예수님의 명령이 당시의 제자들에게만 주신 것이겠습니까? 예수님께서 부활의 증인으로서의 삶은 제자들에게만 명령하신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의 소식을 듣은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하신 예수의 명령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믿고 고백하는 부활신앙을 가진 이라면 누구나 부활의 증인으로서 세상으로 가라는 예수의 명령을 받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부활의 증인임을 확신합니까? 저와 여러분이 주님으로부터 부활의 증인으로서 세상에 보내어진 것을 믿습니까? 그러나 문제는 오늘날도 제자들과 동일하게 부활의 증인으로서 살아가는 우리의 삶의 현실 역시 하늘나라가 아닙니다. 삶의 현실에 고난이 있고, 비관스런 일들이 상존하고, 삶을 허무하게 하는 어두움의 모습이 우리를 엄습하기도 합니다.

이런 현실에서 어떻게 살아가는 것이 부활을 증거하는가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죽었다 다시 살아나서 보여줄 수는 없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현재의 생활에서 어떤 삶을 살아야 부활의 증거가 되는 생활일까요? 어떤 삶의 자세와 정신을 갖고 살아가는 것이 부활의 증인다운 삶인가 하는 것입니다.




5. 경제적 어려움이 찾아오고, 질병으로 삶의 위기가 찾아오면 “나는 끝이야, 아무 희망도 없어” 하며 한숨만 쉬고 푸념썩인 소리만 되뇌이는 부활신앙인이라면 어떻게 내 이웃이 죽음을 이긴 부활 진리를 찾으며, 믿을 수 있겠습니까?

오히려 그런 위기 속에서도 승리하신 하나님의 현실을 바라보고 희망을 잃지 않고 기쁨으로 살아가는 그런 삶의 모습에서 세상은 부활의 소식을 듣고, 믿지 않겠습니까?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 세상의 현실은 늘 선한 것만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선하신 창조를 왜곡하는 소외와 기근, 기아가 있고, 다툼이 있고 살인이 있습니다. 그렇다고 하여 부활의 증인들이 “이놈의 세상 왜 이 모양이야” 하며 한탄하고 원망하고 욕설만 늘어놓는다면 과연 누가 원망하고 불평하는 사람이 전하는 부활의 소식을 참이라 진리라고 여기겠습니까?




부활의 증인으로 십자가의 사랑을 실천하고자 열심히 봉사하고 선을 행하지만 사람이나 세상의 현실은 금방 변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봉사 후에 선한 것만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낙심케하는 일들도 생깁니다. 그렇다고 하여 “세상은 어쩔 수 없어, 내 힘으로는 안돼” 하며 비관하고 자포자기하고 선한 일에 대한 수고와 노력을 포기해버린다면 과연 스스로 부활의 증인이라 하면서 삶의 현실에 주저앉는 부활의 증인의 말을 누가 믿겠습니까? 누가 죽음을 부활이 있다고 믿겠습니까?

비록 낙심하는 일이 있을지라도, 비록 변화가 없다 할지라도, 비록 세상이 여전히 악이 있다할지라도 죄와 어두움의 권세를 이기고 부활하신 승리의 주님을 믿는 믿음으로 희망을 말하고, 희망을 바라보고 하나님의 현실을 바라보는 사람, 하나님의 부활의 능력을 믿는 사람, 그가 바로 진정한 부활의 신앙인이요 부활의 증인이 아니겠습니까?



6. *좋은 예를 들어보면 좋겠습니다.




우리는 부활의 신앙을 가진 부활의 증인입니다. 그러나 말로만이 아니라 진실로 삶의 현장에서 부활의 증인다운 삶을 살아가길 소망합니다. 부활의 증인답게 언제나 승리하신 주님을 바라보고 희망을 노래하며 찬양하며 기쁨으로 살아가는 진정한 부활의 증인이 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