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

부활/고전15:51-58/부활주일설교

부활
고전15:51-58
부활주일설교





1. 서론

아름다운 예술은 인간의 한계로부터 나왔습니다. 생의 한계가 인간으로 하여금 시와 음악과 그림을 통해 생을 찬미하고, 허무와 슬픔을 표현하게 됩니다. 죽음이 타인의 소유에서 실존으로 다가올 때, 한순간에 우리는 허무와 두려움에 둘러쌓이게 됩니다. 구원의 빛은 전혀 없습니다. 때론 허무한 인생의 끝머리를 움켜잡고 생을 찬미해 보지만, 생은 그 자체로서 허무를 안겨줄 뿐입니다. 전도서 기자는 인생 그 자체로서 \'헛되다\'(바람을 잡는다)는 표현을 반복해서 사용합니다.

반면 부활은 한계를 새롭게 설정합니다. 하나님 안에서 일으키신 예수의 부활사건을 기초로 우리의 부활은 죽음이라는 한계를 생명속으로 흡수하며 허무라는 한계를 \'의미있음\'속으로 데려갑니다. 예수의 부활에 기초한 우리의 부활은 모든 죽을 수 밖에 없는, 죽어야만 하는 것에 대한 희망이며, 삶의 근거가 됩니다. 그러므로 교회의 역사가운데 고난을 경험했던 신앙인들은 부활의 산 소망안에 그들의 삶의 기초를 세웠습니다.


2. 본론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어둠의 세력과 관련하여 죄와 죽음에 맞서 모든 인류와 만물의 고난과 고통에 항거하며, 모든 허무한 죽음에 항거하며, 모든 죽을 수밖에 없는 생명에 항거하며, 모든 악에 항거하는 하나님의 항거입니다. 이 항거가 마침내 예수의 부활로 말미암아 모든 허무한 죽음이 생명으로 살아나고, 모든 죽을 수밖에 없는 것들이 더 이상 죽지 않음의 세계로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부활에 대한 두 가지의 오해를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먼저, 지금까지 교회는 부활을 현세적 삶의 도피처로 가르쳐 왔다는 것입니다. 현세의 고난을 하루빨리 벗어나 천국에 가서 부활의 영광 가운데 사는 것을 이 세상의 목적으로 가르쳐왔기에, 그리스도인들은 이 세상의 삶에 그다지 깊은 관심을 가지지 않게 되었습니다. 이 세상은 버려야 할 대상이며, 신앙의 궁극적 목적은 저 세상의 삶이라고 여겼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부활은 우리로 하여금 세상에서 도피하도록 만들지 않습니다. 우리는 예수의 부활 신앙 가운데 현재의 불의와 반생명과 죽음의 실재에 적극적으로 저항하는 가운데 만물을 새롭게 하시는 하나님 나라의 영광에 마침내 참여해야 합니다. 우리는 모든 것의 마지막이라고 외치는 죽음이라는 거부할 수 없는 운명론에 맞서 부활의 능력을 선포해야 합니다. 예수의 제자들이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땅 끝까지 이르러 ‘예수의 부활’을 선포하였듯이, 우리의 삶이 부활의 사건이 현재화하는 곳이며, 부활의 영광이 선취되는 곳이며, 부활의 능력이 역사하는 곳이어야 합니다. 부활은 결코 이 세상을 떠난 저 세상의 것이 될 수 없습니다.

둘째로, 부활을 존재론에 제한시켜 이해해 왔습니다. 예수의 부활사건은 오는 하나님 나라의 사건입니다. 모든 것을 새롭게 하시며, 모든 것을 완성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이며, 영광입니다. “보라 내가 만물을 새롭게 하노라”(계21:5). 부활은 세계의 역사에 서시며, 이끄시며, 완성하시는 하나님을 통한 만물의 새롭게 됨이며, 거룩케 됨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세계는 마침내 하나님의 영광이 될것입니다. 부활은 악의 세계요, 거짓의 세계요, 고난의 세계 한 가운데서 일어났습니다. 하나님은 마침내 세계를 당신의 삶(부활)속에서 일으키실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 이 소망안에 살고 있습니다.


3. 결론

본회퍼 목사는 히틀러에 대항하여 암살을 기도하다 투옥되어 교수형을 앞둔 순간 평소와 같이 짤막한 예배를 인도한 뒤 투옥된 사람들에게 이렇게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이것이 마지막입니다. 그러나 나에게 있어서는 삶의 시작입니다.\"

예수그리스도를 죽음에서 다시 살리신 하나님은 살고자 하나 죽을 수밖에 없는 모든 살아있는 것의 절망과 허무와 죄의 그림자를 분쇄시키고 마침내 우리를 일으키실 것입니다. 부활의 산 소망 안에 살 때, 순간 절망에 사로잡히고 생의 허무함에 낙망하고, 악의 횡행함에 좌절할지라도 우리를 일으키시는 하나님으로 인하여 우리는 일시적인 허무와 절망과 악을 이기에 될 것입니다.


4. 실천적 의미

이제 예수의 부활사건이 가져다주는 실천적 의미는 부활을 존재론의 접근에서, 만물을 새롭게 하시는 하나님의 역사에 근거하여 하나님 나라의 사건으로 보아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무덤은 열렸습니다. 부활은 폐쇄된 모든 인간과 세계의 결정론을 파괴시킵니다. 운명론에 의해 모든 것이 결정되었고, 그 결정의 도상을 걸어야만 하는 거부할 수 없는 세계의 완료를 무너뜨립니다. 이제 부활은 믿느냐, 믿지 않느냐의 문제를 떠나, 예수를 죽음에서 일으키시고 세계의 새로움을 열어 보이시는 하나님의 부활사건에 참여하느냐, 그렇지 않느냐의 문제가 우리에게 주어져 있습니다.

현재의 자리에서 성령의 능력 안에 있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세계를 일으키시고 새롭게 하시는 삼위일체 하나님의 역사 참여에 부름 받았음을 인식해야 합니다. 각 자의 자리에서 하나님의 뜻을 구하며, 최선을 다해야 겠습니다. 불가능과 허무의 한계안에 놓여 있다할지라도 부활의 종말론적 희망으로부터 현재를 새롭게 하시는 성령의 능력을 보아야 합니다. 우리를 매 순간 일으키시는 부활의 하나님이 이 세계의 죽음과 허무의 한계를 마침내 이기셨고 또한 이기실 것이기에 부활의 산 소망 안에 전 생애를 바라보는 신앙의 삶이 있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