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의 부활 네가 믿느냐?

생명의 부활을 네가 믿느냐?/눅11:25-27

생명의 부활을 네가 믿느냐?
눅11:25-27





6.25사변이 나고 1.4후퇴 때에 나는 어린 나이에 냇가에 있는 미루나무를 깊은 밤에 베어 넘긴 일이 있었습니다. 밤새껏 비어 넘어뜨리는 가운데 그 소리가 얼마나 큰지 지진이 나는 것만 같은 소리를 들어야 했습니다. 이렇게 큰 나무 하나가 자라나려면 몇 십 년이 걸려야 하는데 이렇게 베어 놓으면 완전히 죽은 나무가 된다. 그러나 그 나무는 아주 죽어 없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훌륭한 목수의 손을 통해서 큰집도 짓고 쓸모 있는 가구도 되어서 그 직분을 다하게 된다. 또 어떤 때는 베어 버린 나무 뿌리에서 다시 싹이 나서 큰 나무가 되기도 한다. 이 나무처럼 예수님은 다시 부활하셨다. 그가 다시 살아나신 것은 우리들도 한 번 죽으면 끝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안에서 영원히 살 것이라는 것을 가르쳐 주시기 위한 것이다. 그리스도인들도 세상에 살다가 죽으면 그것으로 인생이 끝나는 줄로 알고 영원한 인생의 가치를 모르고 사는 사람이 있습니다. 우리 중에 내일이 있음을 모르는 하루살이 같은 생각을 가지고 사는 사람이 없기를 바랍니다. 부활의 신앙(교리)를 생각할 때 반드시 기억해야 할 것이 있다.

1)부활은 예수께서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신 성육신 사건과 같이 계시적 사건이다. 이것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무엇인가를 계시하고 계신다. 그 속에 말씀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2)부활은 재창조의 역사이다. 이 세상의 어떤 것이 발전해서라든가 혹은 최선의 것이 부활로 이어진다는 것이 아니다. 개혁, 발전, 선도, 교육이니 해서 최선의 것이 이루어지고 이상적 세계가 이루어져서 그 다음으로 부활이 온다는, 이런 발전적 얘기가 아니다. 부활은 분명 죽음 뒤에, 세상 끝에, 모든 것이 다 사라지고 모든 생명이 끝난 뒤에, 십자가 뒤에 있는 창조의 역사이다.

3)부활은 구속사역이다. 죄 문제이다. 죄로 인하여 사망이 오기 때문에 죄 문제가 해결되기 않으면 절대로 구원은 없다. 그런고로 부활이란 죄 문제의 해결에 대한 증거이다. 이 구속의 의미가 거기에 들어있다.

4)부활은 약속이다. 성경은 첫 열매라고 한다. 첫 열매이면서 대표적인 것이 되셔서 우리의 부활을 약속해 준다.

[본문 말씀]

예루살렘에서 멀지 않는 곳에 베다니라는 마을이 있습니다. 이곳에 예수님께서 참으로 사랑했던 한 가정이 있었습니다. 마르다와 마리아가 그 오빠 나사로와 함께 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들에게 갑자기 큰 슬픔이 닥쳐왔습니다. 오라비 나사로가 병들어 죽게 된 것입니다. 그 때에 누이들은 예수님께 사람을 보내어 빨리 오셔서 오라비의 병을 고쳐 달라고 했는데 예수님은 그 소식을 듣고도 일부러 늦게 도착하셨습니다. (요한복음11:6-7)에는 나사로가 병들었다 함을 들으시고 그 계시던 곳에 이틀을 더 유하시고 그 후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유대로 다시 가자 하시니 - 예수께서 마르다의 집에 도착하셨을 때에는 이미 장례는 끝이 나고 나사로가 죽은지 나흘이나 되었습니다. 늦게 도착한 예수님을 향하여 두 자매가 원망섞인 말을 합니다. 주께서 여기 계셨더면 내 오라비가 죽지 아니하였겠나이다 - 예수님은 마르다에게 네 오라비가 다시 살리라고 하자 마르다는 마지막 날 부활에는 다시 살 줄을 내가 아나이다 고 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마르다와 마리아에게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으로 결정적인 대답을 해 주셨습니다. (요11:25) 예수께서 가라사대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요11:26)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이 말씀을 생각해 보기로 하겠습니다.

Ⅰ. 생명은 예수 님만이 주실 수 있습니다.

마르다와 마리아는 마지막 날에는 부활한다는 것을 믿었습니다. 유대인들 중에는 사두개인들은 부활을 믿지 않았지만 바리새인들은 부활을 믿었습니다. 마르다와 마리아는 유대적인 부활을 믿었습니다. 종말론적인 부활입니다. 그런데 이들은 그들이 어떻게 구체적으로 부활하는가를 알지 몰랐습니다. 성도 여러분! 생명은 신비한 것입니다. 인간은 인간 자신이 생명을 만들지는 못합니다. 모든 생명은 하나님의 것으로서 그만이 창조 주관하실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인간이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미켈란젤로의 최대 걸작품 중에 <모세상>이 있다. 이 모세상은 근 4백여년간 이류에게 큰 감동을 안겨주었다. 우리가 모세상을 자세히 보면 발등에 흠집이 나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그것은 미켈란젤로가 끌로 흠집을 낸 것이다. 그는 대리석을 소재로 이 세기의 걸작을 완성한 후에 왜 너는 말하지 않느냐? 며 울부짖었다. 그리고 안타까운 마음에서 끌로 이 걸작의 발등을 긁었다. 이 흠집은 대가의 철저한 예술정신을 인류에게 보여 주고는 있지만, 그러나 그가 만든 모세상은 생명이 없다. 진흑으로 만든 사람에게 생명을 넣을 수 있으신 분은 오직 하나님이셨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주님은 의도적으로 다 썩은 냄새나는 나사로의 시체를 향하여 생명을 줄 수 있으신 분이라는 사실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은 예수 님은 생명의 주인이시라는 사실입니다. 마르다와 마리아는 오빠가 죽지 않았다면 예수님께서 고치실 수 있었을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이들은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로 알았고 믿었습니다. 그런데 부활이요 생명이시라고는 생각지도 못했습니다. 예수님은 부활이시요 생명이십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로만 참 생명을 인간에게 줄 수 있으며 얻게 할 수 있습니다. 요즘에 과학자들이 유전자를 이용하여 인간의 생명을 복제한다고 하는 이야기들이 있습니다. 두고 볼 일입니다만 복제하기 수월한 양을 복제하는 전례로 보아 인간의 생명을 복제한다고 하는 것은 전연 불가능하다고 한다. 죽어 냄세가 나 잇는 시체는 누구도 다시금 일으킬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만은 다른 사람이 해 내지 못한 것을 할수 있었습니다. 그럼으로 인간의 생명은 인간의 것이 아니라 주님의 것임을 말해 주고 있습니다.

Ⅱ. 생명은 예수님을 믿음으로 얻게 됩니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 영생의 부활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야 가능합니다. (요5:29)에 보면 생명의 부활과 심판의 부활이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참 생명을 얻게 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에게 주시는 것입니다. 이것은 예수님의 놀라운 선언이십니다. 한 외국인 부부의 어린아이가 죽었습니다. 장례 행렬이 외국인 묘지를 향하여 서울의 한 거리를 지나고 있을 때, 두명의 한국 여인들이 그것을 보고 걸음을 멈추고 수군거렸습니다. 뭐하는 거죠? 외국 사람들의 장례식이랍니다. 외국인 부부의 어린아이가 죽었다나봐요. 저걸 어째,에구 불쌍해라! 아! 그렇지만은 않아요. 외국인들에게는 그리 나쁜 일은 아니예요. 그들은 장차 어린애를 다시 살릴 방법을 알고 있다니까요. 한국교회의 초기에는 사람들은 선교사들이 전하는 부활을 이런식으로 이해하고 있었습니다. 죽어도 살겠고 육체는 죽어도 영생에 들어간다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라고 하신 것은 육체의 죽음을 뜻하지 않고 영생의 죽음을 말씀합니다. 이 말씀을 오해한 여호와의 증인 들이라는 단체는 육체로 이 땅에서 계속 산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문제가 있습니다. 이 땅에서 인간이 육신을 가지고 계속 산다면 그 중에는 세상을 어지럽히는 악한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그런 사람과 계속해서 같이 산다면 괴로운 나날이 계속 될 것입니다. 진화론자들의 말 같이 강한 자만 살아남게 될 것입니다. 우리 육신이 죽고 신령한 몸으로 다시 살게 되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영만이 아닙니다. 몸은 몸인데 썩어질 몸이 아닌 새로운 몸입니다. 이 몸은 예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몸입니다. 부활 때에 예수께서 우리를 영원토록 살게 하시는 것은 이 육신이 아닙니다. 우리는 신령한 몸과 깨끗한 마음을 예수님으로부터 받아 영생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악한 자들은 영원토록 지옥에서 지내게 될 것입니다. (고전15:50) 형제들아 내가 이것을 말하노니 혈과 육은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을 수 없고 또한 썩은 것은 썩지 아니한 것을 유업으로 받지 못하느니라 성도 여러분!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영생에 이르게 되는 것입니다. 부활이요 생명되는 예수께서 그를 믿는 모든 자들을 살리실 것입니다.

Ⅲ. 부활을 네가 믿느냐?

마르다와 마리아는 진정으로 부활을 믿었지만 그것은 종말론적인 부활입니다. 이것은 유대인들 특히 바리새인들이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가 부활이시며 생명이심을 알지 못합니다.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부활 사상에는 몇 가지 종류의 부활이 있습니다. 종말론적인 부활입니다. 예수를 믿는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실 때의 부활이 있습니다. 이것은 우리 모두가 확신합니다. 역사적 부활을 믿는 신앙입니다. 예수님이 이 천년 전에 죽은지 사흘만에 부활하셨다고 믿는 믿음입니다. 실존적인 부활 신앙입니다. 이것은 독일의 신학인 불투만이라는 사람이 생각하는 믿음입니다. 이 사람은 성경의 이적이나 표적은 역사적인 사건이 아니라 신앙적인 사건이다 라고 봅니다. 다시 말하면 동정녀 탄생이나 부활 같은 것은 역사적으로는 있을 수 없고 신앙적으로만 가능하다 . 고 보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세 가지를 다 믿어야 합니다.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에는 모두가 부활한다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러면도 부활은 역사적 사실이라는 것입니다. 우리 나라 사람들도 관념적인 부활을 믿고 있습니다. 아니면 불교적인 영향으로 윤회생사(輪廻生死)를 염두해 두고 생활하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요즈음 80년 5월 18일 광주 사태를 두 눈으로 똑똑히 보았던 당시 침례교 선교사로 광주에서 선교활동을 했던 미국의 목사님이 쓴 일기와 사진들이 공개되면서 광주사태의 진실이 드러나고 있습니다. 그러나 얼마 전 까지만 해도 광주 사람들이 말했던 모든 것을 믿어주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설마 그런 일이 있을 수 있을까? 라고 했고, 총을 쏘았던 자들은 모두가 진실을 은폐했고, 유언비어라고 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광주 사태는 역사적인 사실이며, 그 증거가 너무 많고 그것을 본 사람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렇듯 예수님의 부활은 너무나 엄청난 역사적 사실입니다. 카르타고 출신의 교회 저술가 터툴리아누스가 저술한 <護敎論-Apologeticus>이라는 책에는 다음과 같은 사실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주님의 특필한 부활과 승천의 평판이 오늘날에는 각처에 널리 전해지고 있다. 유대의 총독 본디오 빌라도는 새로운 사태가 발생한 때는 하나도 남김 없이 황제에게 보고하지 않으면 안되었던 고대의 습관에 따라 우리들의 주님이 죽은 가운데서 부활하신 일을 로마 황제 티베리우스에게 전달했다. 티베리우스는 일체의 일을 원로원에 위탁하고 이 사실을 알면서도 그것을 부인했다 라고 전해집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로마황제도 알았던 것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14회 이상이나 보여주신 확실한 증거가 있습니다. 또 너무나 많은 사람이 직접 예수님을 보았고 만졌습니다. 그리고 승천하시는 것도 보았습니다. 이것은 꾸며낸 이야기가 아닙니다. 이것보다 더 확실한 것은 성경입니다. 우리는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인 것을 믿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님의 증거입니다. 예수님께서 나사로를 살리시기전 마르다와 마리아에게 부활의 신앙을 가지기 위하여 이것을 네가 믿느냐 고 물으십니다. 이 질문은 지금까지 막연하게 믿어 왔던 부활신앙을 이제는 예수님이 부활이요 생명이신 것을 알고 믿어야 하며, 우리가 영생을 얻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되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부활이십니다. 예수님은 생명이십니다. 예수 믿는 지금도 이미 주님의 부활에 참여했으며, 주님의 재림 때에 생명의 부활을 할 것입니다. 부활신앙을 가진 사람은 인생의 허무를 극복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모든 소망을 하나님 나라에 두는 것입니다.

맺는 말

영원한 생명은 우리 인간의 것이 아닙니다. 주님의 것입니다. 주님만이 인간에게 주실 수 있는 것입니다. 누구나 인간은 수명장수하여 살기를 원하지만 원하는 것은 인간에게 있지만 여전히 죽음으로 인한 슬픔과 불행속에 살아가는 것이 인간의 형편입니다. 지금도 죽음으로 인한 불행한 가정이나 개인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 이 일을 주님은 아시고 인간을 사랑하시어 우리인간에게 생명의 길을 열어 놓으셨습니다.

1) 인간의 생명은 주님의 것입니다. 2) 이 생명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얻어지게 되는 은혜를 받습니다. 3) 이 사건은 우리 주님은 지금도 묻고 계십니다. 네가 부활을 믿느냐입니다. 전날에 마르다 마리아에게 물었던 질문은 지금도 나에게 아니 우리 후손들에게 계속적으로 물어 지고 있음을 알아 믿는다고 답하여 부활의 생명을 누리시기 바랍니다.

전도의 생명, 미국 장로교회의 어떤 목사가 취임한 지 1년이 넘도록 교회가 점점 냉랭해지고 부흥하는 기세가 보이지 않자 당회를 소집하여 사면의 뜻을 표하였다. 그 때에 장로들은 깜짝 놀라며 만류하였다. 목사는 장로들에 이렇게 권했다. \\\"제 생각에는 저 뿐만 아니라 장로님들까지 사면하고자 생각했습니다. 장로님들도 보니까 낮 예배만 나오고 저녁예배와 삼일기도회 저녁에는 나오지 않으니 이름만 가지고 책임을 다하지 못하면 부흥할 수 있겠습니까?\\\"그리고 장로들에게 전도해서 구원한 생명이 몇 명이나 있느냐고 물어보았더니 한 사람도 없었다. \\\"그러니까 우리 교회가 부흥하겠습니까? 주께서 명령하기를 온 천하에 다니며 복음을 땅끝 까지 전하라고 했는데 이렇게 전도를 못했으니 어찌 우리 교회가 부흥하겠습니까?\\\" 그러자 장로들은 눈물을 흘려 회개하고 이구동성으로 주님의 명령에 순종하기를 결심하고 열심히 전도하여 교회가 양과 질적으로 부흥하였다. 신앙인들은 부활 생명을 소유했습니다. 이 생명을 자신만이 가지고 살아가서는 안 됩니다. 생명을 분양하는 일이 있어야 합니다. 이 분양을 전도로 나누어주시는 성도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이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서 우리에게 천하를 주고도 바꿀 수 없는 귀한 생명을 주셨습니다. 이 사명 감당하는 성도가 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