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번째 부활절 스케치

 번째 부활절 스케치/막16:1-20

첫 번째 부활절 스케치
막16:1-20





그림을 그리는 사람들은 그림을 구상하기 위하여 스케치 여행을 떠납니다. 그림의 소재가 되는 영감을 얻기 위해 들과 산으로 강과 바다로 부지런히 다닙니다. 그리고 그림의 소재가 될 만한 영감이 떠오르면 즉시 사진을 찍던지 스케치북에 간단하게 스케치하여 돌아옵니다. 돌아온 후에는 자신이 발견하고 느낀 영감을 잊지 않기 위해서 즉시, 작품에 들어갑니다. 그때 그가 스케치하여 온 것이 그림을 이루는 틀이 됩니다.

오늘은 부활절입니다. 2000년 전,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무덤에 장사지낸 예수님께서 죽음을 이기시고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역사상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 사람이 없었지만, 예수 그리스도가 다시 살아남으로 그를 믿는 모든 자들에게 다시 살 수 있다고 하는 소망을 이루어주셨습니다. 그러나 사실 예수님의 부활을 우리가 눈으로 본 적이 없으며, 부활하신 주님의 얼굴을 대면하여 보지는 못했습니다. 그렇지만 예수님의 부활은 역사적인 사실이며, 동시에 부활하신 예수님을 믿음으로 우리는 구원을 받게 되었다는 사실을 전혀 의심하지 않고 믿고 있습니다. 도대체 우리가 그것을 어떻게 믿을 수 있습니까? 그것은 바로 복음서의 저자들이 부활절 당시의 상황을 아주 구체적으로 증거하고 있는 말씀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의 그림 작품을 완성하기 위해 스케치 여행을 떠나는 작가들처럼, 우리는 복음서 기자들이 영감을 받아 스케치한 복음서를 기초로 우리의 일생에 부활의 감격과 은혜아래서 영생을 누리며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그러면 첫 번째 부활절의 모습은 어떠했었으며 무엇을 시사해주고 있는가? 오늘 마가복음은 이렇게 스케치해주고 있습니다.

1. 믿지 않는 사람들 예수님이 부활하신 그 현장에 있었던 사람들, 그리고 그 소식을 전해들은 사람들의 반응은 한결같이 믿을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안식일 다음 날, 이른 새벽에 막달라 마리아와 야고보의 어머니와 또 살로매가 예수님의 무덤을 찾아가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의 시신에 향품을 발라 드리기 위함이었습니다. 그 여인들은 누구보다도 예수님을 사랑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사흘 전, 그들이 예수님의 시체를 십자가에서 내렸을 때는 이미 많은 시간이 흘렀습니다. 예수님을 장사 할 수 있는 시간이 불과 한두 시간밖에 없어서 예수님의 몸을 씻기고, 향료를 그 몸에 덮고, 베옷을 감고 하는 이런 절차를 다 끝내기에는 시간이 너무 촉박했습니다. 그래서 주님을 사랑하는 여인들은 장사지낼 때 좀 미비했다 싶은 부분을 보충하기 위해서 향료를 준비하고 밤새워 안식일이 지나기를 기다렸다가 이른 새벽에 무덤으로 달려간 것입니다. 그 여인들은 예수님을 몹시 사랑했습니다. 그래서 위험을 무릅쓰고 예수님의 무덤을 찾아갔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손에 들려져 있는 것이 무엇이었습니까? 향료입니다. 죽은 시신의 부패를 막기 위해 발라주는 향료였습니다. 다시 말하면 그들은 예수님이 다시 살아나실 것이라고 하신 말씀을 믿지 않고 있었습니다. 그 여인들은 예수님을 몹시도 사랑했지만 예수님을 믿지는 않았습니다. 예수님이 메시아라는 사실을, 만왕의 왕이요, 만주의 주시오, 온 세상의 구주로 오신 사실을 믿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열린 무덤을 목격했을 때, 두려움으로 그곳에서 도망치고 말았습니다.

뿐만 아닙니다. 11절을 봅시다. \\\"마리아가 가서 예수와 함께 하던 사람들의 슬퍼하며 울고 있는 중에 이 일을 고하매, 그들은 예수의 살으셨다는 것과 마리아에게 보이셨다는 것을 듣고도 믿지 아니하니라\\\" 막달라 마리아는 자신이 목격한 부활하신 예수님을 제자들에게 증거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슬퍼서 울고만 있을 뿐, 믿으려하지 않았습니다.

12절과 13절입니다. \\\"그 후에 저희 중 두 사람이 걸어서 시골로 갈 때에, 예수께서 다른 모양으로 나타나시니 두 사람이 가서 남은 제자들에게 고하였으되 역시 믿지 아니하니라\\\" 엠마오로 내려가던 두 제자에게 나타나신 예수님은 말씀을 풀어서 부활의 역사적인 사실을 증거하셨습니다. 그러자 그들은 눈이 밝아져서 그들과 함께 했던 분이 다시 살아나신 예수님이라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남은 제자들에게 달려가서 이 사실을 알려 주었습니다. 그러나 역시 믿지 아니하였습니다.

14절입니다. \\\"그 후에 열 한 제자가 음식 먹을 때에 예수께서 저희에게 나타나사 저희의 믿음 없는 것과 마음이 완악한 것을 꾸짖으시니 이는 자기의 살아난 것을 본 자들의 말을 믿지 아니함일러라\\\" 오죽 하셨으면, 예수님께서 가룟유다를 제외한 열 한 명의 제자들이 모여있는 곳에 직접 나타나셔서 그들이 예수님의 부활을 믿지 않음을 책망하셨겠습니까?

요한복음 20장에 보면 도마가 나옵니다. 다른 제자들이 부활의 주님을 만날 때, 도마는 그곳에 없었습니다. 나중에 제자들이 하나같이 부활의 주님을 보았다고 말하자 도마는 혼자만 \\\"내가 예수님의 손의 못 자국을 보며 내 손가락을 그 못 자국에 넣으며 내 손을 그 옆구리에 집어넣어 보아야만 믿겠다.\\\"라고 강변했습니다. 그는 보는 것으로도 만족하지 못합니다. 반드시 그 못 자국에 손을 넣어봐야 믿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마지막까지 의심하였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세상에 있는 것들 중에 앞뒤가 맞아떨어지는 것이 얼마나 됩니까? 이 세상에서 공식을 가지고 모든 것을 설명할 수 있습니까? 예수님은 부활하신 자신의 몸을 600여명 의 사람들에게만 보이시고 그 다음에는 아무에게도 보이시지 않았습니다. 그 대신 예수님은 예수님을 본 사람들에게 가서 전하라고 명하셨습니다. 그들의 말을 듣고 믿게 하신 것입니다.

사도 요한은 요한복음을 기록해 놓은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요한복음 20:31절을 보십시오.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요한이 자기가 본 그대로를 기록한 이유는 예수님의 부활을 본 사람들의 증거를 듣고 믿어 영생을 얻게 하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당신의 부활하신 몸을 일일이 개인마다 찾아다니며 보여 주시지 않으셨습니다. 그 이유는, 주님의 부활을 목격한 사람들의 말을 듣고 믿으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기 나름의 합리적인 잣대를 고집하며 믿기를 거부한다면 그는 구원받기가 어렵습니다. 바로 이것이 마가가 예수님의 부활이 일어났을 당시에 제자들의 믿음 없음을 왜 그렇게 강조하고 있는 이유인 것입니다(막16:16-17). 그들은 주님을 뜨겁게 사랑했습니다. 그들은 주님의 위해 모든 것을 버리고 3년간이나 열심히 따라 다녔습니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결정적으로 믿음이 없었습니다.

이러한 모습은 바로 오늘 우리들에게도 있습니다. 교회를 열심히 다닙니다. 열심히 기도도 합니다. 주님을 사랑한다고 가끔씩은 눈물도 흘립니다. 열심히 봉사하고 헌신합니다. 그런데 믿음이 없는 경우가 있습니다. 사랑은 있습니다. 봉사도 헌신도 눈물도 있는데, 결정적일 때, 믿음이 없을 때가 있습니다. 가장 힘들고 어려울 때, 믿음이 없어서 돌아서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사람은 자기가 이해할 수 있는 범위까지만 믿는 습관이 있습니다. 도저히 이해할 수 없고, 자신의 지식으로 해결할 수 없는 일이 벌어지면 믿음을 포기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자기의 생각으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것입니다. 주님은 가끔씩 제자들에게 너희 믿음이 어디 있는가? 하고 물으시면서 책망하신 적이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에게 믿음이 있는가? 날마다 자신의 믿음을 점검해야 합니다. 사랑한 것 가지고, 따라 다닌 것 가지고는 구원을 받을 수 없습니다. 부활의 주님을 믿을 때, 비로소 구원이 있고, 영생이 있고, 부활이 있고, 축복이 있는 것입니다. 믿음의 문제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주님을 뜨겁게 사랑하여야 합니다. 그리고 주님을 온전히 따라야 합니다. 그러나 그 무엇보다 주님을 부활을 믿음으로 구원과 영생과 축복을 누리시기를 바랍니다.

2. 갈릴리로 모이라
부활사건의 초점이 언뜻 보기에는 예수님이 부활하신 빈 무덤에 맞추어져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예수님의 현장의 첫 증인이라 할 수 있는 여인들이 모두 빈 무덤을 향해 나가고 있고, 그들의 말을 듣고 달려온 베드로와 제자들이 빈 무덤을 향해 달려나오고 있습니다. 빈 무덤을 중심으로 예수님의 부활이 선포되고, 빈 무덤이 부활의 증거로 제시되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빈 무덤을 보고도 예수님이 부활하신 사실을 믿지 못하는 모습을 통해서 우리는 부활의 사건의 현장이 빈 무덤이 아니라 다른 곳에 있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부활의 다른 현장은 어디인가? 그것은 바로 부활절 이른 새벽, 무덤으로 달려가 여인들이 천사를 통해 들었던 말씀을 통해 힌트를 얻을 수 있습니다. 6-7절입니다. \\\"청년이 이르되 놀라지 말라 너희가 십자가에 못박히신 나사렛 예수를 찾는구나 그가 살아나셨고 여기 계시지 아니하니라 보라 그를 두었던 곳이니라 가서 그의 제자들과 베드로에게 이르기를 예수께서 너희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시나니 전에 너희에게 말씀하신 대로 너희가 거기서 뵈오리라 하라 하는지라\\\" 즉 부활 사건의 초점은 빈 무덤이 아니라 갈릴리라는 것입니다. 누가복음에 보면 무덤으로 찾아온 여인들을 향하여 \\\"어찌하여 산 자를 죽은 자 가운데서 찾느냐\\\"고 말함으로써 여자들이 갈 곳으로 가지 않고 잘못 찾아왔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무덤 속에는 예수님이 계시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미 부활하셔서 갈릴리로 가셨습니다. 갈릴리는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는 장소입니다. 주님이 부활하시면 만나주실 장소로 약속이 되어 있는 곳입니다. 그러므로 갈릴리는 예수님을 만나는 현장이요, 예수님의 부활을 확인하는 역사적인 장소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기 위해서는 갈릴리로 가야 합니다.

그러면 갈릴리는 어떤 곳입니까? 예수님의 영혼의 고향입니다. 사역을 시작하신 곳입니다. 제자들을 부르시고 훈련시키신 곳입니다. 제자들과 함께 울며 함께 웃고, 기적과 이사와 능력을 행하신 곳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진리를 전파하던 곳입니다. 물론 예수님의 제자 훈련은 실패한 것 같이 보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사역은 거기서 끝난 것이 아닙니다. 갈릴리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날 때, 비로소 예수님의 제자 훈련은 완성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주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실 때, 모두 도망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꽁꽁 숨어서 절망하고 있었습니다. 바로 그런 제자들에게 회복할 수 있는 기회와 축복을 주시고 주님의 사랑을 확인시켜 주시기를 원하셨습니다. 당신의 부활을 확인시키시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래서 부활하신 주님은 제자들을 이제 첫 사랑의 장소, 갈릴리로 모이게 하신 것입니다. 그곳에서 부활하신 주님은 제자들에게 자신의 부활을 확인시키심으로 새로운 용기를 주고, 첫 사랑을 회복하고, 예수님의 부활의 증인으로 삼으신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혹시 이 자리에 주님의 사랑을 잃어버린 분 있습니까? 신앙의 좌절감을 맛보고 낙심한 분이 있습니까? 이제 주님을 뜨겁게 만났던 첫 사랑의 장소, 주님으로부터 사명을 받았던 사명의 장소, 은혜를 받았던 축복의 장소를 찾아가 첫 사랑을 회복하시고, 사명을 회복하시고, 은혜를 회복하시기를 바랍니다. 첫 은혜의 장소 갈릴리에서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 다시 해야 할 일을 계획해야 합니다. 그래서 부활의 주님을 능력 있게 증거 하는 주님의 참된 제자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3. 이제 가라
갈릴리는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는 곳이요, 주님의 부활이 확인되는 곳입니다. 그런데 갈릴리로 모인 제자들에게 부활하신 주님의 최후의 명령이 주어지고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세상을 향해 \\\"가라\\\"는 것입니다. 부활하신 주님의 이 명령은 4복음서에 동일하게 등장합니다. 우리 한번 찾아보겠습니다.

마태복음 28:18-20 \\\"예수께서 나아와 일러 가라사대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마가복음 16:15 \\\"또 가라사대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 누가복음 24:48 \\\"너희는 이 모든 일의 증인이라\\\" 요한복음 21:22 \\\"내 양을 치라, 너는 나를 따르라\\\" 이 말씀들은 모두가 부활하신 주님께서 그의 제자들에게 주신 지상 최고의 명령입니다.

부활하신 주님을 만난 사람들은 그 자리에서만 기뻐하고 행복해할 것만이 아니라 예수님의 부활을 목격한 자로서 증인의 삶을 살아가야 한다고 하는 것입니다. 나아가서는 예수님이 부활하신 것처럼 우리 자신들도 주님처럼 부활할 자로서 삶 속에서 믿음을 가지고 부활을 확신하며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두 가지 주님의 명령을 들을 수 있습니다.

우선 세상을 향해 가라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많은 질고와 고통 속에 살아가고 있는 자들에게 예수님의 부활을 증거 함으로 희망을 주고, 용기를 주고, 새로운 삶을 회복하도록 도우라는 것입니다. 이 땅에 교회가 존재하고, 믿는 사람들을 남겨두신 것은 바로 이 역사적인 예수 부활의 놀라운 사실을 온 천하에 전하여 모든 사람이 하나님의 구원에 이르게 하기 위함인 것입니다. 그래서 부활하신 주님은 제자들을 남겨두고 홀로 가셨습니다.

또 하나는 우리 자신이 부활의 산 증거가 되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을 목격한 자로서 다른 사람에게 전하는 것만으로 역사가 일어나지는 않습니다. 여인들이 제자들에게 부활을 증거 했을 때, 제자들은 믿지 않았습니다. 다른 제자들이 도마에게 증거 했을 때, 도마 또한 믿지 않았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입으로만 전했기 때문입니다. 그들 스스로가 부활을 확신하지 못하고 부활의 주님을 만난 사람답게 변화된 모습이 없었습니다. 입으로만 부활을 전했기 때문에 능력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오순절 다락방에서 성령의 기름 부으심을 받은 이후에 그들의 변화된 삶으로 그리스도의 부활의 산 증거가 되었습니다. 사람들은 제자들의 모습만 보아도 희망이 생겼습니다. 용기가 생겼습니다. 그들은 앉은뱅이를 일으키고, 죽은 자를 살렸습니다. 그들 속에 부활의 능력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을 눈으로만 본 것이 아니라 실제적으로 예수님의 부활이 그들 속에 나타나고 있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을 확인한 사람들, 그래서 자신도 부활할 것을 확인한 사람들은 부활을 소유한 사람답게 믿음으로 살 것을 결단하고 살아야 합니다. 부활신앙이란 믿음의 문제입니다. 삶의 현장에서 부활한 주님을 확인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오늘 부활할 자로서 살아가는 삶을 결단하는 것입니다.

이제 이 거룩한 부활의 아침에, 주님의 부활을 확인한 사람으로서 이 땅위에 사는 동안 그리스도의 부활의 증인으로 살며, 또 우리 스스로 부활의 산 증거가 되어 많은 영혼들에게 희망과 용기와 구원을 베푸는 주님의 제자로서의 삶을 결단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