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 다시 사셨네

예수 다시 사셨다!/막16:1-20

예수 다시 사셨다!
막16:1-20





우리는 부활절 아침에 있었던 일을 생생하게 묘사하고 있는 성경을 읽었습니다. 주님이 십자가에 돌아가신 후, 안식일이 지나자 예수님을 극진히 사랑하였던 여인들이 예수님의 시신에 향품을 바르려고 미리 사다 두었다가 새벽 매우 일찍이 예수님의 무덤으로 향하였습니다. 그들은 막 15:40에 기록된 대로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실 때에 멀리서 바라보던 여인들, 즉 막달라 마리아와 야고보의 어머니 마리아와 살로메였습니다.



그들은 무덤으로 가며, \"누가 우리를 위하여 무덤에서 돌을 굴려주리요?\"라고 걱정하며 갔습니다. 당시 유대인들은 장사를 지낼 때, 바위를 파고 굴을 만들어 시신을 넣고 그 앞을 둥근 원반형의 돌을 굴려서 막아놓았습니다.
그런데 그 돌이 크고 무거울 뿐만 아니라 무덤 앞을 주위에 비해 낮게 만들어 놓았기 때문에 여자들의 힘으로는 굴릴 수가 없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누가 그 돌을 움직여 주어야 예수님의 시신에 향품을 바를 수 있었으므로 그들은 그 염려를 하며 갔던 것입니다.
그런데 무덤에 와 보니 이미 그 돌이 굴려져 있는 것을 보았고 그들은 무덤 안에 흰옷을 입은 청년이 앉아 있는 것을 발견하였습니다.
그 청년은 여인들에게 \"놀라지 말라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나사렛 예수를 찾는구나. 그가 살아나셨고 여기 계시지 아니하니라 보라 그를 두었던 곳이니라\"(막 16:6)라고 말해 줍니다.

이 말을 들은 여자들은 너무나도 놀라서 떨며 도망갔다고 마가는 기록하고 있습니다. 마태는 그 여자들이 두려움과 기쁨에 사로잡혀 갔다고 말하고 있고, 누가는 그 여자들이 천사의 말을 들을 때에 예수님께서 이미 부활을 예언하셨던 것을 기억하고 돌아가 사도들에게 주님의 부활을 전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오늘 2002년 부활절을 맞이하여 우리는 그리스도의 부활이 우리에게 주시는 교훈이 무엇인가 살펴보겠습니다.



(1) 나사렛 예수님은 실제로 부활하셨습니다!

부활은 실제로 일어났던 일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음에서 부활하셨습니다. 사망의 세력과 무덤은 주님을 가둘 수 없었습니다. 무덤에서 돌이 굴려진 것은 예수님이 나오시기 위해 굴려진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부활하신 예수님이 시간과 공간의 지배를 받지 않고 어디든지 다니실 수 있는 분입니다. 천사들이 굴 앞을 막았던 돌을 옮겨 놓은 것은 여인들과 제자들이 그 안에 들어가 볼 수 있도록, 또 무덤을 지키던 파수꾼들이 보도록 굴려진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세상은 부활을 믿지 않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죽은 사람이 어떻게 살아나느냐? 부활을 과학적으로 증명해 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과학이란 하나님께서 지으신 자연의 법칙을 말하는 것입니다. 천지를 지으신 하나님은 과학을 초월하는 분입니다. 따라서 부활을 과학적으로 증명하라는 말은 말이 안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자신이 만드신 우주 안에 갇혀서 자연법칙에 따라서 행동하실 수밖에 없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수학이나 물리학, 화학, 생물학의 근원이시오, 과학을 지으신 분이지 그런 과학으로 설명할 수 있는 분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과학적으로 증명하라는 사람은 처음부터 하나님을 믿지 않으려고 작정한 사람이고 그런 사람에게는 무슨 증거를 보여주어도 믿지 않을 것입니다.



그렇다고 부활의 증거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닙니다. 바울은 고전 15장에서 부활을 이렇게 증거하고 있습니다. 고전 15:3-8, \"내가 받은 것을 먼저 너희에게 전하였노니 이는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장사지낸 바 되었다가 성경대로 사흘만에 다시 살아나사, 게바에게 보이시고 후에 열 두 제자에게와, 그 후에 오백여 형제에게 일시에 보이셨나니 그 중에 지금까지 태반이나 살아 있고 어떤 이는 잠들었으며, 그 후에 야고보에게 보이셨으며 그 후에 모든 사도에게와, 맨 나중에 만삭되지 못하여 난 자 같은 내게도 보이셨느니라.\"



예수님의 부활을 성경이 증거하고 있고, 베드로와 열두 제자와 또 500명이 넘는 증인이 있으며, 그리고 나도 그 부활의 증인이다 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주님의 부활은 분명한 역사적 사실이고, 수많은 사람들이 그것을 증거하고 있으며, 그것을 믿는 사람들이 주님을 위하여 목숨을 바쳐서 부활을 증거하였던 것이 또한 확실한 증거라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역사적 사실이고 그것을 믿는 믿음은 기독교 신앙의 중심입니다. 만일 주님의 부활이 사실이 아니라면 기독교는 사기꾼이 전하는 거짓말이 됩니다. 그러므로 만일 부활이 사실이 아니라면 기독교라는 종교는 존재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런 거짓말을 믿으라는 종교가 어떻게 이천 년 동안 지속되며 수십 억 명에게 전해질 수가 있었겠습니까? 어떻게 그런 거짓말을 위해 수많은 순교자들이 생겨나고 지금도 그 거짓말 때문에 전 세계에 수십만 명의 선교사들이 온갖 박해와 고난을 무릅쓰고 복음을 증거하고 있겠습니까? 우리는 주님의 부활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임을 믿고 증거해야 합니다.



(2) 부활의 결과

예수님이 부활하셨다는 사실은 어떤 결과를 가져왔을까요? 첫째, 부활은 십자가의 의미를 바꾸었고, 둘째, 주님이 지상 사역 동안에 가르치신 모든 교훈이 진리임을 증명하였으며, 셋째, 주님의 제자들과 그 이후에 그리스도를 믿는 모든 사람들에게 영생의 소망을 주었습니다. 그리하여 인간의 사고 방식과 인류의 역사를 바꾸었습니다.



1. 부활은 십자가의 의미를 변화시켰습니다.

십자가는 인간이 고안한 사형 방법 중에 가장 잔인한 처형 방법이었습니다. 사도들은 이 십자가를 두려워하고 싫어하였습니다. 십자가의 죽음은 너무도 고통스러워서 당시에 로마법에는 로마 시민권을 가진 사람들은 십자가에 처형할 수 없다는 법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십자가에 죽는 사람은 세상에서 가장 악하고 더러운 죄인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런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다는 사실은 유대인들은 그가 메시아가 될 수 없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으로 생각되었습니다. 주님이 마 20:18-19에서, \"보라 우리가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노니 인자가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넘기우매 저희가 죽이기로 결안하고, 이방인들에게 넘겨 주어 그를 능욕하며 채찍질하며 십자가에 못박게 하리니 제 삼일에 살아나리라\"라고 말씀하신 것을 제자들이 받아들이기가 힘들었을 것을 우리는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제 정말로 예수님이 붙잡혀서 재판을 받으시고 돌아가시게 되자 제자들은 모든 것이 끝났다고 생각하고 뿔뿔이 흩어져 도망갔던 것입니다. 그나마 대제사장의 집에까지 따라간 베드로가 용기있는 사람이 아니었겠습니까? 그러나 그도 결국은 죽음의 공포에 빠져 스승을 세 번이나 부인하고 통한의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부활하신 후 그들은 이제 십자가를 두려워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우리 주님이 사망의 권세를 깨뜨리신 것을 본 그들은 그 잔인한 사형대를 무엇보다도 자랑스러운 것으로 여기게 되었습니다. 십자가의 길이 패배와 절망의 길이 아니라 승리와 기쁨의 길임을 깨달았습니다. 죽음이 주님을 붙잡을 수 없었던 것처럼, 십자가가 죽음을 이기고 생명을 얻게 하는 하나님의 도구임을 깨달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제자들에게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막 8:34)라고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이제 주님의 부활을 목격한 사도들은 누구나 고난과 핍박과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주님의 복음을 위하여 일생을 바치고, 목숨까지 바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사도들과 초대교회의 그리스도인들이 주님을 위하여 조금도 자신들의 목숨을 아까워하지 않고 그 복음을 전했던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그 이후 2천 년 동안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이 기독교의 진리를 위해 부귀영화를 버리고 목숨을 바쳐 주님을 섬길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이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만나 영생의 소망을 얻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십자가를 지고 주님의 뒤를 따라가서 부활을 얻기 위하여 교회에 나오셨습니까? 아니면 부활절 이전의 제자들과 같이 주님이 왕위에 오르면 한 자리를 얻어볼까 하고 나오셨습니까? 기독교는 십자가의 길을 따라오라고 명령하는 종교입니다. 이 땅에서 주님과 같이 십자가를 지고, 고난을 받다가 하나님께서 주시는 면류관을 쓰는 것이 기독교의 진리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을 대하여 그러하니라\"(갈 6:14)라고 고백하였던 것입니다.



2. 부활은 주님의 교훈이 진리임을 증거합니다.

만일 주님이 부활하시지 못하셨다면 주님의 말씀은 거짓이 되고, 따라서 주님의 교훈 또한 모두 거짓말이 될 것입니다. 죽고 살아나지 못한 사람을 부활했다고 거짓으로 가르치는 종교가 어떻게 진리가 되겠습니까? 그러나 우리 주님은 사망의 권세를 깨뜨리시고 무덤에서 일어나심으로 당신의 말씀이 일점, 일획도 틀림없이 성취됨을 보여주셨습니다. 부활을 통하여 주님은 당신의 능력과 권위를 보여주셨습니다.

주님은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니라\"고 말씀하셨고, 부활하심으로 그 말씀이 사실임을 증거하셨습니다. 그래서 제자들은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향하여 \"나의 주시며,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라고 고백하였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죽으면 모든 것이 끝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죽지 않으려고 사람들은 모든 수단을 다 사용합니다. 악한 사람에게 내리는 가장 큰 형벌도 사형입니다. 그 이상의 형벌은 없습니다. 그래서 그들에게는 목숨이 가장 소중한 것이었고, 사람들은 다른 사람을 위해 자기 목숨을 버릴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부활을 통하여 모든 사람이 육신의 죽음 후에 영원한 생명이 있으며 그것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얻어지는 것임을 알게 하셨습니다. 주님의 죽으심과 부활을 통하여 십자가의 죽음, 즉 희생의 삶이 궁극적으로 승리한다는 것을 증명하였고, 그리스도인들의 마음속에 희생과 자비와 사랑의 마음이 불타 오르게 되었습니다. 그것을 얻기 위해서 우리는 죽을 수도 있고 살 수도 있는 것입니다. 롬 14:7-8, \"우리 중에 누구든지 자기를 위하여 사는 자가 없고 자기를 위하여 죽는 자도 없도다.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라.\" 아무도 죽고 사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게 된 것입니다.



3. 따라서 주님의 부활은 우리 몸의 부활을 보증합니다.

주님이 죽음을 이기시고 부활하신 것은 우리의 육신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가르쳐 줍니다. 우리의 육체는 천하고 썩어 없어질 것이 아닙니다. 영원하신 하나님이 지으신 물건이므로 우리의 몸은 거룩하고 아름답고 영원히 살게 될 것입니다. 만일 이 몸이 악한 것이라면 주님은 부활하실 때, 이 육체를 취하시지 않고 영으로만 부활하셨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의 몸을 성령이 거하시는 전으로 삼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님의 부활과 연합하여 육신이 다시 부활할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고전 15:16-22, \"만일 죽은 자가 다시 사는 것이 없으면 그리스도도 다시 사신 것이 없었을 터이요. 그리스도께서 다시 사신 것이 없으면 너희의 믿음도 헛되고 너희가 여전히 죄 가운데 있을 것이요. 또한 그리스도 안에서 잠자는 자도 망하였으리니, 만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바라는 것이 다만 이생뿐이면 모든 사람 가운데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리라.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 사망이 사람으로 말미암았으니 죽은 자의 부활도 사람으로 말미암는 도다.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



그래서 우리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사망은 우리를 정복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죽음을 만나도 고전 15:55의 말씀과 같이 \"사망아 너의 이기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너의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하고 담대하게 말씀할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구원을 얻은 우리가 사망과 관계없는 자들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3) 그러므로 우리도 십자가의 길로 나아가야 한다.

예수님의 부활은 모든 믿는 사람들에게 우리 주님이 영생, 즉 천국의 삶을 주셨다는 증거가 됩니다. 우리에게도 그리스도와 같이 부활이 약속되어 있으며 지금 우리가 육신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은 천국에서의 삶을 위하여 준비하는 기간이 됩니다.



오늘 부활절을 맞이하며 주님은 우리에게 선택할 것을 요구하고 계십니다. 주님과 같이 십자가의 길을 갈 것인가? 주님과 같이 골고다 언덕에서 십자가에 달려 죽은 후, 영광의 부활을 얻을 것인가? 아니면 주님을 버리고 세상으로 도망가서 영원히 죽을 멸망의 지옥으로 빠질 것인가? 이제 선택하셔야 합니다.

아직도 세상은 십자가를 싫어합니다. 십자가를 지는 것은 세상 사람들이 보기에는 어리석고 미련해 보입니다. 그래서 십자가의 교훈을 가르치는 교회도 싫어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내 한 몸을 주님께 드려서 그리스도의 사랑을 실천하고 세상의 손가락질과 조롱을 받으면서도 모든 것을 견디며 십자가의 길을 가려는 사람보다는 이 세상에서 잘 먹고, 잘 살고 자기가 대접받고 인정받아 높아지기를 추구하는 사람들이 교회 안에도 많습니다. 그러나 부활하신 주님을 바라보는 우리는 각각 우리 몫에 태인 십자가를 지고 주님의 뒤를 따릅니다. 예수를 믿기 위해 직장과 사회에서 핍박을 받을 때에 기뻐합니다. 감사하고 주를 찬양합니다. 나를 미워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고, 나를 핍박하는 자를 축복합니다. 왜?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만났기 때문입니다.



이 땅에서 우리가 수고하고 주를 위해 고난을 받을 때에 부활의 그 날에 주님 앞에서 큰 칭찬과 상을 받게 될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매일매일 믿음에 더 굳건하여지고 주님을 위하여 살아가야 합니다. 고전 15:57-58,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이김을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니,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고하며 흔들리지 말며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을 앎이니라.\"



부활하신 주님을 바라보며, 주님이 가신 십자가의 길, 그 좁은 길로 가는 그리스도의 제자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이 세상이 자기의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고로 하나님께서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고전 1:21)습니다. 오직 복음에 합당하게 미련한 사람으로 죽임을 당하는 사람으로 살다가 영광의 부활을 얻게 되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