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학자는 다음과 같은 질문들을 가지고 복음서에 접근한다. 이 복음서들이 의도한 목적들은 무엇인가?그 안에 기록된 역사는 얼마나 정확한가? 우리가 그 저작방법에 대해서 알아낼 수 있는 것은 무엇이며,그것은 또 그 적자자의 의도와 성취에 대해서 어떤 빛을 던져주는가?
어떤 학자들은 저작자들이 그들의 믿음을 권하는 데에 열중한 나머지 역사적인 정확성에 대해서는 별관심을 갖지 아니하였을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본다. 그들은 때때로 복음서에는 아주 역사성이 희박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들은 복음서 저작자들에게 있어서 중요한 것은 신학이었으며 그들이 역사를 신중히 다루고자 한 것은 결코 아니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다른 학자들은 이같은 접근법을 너무나 주관적인 것이라고 생각한다. 보다 객관적인 접근방법은 복음서 저작자들이 그들의 역사적 사실을 극히 신중히 다루고 있음을 발견해낸다. 예를 들면, 누가는 그의 복음서를 저작하기에 앞서 그가 수십한 모든 역사적 증거들을 자세히 미루어 살폈노라고 주장하고 있다(눅 1:1-3).
복음서만큼이나 긴 책을 손으로 복사해낸다는 것은 실로 고된 일이며 또한 자칫하면 오류들이 발생하기 쉽다.그러나 수많은 사본들을 주의 깊게 대조하고 사본의 방법들을 면밀히 검토해 보면 초기와 후기 본문 사이의 차이를 구별해내고 그리하여 정확한 본문을 확정하는 데에 도움이 될 것이다.
수 천편의 사본들을 다루는 본문비평은 힘든 일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이 일에 관하여는 사람들은 신약의 본문이 놀라우리 만큼 훌륭하게 보존되어 왔다는 사실(대부분의 고전들보다 훨씬 더 정확하게 보존되어 왔다)에의견의 일치를 보이고 있다. 비록 우리가 여기 저기서 원문을 확정할 수 없는 경우에 부딪히고 있다 하더라도 이것은 별로 중요한 것이 아니다. 기독교의 기본교리를 의심케 할 만한 것은 하나도 없다. 또 우리는 이제 신약의 본문을 사실상 원형 그대로 되찾았다고 확신할 수가 있다.
첫 세복음서 사이의 유사점들은 그것들을 \"공관복음서\"로 칭하게 한 근거가 되었다. 이 세복음서는 나란히 놓고 함께 연구할 수가 있다. 하지만 유사점들을 검토한 다음에는 차이점들도 역시 살펴보아야만 하는데 이 복음서들간의 관계에 대한 문제(\"공관복음서 문제\")는 여러 세대에 걸쳐 학자들을 괴롭게 하였다.
한때는 일반적으로 마태가 그의 복음서를 최초로 저작하였고 마가는 그의 복음서를 춧소시켰다고 주장되었다.지금도 이 견해를 고수하는 학자들이 더러있다. 그러나 오늘날 대부분의 학자들은 훨씬 더 생동감이 있는 마가복음의 문체와 및 마태나 누가의 복음서가 항상 마가복음의 순서를 따르고 있는듯 하다는 사실에 깊은 감명을 받고 있다. 그들은 또한 마가복음이 모든 복음서 중 가장 짧을지라도 복음서들이 공통적으로 담고 있는 기사들에 있어서는 마태복음보다 더 길며 이 점은 마가복음이 마태복음의 축소판이라는 추정을 의심케 한다는 것을 지적하고 있다. 마태나 누가의 복음서에 포함되어 있지 아니한 내용이 마가복음에는 사실 거의 없는데 어찌 이 복음서가 다른 복음서들보다 뒤에 기록된 것일수 있겠는가? 이러한 이유들로 해서 지금은 일반적으로(확고히 입증된 것은 아닐지라도)마가 복음이 최초로 저작되었고 마태와 누가복음이 마가복음을 이용한 것으로 주장되고 있다.
마태와 누가의 복음서에는 함께 나오나 마가복음에는 나오지 아니하는 자료도 상당히 있다. 이것은 대개 지금은 사라지고 없는 다른 자료에서 온 것으로 간주되고 있는데 그 자료를 통상 Q자료라 칭한다. 대부분은 Q자료를 기사적인 부분은 거의 없는 하나의 언행록으로 보고 있다. 많은 학자들은 그것이 한 편의 문서로 되어 있었을 것으로 생각한다. 그 밖의 학체 유사점들이 크기 차이를 보이고 있다는 사실을 지적한다. 때때로 마태와 누가복음의 기사는 거의 낱말까지 일치한다(예:마3:7-10=눅3:7-9).그러나 다른 곳들에서는 상당한 차이점들을 보이고 있다(예:팔복).따라서 그들은 여러 편의 문서들(눅1:1을 보라)을 생각하고 또 Q자료를 사용하여 어떤 특정한 문서이론에 구애받지 않고 일반적으로 이용된 자료를 지칭한다.
그 밖의 자료 중에는 오직 한 복음서에만 나오는 것이 있는데 각 복음서 저작자는 자기만의 자료출처를 갖고 있었던 것이 분명하다. 이러한 자료들 중 마태복음에만 나오는 것은 M자료로, 누가복음에만 나오는 것을 L자료로 각각 칭한다. 누가복음의 경우 이것은 특히 중요하다는 점이 지적되어 왔다. 누가는 마태복음의 자료를 사용하고 있으나 때로는 길게 확대시키고 있다. 어떤 학자들은 누가가 처음에 L자료와 Q자료를 혼합하여 \"原 누가복음\"으로 불리운 한 복음서를 저작하였다고 주장한다. 후에 누가는 우연히 마가복음을 보고 그것의 내용을 상당부분 도입하여 오늘날 우리의 누가복음으로 개편하였다는 것이다. 복음서 기원에 관한 이 견해는 누가의 자료를 매우 신중히 다룬다. 그리고 원 누가복음을 아주 오래된 자료로서 신빙성이 있는 것으로 간주한다.
원래 손에 넣을 수 있는 수많은 자료들 중에서 어찌 이같은 이야기들이 보존되었을까? 양식비평학자들은 이 문제에 대해서 그것들이 초대교회의 필요를 만족히켜 주었다고 답변한다. 곧,보존할 것을 결정한 요인은 설교의 필요성이었다는 것이다. 많은 양식 비평학자들은 아주 급진적인 면을 보이고 있는데 그들은 초대교회의 설교자들이 나이가 보이고 있는데 그들은 초대교회의 설교자들이 나이가 들어 계속 설교할 수 없게 되자 하나님의 영이 그들에게 영감을 주어 그들이 당면한 상황에서라면 예수께서 무슨 말씀을 하실 것인지를 깨닫게 하여 주신다는 신앙하에서 그와 같은 이야기들을 만들어 내었다는 견해를 취한다. 대개 그들은 복음서가 우리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에 대해서 더 많은 것을 들려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것은 극히 주관적이며 편파적인 판단에 불과하다. 양식비평학자들은 자주 실제적인 증거가 거의 없는 문제들에 대하여 과감한 가정들을 세우는 일로 비판을 받아왔다.
제4복음서(요한복음)를 공관복음서와 비교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어떤 이들은 요한복음의 예수님이 나머지 다른 복음서의 예수님과 아주 달라서 우리가 어느 하나를 택하고 나머지 하나는 버려야만 한다고까지 생각을 한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는 그처럼 위대하신 인물이었으므로 어느 한 복음서 저작자가 그의 전 인격을 한 편의 복음서에서 다 서술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공관복음서 저작자들은 예수님의 공식적인 가르침을 반영하고 있는 한편, 요한은 제자들에 대한 예수님의 비공식적인 가르침과 대적들고의 논쟁들을 반영하고 있따는 추정이 있어왔다. 이 두 초상화를 조화시킬 수 없는 것은 결코 아니다.
어떤 언어로 기록된 문서이든 사 복음서만큼 철저하고 세밀한 비평이 가해진 것은 아마 없을 것이다. 어휘와 구문의 극히 사소한 점까지도 그것이 보다 큰 문제와 관련이 없는지 세심히 검토되었다. 이같은 연구 검토가 수많은 난제들을 들추어 냈다고 해서 놀랄 것까지는 없다. 달리는 어찌할 도리가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여러 유능한 학자들의 판단에 의하면 그 난제들이 결코 해결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복음서에 접근할 때 그것들이 우리를 방해하는 것은 분명히 아니다. 오늘날에는 겸손한 사람이 이책들을 읽고 그 안에서 그의 구주를 발견하는데는 아무런 지적 타협을 필요로 하지 아니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