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부활과 성도의 사명

예수 부활과 성도의 사명/막16:1-11

예수 부활과 성도의 사명
막16:1-11





오늘 우리는 부활의 찬송을 하나님께 힘있게 올려드렸습니다. ♬무덤에 머물러 예수 내 구주/ 우리를 살리네 예수 내 주/ 원수를 다 이기고 무덤에서 살아나셨네/ 어두움을 이기시고 나와서 성도 함께 길이 다스리시네/ 사셨네 사셨네 예수 다시 사셨네♬ 아마 이 찬송은 온 세계 교회가 같이 불렀을 것입니다. 저는 이 부활절 예배를 청년회 헌신예배로 겸하여 드리면서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사실을 잘 드러내고 있는 본문을 중심하여 \\\'예수 부활과 성도의 사명\\\'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전하려고 합니다.

우선 예수 부활의 의미를 잠깐 살펴보십시다.

1. 마태복음 16장 21절에는 \\\"이 때로부터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가 예루살렘에 올라가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고 제 삼 일에 살아나야 할 것을 제자들에게 비로소 가르치시니\\\"라고 하였습니다. 고린도전서 15장 3-4절에 \\\"내가 받은 것을 먼저 너희에게 전하였노니 이는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장사지낸 바 되었다가 성경대로 사흘만에 다시 살아나사…\\\"라고 하였습니다. 로마서 4장 25절에서는 \\\"예수는 우리 범죄함을 위하여 내어 줌이 되고 또한 우리를 의롭다 하심을 위하여 살아나셨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제가 소개해드린 3가지 성경 말씀에서 찾을 수 있는 공통점은 \\\'예수님의 죽으심과 다시 사심\\\'에 관한 것입니다. 다시 말씀을 드리면 예수 부활은 십자가 죽음의 산물\\\'이라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대속의 십자가를 지시고 죽으신 후에 부활의 영광을 얻으셨습니다. 이것이 예수 부활의 의미입니다. 예수 부활은 우리의 생각이 죽고, 욕심이 죽고, 죄에서 죽을 때, 새로운 것으로, 영원한 것으로 다시 산다는 것을 또한 보여줍니다.

2.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죽으셨다가 살아나셨다는 사실을 믿지 않으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꾸며낸 이야기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이성적 논리에 반한 것이라고 합니다. 어떻게 죽은 자가 살아날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 부활은 역사적 사건입니다. 예수를 십자가 형벌에 해당하는 죄수로 언도한 것이 역사적 재판이었습니다. 빌라도는 당시 대 세계제국을 대변하는 로마 황제로부터 임명받은 유다의 총독이었습니다. 그는 역사적인 실제의 인물이었습니다. 그렇기에 예수 십자가의 죽음은 꾸며낸 이야기가 될 수 없으며, 또한 예수님이 무덤에서 사흘만에 살아나셨다는 사건도 분명한 역사적 사건입니다. 바울은 아그립바 왕과 베스도 총독 앞에서 예수 부활의 도를 증거할 때 \\\"…이 일은 한편 구석에서 행한 것이 아니로소이다\\\"라고 증거하였습니다(행 26:26). 예수께서 부활하신 소문이 예루살렘 시내에 퍼졌을 때, 유대의 장로들은 돈을 주어 파수꾼들의 입을 막으면서 부탁하기를 \\\"너희는 말하기를 그의 제자들이 밤에 와서 우리가 잘 때에 그를 도적질하여 갔다\\\"고 유포하라고 하였고(마 28:11-15), 혹자들은 예수 \\\'기절설\\\'을 퍼뜨려 예수는 실제로는 죽지 않았었다고 주장함으로 그의 부활을 부인하려고 하였으며, 혹자들은 예수의 제자들과 그를 따르던 여자들이 예수 십자가 죽음에 너무 충격을 받고 있던 중 환상 중에 예수가 나타난 것을 보고, 예수가 다시 살아났다고 했다는 \\\'환상설\\\'을 주장하여 예수의 부활을 부인하려 했습니다. 그러나 부활하신 예수님은 40일 동안 자신의 부활을 여러 경우에, 여러 곳에서, 여러 사람에게, 여러 가지 방법으로 입증하여 주셨습니다. 그래서 행1: 3절에서는 \\\"해 받으신 후에 또한 저희에게 확실한 많은 증거로 친히 사심을 나타내사 사십 일 동안 저희에게 보이시며 하나님 나라의 일을 말씀하시니라\\\"고 하였습니다. 이렇게 부활은 사실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3. 예수 부활은 교회 탄생의 출력이었습니다. 예수께서 부활하신 후에 그의 제자들에게 성령세례를 약속하였습니다(행1:5). 그것은 요14:16-17, 26, 15:26, 16:7에서 이미 예수 자신이 보혜사로 다시 세상에 오신다고 한 약속을 재확인시키신 것입니다. 그리고 이 보혜사 성령이 오시면 권능을 힘입어 세계선교를 하도록 명령하셨습니다(행1:8). 마침내 예수께서 승천한 지 10일 되는 날, 곧 오순절에 성령이 강림하였습니다. 성령 충만을 받은 베드로를 위시한 모든 예수의 제자들은 예수의 십자가와 부활사건을 증거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예수의 십자가에서의 죽음과 다시 사신 부활사건은 저들이 친히 보고들은 경험적 지식이었습니다. 생명적 지식이었습니다. 그 누구도, 무슨 이유로도 저들의 가슴에서 불꽃처럼 터져 나오는 예수 부활 전도를 막을 자가 없었습니다. 이렇게 예수 부활 전도로 인해 한 번에 3000명이나 세례를 받는 큰 역사가 일어났고, 5000명이 믿고, 더 많은 무리가 믿고, 셀 수 없는 사람들이 믿고 주께로 돌아왔습니다. 이렇게 하여 교회는 세워지고 또 세워진 교회는 탄력을 받으면서 성장해갔습니다. 처음 교회운동의 산물은 오로지 예수 십자가의 속죄와 부활소망이었습니다. 정치적 이데올로기나 사상적 궤변이나 경제나 교육이나 어떤 사회문제가 교회탄생의 동인(動因)이 된 것은 아닙니다. 오직 우리 죄를 위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장사한지 사흘만에 다시 사신 예수 구원신앙, 예수 부활소망의 신앙이 교회 탄생의 출력이 된 것입니다. 이것이 부활의 의미입니다.

4. 예수 부활은 신자 부활의 보증이 됩니다. 고린도전서 15장 20절에서는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라고 하였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이미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의 부활을 확증해 주는 보증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라고 하였습니다(요 11:25-26). 기독교는 죽음(死亡)의 종교가 아닙니다. 기독교는 생명의 종교입니다. 기독교는 현세만의 종교가 아닙니다. 기독교는 영원한 내세의 종교입니다. 기독교는 결코 무덤의 종교가 아닙니다. 기독교는 빈 무덤의 종교입니다. 그래서 기독교는 영원을 추구하는 영생의 종교입니다. 이 위대한 복음은 바로 예수 자신께서 십자가에 죽으시고, 장사된 지 사흘만에 무덤에서 살아나심으로 우리에게 보증하여 주셨습니다.이런 의미에서 예수님의 부활은 온 세상에 널리 선전되어야했습니다. 주님도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이 예수의 부활을 세상에 제일 먼저 알린 사람들이 누군지 아십니까? 우리 생각으로는 당연히 베드로와 사도들이어야 할 것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그러나 오히려 평범한 여자들이 제일 먼저 예수님 부활 소식을 전하는 자들이 되었습니다. 어떻게 이 일이 가능했을까요? 예수님께서 그들을 먼저 만나주셨기 때문입니다. 왜 부활하신 예수님이 여성들에게 먼저 나타났을까요?

남미에 있는 어떤 목사님이 부활하신 예수님이 왜 여성에게 나타난 줄 아느냐고? 하면서 이런 말씀을 했다고 합니다. 여자들은 남자들보다는 좀 더 소문을 빨리 퍼뜨리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또 어떤 분은 이런 joke를 하더라구요. 베드로에게 먼저 나타나시지 않은 이유가 \\\"베드로라는 이름이 \\\'반석\\\', \\\'돌\\\' 이라는 뜻이지 않습니까? 그래서 나타나셔 봤자 깨닫지 못했을 것이므로 오히려 여성들에게 먼저 나타났다는 것이지요. 그러나 그런 게 아니고 이유는 다른데 있습니다. 그 이유를 한번 보십시다.

본문 막16장 9절에 보시면 \\\"예수께서 안식 후 첫 날 이른 아침에 살아나신 후 전에 일곱 귀신을 쫓아내어 주신 막달라 마리아에게 먼저 보이시니\\\"라고 하는데, 여기서 중요한 단어는 \\\"먼저 보이셨다\\\"라는 것입니다. 자! 부활하신 주님이 자신을 \\\'막달라 마리아\\\'라는 한 여성에게 먼저 보이심으로 바로 이런 막달라 마리아와 같은 평범한 여성을 통한 새로운 복음의 시대가 등장함을 보입니다. 그런데 1절을 한번 보세요. 거기에는 막달라 마리아 외에 다른 여자들이 함께 했습니다. 또 마28: 1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안식일이 다하여 가고 안식 후 첫 날이 되려는 미명에 막달라 마리아와 다른 마리아가 무덤을 보려고 왔더니\\\" 그리고 눅24장 1절에는 막달라 마리아와 같이했던 더 많은 여인들이 언급됩니다. 이러한 말씀을 보니 막달라 마리아만 예수님을 만났다고는 할 수 없게됩니다. 막달라 마리아와 같이 갔던 다른 여인들도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 여성들이 예수님을 먼저 만남으로 부활의 첫 번째 증인이 되었습니다.그럼, 주님이 이 평범한 여성들을 부활의 증인으로 쓰셨던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요? 그들이 어떻게 해서 평범한 사람으로서 쓰임을 받을 수 있었습니까? 평범한 사람이라는 사실만으로 쓰임을 받은 것은 아닙니다. 그들은 평범한 사람들이었는데, 어떻게 부활의 위대한 증인으로, 또 신약시대에 막을 올리는 그 위대한 역사의 무대의 증인으로 쓰임을 받을 수가 있었을까요?

첫째로 생각할 것은 그들은 은혜 받은 것을 끝까지 지키려고 했기에, 그 은혜에 보은하려 했기에 그들은 부활의 주님을 처음 만나고, 부활의 첫 증인들이 될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그들은 이미 예수의 은혜를 체험하고 있었던 사람들입니다. 이 여성들에 관해서 눅8장을 보시면, 그들이 본격적으로 예수님의 사역의 장에 뛰어들게 되는 동기를 찾아볼 수 있습니다. 1절부터 보시면 \\\"이 후에 예수께서 각 성과 촌에 두루 다니시며 하나님의 나라를 반포하시며, 그 복음을 전하실 새, 열 두 제자가 함께 하였고\\\"라고 합니다. 그렇지만, 열 두 제자만 함께 한 것이 아닙니다. 주님이 열 두 제자만 쓰신 것이 아닙니다. 열 두 제자와 함께 한 사람들이 또 있었는데, 2절과 3절을 보시면 \\\"또한 악귀를 쫓아내심과 병 고침을 받은 어떤 여자들 곧 일곱 귀신이 나간 자 막달라인이라 하는 마리아와 또 헤롯의 청지기 구사의 아내 요안나와 또 수산나와 다른 여러 여자가 함께 하여 자기들의 소유로 저희를 섬기더라\\\"라고 합니다. 자, 여성들이 어떻게 하나님의 사역의 장, 예수님의 사역의 장에 관련이 되기 시작했는가를 볼 수 있지요. 한마디로 말하면, 이 여성들은 은혜를 받은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귀신에게서부터 자유를 얻기도 하였고, 병으로부터 해방되어서 주님을 만나고, 건강과 자유와 새로운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했던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가만히 있지 않았어요. 그래서 그들은 \\\'자기들의 물질을 가지고 제자들을 섬기면서 그들과 함께 주님의 일을 하기 시작했다\\\'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그들이 십자가에까지, 무덤에까지 같다는 것입니다.

이런 일을 보면서 저는 \\\'그들이 체험했던 은혜는 결코 값싼 은혜가 아니었다, 싸구려 은혜가 아니었다\\\'고 생각합니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러한 은혜를 베푸심으로, 예수님께는 이런 비난의 소문이 따라다니기 시작했습니다. \\\'창기와 세리들의 친구…\\\' 그래서 바리세인들과 적이 되기 시작했습니다. 심지어는 예수님은 바로 이러한 사람들을 사랑하고 그들의 삶을 바꾸기 위해서 기꺼이 십자가까지 가셔야만 했습니다. 그 여성들은 그것을 알았어요. 그래서 그들은 주님을 따라갑니다. 끝까지 따라갑니다. 막15장을 보세요. 십자가를 둘러싸고 있는 장면을 보도하고 있는 막15: 40절을 보시면 \\\"멀리서 바라보는 여자들도 있는데 그 중에 막달라 마리아와 또 작은 야고보와 요세의 어머니 마리아와 또 살로매가 있었으니...\\\"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실 때, 거기까지 따라왔던 이 여자들이 멀리서 봤다고, 왜 가까이 에서 보지 않았냐고 트집을 잡지 마십시오. 왜냐하면, 이때 남자들은 다 없어져 버렸어요. 베드로는 주님을 부인했고, 저주했고, 떠나갔고 다 주님을 등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여성들은 끝까지 그 십자가의 현장에 남아서 주님을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41절을 보세요. 어떻게 이들을 묘사하고 있습니까? \\\"이들은 예수께서 갈릴리에 계실 때에 좇아 섬기던 자요. 또 이외에도 예수와 함께 예루살렘에 올라온 여자가 많이 있었더라\\\" 그런데 남자들은 다 어디 갔습니까? 네, 여자들이 끝까지, 평범하고 가난한 마음을 가졌던 여성들이 십자가의 현장까지 끝까지 찾아왔던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막15장 마지막 절에 보시면, \\\"때에 막달라 마리아와 요세의 어머니 마리아가 예수의 둔 곳을 보더라\\\"라고 합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시고 나서 그의 시체가 뉘어 지던 곳을 이 여인들이 주목해 보았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본문 막16: 1절을 보면 안식일이 지나고 이튿날 새벽, 즉 안식 후 첫날 매우 일찍이 해 돋을 때 이 여인들은 향품을 가지고 무덤을 찾아왔습니다. 이 일은 위험이 따르는 것이었습니다. 사람들의 비난을 받을 수 있는 여지도 있고, 혹은 사형수를 그들 마음대로 처리하고 접근한다는 사실 때문에 어떤 형벌을 받을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끝까지 그렇게 했습니다. 그들이 값비싼 은혜에 빚진 자임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것을 갚기 위해서였습니다. 주님의 은혜는 값으로 계산할 수 없는 은혜이지만, 보은하지 않는 은혜, 대가를 치르지 않는 은혜는 본 훼퍼가 말한 것처럼 싸구려 은혜입니다. 이런 은혜를 받는 자는 은혜를 헛되이 받은 것이고, 이런 자에게는 다시 은혜를 주시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 여인들은 달랐습니다. 주님의 은혜 받고 주님을 따르는데 십자가까지, 무덤가지 따라간 것입니다. 시체에 바를 향품을 준비하고 말입니다. 그런 자에게 주님은 먼저 만나주셨습니다.

두 번째로 볼 것은 그렇게 한 그들이 예수의 은혜를 체험했을 뿐만 아니라 예수의 부활을 믿은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부활을 믿지도 않고 어떻게 부활의 증인이 될 수 있을까요? 그러나 주목할 것은 이것입니다. 이 여성들이 처음부터 부활을 잘 믿을 수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예수님이 묻혀있던 이 동산에 그 여자들이 올라왔던 이유는 차라리 단순한 이유였을 것입니다. 주님에 대한 단순한 애정, 단순한 감사, 단순한 충성심 때문에 그의 시체에 향유를 발라 드리려는 동기였지, 이 여성들이 예수님의 부활을 기대했다는 흔적은 없습니다. 기대하지 않았던 반응이 본문 8절에 나와있습니다. \\\"여자들이 심히 놀라 떨며 나와 무덤에서 도망하고 무서워하여 아무에게 아무 말도 하지 못하더라\\\" 이것은 부활을 기대했던 사람들의 반응은 아닙니다. 만약 부활을 기대했더라면, \\\'맞았어! 주님은 예측대로 부활하셨어. 주님이 부활하셨어요. 할렐루야!\\\' 이렇게 해야 맞는 것입니다. 그러나 부활에 대한 기대가 없었기 때문에 부활의 사실을 목격한 그들은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여자들이 심히 놀라 떨며 나와 무덤에서 도망하고 무서워하여 아무에게 아무 말도 하지 못하더라\\\' 어디 여성들뿐입니까? 이 여성들로부터 부활의 소식을 전해 들었던 다른 제자들도 마찬가지예요. 본문 11절에서 \\\"그들은 예수의 살으셨다는 것과 마리아에게 보이셨다는 것을 듣고도\\\" 뭐라고 그랬습니까? \\\"믿지 아니하니라\\\"라고 했어요. 처음에는 \\\'그럴 수 없다. 사람이 다시 살다니…\\\'라고 하면서 믿지 아니한 것입니다. 그것이 당연한 거예요. 13절도 보세요. \\\"두 사람이 가서 남은 제자들에게 고하였으되…\\\" 역시 \\\"믿지 아니하니라\\\"고 했어요. 어떻게 보면 부활을 믿지 아니하는 것이 타당하고 자연스러운 것입니다. 그러나, 마침내 이 여성들과 제자들은 그들의 불신앙과 회의를 넘어서서 믿는 자리에 설 수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들이 교회사의 한 획을 긋는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어떻게 이러한 불신앙과 회의를 넘어설 수 있었을까요? 부활하신 주님이 이들에게 자신을 계시하셨기 때문에 비로소 그들은 믿는 자가 될 수 있었습니다.

저는 이 여인들이 주님의 계시로 믿음이 더해질 수 있었던 사실을 보면서 \\\'사람들에게 회의는 있을 수 있지만, 불신앙은 있을 수 있지만, 중요한 것은 이 회의를 넘어서서 마침내 신앙의 자리에 도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구하라, 찾으라, 문을 두드리라\\\' 구하십시오. 구하는 자가 얻을 것입니다. 찾으시기 바랍니다. 찾는 자가 찾을 것입니다. 문을 두드리는 자에게 비로소 열려질 것입니다. 구한다는 말은 한 번 구한다는 말이 아니에요. 계속에서 구한다는 말이에요. 본래 원래 원문의 뜻이 \\\'계속해서 구한다\\\'는 것이에요. 찾으라. 한 번 찾으라는 말이 아니에요. 지속적으로 찾으라는 것이에요. 두드리라. 한 번 두드려 보라는 것이 아니에요. 한 번 조금 생각해 보았다가, 한 번 조금 기도해 보았다가 \\\'에이~ 소용없어\\\' 이러는 것이 아니라구요. 진정한 구도자는 계속 문을 두드리는 자여야 합니다. 이 은혜 받았던 여인들처럼 주님이 십자가에 돌아가셨음에도 불구하고, 그러나 주님의 애정을 표현하며 그 자리에 끝까지 남아있었을 때, 그 여인들은 마침내 부활하신 주님을 만났고, 그래서 이 여성들은 부활을 믿은 자가 되었습니다.

세 번째로 볼 것은 이렇게 은혜를 체험하고 믿은 여인들은 이제 예수의 부활을 전하는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자 본문의 6절에 보시면, 청년의 모습으로 나타난 천사를 이 무덤에서 만납니다. 이것이 진짜 청년이 아니에요. 청년의 모습으로 나타난 천사입니다. \\\"청년이 이르되 놀라지 말라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나사렛 예수를 찾는구나 그가 살아나셨고 여기 계시지 아니하니라 보라 그를 두었던 곳이니라\\\" 7절에, \\\"가서 그의 제자들과 베드로에게 이르기를 예수께서 너희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시나니 전에 너희에게 말씀하신 대로 너희가 거기서 뵈오리라 하라 하는지라\\\" 중요한 동사가 둘이 나오는데, 하나는 \\\'가서\\\' 두 번째는 \\\'말하라\\\' 영어 성경에 보시면 \\\'Go and tell…\\\'. \\\'제자들과 베드로에게 가서 말하라\\\' 예수께서 살아나셨다고... 그리고 갈릴리에서 먼저 가서 기다리실 것이라고... 본문의 10절에 마리아가 어떻게 행동했습니까? \\\'가서\\\'라고 합니다. 이게 순종이요. 가서 예수와 함께 하던 사람들의 슬퍼하고 울고있는 중에서 이 사실을 전했습니다. 믿고 나서 마리아가 순종하기 시작할 때, 그때부터 부활의 복음은 온 세계에 전파되기를 시작하였습니다. 이 일이 있은 후에 오늘 우리도 부활의 소식을 들었습니다. 사랑하시는 여러분 \\\'가서 전하라...\\\'라는 이 말씀은 마리아에게만 주셨던 명령은 아니었습니다. 이것은 그 다음 제자들에게, 그리고 이 시대를 살아가는 오늘의 그리스도의 제자들에게도 계속적으로 유효한 명령 이예요. 그래서 우리는 이것을 그리스도의 지상 명령이라고 부릅니다. 15절을 다 같이 읽어보세요. 15절을 다 같이 \\\"또 가라사대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 달리 말하면, 너희는 온 천하, 모든 곳에 가서 모든 곳이 우리가 전도해야 할 장소입니다. 모든 곳에 다니며, 만민에게 모든 사람에게, 모든 곳에 가서 모든 사람을 대상으로 복음을 전하라. 이것이 오늘의 우리를 향해 주께서 주시는 명령이라고 믿으십니까? 왜 이런 명령을 하십니까? 인생의 절박한 문제를 다루는 것이요, 인생의 궁극적인 소망은 예수 부활에 달려있기 때문입니다. 이 명령이 오늘의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주어지는데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응답하시는 것이 옳습니까? 우리가 가야지요. 우리가 가야 합니다. 믿고 가야합니다. 이것이 순종입니다. 자, 순종하는 자들에게 어떤 약속을 주십니까? 여기 17절, 18절은 약속입니다. 이 명령에 순종하는 자들에게 주께서 주신 약속, 약속입니다. 17, 18절을 다 같이 한번 읽어보시겠습니다.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곧 저희가 내 이름으로 귀신을 좇아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 뱀을 집으며 무슨 독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 즉 나으리라 하시더라\\\" 무한한 은혜와 축복을 약속하시는 말씀입니다. 주의 나라를 확장하기를 기뻐하는 자들에게 주신 약속입니다. 이 부활 주일에 이 약속 붙들고 한번 헌신을 다짐합시다. \\\'주의 명령 들고 가겠다. 부활의 복음을 전파하며 살겠다\\\' 그렇게 사셔서 주님 약속하신 은혜와 축복을 내 것으로 경험하며 누리시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