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한 청지기 같이 서로 봉사하라

선한 사역자로 서로 봉사하라
벧전4:7-11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웠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하라 무엇보다도 열심히 서로 사랑할지니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 서로 대접하기를 원망 없이 하고 각각 은사를 받은대로 하나님의 각양 은혜를 맡은 선한 청지기같이 서로 봉사하라 만일 누가 말하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하는 것같이 하고 누가 봉사하려면 하나님의 공급하시는 힘으로 하는 것같이 하라 이는 범사에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 함이니 그에게 영광과 권능이 세세에 무궁토록 있느니라 아멘 (벧전 4:7-11)





오늘까지 목적이 이끄는 40일 캠페인의 여정을 지켜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리고 또 이 캠페인에 참여하신 모든 성도님들과 또 극동방송을 청취하시는 모든 청취자들께 우리 하나님의 크신 축복이 날마다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우리 인생을 살아가면서 하나님의 합목적적인 삶을 사는 것이 가장 행복하고 복된 일입니다. 우리는 지난 3주간에 걸쳐서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목적 3가지를 생각했습니다. 오늘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향하신 네 번째 목적이 무엇인지를 이 시간 함께 생각해 보기를 원합니다. 흔히들 ‘섬김’이라는 표현을 쓰기도 하고 ‘봉사’라는 표현을 쓰는 ‘사역’에 대하여 함께 생각해 봅시다. 우리가 이 시간 ‘사역’에 대하여 생각해 보기 전에 앞에서 3주간 생각했던 내용이 무엇인지 곰곰이 돌이켜 보시기 바랍니다. 첫 번째 목적으로 예배에 대하여 생각했습니다. 두 번째 목적으로 교제에 대하여 생각했습니다. 세 번째는 훈련에 대하여 생각했습니다. 오늘은 네 번째 목적으로 사역에 대하여 생각해 봅시다. 이런 의미에서 우리 모두는 하나님의 축복 속에 세워진 존재들입니다.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목적이 있고 그 목적에 합당하게 살아갈 때 우리는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인생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세상에서 성공하고 출세하고 모든 것을 가졌다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그를 향하신 목적대로 살지 못한다면 이 세상 모든 사람이 다 칭송하고 부러워해도 그 사람의 삶은 결코 행복할 수가 없을 것입니다.




여러분! 오늘 본문 10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각각 은사를 받은대로 하나님의 각양 은혜를 맡은 선한 청지기같이 서로 봉사하라’고 했습니다. 여러분! 오늘 본문 7절에서 11절 사이를 보시면 종말의 때를 사는 성도들이 행해야 될 4가지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첫째는 기도하라고 했습니다. 둘째는 서로 사랑하라고 했고, 셋째는 서로 대접하라고 했고, 넷째는 서로 봉사하라고 했습니다. 오늘은 즉 봉사, 섬김, 사역에 대하여 함께 생각해 보기를 원합니다. 우리를 섬기는 자, 봉사하는 자, 사역자라고 하는데, 우리가 감당해야 될 일은 서로서로 섬기고 봉사하는 것이라고 베드로 사도는 우리에게 명령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사역이라는 표현을 쓸 때, 즉 Ministry라는 말을 쓸 때는 전문적인 목회자나 또 신부나 전문적인 훈련을 받은 사람이 하는 일을 우리가 사역이라고 하는 것으로 착각하기가 쉽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하나님 안에 있는 모든 성도들이 다 하나님의 사역자로 부름받았다는 사실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가지고 하나님을 위해서 또 성도들을 위해서 우리가 일할 때 그것이 바로 사역이 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예수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마 20:28)”고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목적이 섬김을 받으려 온 것이 아니고 오히려 섬기려고 왔다고 선언하고 계십니다. 그런 관점에서 예수님처럼 남을 섬기는 사역을 감당하기 위하여 우리는 어떤 모습이어야 되는가를 살펴 보겠습니다.







1. 선한 청지기(사역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베드로 사도는 선한 청지기같이 서로 봉사하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선한 청지기같이라고 했는데 이 말을 바꾸면 선한 사역자로 서로 봉사하라, 서로 섬기라는 말입니다. 여기에서 선한 사역자, 청지기는 어떤 자인가하는 것입니다. 청지기는 주인이 아니고 주인을 위해서 존재하는 자입니다. 청지기는 자기 뜻대로 말하고 행동하는 자가 아니라 주인의 뜻대로 행하는 자가 청지기의 역할입니다. 또한 청지기는 자기의 유익을 위해서 일하는 자가 아니라 주인의 유익을 위해서 일하는 자입니다. 청지기는 자기에게 주어진 은사와 권한을 가지고 주인을 위해서 최선을 다하는 자입니다. 고린도전서 4장 1절에는 ‘사람이 마땅히 우리를 그리스도의 일군이요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로 여길지어다’라고 했습니다.




여기에서 그리스도의 일군,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라는 의미를 곰곰이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 모두는 다 그리스도의 일군이요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로 부름 받았고 또 사역에 세움을 받은 자들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을 통해서 하나님을 섬겨야 합니다. 우리는 우리에게 주어진 물질을 통하여 하나님을 섬겨야 합니다. 우리는 우리에게 주어진 내 몸을, 내 마음을, 내 뜻을 다해서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너희는 너희 것이 아니라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고전 6:19-20)’고 했습니다. 우리 전부를 다해서 하나님을 섬기고 이웃을 섬기는 사역자의 삶을 살아야 됩니다.




우리가 선한 청지기로, 선한 사역자로 바르게 살아가기 위해서는 서로가 서로를 존중하고 서로가 서로를 귀중히 여길 수 있는 관계가 되어야 합니다. 여러분! 오늘 본문을 보면 서로라는 표현이 반복해서 나오고 있습니다. 교회라는 공동체는 한 사람의 개인적인 조직이 아니고 그리스도를 머리로 한 여러 사람들이 각각 지체가 된 공동체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서로가 서로를 귀하게 여기고 서로를 세워주는 그런 관계가 될 때 교회는 본래적인 목적대로 바르게 설 수 있습니다. 여러분! 이런 말이 있지 않습니까? 좋은 교회와 건강한 교회와 또 건강하지 못하고 문제 있는 교회를 어떻게 구분하는가하면 문제 있고 좋지 못한 교회는 몇몇 사람에 의해서 교회가 좌지우지되는 그런 교회입니다. 그러나 건강하고 좋은 교회는 교회 구성원 전부가 다 함께 참여하고 함께 만들어가는 그런 교회가 좋은 교회입니다. 그래서 몇몇 사람의 주장이 교회 전체 의사를 좌지우지하는 것이 아니고 한 사람 한 사람이 각자 다 참여하고 또 자기 의견을 개진할 수 있고 또 뜻을 모으고 힘을 합하여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가는 그런 공동체가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열 명이 모이면 내 주장을 1/10만 하고 백 명이 모이면 내 주장을 1/100만 하고 천 명이 모이면 내 주장을 1/1000만 해야 됩니다. 그런데 천 명이 모이는 교회에서 내 주장을 다른 사람보다 훨씬 더 많이 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 때문에 그 공동체는 문제가 발생할 수밖에 없습니다. 각각 다른 사람의 짐을 질뿐만 아니라 자기 짐을 자기 스스로 져야 합니다. 자기가 져야 할 짐을 지지 않고 다른 사람을 무시하고 자기주장을 늘어놓는다면 거기는 항상 문제가 발생할 수밖에 없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좋은 교회, 하나님이 원하는 교회로 세워가기 위해서는 우리 모두가 사역자로 부름 받았다는 사실을 알고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그 일을 감당해야 합니다.







2. 나에게 주어진 은사를 발견하고 은사를 계발해서 그 은사를 통해서 교회를 섬기고 하나님을 섬겨야 합니다.




여기에 앉아 있는 수많은 성도들이 얼굴이 다르듯이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들에게 주신 은사가 각각 다 다릅니다. 그리고 그 다른 은사를 통해서 이 교회를 섬기게 하셨고 하나님을 섬기게 하셨고 또 우리 서로를 섬기도록, 봉사하도록 하셨습니다. 여러분! 고린도전서 12장이나 로마서 12장이나 에베소서 4장 같은 경우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준 은사에 대해서 여러 가지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특징이 은사는 여러 가지지만 성령은 같은 분이시고 또 직임은 여러 가지지만 주님은 같은 분이시고 역사는 여러 가지지만 역사하시는 하나님은 한 분이시다 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 사람들 가운데 우리가 한 일체감을 이루는 공동체가 되어야 됩니다.




또 로마서 12장 4절, 5절에 ‘우리가 한 몸에 많은 지체를 가졌으나 모든 지체가 같은 직분을 가진 것이 아니니 이와 같이 우리 많은 사람이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이 되어 서로 지체가 되었느니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한밭교회라는 공동체 속에 각각 지체로서 각각 다른 은사를 받은 지체들로서 각기 자기 역할을 하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은사를 다 똑 같이 아니면 한 가지나 두 가지만의 은사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셨다면 우리교회 색깔은 검은 색이든 아니면 흰색이든 흑백의 모습으로 나타날 것입니다. 여러분! 흑백의 그림보다는, 흑백 사진보다는 총 천연색 칼라 사진이 훨씬 더 보기가 좋지 않습니까? 그것처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각기 다른 색깔의 은사를 주셨고 다른 재능을 주셔서 그것을 통해서 하나님의 일을 하게 함으로 총 천연색 정말 아름다운 모습의 하나님의 사역의 현장이 되게 하셨습니다.




에베소서 4장 7절에 ‘우리 각 사람에게 그리스도의 선물의 분량대로 은혜를 주셨나니’, 에베소서 4장 11절, 12절에 ‘그가 혹은 사도로, 혹은 선지자로, 혹은 복음 전하는 자로, 혹은 목사와 교사로 주셨으니 이는 성도를 온전케 하며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라고 했습니다. 각각 우리에게 다른 은사를 주셔서 성도들을 온전케 하고 봉사의 일을 하게 하고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를 세우게 하기 위하여 우리에게 은사를 주셨습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은사를 주심은 유익하게 하기 위함이라는 것을 고린도전서 12장에 강조를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 많은 사람들은 사역자로 부름받은 자들이면서도 나에게 어떤 사역이 주어져 있고 어떤 사역을 감당해야 될지 모를 뿐만 아니라 내게 주어진 은사가 무엇인지를 깨닫지 못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은사에 대한 오해들이 교회 안에 많이 있습니다. 첫째는 나는 은사를 받지 못했다고 생각하는, 신앙적인 무지에 빠져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우리 모두는 다 은사를 받은 분들입니다. 우리는 어떤 종류의 성령의 은사든지 다 받았습니다. 내가 느끼지 못하고 내가 깨닫지 못했을 뿐이지 여기 앉아 있는 모든 분들은 다 성령의 은사를 받은 분들입니다. 두 번째 오해는 내가 받은 은사는 다른 사람이 받은 은사들보다 열등한 은사다, 다른 사람이 받은 은사는 병 고치는 은사, 방언의 은사 등 겉으로 두드러진 은사인데 내가 받은 은사는 그런 것 같지 않으니까 내가 받은 은사는 열등한 은사다라는 것입니다. 셋째로 어떤 사람들은 내가 받은 은사는 다른 사람들이 받은 은사보다 뛰어난 은사다, 두드러진 은사다라는 영적인 자만심에, 영적인 우월감에 빠진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것도 영적인 은사에 대한 오해입니다. 그 다음에 영적인 은사에 대한 네 번째 오해는 내가 받은 은사는 하나님과 교회를 위해서 다른 성도를 섬기게 하기 위해서, 사역을 감당하기 위해서 은사를 주셨지, 내 이름을 내고 다른 사람에게 자신을 과시하고 자랑하도록 주신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우리는 분명히 깨달아야 합니다. 그런데 이런 부분에서 한국교회 안에 너무나 많은 혼란스러운 은사에 대한 오해들이 많이 있습니다. 이렇다 보니 하나님께서 유익하라고 주신 은사 때문에 오히려 교회가 시험에 들고 또 교회가 분란이 일어나고 파벌이 조성되는 그런 경우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를, 은사를 우리는 헛되이 받아서도 안 되고 헛되이 남용해서도 안 되는 존재들임을 명심해야 합니다.




자! 여러분! 여기에 축구팀이 있습니다. 그 축구팀에는 다른 재능을 가진 선수들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수비에 능한 선수가 있고 어떤 사람은 공격에 능한 선수가 있습니다. 크게 나누면 그렇게 두 부류로 나눌 수 있습니다. 그 안에서도 여러 포지션이 있어서 각각 선수들을 감독이 또는 코치가 적재적소에 그 사람의 역량과 그 사람의 재능과 그 사람의 특기에 따라서 포지션을 정해 줍니다. 그런데 경기가 시작되었습니다. 웬만한 경기는 다 텔레비전 중계를 합니다. 그런데 선수가 골 키퍼가 문 앞에서 상대방 공을 막아내야 하는데 자기 자리를 지키지 않고 카메라가 공 따라 가니까 자기도 공 따라 상대방 진영까지 좇아올라 간다면 그 선수는 축구 선수 골 키퍼로서는 자격이 없습니다. 아무리 뛰어난 재능을 가졌다 할지라도 말입니다. 자기 자리를 지킬 줄 알고 자기에게 주어진 은사를 통해서 사역을 감당할 수 있어야 합니다.




큰 오케스트라가 있습니다. 큰 오케스트라라고 하면 100명 정도 되는 그런 큰 오케스트라가 있는 반면에 10명 정도로 구성된 실내 관현악단이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 각기 악기가 다릅니다. 각기 재능이 다릅니다. 빈 필 하모니 오케스트라라든지 베를린 필이라든지, 뉴욕 필 같은 그런 엄청난 세계적인 오케스트라는 세계적인 연주자들을 많이 가지고 있습니다. 바이올린만 하더라도 세계적으로 이름난 사람들이 그 오케스트라 단원들로 있습니다. 그런데 한 사람 한 사람으로 보았을 때는 전부 유능하고 뛰어나지만 그 지휘자의 지휘에 따라서 각기 자기가 연주해야 될 때와 쉬어야 될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나는 계속해서 연주하겠다고 하면서 쉬어야 될 때 계속해서 연주를 한다면 그 오케스트라는 아름다운 음악을 만들어 낼 수 없습니다. 다 망치고 맙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주어진 은사가 연주자들에게 주어진 은사와 같이 내 능력을 절제해야 할 때 절제하고 쉬어야 될 때 쉬어야 되고 내가 최선을 다해서 연주해야 할 때 연주해야 되는 것처럼 각자의 역할, 각자의 재능을 잘 활용할 수 있을 때 아름다운 교회를 만들어 나갈 수 있습니다. 교회에 속한 우리에게 직분을 주신 이유는 교회를 위해서 필요한 존재로서 유익하게 하도록 우리에게 은사를 주셨고 우리 모든 사역자들은 다 하나님의 은사를 받은 자들로서, 예를 들어서 방언의 은사를 하고 병 고치는 은사를 가지고 병든 자를 일으키는 은사도 소중하지만 형제를 사랑하고 형제를 권면하고 권위하는 은사, 낙담하고 절망 가운데 있는 사람을 세우는 은사도 방언의 은사나 병 고치는 은사보다 훨씬 더 중요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다른 사람이 받은 은사는 소중하고 두드러지고 내가 받은 은사는 열등하다고 생각해서는 절대 안 됩니다.




또 내가 받은 은사는 너무 두드러지고 다른 사람이 받은 은사는 열등하다는 영적인 교만에 빠져도 안 됩니다. 서로 서로 각자의 자리에서 자기 받은 은사를 통해서 사역을 감당하는 그런 존재들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라는 사실을 인식하고 그리고 우리가 어떤 것을 볼 때 내가 서 있는 관점에서만 볼 것이 아니라 단편적으로 편견을 가지고 볼 것이 아니라 전체적으로 통시적으로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여러분! 금강산 만물상은 보는 관점에 따라서 그 보이는 모양이 다르다고 하지 않습니까? 그러나 우리가 어떤 사물을 볼 때 내가 서 있는 관점에서 내가 주관을 가지고 판단할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관점에서 예수님의 관점에서 우리가 보고 판단하고 하나의 공동체를 이루어 나가는 사역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3. 본을 보이는 사역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주님의 교회를 섬기고 하나님을 섬기는 데는 수많은 영역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 사역을 감당하는 사역자들이 다른 사람에게 본을 보일 수 있는 사역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디모데전서 1장 16절에서 ‘후에 주를 믿어 영생 얻는 자들에게 본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고 했습니다. 자기를 하나님께서 충성되이 여겨서 직분을 맡기고 그 직분을 통해서 사역을 감당하게 한 것은 많은 영생 얻는 자들에게 본이 되게 하기 위해서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오늘 이 자리에 함께 하신 목사님들, 장로님들, 권사님들, 집사님들, 그리고 우리 모든 성도님들! 하나님께서 나를 부르시고 직분을 맡기시고 이 사역을 감당하게 하신 것은 많은 사람들, 또 새로 믿는 사람들, 우리에게 영적으로 어린 사람들에게 본이 되게 하려 하셨다는 사실을 우리 모두가 믿고 깨달아야 합니다. 충성된 직분자, 충성된 사역자, 선한 청지기들은 다른 사람들 앞에 영적인 본을 보일 수 있는 그런 믿음의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책임적인 존재로 우리가 살아가야 합니다.




여러분! 성경을 보면 가장 골치 아픈 교회가 하나 있었습니다. 성경에 많은 교회 이름들이 나옵니다. 그 중 가장 골치 아픈 대표적인 교회가 어느 교회인줄 아십니까? 고린도 교회입니다. 사도 바울이 웬만하면 편지를 짧게 쓰는데 고린도 교회에 보낸 편지는 유달리 깁니다. 그것도 고린도전서가 있고 고린도후서가 있을 만큼 골치 아픈 교회였습니다. 고린도교회는 지상에 있는 교회가 가질 수 있는 모든 문제점들을 다 통합시켜 놓은 것만큼 골치 아픈 교회였습니다. 이것이 과연 교회일까 할 만큼 문제 있는 교회였습니다. 고린도 교회는 파벌이 있었습니다. 4개의 파벌이 있어서 서로 싸우고 미워하고 시기하고 질투하고 자기 파벌에 대해서는 끝없이 용서해주고 다른 파벌에 대해서는 끝없이 비난하고 욕하는 많은 문제를 가진 교회였습니다. 그러나 그 시대에, 같은 시대에 같은 그리스라는 그 나라에 위쪽으로 올라가면 데살로니가라는 교회가 있었습니다.




그 교회도 물론 종말론이라는 문제가 있었지만 사도 바울이 데살로니가 교회를 생각하기만 하면 하나님 앞에 감사한다고 했습니다. 고린도 교회를 생각하면 늘 골치가 아픈데 데살로니가 교회를 생각하면 감사하는 마음이 늘 앞섰습니다. 왜냐하면 데살로니가 교회는 믿음의 역사가 있었고 사랑의 수고가 있었고 소망의 인내를 가진 교회였습니다. 도시로 보면 고린도라는 도시는 그 당시 그리스에서 로마의 거점 도시였고 정치 경제 사회 문화 특별히 경제적으로 무역항으로서 아주 번창한 도시였습니다. 그러나 데살로니가는 별 신통찮은 도시였습니다. 데살로니가는 연약한 도시였고 데살로니가 교회는 연약한 교회였습니다. 힘이 없는 교회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데살로니가 교회는 믿음의 역사가 있었고 사랑의 수고가 있었고 소망의 인내가 있었기 때문에 사도 바울은 하나님 앞에 기도할 때마다 그들로 말미암아 감사했습니다.




그런데 고린도교회는 그들 때문에 늘 마음이 무겁고 때로는 분기충천해서 ‘내가 고린도에 가면 너희들을 가만 두지 않을 것이다’라고 분노를 터뜨렸던 대상의 교회였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바로 교회를 구성하고 있는 멤버들이 어떤 모습으로 하나님 앞에 목적을 깨닫고 그 목적에 합당하게 사역하고 서느냐에 달린 것입니다. 데살로니가 교회는 마케도니아 지방의 대표적인 교회였습니다. 데살로니가 교회의 아름다운 소식은 마케도니아 지방뿐만 아니라 아가야 지방까지도 믿음의 좋은 소문이 퍼진 교회였습니다. 아가야 지방은 바로 고린도 교회가 있는 그 지역을 말합니다. 좋은 교회 좋은 소식은 아름답게 퍼집니다. 나쁜 교회 나쁜 소식도 더 멀리 퍼집니다. 사도 바울이 어디에 가 있었습니까? 에베소에 있었습니다. 에베소에서 편지를 쓰는데 그 고린도교회의 고약한 소식이 에게해를 넘어서 지금의 터어키까지 아시아에 까지 전해졌습니다.




여러분! 우리 한밭교회 좋은 소식이 전해지고 있습니까? 아니면 우리 한밭교회 나쁜 소식이 외부에 전해지고 있습니까? 그것은 바로 우리 한 사람 한 사람, 한밭교회를 구성하고 있는 한 사람 한 사람이 각자 자기에게 주어진 은사를 깨닫고 그것을 통해서 아름다운 사역자로 온전히 설 때 우리 한밭교회는 이 시대에 좋은 교회로서 자리를 잡아 갈 것입니다. 이 시대 좋은 교회로서 만들어져 나갈 것입니다. 그러나 전부 사랑 받기만을 원하고 다른 사람으로부터 섬김 받기만을 원하고 자기 할 일 제대로 안하고 자기 짐을 남에게 지우고 말만 하는 사람들이 많이 모인다면 이 교회는 분명히 수많은 사람들로부터 비난과 조롱거리가 될 것입니다.




제가 2년 전에 미국의 윌로우 크릭 교회에 갔을 때 한 가지 특이한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그 교회 지하 화장실을 갔는데 중학생 정도 되는 남자 아이 둘이 방향제를 뿌리며 화장실을 치우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물어보니까 이 아이들이 정해진 예배 시간대에 나와서 화장실을 사람들이 드나들고 나면 뒷정리를 하고 냄새가 나기 때문에 방향제를 뿌린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모든 교회 구성원들이, 수천 명이 되는 모든 교인들이 교회에 와서 자기가 해야 할 사역이 다 정해져 있는 것입니다. 그냥 와서 예배드리고 그 뒷정리는 다른 사람이 다하고 또 봉사와 수고는 다른 사람이 다하고 나는 그냥 예배만 참석하고 돌아가는 그런 신자가 아니고 한 사람 한 사람이 필요한 사역을,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사역을 다 정해서 그 일들을 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굉장히 충격을 받았습니다. 한국교회는 불과 10% 미만만 교회 봉사하고 사역하고 나머지 90%는 그냥 주일에 왔다 갔다 하는 신자입니다. 30% 정도가 사역자로 동력화 되면 그 교회는 한국교회로서 모범적인 교회가 될 수 있습니다.




저는 우리 교회는 다른 교회에 비하여 굉장히 동력화 된 교회라고 믿고 확신합니다. 그러나 아직도 어떤 면에서는 많이 부족합니다. 저는 여전도회 회원들이 교회에서 사역하는 것을 보면 늘 하나님께 감사하고 여전도회에 감사합니다. 정말 힘에 겹도록 수고하고 봉사하고 희생하고 헌신합니다. 우리 남자 분들도 좀더 힘을 내시길 바랍니다.




어떤 교회는 1년의 청소 용역비가 1억 이상이 지출된다고 합니다. 교인들이 헌금해서 청소 용역비에만 1억 이상이 지출된다는 것입니다. 제가 그것을 보면서 그 교회가 다른 부분에서 예를 들면 선교나 구제를 많이 하면서 그렇게 하면 괜찮은데 그 교회는 정체된 교회입니다. 헌금해서 서로 편안하게 교회 와서 대접받고 파벌 나누어서 싸우고 하는 교회로 전락해 갔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깨달아야 합니다. 내 신앙이 성장하고 자라기 위해서는 내가 교회에서 봉사하고 사역자로 설 때 내 신앙이 나도 모르는 사이에 성장하고 발전한다는 것입니다. 교회를 사랑하게 되고 주님을 사랑하게 됩니다. 이런 관점에서 우리 모두는 다음 주에 있게 되는 사역 박람회에 다 참여하시기 바랍니다. 오늘 주보 간지에 나간 유인물을 보시고 내가 과연 이 교회를 위해서 우리교회를 위해서 내가 헌신하고 봉사할 수 있는 곳이 어디인지를 한 주간 곰곰이 생각해 보시고 다음 주에 2005년도 내가 참여해야 할 영역을 한 번 점검을 하시고 우리 모두가 다 사역자로, 하나님의 부름 받은 사역자로 하나님이 우리를 향하신 뜻에 합당한 삶을 살아가는 믿음의 사람들이 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