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봉사하려면/벧전4:7-11 2002-09-02 15:54:38 read : 240
제 목 : 누가 봉사하려면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목적은 막10:45절에 [ 인자의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 고 합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1) 죄인을 구원하러 오셨고 2) 섬기려 왔습니다. 즉 섬김의 본을 보여 주러 왔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도 섬기는 자, 즉 선한 청지기로서의 삶을 살아가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오늘 본문말씀은 사도 베드로가 아시아에 흩어져 나그네와 같은 삶을 살아가는 성도들에게 그리스도처럼 고난받을 각오로서 영적 무장을 해야 하며 핍박 속에 세속화되어 가는 상황 가운데 어떻게 살아가는 것이 진정한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삶인가를 말하면서 경건한 삶뿐만이 아니라 섬기는 삶, 즉 선한 청지기로서의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특히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웠으니 란 말은 예수님의 재림의 때를 가리키는 말인데 마지막 때가 될수록 그리스도인들이 자기의 위치를 지키기가 힘든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지금 베드로는 성도들에게 선한 청지기로서의 봉사하는 삶을 말하려고 하면서 왜 만물의 마지막이란 말을 강조하고 있습니까? 만물의 마지막과 봉사와 어떤 관계가 있습니까? 딤후3:1절 이하에 [ 말세에 고통 하는 때가 이르리니 사람들이 자기 사랑 돈사랑 교만하여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느니라 ] 는 말씀같이 말세가 될수록 사람들은 점점 이기적이 되어서 자기 밖에 모르기 때문에 너희는 서로 섬기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소계시록이라고 할 수 있는 마24장에 보면 제자들이 [ 세상 끝에는 무슨 징조가 있사오리이까? ] 하니 [ 그때에 많은 사람들이 시험에 빠져 서로 잡아 주고 서로 미워하겠으며 불법이 성하므로 많은 사람의 사랑이 식어져 배교하는 일이 있겠다 ] 라고 합니다. 베드로도 당시 그리스도인들이 환난과 세속화라는 문제 앞에서 배교하는 일들이 일어남으로 교회를 바로 세우기 위하여 선한 청지기 같이 서로 섬기라고 하는 것입니다. 섬긴다는 것 무엇을 말합니까? <2> 지체의식을 말합니다. 지체가 되지 아니하고는 섬길 수 없습니다. 팔이, 다리가 떨어져 나가서는 서로 몸일 수 없습니다. 우리가 교회라는 것 지체의식을 가지고 서로 섬길 때 교회라 할 수 있습니다. 마지막 때 사탄은 교회를 무너뜨리려고 합니다. 그리스도의 몸 된 지체들을 갈라놓으려고 합니다. 그럴 때일수록 서로 지체의식을 가지고 섬기는 자가 될 때에 교회가 교회다울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마귀란 녀석은 마지막 때 교회를 무너뜨리기 위하여 특히 그리스도인들의 구원받은 자로서의 복된 삶을 살지 못하도록 핍박과 세속화와 나아가 신앙의 면역화로 정신을 못 차리게 합니다.
마지막 때일수록 교회는 정신을 차려야 합니다. 계12장에 보면 여자가 해산하게 되매 아이를 놓으려고 애써 부르짖고 있는데 용이 해산하려는 여자 앞에서 해산하면 그 아이를 삼키고자 입을 벌리고 있습니다. 이것은 사탄이 오늘 교회를 방해하기 위한 모습입니다. 그런데 교인들이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점점 더 세속화되어 가고 있습니다. 교회가 세속화되어 가고 있다는 말은 점점 더 무기력 해져가고 있다는 말입니다. 그도 그럴 것이 계13:16-17에 보면 [ 사탄이 모든 사람들에게 오른손이나 이마에 표를 받게 하고 누구든지 이 표를 가진 자 외에는 매매를 못하게 한다 ] 고 합니다. 그러니 사탄이 장악하고 있는 세상과 타협하지 아니하고는 세상 살아가기가 힘들다는 것을 말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정신을 차리라 옛말에 이런 말 있지요. [ 호랑이에게 물려가도 정신만 차리면 산다 ] 그렇습니다. 베드로가 오늘 우리에게 당부하는 말은 정신만 차리면 산다는 것입니다. 특히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하라고 합니다. 정신차리고 기도하라는 말이 무슨 말입니까? 신앙에 잠자지 말고 깨어 기도하라는 말입니다. 왜? 벧전5:8절에 [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자를 찾나니 ] 라고 합니다. 마치 동물의 왕국 사자가 먹이를 구하기 위하여 살필 때 <3> 그 중에 무리에서 떨어져 나와 먹는데 정신을 팔고 있는 녀석이 타깃 1호인 것처럼 신앙에 잠자는 교인 마귀의 타깃 1호이기 때문에 깨어서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특히 교회 안에서 봉사하는 성도들 다같이 봉사하는 것 같지마는 기도하지 아니하면 실큰 봉사하고도 시험 들어 섭섭이가 되는 것 있지요. 교회 와서 은혜 받아 봉사하는 교인은 꼭 기도가 선행되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기도보다 성령보다 앞서는 봉사는 내가 하는 봉사이기 때문에 봉사하고도 시험이 듭니다. 그러니 꼭 봉사 이전에 기도의 사람이 먼저 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일을 하실 때 우리의 기도를 통해서 일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먼저 빌2:13절 말씀처럼 [우리 마음에 자기의 기쁘신 뜻대로 소원을 두고 행하시는 하나님 ] 이십니다.
그럼 왜 봉사 이전에 우리가 기도해야 합니까? 우리가 경험해보면 봉사자의 특징은 열심입니다. 그래서 천상에 수종드는 봉사자의 모본인 천사들을 가리켜 스랍 즉 불덩어리라 하고 겔1;에 나오는 네 생물의 모습을 숯불 같고 횃불 같으며 그 행동이 번개같이 빠르더라 먼저 기도로 우리의 마음이 불덩어리가 되어야 우리가 바른 봉사를 할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봉사에 있어서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8절 [ 무엇보다도 열심으로 서로 사랑할찌니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 ] 무엇보다도 사랑이 선행되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왜 우리가 봉사를 하더라도 사랑으로 해야 합니까? 고전13:3-에 [ 내가 내게 있는 모든 것으로 구제하고 또 내 몸을 불사르게 내어 줄찌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 ] 사랑으로 하지 아니하는 봉사는 아무 유익이 없다고 합니다. 401반 은사배치 사역 교재에 보면 사랑이 없는 봉사와 사랑으로 하는 봉사가 나옵니다. 사랑이 없는 봉사는 의무감으로 하고 다른 사람 시선 때문에 하고 나의 유익을 위하여 하고, 자기 과시 때문에 합니다. 그러나 사랑으로 하는 봉사는 <4> 기쁨으로 자원하는 마음으로 하고 하나님 앞에서 하듯 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하고 겸손한 마음으로 합니다. 특히 사랑으로 하지 아니하는 봉사는 남의 허물이 눈에 먼저 들어오기 때문에 비판의식 때문에 자신의 봉사가 교회에 얼마나 방해가 된다는 것을 모릅니다. 장애우를 위해 봉사하는 분의 말이 장애우를 보면 너무 사랑스럽다고 합니다. 저도 그 말을 듣고 참 부끄러웠습니다. 자기 마음이 사랑으로 가득 차면 장애우들까지도 사랑덩어리로 보이는구나, 내일교우 여러분 교회 봉사하다가 사람 때문에 시험 들거든 그 사람 고치려고 하지말고 내 마음에 사랑으로 가득 차게 해달라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새들백 교회 <럭 워렌> 목사의 말을 빌리면 우리가 교회에서 봉사할 때 열심히 하는 것도 좋지만 더 효율적으로 하기 위해서는 전략을 가져야 한다 그 전략에 있어 첫 번째가 바로 주어진 은사대로 봉사하는 것입니다.
10절 [ 각각 은사를 받은 대로 하나님의 각양 은혜를 맡은 선한 청지기 같이 서로 봉사하라 ] 각각 은사를 받은 대로 봉사하라고 합니다. 우리의 교회 봉사에는 공동체적인기여가 있고 개인적인기여가 있습니다. 공동체적인 기여란? 공적인 예배라든지 철야기도회 아니면 식당봉사, 선교후원같은 것을 말하는데 여기에는 누구나 다 참여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개인적인기여는 성가대라든지 교사라든지 아니면 순장이라든지 특정한 사역을 말하는데 이 때는 은사를 받은 대로해야만 더 효율적으로 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 남이 한다고 따라 하지말고 받은 은사대로 하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각양 은혜를 맡은 선한 청지기 같이 하라고 합니다. 청지기는 집안의 재산을 맡아 관리하는 하인을 말합니다. 각양이란 말은 맡은 것이 각각 다르다는 말입니다. 우리는 자신이 맡은 대로 잘 나누어 줄 수 있는 선한 청지기가 될 때에 더 효율적으로 봉사할 수 있습니다. 어느 방송국 교향악단 바이얼 리스트가 은혜를 받았습니다. <5> 자기가 받는 봉급으로서는 생활하기가 빠듯합니다. 어떻게 하면 베푸는 삶을 살까? 기도하다가 퇴근하여 돌아오는 길에 종합병원이 있었는데 병실에 찾아가 매일 한 환자에게 좋은 음악을 들려주기로 마음먹었습니다. 그 날도 어느 할머님이 암병으로 입원해 있는 병실을 찾아갔습니다. 할머니 제가 바이얼린 연주로 찬송을 들려 들일게요. 그리고 예수님 믿으세요 참 좋으신 분입니다. 그리고 나왔습니다. 그런데 자신에게 문제가 생겼습니다. 단장이 자기를 미워하며 흠만 잡히면 자기를 밀어내려 합니다. 하루는 집에 이상한 전화가 걸려 왔습니다. 자기는 당신이 찾아가 찬송가를 들려준 할머니 아들인데 그 이상은 묻지 말고 오늘 어떤 비밀한 모임에서 단장이 당신을 쫓아내려고 바이얼 리스트들의 실력 테스트를 갑자기 할건데 내가 가르쳐주는 곡을 연습해서 내일 출근하라고 했습니다. 이 곡은 연습하지 아니하고서는 도저히 연주 할 수 없는 곡입니다. 그래서 밤을 세워 연습했습니다. 다음날 출근해 보니 단장이 갑자기 바이얼 리스트를 한사람을 감원하라는 방침이 내려 왔는데 아무래도 실력 테스트를 해봐야겠다고 합니다. 물론 이 분이 제일 잘 연주를 했습니다. 조금 있으니 단장이 쫓겨나더라는 간증입니다. 비록 물질만이 남에게 나눠주는 삶이 아닙니다. 자기에게 주어진 달란트를 통해 남에게 나눠 줄려고 할 때 하나님께서 그를 지켜 주시고 그를 축복해 주실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더 효율적으로 봉사하는데 가장 걸림돌이 무엇인가 하면 말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행동에 실수 보다 말의 실수를 훨씬 더 잘합니다. 그래서 봉사 잘 하고 말의 실수 때문에 신앙을 인정 못받는 경우가 많습니다. 약3:2절에 [ 우리가 다 실수가 많은 사람이나 말에 실수가 없으면 온전한 사람이라 ] 그만큼 말에 실수 않는 것이 어렵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말에 실수하지 않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하겠는가? 11절 [ 만일 누가 말하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하는 것같이 하고 ] 이것은 자기가 하나님의 계시를 받아 하나님의 선지자처럼 말하라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말씀을 표본으로 삼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지난주에 이어 제가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6> 일보다 중요한 것이 관계입니다. 특히 교회 안에서 관계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의 몸으로 지체가 되지 아니하면 서로 봉사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관계를 불편하게 하는 것이 무엇이냐? 하면 바로 말입니다.
한 교회에 하찮은 일 때문에 감정을 상한 두 집사님이 있었습니다. 그들 사이의 불화는 서로에 대한 적개심과 증오로 굳어져 돌이킬 수 없는 상황에까지 이르렀습니다. 그래서 이를 지켜보던 친구가 그들 사이에 중재인으로 나섰습니다. 먼저 김 집사를 찾아가 물었습니다. [ 김 집사, 이 집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 김 집사가 대뜸 열을 받으며 하는 말이 [ 말도 마 내가 보기에 이 집사는 아주 건방지고 못돼 먹은 사람이야 ] [ 하지만 내가 가만히 보면 김 집사가 교회 봉사에 열심 하나만은 인정해야 할걸 ] [ 그건 사실이지요 지나칠 정도로 열심이지 ] 친구는 이 집사를 찾아가 또 물었습니다. [ 이 집사는 김 집사를 어떻게 생각하나? ] 물으니 [ 아주 교양도 없고 몰상식한 인간이야 ] 라고 열을 받습니다. [ 그래도 내가 보니 정직하다는 것만큼은 이 집사도 인정해 줘야 할걸 ] [ 그야 고지식해서 그렇지 정직하지 ] [ 그런데 김 집사가 이 집사보고 뭐라고 말한 줄 아나? ] [ 그야 건방진 인간이라고 욕하겠지? ] [ 아니야, 김 집사가 이 집사보고 아주 열심있는 사람이라고 말했어 ] [ 그럴 리가 없어 ] [ 아니야 내 귀로 분명히 들었어 ] 그리고 친구는 김 집사를 찾아가 하는 말이 [ 김 집사, 이 집사가 김 집사보고 뭐라고 말했는 줄 아나? ] [ 무식하다고 욕하겠지 ] [ 아니야 김 집사가 이 집사보고 아주 정직한 사람이라고 했어 ] [ 그럴 리가 없어 ] [ 아니야 내 귀로 분명히 들었어 ] 다음 주일 두 집사님은 교회에 나란히 앉아 예배를 드리면서 김 집사가 이 집사의 손을 꼭 잡았습니다. 이 집사는 빙긋이 웃으며 잡힌 손에 더 힘을 주었습니다. 한 번 따라 합시다, < 경우에 합당한 말은 아로새긴 은 쟁반에 금 사과니라 잠25:11절> 한 번 더 따라 합시다. < 그 사람 있는데서 못할 말 없다고 하지 말자 > 마24:10절에 <7> [ 사랑이 식어 지니깐 그 때에 많은 사람들이 시험에 빠진다 ]고 합니다. 이 때에 시험에 빠진다는 말 - <스캔달리조> 란 말을 사용합니다. 스캔들이란 말 - 소문이지 사실이 아닐 때가 많이 있습니다. 그러니 성도의 스캔달 누가 냅니까? 마귀가 내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말 때문에 마귀의 속임수에 넘어가지 마시기 바랍니다. 잠17:14절 [ 다투는 시작은 방축에 물이 새는 것과 같다 ] 고 합니다. 말로 남의 흠담하는 것 지금 내 마음에 구멍이 난 것입니다. 특히 교회는 서로 세워주는 예수 그리스도의 지체들입니다. 그러므로 서로 짐을 지고 서로 위로하고 서로 종노릇할 수 있는 봉사자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봉사하는 목적이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데 있는데 교회 봉사하면서 말 때문에 시험 주지도 말고 받지도 맙시다. 우리가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봉사를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11절 [ 누가 봉사하려면 하나님의 공급하시는 힘으로 하는 것같이 하라 ] 하나님의 공급하시는 힘이 무엇입니까? 바로 믿음입니다. 믿음으로 봉사할 때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습니다. 창22장에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시험하시기 모리아 산에 가서 제사를 들이되 독자 이삭을 재물로 바치라고 합니다. 아브라함은 믿음으로 순종하여 독자 이삭을 꽁꽁 묶어 재물로 바칩니다. 그 때 여호와께서 나타나셔서 [ 아브라함아, 그 아이에게 손을 대지 말라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알았노라 ] 하시고는 수풀에 숫양을 예비해 놓으시고 그 수양으로 제사를 들이게 합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이 그 땅 이름을 여호와 이레라 하였더라 합니다. 여호와 이레 - 예비하시는 하나님, 공급하시는 하나님이라는 뜻입니다. 이와 같이 교회 봉사할 때 내 것 가지고 봉사하는 것 같지만 아니예요, 하나님이 공급하시는 것으로 봉사하기 때문에 믿음으로 봉사하시기 바랍니다. 그럴 때 내가 한 것이 아니야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야 하고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것입니다.
목사님~! 그래도 배운 것이 있고 가진 것이 있어야 봉사하지 나같이 못 배우고 가진 것도 없는데 어떻게 봉사합니까? 그렇다면 사도 베드로가 분명히 이렇게 말했을거에요 [ 내가 목회 하다보니 교회는 그래도 배운 사람, 가진 사람이 있어야 되겠더라 <8> 그러니 누가 봉사하거든 좀 더 배우고 와서 좀 더 돈 벌여와서 봉사하라 ] 이렇게 말했을 거예요.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 누가 봉사하려면 하나님의 공급하시는 힘으로 하는 것 같이 하라 ] 믿음으로 하라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하는 봉사만이 하나님의 역사를 나타내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습니다.
미국에 블론딘이란 유명한 줄타기 곡예사가 있었습니다. 이 사람은 나이아가라 폭포에서 미국 쪽과 캐나다 쪽에 줄을 걸어놓고 신기한 곡예로 성공한 일로 유명해진 사람입니다. 그가 막대기 하나를 들고 거센 물살과 폭포가 휘몰아치는 나이아가라 위를 줄을 타고 건너는 장면은 얼마나 장관이었겠습니까? 드디어 캐나다 쪽에 도착했을 때 우렁찬 박수와 환희가 쏟아졌습니다. 블론딘은 사람들에게 질문을 했습니다. [ 여러분 내가 다시 한 번 이 막대기를 들고 미국 쪽으로 건너 갈 수 있다고 믿습니까? ] [ 예, 믿습니다~! ] [ 그럼 제가 이 앞에 있는 소년들 중 한 소년을 등에 업고 건너 갈 수 있다고 믿습니까? ] [ 예, 믿습니다 ] [ 그렇다면 여러분 자녀 들 중 누구 내 등에 업혀 주세요 ] 청중들은 아무도 대답을 못했습니다. 그 때 제일 앞에 있던 소년 하나가 [ 제가 업힐게요 ] 하고는 블론딘 등에 업혔습니다. 블론딘은 소년을 등에 업소 막대기를 들고 미국 쪽으로 건너가는데 성공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믿는다고 소리 쳤지마는 생명을 위탁한 사람은 어린 소년 하나밖에 없었습니다. 오늘 교회 안에도 이와 같은 현상이 있습니다. 예수 처음 믿고 직분 맡을 때에는 믿음으로 충성 봉사 하지만 시간이 흘러가면 더 성숙해져야 할 믿음이 나도 모르게 계산적이 되어 믿음, 믿음 하지만 믿음으로 봉사하지 아니하고 계산적으로 하게 됩니다. 히11:6절에 말합니다. [믿음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찌니라 ] 여기에 상은 약속을 말합니다. 하나님은 반드시 약속을 지키시는 분이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그 약속을 바라보고 믿음으로 봉사하는 성도들 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여기서 11절 하반절에 <9> [ 이는 범사에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 함이니 그에게 영광과 권능이 세세에 무궁토록 있느니라 아멘 ] 여기서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란 말이 무슨 뜻입니까? 우리가 선한 청지기로서 말과 믿음의 봉사를 할 수 있는 것은 내가 신앙생활 잘 해서가 아니라 예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가능한 것임을 말하고 있습니다. 누가 봉사하려면 먼저 예수님이 주시는 은혜로서 말도 은혜스럽게 봉사도 하나님이 주시는 힘으로 선한 청지기가 되어 서로 봉사하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이 말은 또한 우리가 서로 봉사하지만 예수님께 하듯 하라는 말입니다. 우리가 봉사를 사람에게 한다고 생각하면 한계가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 섬기듯 서로 봉사하면 하나님이 기억하는 선한 청지기가 될 줄 믿습니다. 부루스라는 신학자가 이런 말을 합니다. 바울 주면에는 바울을 돕지 아니했더라면 우리가 그 이름도 알지 못했을 사람들이 무려 70명이나 나온다. 바울의 도왔기 때문에 저들 이름이 하나님의 구속사에 기록될 수 있다면 오늘 우리도 예수님이 주인이신 교회와 사람들을 주님 섬기듯이 섬기면 하나님이 기억하고 하나님의 생명록 책에 우리 이름들이 기록될 줄 믿습니다. 누가 봉사하려면 예수님께 하듯 봉사하여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교우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 결론적을 말씀드립니다> 개발과정 401반 수료하신 성도님들 다른 것은 몰라도 봉사의 목적은 가슴에 새겨 놓아 겠지요? 봉사의 목적이 무엇입니까?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기에 한 가지 빠졌습니다. 다른 사람에게도 유익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어떻게 봉사해야 하나님께 영광 다른 사람에게 유익 된 봉사를 할 수 있습니까? 1. 봉사에 앞서 봉사를 하더라도 기도하는 봉사자가 되어야 합니다. 2. 사랑으로 하는 봉사가 되어야 합니다. 3. 은사대로 봉사할 때 훨씬 더 효율적으로 봉사할 수 있습니다. 4. 그리고 시험을 주지 않도록 스캔들을 일으키는 마귀에게 속지 마시고 말에 실수가 없도록 말 없이 봉사합시다 5. 하나님 공급하시는 힘 즉 믿음으로 봉사하는 자들이 되어서 하나님께 영광 다른 사람에게 유익 되는 봉사자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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