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 봉사하라/벧전4:9-11
세상에서 성공하려면 무엇을 잘해야 합니까? 성공적인 인생을 살려면 대접을 잘해야 합니다. 그리고 봉사를 잘해야 합니다. 오늘 본문 9절에 보면 “서로 대접하기를 원망없이 하라”고 했습니다. 서로 대접해야 합니다. ‘대접하는 것’이 무엇인가? 헬라어로는 ‘필록세노이’라고 하는데 이 단어는 ‘사랑’을 의미하는 ‘필로스’와 ‘나그네’를 의미하는 ‘크세노스’의 합성어입니다. 결국 나그네에게 사랑을 베푼다는 뜻입니다.
당시 고대사회에서는 여관 같은 숙박시설이 없기 때문에 나그네를 대접하는 것은 사랑의 표현입니다. 그래서 디모데전서3장 2절과 디도서1장8절에 에 보면 감독을 선택할 때 나그네를 잘 대접하는 자로 하라고 했습니다.
사실 초대교회에서의 대접은 단순한 나그네에게 잠자리를 제공하는 차원의 대접이 아닙니다. 당시에는 고난과 핍박을 받는 그리스도인들이 쫓겨 다니면서 전도 생활을 했기 때문에 나그네를 대접하는 행위는 사랑의 행위일 뿐 아니라, 간접적으로 복음을 전파하는 동역자의 역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히브리서13:2에 보면 “손님 대접하기를 잊지 말라 이로써 부지중에 천사들을 대접한 이들이 있었느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 부지중에 천사들을 대접한 이들이라고 한 이들은 누군가 하면 아브라함과 롯입니다. 하나님은 대접을 잘하는 것이 얼마나 큰 복인가를 실제적인 사실을 통해서 우리에게 가르쳐 주셨습니다.
창세기18장에 보면 아브라함이 하루는 낮 12시쯤에 장막 문 앞에 앉아 있었는데 장막 맞은편에 낯선 사람 셋이 우두커니 서 있었습니다. 아브라함이 얼른 나가서 그 사람들에게 다가가서 인사를 하고는 발 씻을 물을 주면서 자기 집으로 영접했습니다. 그리고는 아내와 종들을 시켜 떡을 만들고 송아지를 잡아 굽고 삶고 해서 대접을 잘해서 보냈습니다. 이렇게 대접을 잘 했을 때 대접을 받은 하나님의 천사들이 아내 사라를 데리고 오도록 하고서는 아들을 낳을 것이라는 충격적인 말을 전했습니다.
이렇게 아브라함에게 나타났던 하나님의 사자가 소돔과 고모라 성으로 갔습니다. 시간적으로 서산의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는 시간으로서 마침 아브라함의 조카 롯이 성문에 앉았다가 이상한 사람, 하나님의 사자를 보고서는 엎드려 경배한 후에 자기 집으로 초청하면서 해가 저물었으니 집에 가서 발을 씻고 주무시고 내일 아침 일찍 일어나 가시라고 권면했습니다. 그래서 식탁을 베풀고 떡을 구워 주었습니다.
하나님의 사자들이 융숭한 대접을 받은 후에 롯에게 소돔과 고모라성이 곧 멸망할 것임을 알려주었습니다. 구원받을 길을 알려준 것입니다. 예수님은 산상수훈에서 일명 황금율이라고 하는 말씀을 통해서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를 분명히 가르쳐 주셨습니다. 마7:12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니라” 먼저 대접을 하라고 했습니다. 성도는 대접을 잘해야 합니다.
로마서12장 3절에 보면 “성도들의 쓸 것을 공급하며 손 대접하기를 힘쓰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경주 최부자집 이야기를 보면 최부자 집은 자그마치 12대 300년 동안 만석꾼을 유지했던 집안입니다. 이 가문이 이렇게 오랫동안 부를 누릴 수 있었던 이유를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만 그 중에 “과객을 후하게 대접하라” 는 조항이 있습니다. 나그네를 후하게 대접하라는 것입니다.
대접을 잘하는 분이 있습니다. 교육이 중요합니다. 어릴 때부터 나누는 모습을 보고 자랐거나 나누는 데 심부름을 많이 한 사람들은 대접을 잘합니다. 타고난 성품은 아니지만 성장하는 가운데 성품으로 굳어진 것입니다. 가진 것이 많아도 대접을 잘 못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대접을 받아 보지 못했거나 대접을 해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오늘 말씀에 보면 서로 대접을 잘하라고 하셨습니다.
또 한 대접을 받았으면 대접할 줄도 알아야 합니다. 대접 잘하는 삶을 사십시오. 왜냐하면 대접을 하다 보면 주님을 대접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소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예수님께 한 것이 된다고 했으니 그 소자란 도움이 필요로 하는 사람, 대접이 필요한 사람일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런 사람들에게 대접을 잘해야 합니다. 여러분, 대접한다고 하니까 자꾸 돈을 생각하고 물질을 생각하게 되는 데 돈보다도 더 좋은 대접이 얼마든지 있습니다.
시골 전도사님을 만나서 이런 저런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그런데 점심은 제가 사지 않았습니다. 고향교회에서 오신 전도사님이라고 해서 그곳에 고향을 둔 권사님이 사셨습니다. 그런데도 그 전도사님은 담임목사님을 만나리라는 생각을 하지 않았는데 만나주고 식사도 같이 함으로 그렇게 좋아했다고 합니다.
만나기 힘들어할 때 만나 주는 것, 일을 잘했을 때 칭찬의 말도 대접하는 것입니다. 격려도 대접하는 것입니다. 우리 기업에 보면 지출 비용으로 많이 생기는 것, 그러면서도 세금의 면제 혜택을 받는 것이 있는데 그것이 일명 접대비라는 것입니다. 농촌교회 목회자들을 잘 접대하십시오. 어려운 이웃을 잘 대접하십시오. 처음으로 보이는 새가족들을 잘 대접하십시오.
명절 때라도 가시면 시골 어려운 모교회에 시무하는 교역자들을 찾아가 뵈고 작은 도서비라도 좀 드리면 그것이 곧 하나님을 대접하는 것이 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잘 대접하는 방법이 무엇일까요? 예배입니다. 예배를 통해서 대접하는 것입니다.
예배는 서비스입니다. 서비스는 곧 대접과 같습니다. 예수님은 마태복음10:42절 “또 누구든지 제자의 이름으로 이 소자 중 하나에게 냉수 한 그릇이라도 주는 자는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 사람이 결단코 상을 잃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고 했습니다.
대접의 한 단계를 넘은 수준이 봉사입니다. 대접도 일종의 봉사입니다. 그러나 대접은 주로 음식이나 물질로 하는 경우이고, 봉사는 서비스하는 것이기 때문에 물질이 아니더라도 여러 가지로 봉사할 수 있습니다. 본문에서 “서로 봉사하라”고 했습니다. 아프리카에서 평생을 바친 슈바이쩌 박사에게 청년 한 사람이 찾아왔습니다. “선생님, 저도 아프리카에서 선생님처럼 훌륭한 일을 하고 싶습니다.” 슈바이츠 박사는 의욕에 넘치는 그 젊은이에게 그렇게 하라 고 했습니다.
슈바이츠 박사가 청년에게 지시한 일은 땔감나무를 해오고, 물을 길어 오고, 청소하는 일이었습니다. 처음에는 열심히 했습니다. 그러나 이내 싫증이 난 청년은 박사에게 따지듯 물었습니다. “박사님, 저는 박사님처럼 훌륭한 일을 하러 왔지, 이렇게 장작이나 패고 물이나 긷고 청소나 하려고 온 것이 아닙니다.” 슈바이처 박사는 작은 일에 헌신하는 마음이 갖춰져 있지 않다면 큰 봉사를 할 수 없다며 그를 쫓아냈습니다.
여러분들도 교회 봉사를 하면서 이런 불만을 가지고 계신 분은 없습니까? \'회장을 하고, 부장을 하고, 장로로 봉사를 해야지 청소나 하고 식당에서 점심을 짓는 일 따위나 하려고 헌신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생각하지 않습니까? 사람들은 ‘큰일을 위해서’ 라는 명분으로 작은 일을 마다합니다.
줍는 나이든 할머니의 봉사를 하나님은 크게 여기십니다. 주차를 안내하며 어지럽게 떨어져 있는 과자껍질을 줍는 일을 하나님은 크게 여기십니다. 하나님의 계산법은 작은 것을 크게 여기시고 보잘 것 없는 것을 가장 귀하게 계산하십니다. 이것은 우리가 추구해야 하는 영성입니다. 우리가 쫓아가야 하는 영성입니다.
예수님이 피로 값주고 사신 교회는 봉사자의 손길이 필요합니다. 교회는 영업을 위한 기관이 아닙니다. 교회는 비영리 신앙공동체입니다. 그래서 온 성도의 봉사를 통해서 교회가 제 구실을 하게 됩니다.
교회안에 들어와 계시는 모든 성도는 1가지 이상 봉사를 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누군가가 봉사하는 혜택을 내가 누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보세요. 회중석에 앉아 계시는 성도 여러분들은 찬양대가 부르는 찬양으로 하나님께 같이 영광을 돌리고 있습니다. 여러분들이 교사로 봉사하지 않아도 우리교회 교회학교가 왕성하게 성장하고 있지 않습니까? 여러분이 이 교회에 휴지 한 장 줍지 않아도 누군가가 봉사하는 손길이 있기에 깨끗한 공간을 활용할 수 있고 예배드릴 수 있지 않습니까?
매일 로뎀에 나와서 봉사하는 손길이 있기에 우리는 아름다운 만남과 교제를 나눌 수 있고 교회가 아름답다는 소문을 듣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봉사는 사랑과 마찬가지로 서로 서로 해야 합니다. 오늘 말씀을 보세요.
사랑도 서로 사랑하라고 했고, 봉사도 서로 봉사하라고 했습니다. 봉사하는 아름다운 관계의 교회공동체가 되면 정말 아름다운 교회가 될 것입니다. 그러나 봉사를 하지 않고 섬김을 받기만 하려고 한다면 아름다운 교회가 될 수 없습니다. 교회가 부흥하고 성장하는 교회들의 특색중의 하나가 봉사자가 많습니다. 인생의 마지막은 서비스하는 일에 참여해야 합니다. 여러분이 사는 동안 많은 서비스를 받았기 때문에 남은 생애는 최대한 서비스를 해야 합니다. 하나님께도 해야 하지만 성도들끼리 서로 서비스를 해야 합니다.
오늘 말씀을 보면 각각 은사를 받은 대로, 하나님의 각양 은혜를 맡은 선한 청지기 같이 봉사하라고 했습니다. 은사와 은혜를 받았으면 그것으로 서로 섬겨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받은 은사와 은혜는 다 다릅니다. 그렇기 때문에 각기 다른 은사와 은혜를 가지고 서로의 부족한 것을 채워줄 때 온전한 신앙으로 성장하게 되고 좋은 교회가 됩니다. 유명한 오케스트라의 지휘자 마이클 코스타 경이 하루는 오케스트라의 연습을 시키고 있을 때, 일어났던 이야기입니다.
오케스트라 단원의 한 사람인 피콜로 주자가 연주하다가 옆을 보니 트럼펫 부는 사람, 드럼을 치는 사람, 앞에서는 바이올린도 그 아름다운 선율로 자랑하는데, 나는 도대체 이 조그만 악기로 빈약한 소리만을 내고 있으니 불어보았자 들리지도 않을 것 차라리 없는 것이 낫겠다고 생각하고 피콜로를 불지 않고 부는 시늉만 하고 있었습니다.
바로 그 순간 마이클 코스타 경은 지휘하다가 말고 전 오케스트라를 중지시키고 “피콜로는 어디 있지?” 하면서 피콜로 연주자를 찾았습니다. 모인 청중이야 어느 파트인지 크고 작은 소리를 분간 할 수가 없다지만 지휘자의 귀는 다릅니다. 훌륭한 오케스트라가 되는 것은 큰 악기나, 아름다운 바이올린 소리만 가지고는 안 됩니다.
꽝꽝 울리는 소리와 미미한 모기 같은 소리 모두가 조화될 때 하나의 웅장하고 감동적인 음악이 되어지는 것입니다. 나 하나쯤 소홀히 생각하는 사람은 어느 단체에서나 무용한 자이며 이런 사람이 끼어 있는 단체는 무너지고 맙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는 가장 작은 일에 충성한 자가 큰 일에도 충성할 수 있다고 하셨다. 내가 하는 일이 하찮은 일이라고 등한이 여기고 안하면 사람들은 모를 수 있지만 온 우주를 지휘하는 오케스트라 지휘자이신 하나님은 다 아십니다.
“그 주인이 이르되 잘 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으로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예할지어다 하고.” (마25:21). 그렇습니다. 작은 일에 충성함이 곧 다른 어떠한 일에도 충성할 수 있음에 많은 것을 맡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작은 일에 등한시 할 때가 많습니다. 이 일 말고 다른 일은 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구차하고 아무 상급이 없는 일에는 무관심합니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일에 굳이 열심을 내어 할 필요가 없다고 여깁니다. 저는 지금도 초등학교 친구 가운데 한 친구가 어디에서 무엇을 하며 살까? 라고 궁금합니다. 왜냐하면 그 친구는 공부는 잘 못했습니다. 그러나 화장실청소라든지 궂은 일은 다 잘하는 친구였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처음부터 큰 일을, 멋진 일을, 보기 좋은 일을 맡기시지 않았습니다. 항상 작은 일에서부터 우리를 훈련시켜 나가기 시작합니다. 지금 우리에게 주어진 일이 비록 하찮은 일이라 할지라도 충성을 다 하다보면 분명히 주님의 천국잔치의 즐거움에 초청 받을 것입니다.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이 별 볼일 없어 보이는가! 아닙니다. 분명히 그렇지 않습니다. 그 일로 통해 크고 놀라운 일이 내게 나타날 것입니다.
여러분이 받은 것, 여러분이 가진 것, 여러분이 할 수 있는 것으로 지금 하고 있는 것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은 우리가 가진 모든 것을 동원해서 서로 봉사하라고 명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봉사에 관심을 가지고 봉사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아무리 할 수 있는 여건이 되어도 관심이 없으면 할 수 없습니다. 남을 대접하는 일, 남에게 봉사하는 일도 관심이 있어야 합니다. 아무리 외쳐도 관심이 없으면 하지 않습니다.
「여러 시간 공원 벤치에 앉아 심심한 시간을 보내던 한 사람이 심심함을 달래기 위해 지나가는 사람 숫자를 셉니다. 그래도 심심하니까 공원에 있는 가로등이 몇 개인지를 세기도 하고, 공원을 가로질러 날아가는 새가 몇 마리인지를 세기도 합니다. 따로 할 일이 없었던 그는 공원 벤치에 앉아 그렇게 시간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저녁 무렵이었습니다. 한 젊은 아버지가 어린 아들을 안고 공원으로 나왔습니다.
아버지는 아들을 땅에 내려놓더니, 아들의 손을 잡고서 걸음마 연습을 시켰습니다. 뒤뚱거리며 불안하게 걷는 아들의 손을 잡고 천천히 같이 걷기를 여러 번, 그러더니 아들을 혼자 세워두고 몇 걸음 앞에서 아들을 향해 손짓을 했습니다. 어린 아들은 제자리에 선 채 꼼짝을 하지 못했습니다. 마음은 앞에서 손짓을 하는 아빠를 향해 당장 뛰어가고 싶었겠지만 그럴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도 아빠는 환하게 웃으며 아이에게 어서 오라고 손짓을 했습니다. 마침내 아이가 용기를 내어 한 걸음을 내디뎠습니다.
그러나 그는 이내 몸의 균형을 잃고서 넘어져 버립니다. 얼른 아빠가 달려와 아이를 일으켜 주었지요. 그리고는 또다시 아이를 세워 놓고 아이 앞으로 가 팔을 벌려 손짓을 합니다. 한 걸음도 내딛지 못하고 넘어진 아이는 더욱 조심스러워 질 수밖에 없습니다. 이번엔 아빠가 한 걸음 더 아이 쪽으로 다가옵니다.
눈앞에서 팔을 벌리고 있는 아빠를 향해 아이는 다시 용기를 내어보지만 이번에도 넘어지기는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렇게 시작된 아이의 걸음마 연습은 한동안 계속 되었습니다. 공원에 어둠이 내리기 시작할 무렵 아버지가 아들을 안고 집으로 돌아설 때 벤치에 앉아 그 모습을 지켜보던 할아버지가 그 젊은 아버지에게 말했습니다. \"당신은 공연한 헛수고를 했소. 아이는 오늘 여든 일곱 번을 넘어졌단 말이오.\" 그 말을 들은 아버지가 활짝 웃으며 대답했습니다.
\"그래요? 저는 아이가 몇 번을 넘어졌는지는 모릅니다. 하지만 오늘 우리 아들은 여섯 걸음을 혼자서 걸었답니다.\" 벤치에 앉은 사람은 아이가 넘어진 숫자를 세었지만, 아이의 아버지는 아이가 걸은 걸음의 숫자를 세고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똑같은 모습을 보면서도 서로 세는 것이 달랐던 것은 관심이 달랐기 때문입니다. 똑같은 사람을 대하면서도 그를 대하는 태도는 저마다 다릅니다. 어떤 이는 그의 결점을 세는 이가 있는가 하면, 그의 장점을 눈여겨보는 이도 있습니다.
일을 대하는 태도도 제각각 다릅니다. 어떤 이는 일 속에서 불평거리를 찾아내는가 하면, 어떤 이는 보람으로 여길 부분을 찾아내기도 합니다. 똥개 눈에는 똥만 보인다는 말이 있습니다. 구두 수선공은 신사들의 구두만 보입니다. 미용실을 경영하는 사람이나 미용사는 길가는 사람이 보이는 것이 아니라 머리만 보입니다.
내가 무엇을 보느냐 하는 것이 곧 내가 어떤 사람인가를 말해주는 것입니다. 밝은 면을 바라보는 사람은 밝은 사람이 됩니다. 진실을 바라보는 사람은 진실한 사람이 됩니다. 봉사를 바라보면 봉사의 사람이 됩니다. 에이브러헴 링컨은 “사람은 행복하기로 마음만큼 행복하다” 고 했습니다. 우리가 봉사하기로 마음먹은 만큼 봉사할 수 있습니다 . 어떤 목사님이 두 딸이 있는데 맏딸은 피아노 학원을 보내지만 둘째 딸은 돈이 없어서 보내지 못 했습니다. 아이도 피아노를 치고 싶어하지만 도저히 시켜 줄 수 없어서 기도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어느 날 큰 아이 피아노를 가르치는 학원 선생님이 목사님께 전화를 걸었습니다. 그러면서 자초지종을 고백했습니다.
목사님이셔서 그런지 목회자들의 자녀들을 볼 때마다 남다른 생각이 든다고 하면서 왠지 언니 따라와서 구경하는 둘째 딸에게도 피아노를 무료로 가르쳐 드리겠다고 하면서 고백한 내용이 있습니다. 그 피아노 선생님이 이 목사님에게 한 말이 마치 어록처럼 아름다운 말이었습니다. “나에게 힘이 있을 때\' 그 힘을 쓰고 싶습니다. 만약 그렇게 할 힘이 있을 때 그 힘을 쓰지 않으면 그 기회를 잃어버릴 수 있잖아요”라며 목사님의 둘째 딸 학원비 안 받고 그냥 가르쳐 주고 싶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과연 하나님의 몸된 교회를 위하여, 그리고 지체된 성도 서로를 위하여 봉사할 힘이 없습니까? 봉사할 에너지가 없습니까? 나에게 그렇게 할 힘이 있을 때, 능력이 있을 때, 에너지가 있을 때, 그 힘과 능력과 에너지를 쓰지 않으면, 그 기회를 잃어버릴 수도 있음을 잊지 마십시오. 봉사할 기회를 잃어버렸을 때는 반드시 후회합니다. 물론 살기가 힘듭니다. 돈도 벌어야 합니다. 자식들에게 공부도 시켜야 합니다. 내집 마련도 해야 합니다. 그러다 보니 봉사할 기회를 점점 잃어가고 있습니다. 봉사할 힘을 잃어가고 있습니다.
오늘 여러분이 들어오실 때 내년도 사역지원서를 다 받았을 것입니다. 그보다도 더 많은 사역이 있습니다만 우선적으로 해야 할 사역에 대한 항목을 적어놓았습니다. 잘 보시고 봉사할 사람이 없어서 하나님의 교회가 든든히 서가지 못하고 복음이 전해지지 못하고 하나님 나라가 확장되어가지 못한다면 이것은 하나님 앞에 갔을 때 책망들을 일입니다. 반드시 한 사람이 한 가지씩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해마다 봉사에 앞장서서 하시는 분들은 아우성칩니다. 봉사자가 모자란다고 말입니다. 사람이 없습니까? 사람은 있습니다. 일할 사람이 적어서 문제이지요. 봉사할 사람이 적은 것이지 사람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음악을 잘하는 분들은 반드시 찬양대를 하십시오. 가르치를 잘하는 분들은 교사를 하십시오. 사냥하고 친절한 모습이 남다른 분들은 새가족양육이나 안내위원으로 자원하십시오. 다른 사람에게 설득을 잘 시킬 수 있는 사람은 전도대에 지원하십시오. 컴퓨터를 잘 다루시거나 프로그램을 잘 하시거나 카메라를 잘 다루시는 분들은 영상실에 봉사하시고, 음향에 관심을 가지고 있거나 재질이 있으면 음향실로 지원하십시오. 집에 가면 언제나 유리알처럼 깨끗하게 해 놓는 분들은 청소지원하시고, 음식을 잘 만들어간 부엌을 깨끗하게 하시는 분들은 주방에 봉사하시길 바랍니다.
집에서도 화초를 좋아하고 화초 가꾸기를 잘하시는 분들은 교회 밖 화단을 가꾸시는데 봉사하세요. 차량 운전을 잘하시는 분들은 차량 봉사를 하십시오. 지금 우리교회가 할 일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그런데 다른 일을 하려면 시간을 내어야 하는데 도저히 시감을 낼 수 없고 그러면서도 돈은 남보다 더 잘 벌고 더 많이 가졌다면 물질로 봉사하십시오. 능력이 있을 때 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다른 것을 다 잘해도 한 가지 부족한 것을 지적하십니다.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중요한 부족일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부자 청년이 예수님을 찾아와서 물었습니다.
“어떻게 하면 구원을 받습니까?” ‘하나님이 가르쳐 주신 계명을 다 지켰느냐?’고 예수님이 물었습니다. 그때에 이 청년이 대답했습니다. ‘다른 계명들은 어릴 부터 다 지켰습니다’ 그때에 예수님이 하신 말씀을 잘 기억하십시오. “네게 오히려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으니 가서 네 있는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을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좇으라” 요한계시록 3장에 보면 하나님께서 라오디게아 교회를 향하여 책망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네가 말하기를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하나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도다”고 했습니다. 라오디게아 교회가 유족했습니다. 하나님을 잘 믿어 복받은 줄 알았습니다. 부족함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스스로 말하기를 ‘우리는 부족한 것이 없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볼 때에 그들은 없는 것이 너무 많았습니다. 이들의 영적인 삶은 곤고했습니다. 가련해보였습니다. 믿음이 가난한 믿음이었습니다. 이들은 눈은 떴으나 하나님을 보지 못하고 하나님의 뜻을 깨닫지 못하는 장님이었습니다. 이들은 거룩한 예복이 없었습니다. 벌거벗고 수치를 다 드러내고 있었습니다. 봉사하십시오. 하나님은 당신의 봉사를 원하십니다. 그런데도 대부분의 성도들이 말씀하십니다. 시간이 없어서 못한다고 말입니다. 냉철하게 판단해 보십시오. 정말 시간이 없어서 못합니까? 능력이 없어서 못한다고 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정말로 봉사할 능력이 없습니까? 재능이 없어서 못한다고 합니다. 정말 재능이 한 가지도 없습니까? 내가 가지고 있는 재능을 살려서 하면 됩니다. 가진 것이 없어서 못한다고 합니다. 정말 가진 것이 없습니까? 오늘 본문에 보니 봉사할 힘은 어디서 얻어야 합니까? “누가 봉사하려면 하나님의 공급하시는 힘으로 하는 것같이 하라” 내 힘으로 하려고 하지 마십시오. 그러면 내가 하는 것이 되어 공치사로 끝날 수 있습니다. 봉사할 힘은 하나님으로부터 옵니다. 그래서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은혜를 받아야 합니다. 성령의 도우심을 받아야 합니다. 내가 봉사할 조건은 갖추었지만 봉사를 못하는 것은 봉사할 힘이 없기 때문입니다. 봉사할 힘은 바로 하나님으로부터 옵니다. 왜 그러느냐 하면 그래야 하나님께 영광이 돌려지기 때문이라고 오늘 11절에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서로 대접하는 삶에 관심을 가지십시오. 서로 봉사하는 삶에 관심을 가지십시오. 내년에는 여러분이 삶이 어렵더라도 어려움을 무릎 쓰고 하면 반드시 하나님께서 길을 열어주실 것입니다. 당신의 힘과 당신의 경험과 당신의 지혜로 하지 말고 하나님이 주시는 능력을 공급받아 하십시오. 그러면 하나님이 당신의 봉사의 삶을 통해 영광을 받으십시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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