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체를 잘 섬기는 성도 눅13:1-9
카나리아라는 새는 매우 아름다운 노래 소리로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 새입니다. 그래서 어느 부자 한 사람이 카나리아 한 쌍을 사서 기르게 되었답니다. 카나리아는 고운 목소리로 노래를 불러 사람들을 즐겁게 해주었고, 그 부자도 카나리아를 동네 사람들에게 자랑하기에 바빴습니다. 인기가 높아진 카나리아는 우쭐해졌습니다. 그래서 그만 카나리아는 밤에도 노래를 그칠 줄 모르고 계속 불러 댔습니다. 그러자, 카나리아를 칭찬하던 자들이, 이제는 시끄럽다고 부자에게 항의를 하게 되었습니다. 아무도 제 멋대로인 그 카나리아를 좋아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결국 주인은 그 카나리아를 배고파서 동냥하던 거지에게 던져 주었다는 이야기 입니다.
사랑하는 태평양교회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자기밖에 모르는 이 카나리아 이야기를 들으면서 어떤 생각을 하십니까? 성경 말씀을 한 단어로 압축하여 말한다면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사랑이신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셔서 사랑을 실천하게 함으로써, 우리 인간들이 그를 본받아 사랑의 사람이 되게 하시려 한다는 것이, 성경의 내용입니다.
여러분! 겸손이란 무엇입니까? 하나님 앞에서 인간은 한없이 부족한 존재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도우심을 입고 살 수밖에 없는 인간임을 깨닫고 의지하려는 것이 겸손입니다. 그리고 겸손하게 하나님의 지시를 따라 조심 조심 살아가는 것이 순종입니다. 그러나 제 잘난 멋에 빠져 착각속에 살아가는 사람! 하나님 말씀을 따르지 않고 살아가는 것이 교만이요 불순종이 되는 것입니다. 카나리아도 사람들의 칭찬소리를 듣게 되자 그만 교만해져서, 주인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사람들로부터 칭찬받을 생각에 제 고집대로 밤새 노래를 불렀던 것입니다.
교만한 마음을 품게 되면, 불순종 하게 되고 결국에는 심각한 죄를 짓게 됩니다. 그 결과가 무엇입니까? 멸망이요 사망입니다. 그래서 잠언 18장 12절에 \\\"교만에는 재난이 따르고 겸손에는 영광이 따른다\\\"고 했습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안타까운 심정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권고하고 있습니다. \\\"여호와께 반대하고 자기 생각대로만 산 사람은 이제 그 길에서 떠나 여호와께 돌아오라\\\" (사55:7)고 말입니다.
눅 13장 6절을 읽어 보면 포도원에 무화과 나무 한 그루를 심은 농부가 등장합니다. 이건 정말로 상식밖의 일입니다. 포도원이면 포도나무를 심어야 하는데 주인은 무화과 나무를 심었다는 것입니다. 무화과 나무에게 파격적인 은혜를 베푼 것입니다. 왜 농부는 포도원에 무화과나무를 심었을까요? 그것은 좋은 무화과를 얻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어느날 포도원 땅 주인이 포도원에 와서 보니, 열매맺지도 못하는 무화과 나무가 보입니다. 그 땅 주인은 3년이나 열매를 기다렸던 것입니다. 그런데 매우 안타깝게도 3년동안 열매를 맺지 못했던 것입니다. 화가 난 땅 주인은 농부에게 당장 이 나무를 베어 버리라고 명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포도원 주인은 누구십니까? 심판주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신 것은 바로 선한 열매입니다. 그것은 성령님이 성도 여러분 모두에게 선물로 주시는 선한 열매들입니다. 갈라디아서 5장 22절에 있는 말씀처럼, 사랑과 기쁨, 평화와 인내, 친절과 선한 생각, 진실 과 온유, 그리고 절제라고 하는 9가지 열매입니다.
오늘도 하나님은 우리가 이런 열매를 맺기를 원하시고 지켜 보시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5장 8절 말씀을 보면, \\\"너희가 과실을 많이 맺으면 내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 실 것이요, 너희가 내 제자가 되리라\\\"고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성도는 좋은 열매를 많이 맺어야 주님이 인정하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밭에 심기울 자격이 없는 이방인의 후손들입니다. 그러나 주님의 사랑으로 포도원에 더부살이 하게 된 무화과 나무와 같습니다. 이렇게 크고 감격스러운 은혜를 입은 우리가 어찌 주님을 잊을수 있습니까? 주님의 사랑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주님이 부르시고 맡겨주신 직분을 소홀히 해서도 안됩니다. 내게 맡겨주신 직분이 열매를 맺도록 최선을 다하여야 합니다.
그래서 바울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조상들이 광야에서 겪은 하나님이 축복하셨던 일들을 잊지 말라고, 고린도전서 10장 1-13절에서 교훈하고 있습니다.
가만히 생각해 보십시오. 여호와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 종살이에서 해방시켜 주신 분입니다. 그리고 사막의 더위와 추위속에 고통당하는 그들을 구름기둥과 불기둥으로 지켜주셨습니다. 그 뿐만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배고파 하는 그들에게 먹을 것을, 목말라하는 그들에게 마실 물을 주셨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새 힘을 얻어 가나안에 들어갈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이 하나님께 보답한 것은 무엇이었을까요? 그러한 은혜를 입은 이스라엘이 하나님께 돌려 드린것은 무엇인가요? 바울은 이스라엘이 행한 보답은 오직 불순종이었다고, 고전 10장 5절에서 밝히고 있습니다. 마치 자식을 마른자리 진자리 갈아 누이며 키워놨더니, 부모를 패는 패륜아가 되었듯이 이스라엘 백성은 온갖 은혜를 다 베풀어주신 하나님께 불순종했던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자기들이 자격이 있어서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줄로 착각을 했던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 앞에서 잘났다고 뽐낸 결과는 무엇이었습니까? 멸망이었습니다. 이것은 역사를 살펴보면 어쩔 수 없는 삶의 진리입니다. 인간이 인간이기를 거부하면, 파멸밖에 없는 것입니다. 사도행전 12장은 무엇을 말하고 있습니까? 교회를 핍박하고 주의 종 베드로를 죽이려고 하던 헤롯왕의 결말을 이야기 합니다. 헤롯은 백성들의 아부소리에 그만 자신이 하나님이 된 것으로 착각하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지 않고 자신이 차지하다가 주님의 천사가 치니 벌레가 먹어 죽고 말았던 것입니다. 그러나 헤롯이 죽고 말았지만, 여전히 하나님의 말씀은 흥왕하고 왕성해졌다고 간증합니다.
이처럼, 주님의 말씀을 귀 기울여 듣지 아니하고 자기 생각대로 살다가 재난을 당하는 노아 시대의 불쌍한 백성들처럼, 오늘날 우리 주변에도 얼마나 불쌍한 사람들이 많은지 모릅니다.
예화)고향에 우물이 여러개 있었습니다. 그런데 제 친구 홍길이네 집 우물은 다른 집보다 두배나 깊었습니다. 두레박 줄이 아마도 사람 키로 10배 정도는 넘게 들어가는 아주 깊은 우물이었습니다. 몇달에 한번씩 동네 청년들이 그 우물안에 두레박을 타고 들어가서 청소를 합니다. 그럴때마다 샘을 너무 깊게 팠다고 투덜거립니다. 그러나 한번은 가뭄이 들었는데, 동네 다른 우물들은 다 말랐지만, 홍길이네 우물은 여전해 서 동네 사람들이 다 물통을 가져와서 퍼 가져 갔던 일이 기억납니다.
이사야 55장 9절을 보면, \\\"하늘이 땅보다 높은 것처럼, 내 생각도 너희가 생각할 수 있는 모 든 것보다도 높다\\\"고 하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의 높으신 생각보다는 인간의 천박한 생각을 고집할 때가 많습니다. 그래서 정말로 행복한 길을 잃어버리고 얄팍하게 살다가 가뭄을 만나고 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주님안에서 인생들이 평안하고 한없이 즐겁게 살아가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그 축복된 삶을 살아가는 방법을 성경에 담아 주셨습니다. 성경을 바르게 읽기만 하면 그 축복의 길이 확실하게 보여집니다. 아브라함이 맨손으로 시작했지만 그 육축과 은금이 풍부하여 큰 부자가 되는데는 30년밖에 걸리지 않았습니다. 어째서 그렇습니까? 아브라함이 여호와의 말씀을 쫓아 갔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도 요한은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자와 듣는자와 그 가운데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들이 복이 있다\\\"고 미리 선포하고 계시록을 쓰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모든 인류가 함께 살아갈 축복된 길을 분명하게 제시하고 계십니다. 그러나 우리 인간은 자기만 살려는 욕심에 스스로 파멸을 향하고 있습니다. 마치 카나리아가 신나게 노래를 아무때나 불러댄 것은, 단지 자기 생각만 했기 때문입니다. 다른 사람들이 잠을 자는 시간에 노래를 부르면 어떻게 될까를 생각지 않고, 자기 기분만 생각하고 계속 노래를 불렀던 것입니다.
이런 일이 우리 주변에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큰 식품회사가 돈 벌 생각만 하고 사람에게 해로운 재료를 식품 제조에 넣는 것부터, 버리는 사람 따로, 줍는 사람 따로 있고 그렇게 내 편한대로 사는 것이 결국에는 우리 모두에게 손해라는 사실을 생각지 못하고, 당장 내 자신이 편리하고 내게 이익이 되는 것만 생각하고 따라가는 일이 문제입니다.
천국 백성으로 선택되신 태평양교회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그렇게 무질서한 삶을 살고 있지는 않습니까?
명심보감에「食淡精神爽(식담정신상)이오, 心淸夢寐安(심청몽매안)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것은 \\\'음식이 깨끗해야 정신이 상쾌하고, 마음이 깨끗해야 잠을 잘 잘잔다\\\'는 말입니다. 사실 마음을 바르게 갖지 못하면, 잠을 편히 잘 수가 없습니다. 예화) 어릴때 사발시계라는 탁상시계가 있었습니다. 그 시계가 에약했던 시간만 되면 \\\"따르 릉~~\\\"하고 우는 것이 너무나 신기해서 한번은 학교에 갔다오니 아무도 없는 틈을 타서 드라 이버로 뒤를 따고 말았습니다. 도대체 이 시계안에는 어떤 놈이 앉아 있는가가 궁금해서 다 분해하고 말았습니다. 별게 없더라구요! 그런데 그걸 다시 조립하다 보니 순서가 안맞고 고 장이 나고 말았습니다. 대충 조립해서 가만히 두니 가질 않습니다. 밥줄이 끊어지고 말았던 것이지요. 그날밤에 밥맛도 없고, 그만 밤잠도 설치고 말았습니다. 그 다음날 아침에 실컷 두들겨 맞고서야 마음이 편하게 학교 갔던 일이 생각납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형상과 생기로 만들어진 인간은 하나님 말씀으로 살아야 평안을 누릴수 있습니다. 또한 그래야만 모든 일이 형통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 한분 만으로 만족하며 살아가는 사람은 늘 행복하게 사는 것입니다. 반면에, 말씀을 거역하면서 욕심만 채우려 하게 될 경우, 늘 불안하게 사는 것이지요. 또한 그런 사람은 자신의 삶도 만족하지 못하고 가족과 이웃에게도 실망, 고통을 줍니다.
세상사람들은 운전면허 시험을 합격하려면 요령이 있어야 한다고 흔히 말합니다. 군대 가서도 요령이 있으면 편하게 군대생활 한다고들 말합니다. 그러나 인간의 근본적인 삶에서는, 하나님 말씀대로 사는 것만이 가장 좋은 요령입니다. 다른 요령을 피워봤자, 그야말로 재난의 연속이요 부끄럽기 그지없는 인생을 살고 맙니다. 니느웨로 가야 할 요나가 다시스로 도망가다가 죽을뻔 했던 3일간의 고통을 아시지요?
예수님은 누가복음 13장에서 빌라도가 갈릴리 사람들을 참혹하게 살해하였던 사건과 실로암 망대가 무너져 18명의 무고한 사람이 깔려 죽은 사건을 말씀하시면서 \\\"하나님께 돌아오지 않으면 너희도 이러한 재난을 당하게 될 것이다\\\"(눅13:3)라고 경고 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모두가 이웃과 더불어 살아가는 지혜로움을 갖기를 원하십니다. 우리 태평양교회 성도들은 남을 배려하는 예의가 세상사람들 보다 훨씬 많아야 하겠습니다. 나만 잘 살겠다는 생각에서 이기적으로 살게 되면, 자신과 공동체를 파괴시키고 맙니다. 이것은 가정이나 직장이나 사회나 국가도 마찬가지입니다. 이기적인 사람들이 많아질수록 그 단체는 콩가루 집안이 되고 맙니다. 그러나 남의 평안과 유익을 위해 희생하는 사람이 많아 질수록 그 단체는 정말로 힘있고 부 강한 단체가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주님은 주님께서 걸어가셨던 십자가 걸음을 온전히 그리고 묵묵히 따라오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자신에게는 축복이, 이웃에게는 기쁨과 평화가, 그리고 하나님께는 영광을 돌리기를 간절히 원하시고 계십니다. 신앙생활은 나 혼자만이 아니라 더불어 하는 것입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