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으로 봉사합시다 눅10:27
(눅 10:27) 대답하여 이르되 네 마음을 다하며 목숨을 다하며 힘을 다하며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한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하였나이다
막12장에 사두개인들이 주님께 나아와 일곱 형제와 함께 살다가 후손 없이 죽은 여인에 대해 질문했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이 성경도, 하나님의 능력도 알지 못하므로 오해했다고 하셨습니다. 주님은 사람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날 때는 하늘에 있는 천사들과 같다고 하심으로써 그들의 주장을 일축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잘 대답하심을 지켜본 서기관 중 한 사람이 주님께 나아와 모든 계명 중에 첫째가 무엇이냐고 물었습니다. 예수님은 서기관의 선의의 질문에 (신 6:5) 너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는 말씀과 (레 19:18) 원수를 갚지 말며 동포를 원망하지 말며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나는 여호와이니라는 말씀을 각각 인용하여 유일하신 하나님을 전심 전력으로 사랑하고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라하셨습니다.
한 율법사가 뛰어난 종교적 안목을 가지고 주님을 시험코자 영생을 얻는 방법을 주님께 물었습니다. 이 율법사가 주님을 시험하는 동기를 성경에서 몇가지 찾아봅니다. 그것은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영생을 공공연히 보장하셨기 때문입니다. (눅 10:20) 그러나 귀신들이 너희에게 항복하는 것으로 기뻐하지 말고 너희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으로 기뻐하라 하시니라
또한 영생의 열쇠가 바로 예수님 자신 안에 있다고 하셨기 때문입니다. (눅 10:22) 내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내게 주셨으니 아버지 외에는 아들이 누구인지 아는 자가 없고 아들과 또 아들의 소원대로 계시를 받는 자 외에는 아버지가 누구인지 아는 자가 없나이다 하시고
그리고 주님께서 율법사들을 비판하시고 정죄하셨던 까닭입니다. (눅 7:29-30) 모든 백성과 세리들은 이미 요한의 세례를 받은지라 이 말씀을 듣고 하나님을 의롭다 하되 바리새인과 율법교사들은 그의 세례를 받지 아니함으로 그들 자신을 위한 하나님의 뜻을 저버리니라
따라서 주님께 반감을 품고 그 답변의 여하에 따라 주님을 정죄하는 한편 자신들의 율법주의적인 구원관만이 진리임을 과시하려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비록 율법사의 의도는 불순한 것이기는 하나 그 질문의 내용은 우리 인생들로서는 가장 중요한 삶의 관심사입니다.
영생을 얻는 일에 관한 이 물음은 율법사 외에도 수천 년 간 많은 사람과 다양한 학문들이 여러 각도에서 이 내용으로 질문해 왔으며, 오늘도 계속되고 있는 것으로 성도의 관심사가 되어야 합니다.
농부는 밭에, 상인은 돈에, 권력자는 그 지위 유지에 관심을 품고 생활하듯 하나님의 자녀는 늘 영원한 생명과 가치들에 대해 의식을 기울이고 있어야 합니다.
(골 3:1-4)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의 것을 찾으라 거기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느니라 위의 것을 생각하고 땅의 것을 생각하지 말라 이는 너희가 죽었고 너희 생명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추어졌음이라 우리 생명이신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그 때에 너희도 그와 함께 영광 중에 나타나리라
(마 6:33)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는 말씀 역시 영생 문제를 성도의 관심사와 소망으로 삼으라는 의미입니다.
\\\\\\\\\\\\\\\'땅의 일을 생각\\\\\\\\\\\\\\\'(빌 3:20)하는 성도에 대한 성경의 가르침이 있습니다.
(딤전 6:3-5) 누구든지 다른 교훈을 하며 바른 말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과 경건에 관한 교훈을 따르지 아니하면 그는 교만하여 아무 것도 알지 못하고 변론과 언쟁을 좋아하는 자니 이로써 투기와 분쟁과 비방과 악한 생각이 나며 마음이 부패하여지고 진리를 잃어 버려 경건을 이익의 방도로 생각하는 자들의 다툼이 일어나느니라
영생은 그리스도의 관심사입니다. 우리가 영생을 추구하는 동기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 인생들에게 영생을 주시고자 하는 관심으로 충만해 있다는 사실입니다.
(딤전 6:11-12) 오직 너 하나님의 사람아 이것들을 피하고 의와 경건과 믿음과 사랑과 인내와 온유를 따르며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라 영생을 취하라 이를 위하여 네가 부르심을 받았고 많은 증인 앞에서 선한 증언을 하였도다
주님께서는 제자들에게 그 어떤 것보다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으로 기뻐하라시고 제자들이 예수님을 믿고 영생을 얻게 된 것을 크게 성령으로 기뻐하시며 감사의 기도를 하십니다.
(눅 10:20-21) 그러나 귀신들이 너희에게 항복하는 것으로 기뻐하지 말고 너희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으로 기뻐하라 하시니라 그 때에 예수께서 성령으로 기뻐하시며 이르시되 천지의 주재이신 아버지여 이것을 지혜롭고 슬기 있는 자들에게는 숨기시고 어린 아이들에게는 나타내심을 감사하나이다 옳소이다 이렇게 된 것이 아버지의 뜻이니이다.
사마리아 수가성의 한 여인이 주님 안에 있는 영생의 샘물을 발견했을 때는 주님께서 너무도 흐뭇하셔서 식사까지 거르셨습니다(요 4:10, 11, 27-34).
그러므로 우리가 영생 얻음에 대해 관심을 가지는 것은 곧 주님의 가장 큰 관심사에 동참하는 것이며, 그것이야말로 하나님으로서의 자존심마저 유보하시고 이 땅에 뛰어 들어오신 그리스도의 꿈과 뜻을 이루어 줄 수 있는 것이며, 인생들이 하나님의 은혜의 보답하는 방편 중의 하나가 됩니다.
그런데 율법사의 질문은 자기 모순적인 질문으로 율법의 요구를 외면함을 보입니다. \\\\\\\\\\\\\\\'네가 어떻게 읽느냐\\\\\\\\\\\\\\\'(26절)고 질문하심은, 네가 율법을 어떻게 적용하느냐는 물음입니다. 저들은 율법을 타인에게만 적용시켰을 뿐 자기 자신에게는 적용하지 않았다고 주님께서 지적하신 일이 있습니다.
(마 23:1-7) 이에 예수께서 무리와 제자들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모세의 자리에 앉았으니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그들이 말하는 바는 행하고 지키되 그들이 하는 행위는 본받지 말라 그들은 말만 하고 행하지 아니하며 또 무거운 짐을 묶어 사람의 어깨에 지우되 자기는 이것을 한 손가락으로도 움직이려 하지 아니하며 그들의 모든 행위를 사람에게 보이고자 하나니 곧 그 경문 띠를 넓게 하며 옷술을 길게 하고 잔치의 윗자리와 회당의 높은 자리와 시장에서 문안 받는 것과 사람에게 랍비라 칭함을 받는 것을 좋아하느니라
율법의 성격과 의미에 무지하여 자신의 힘만으로는 율법을 스스로 이룰 수 없는 존재라는 것을 몰랐습니다. 율법은 우리의 모순됨과 무능함을 거울처럼 보여주므로 우리를 그리스도 안으로 이끄는 회개의 방편은 될지언정(갈 3:10, 11, 22-24). 결코 영생 획득의 수단은 될 수가 없습니다. 이러한 율법사의 질문에 예수님은 율법으로 대답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라는 계명이 바로 그것입니다. 이것은 지식의 문제가 아니라 실천의 문제요 삶의 문제입니다.
그런데 율법사는 처음부터 율법에는 관심이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한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계명을 지키라는 명령에 대하여 \\\\\\\\\\\\\\\'그러면 내 이웃이 누구오니이까\\\\\\\\\\\\\\\'라고 묻습니다. 이때 주님께서 주신 말씀이 바로 선한 사마리아 사람의 비유로서 우리에게 교훈하시는 것은 도와주어야 할 이웃에 대하여서입니다. 주님께서는 세상을 바르게 살아가지 못하는 사람들 즉 세리, 창녀 등 사람들로부터 멸시와 천대를 받는 자들을 즐겨 찾으시고 그들의 이웃이 되기를 원하셨습니다. 또한 정상적인 육체를 갖지 못함으로써 세상을 바르게 살아가지 못하는 사람들, 즉 나병 환자, 소경, 앉은뱅이, 귀머거리 등의 이웃이 되기를 원하셨습니다. 예수께서 긍휼히 여기시고 그들의 이웃이 되어 은혜를 베푸셨던 사람들이 바로 강도 만난 사람과 같은 사람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사람들은 예수님 당시에만 있지 아니합니다. 오늘날에도 있습니다. 따라서 성도들은 이러한 자들에게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성도들의 이웃은 세상에서 대접받지 못하고 소외되어 외롭게 살아가는 자들입니다. 제사장도 레위인도 강도 만난 자를 보고서 그냥 지나가 버렸습니다. 그들은 모두 백성들을 대표하여 성전에서 하나님께 봉사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떤 사마리아 사람은 여행하는 중 거기 이르러 그를 보고 불쌍히 여겨 도와줍니다. 사마리아인의 입장에서 보면 유대인은 원수입니다. 사마리아인 스스로가 유대인을 원수로 삼은 것이 아니라 앗수르로부터 북왕국 이스라엘이 멸망당한 후 그들의 이주 정책에 의해 사마리아 지역이 혼합 민족이 되면서부터 유대인이 사마리아인을 원수와 같이 여긴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사마리아인을 개처럼 여겼습니다. 그것은 그들이 히브리 민족으로서의 혈통을 지키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런 만큼 사마리아 사람들도 유대인들에 대하여 적대 감정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 증거는 사마리아인들이 예수를 배척한 일로써 알 수 있습니다. 그들은 예수께서 다만 예루살렘을 향해 가신다는 이유만으로 사마리아인의 한 촌에서 마을에 들어오지 못하도록 배척했습니다.(눅 9:51-53), 수가성 우물가에서는 사마리아 여인으로부터 냉대를 받으시기도 했습니다(요 4:9).
따라서 강도 만난 사람을 보았을 때 사마리아인은 제사장이나 레위인보다도 더 자연스럽고 당연하게 그 자리를 지나쳐야 했습니다. 그러나 본문에 나오는 사마리아인은 이런 종족적 편견을 극복하고 있습니다. 그는 강도 만난 사람이 유대인이냐 아니냐 하는 생각을 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그가 거의 죽어가고 있고 이러한 사람은 급히 구호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생각만을 한 것입니다. 모든 편견은 사랑의 능력을 제한합니다. 이 편견을 극복함으로써 사랑은 자기 능력을 확대해 갈 수가 있습니다.
이와 같은 사실을 통해 주님께서 주시는 교훈은 무엇입니까? 바로 원수에 대한 사랑입니다. 원수도 그리스도 안에서는 더 이상 원수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원수도 그리스도 안에서는 형제입니다. 친구입니다. 사랑과 긍휼을 베풀어야 할 이웃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직접 말씀하셨습니다.
(마 5:44)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사도 바울은 (잠 12:21) 의인에게는 어떤 재앙도 임하지 아니하려니와 악인에게는 앙화가 가득하리라는 말씀을 인용하여 말씀 합니다. (롬 12:20) 네 원수가 주리거든 먹이고 목마르거든 마시게 하라 그리함으로 네가 숯불을 그 머리에 쌓아 놓으리라
사마리아 사람은 생명을 귀히 여기는 사람입니다. 그에게는 자신이 도와주어야 할 사람의 국적이나 사회적인 지위, 재산 따위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 사람을 구해 줌으로써 얼마나 나에게 이익이 돌아오느냐 하는 것도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에게는 단 하나 그 사람의 생명이 중요합니다. 그래서 그는 모든 사람이 외면한 그 사람을 치료해 주고 주막에까지 데리고 가서 돌보아 주었습니다.
이처럼 사람의 생명을 귀히 여기는 사람만이 참된 이웃이 될 자격이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가 만일 세상 사람들에게 참된 이웃이 되기를 바란다면 먼저 한 사람의 생명을 천하보다 귀히 여길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사마리아 사람은 남을 불쌍하게 여겨줄 줄 아는 사람 사랑이 많은 사람입니다. 불쌍히 여길 자를 마땅히 불쌍히 여긴 사람입니다. 마음에 여유가 있는 사람입니다. 마음이 풍요한 사람입니다. 그래서 강도 만난 사람을 발견했을 때 그냥 지나치지를 않습니다. 죄인 된 인간이 하나님 앞에 설 수 있게 된 근본 원인이 하나님의 인간에 대한 긍휼과 연민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불쌍히 여겨주십니다. 그 불쌍하게 여겨주시는 마음에서 용서가 나오고 인애가 나옵니다.
사마리아 사람은 자기를 희생하는 사람입니다. 그는 자기를 희생하고 이웃을 도울 수 있는 자세는 갖추어져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강도 만난 사람을 보았을 때 자기의 위험을 돌보지 아니하고 그에게 다가 갔으며 아낌없이 포도주와 기름을 부었습니다. 그리고 나귀에 태워 주막으로 데려가 부비까지 주면서 치료하여 주었습니다. 그의 사랑은 기꺼이 희생을 지불한 사랑이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시간과 돈을 강도 만난 자를 위하여 아낌없이 썼습니다. 그는 사람을 도와주되 형식적으로 도와준 것이 아니라 그의 성의를 다하여 도와주었습니다. 그는 그를 주막에 갖다 맡기고 완전히 회복할 수 있도록 조치를 취했습니다.
그러면서도 그는 그가 행한 일에 대하여 보답을 바라지 않았습니다. 그저 위험에 처한 사람을 도와준 것만으로 기쁘게 생각하는 것 같았습니다. 어떤 보답을 기대하지 않고 순수한 인간애로 희생을 지불한 사랑, 그것이 선한 사마리아인의 사랑입니다. 이처럼 자기를 희생할 줄 아는 사람, 이처럼 남을 아끼고 남의 목숨을 나의 목숨으로 여길 줄 아는 사람만이 진정한 이웃이 될 수 있습니다. 선한 사마리아 사람은 자신이 직접 그 사람의 구호에 임합니다. 지나가는 다른 사람을 시켜 도와준 것이 아니라 자기가 몸소 봉사합니다. 그는 실제로 사랑을 실천합니다.
영적인 면에서 강도 만난 사람에게 있어서의 선한 사마리아 사람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님은 인류의 선한 이웃이 되십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은 죄인을 구원하기 위한 사랑입니다. 이 세상의 모든 사람들은 모두 강도 만난 사람과 같이 사탄의 공격을 받아 거의 죽어가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이러한 인간들을 구하시려 주님은 하늘의 보좌를 버리셨습니다. 성육신의 신비를 통하여 사랑과 겸비와 고난을 보이셨습니다. 그리고 세리와 창기의 친구가 되고 문둥이와 귀신들린 자의 치료자가 되셨습니다. 선한 사람과 의인을 사랑하기는 쉽습니다. 그러나 죄인을 사랑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은 이 세상의 모든 죄인들을 사랑하셨습니다. 그 사랑을 확증하기 위하여 주님은 십자가에 달리셨습니다.
(막 10:45)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주님의 사랑은 섬기는 사랑입니다. 제자들의 발을 손수 씻기신 것처럼(요 13:4-11) 주님은 섬기기를 기뻐하셨습니다. 공생애 사역 기간에 주님은 복음을 전파함으로써 죄인들을 섬기셨습니다. 말씀을 가르치심으로써 병자와 불구자들을 섬기셨습니다. 모든 병든 자들을 치료해 주심으로써 병자와 불구자들을 섬기셨습니다. 주님은 사랑은 인간들이 살고 있는 거리에서, 집에서, 산에서, 들에서, 바닷가에서 현실적으로 베풀어졌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은 생명을 버린 사랑입니다. 시간이나 돈을 희생한 사랑이 아니라 주님의 목숨 자체를 희생하신 사랑입니다. 주님은 하늘의 보좌를 희생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본체로서의 영광을 희생하셨습니다. 그리고 주님은 그 생명 자체를 희생하셨습니다.
(빌 2:6-8)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그것은 죽음의 세력 아래서 신음하고 있는 인류를 구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은 하늘에서부터 땅에 이르기까지 실천하는 사랑이었으며 행동하는 사랑이었습니다. 이 실천하는 사랑을 통하여 하나님은 모든 죽어가는 죄인에게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영원히 살아계신 진정한 우리의 선한 이웃입니다.
두 명의 기독교인이 같은 좌석에 앉아 기차 여행을 하고 있었다. 점심시간이 되자 한 사람이 도시락 주머니에서 두 개의 샌드위치와 우유를 꺼내어 먹기 시작했다. 미처 점심을 준비하지 못한 다른 한 사람은 배고픈 듯한 눈초리로 쳐다만 보고 있었다. 드디어 그가 두 번째 샌드위치를 먹기 시작하자 더 이상 못 참겠는지 그 배고픈 사람이 입을 열었다. \\\\\\\\\\\\\\\'나는 최근에 주님의 계명에 사로잡힌 적이 있습니다. 당신은 네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말씀을 아십니까?\\\\\\\\\\\\\\\' \\\\\\\\\\\\\\\'거참, 좋은 말씀입니다만 나는 또 다른 말씀을 알고 있습니다. 네 이웃의 것을 탐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보국호훈의 달에 나라 사랑을 생각하게 합니다. 나아가 하나님과 그의 나라를 사랑하게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 나라 백성을 사랑하게 합니다. 하나님 나라 백성은 국경이나 민족의 편견이 없습니다. 해외선교위원회에서는 태국 의료 선교, 교육위원회에서 어린이 여름 성경 학교, 중고대 수련회를 대학 청년부에서는 엘피피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엘피피(L.P.P)는 필리핀을 사랑동으로 복음을 전하여 복음으로 그리스도의 사랑을 전하고 실천 하자는 것입니다. 이를 돕기 위해 찬양예배는 엘피피(L.P.P) 헌신 예배로 드립니다. 이를 위하여 기도 하며 동참함도 사랑으로 봉사하는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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