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된 봉사를 하려면?

참된 봉사를 하려면/눅10:38-42

참된 봉사를 하려면
눅10:38-42





성도는 여러 가지 특권을 소유한 복된 존재들입니다. 하나님의 자녀의 특권, 기도할 수 있는 특권 등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은 특권이 있지만 그 중에 봉사라는 아름다운 특권도 가지고 있습니다. 이 봉사의 특권으로 인해 개인은 성숙해지고 나의 상대는 용기를 얻고 가정과 교회는 부흥합니다.

그러나 이 아름답고 소중한 특권을 누리기 위해 우리는 한 가지 질문을 던져야 합니다.

\\\"참된 봉사란 무엇인가? 아니 참된 봉사를 하려면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하는가?\\\"입니다.

이에 대한 대답을 본문 눅 10:38∼42은 잘 제시하고 있습니다. 봉사에 대한 혼란함의 시대를 사는 우리는 이 말씀 앞에 겸허히 앉아야 합니다.


그러면 참된 봉사를 위해서 어떤 자세를 가져야 합니까?


1. 먼저 주님의 제자가 되어야 합니다(39절)


베다니에 사는 마르다와 마리아는 다른 모습으로 예수님을 대접하고 있습니다.

언니 마르다는 좋은 여주인 입장에서, 마리아는 제자 즉 종의 입장에서 예수님을 대하고 있습니다. 마르다라는 이름은 \\\'여주인\\\'이라는 뜻입니다. 마르다는 자신은 주인으로, 예수님은 손님으로 모셨습니다.

그러나 마리아는 다릅니다. 39절 \\\'주의 발 아래 앉아\\\'라는 말씀은 랍비의 교훈을 듣는 자세로서 진리에 몰입하고 있는 모습입니다. 마리아는 나사로를 위해 기도할 때(요 11:32)도, 향유를 주께 부을 때(요 12:3)도 이 모습을 취했습니다. 예수님은 좋은 주인 아주머니보다 제자의 자세로 봉사하는 마리아의 편에 서셨습니다.

왜 마르다는 충성, 봉사를 하고도 불만하고, 나중에는 주님께 책망듣기까지 했습니까? 마르다는 주인이었습니다. 주님께서는 우리의 삶에 주인되시기를 원하십니다. 결코 손님으로 와 계시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이래서 예수님께서 사람들의 마음을 아시기 때문에 다른 집에는 유하지 않으시고 베다니 나사로의 집은 종종 들리시는데 이 집에서 마르다는 예수님을 주인대접을 하지 않았습니다.

참된 봉사는 제자의 심정, 즉 종의 심정을 갖게 될 때 가능합니다. 오늘날 왜 그리도 많은 불평과 불만이라는 문제들이 봉사의 공동체인 교회에 있습니까? 제자의 심정이 아닌 주인의 자세로 임하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봉사가 봉사로 끝나지 않고 봉사의 타락인 대가를 요구하게 되는 것입니다.

2. 먼저 좀 더 영적이고 내적이어야 합니다(40절)


왜 마르다는 원망 있는 봉사를 해야만 했을까요?

무엇이 되느냐(to be)보다 무엇을 할 것이냐(to do)는 외형적인 업적에 초점을 두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마음이 분주했습니다. 그러나 마리아는 말씀을 들으며 좀 더 영적이고 내적이기를 힘썼습니다. 그래서 그녀는 비난 앞에서도 평안했고 주님의 장례를 준비하는 결정적인 봉사의 주인공이 되었습니다.

오늘날 왜 참된 봉사가 빈곤합니까? 바쁜 생활 속에서 건조해지고 세속화되어 영적이고 내적인 것을 소홀히 하기 때문입니다. 봉사하기 전에 하나님 앞에 앉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야합니다. 하나님과 대화해야 합니다. 그럴 때만 자신을 객관화할 수 있고, 창조신앙으로 인한 자기 가치를 발견하며, 구속신앙에 의한 자기 가능성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들의 봉사는 좀 더 영적이고 내적이 되어야 합니다. 그럴 때만 우리 교회는 지속적인 축복의 공동체가 될 수 있습니다.


3. 먼저 감사와 감격을 소유해야 합니다(41절)


예수님은 이 3남매를 무척 사랑하셨습니다. 마르다는 이것을 기억하고 풍성한 감사로 그분을 섬겨야만 했습니다. 그러나 그의 감격은 빈약했고 그 대신 염려와 근심(41절)으로 채워지고 말았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배워야 합니다. 참 봉사는 하나님에 대한 감격에서 시작되어야 함을 말입니다. 나에 대한 그분의 선택과 기대, 날 구원하시고 용서해 주시는 은총에 대한 감사와 감격을 갖게 될 때 우리의 봉사는 의미가 있게 될 것이며 봉사의 완벽주의에 빠지지 않게 됩니다. 얼마만큼 봉사했느냐를 비교하지 않고 어떻게 봉사했는가를 묻게 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예수 믿는 우리는 삶의 결과보다 태도를 먼저 물을 줄 알아야 합니다.

물질을 드리는 봉사도 필요하지만 제자의 태도로 주님 발 아래 엎드려 그분이 주시는 힘으로 봉사의 발을 내딛어야겠습니다. 벧전 4:10∼11절의 말씀 \\\"...하나님의 은혜를 맡은 선한 청지기 같이 서로 봉사하라... 하나님의 공급하시는 힘으로 하는 것같이 하라\\\"를 기억하며 아름다운 특권인 봉사의 특권을 누리는 복된 사람이 되어서 하나님께 영광 돌리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우리 교회 여전도회 뿐 아니라 각기관들이 이제 새해에 일할 일군들을 선출했습니다.

각 기관에서는 내년에는 어떤 사업을 하며, 어떤 일을 해서 교회를 위해서 봉사하며 교인들을 섬기는 일들을 할까를 계획하고 있는 줄 압니다.

그러나 오늘 이 본문 말씀으로 우리를 비추어 볼 때에 우리 각 기관들이 먼저 생각해야하는 것은 어떤 사업이나 일을 계힉하고 추진하는 것 보다 더 선행되고 중요한 것은 어떤 것이 주님을 위하는 진정한 봉사이겠는가 하는 것을 생각하는 것입니다.

주님을 위해서 무엇을 하는 기관들이 되는 것 보다 주님 앞에 어떤 기관이 될 것인가가 더 중요합니다. 주님이 보실 때에 칭찬하고 주님께서 기뻐하시는 기관들이 되어야합니다. 이것이 아니라면 우리들이 몸으로 움직여 어떤 많은 일을 하고 그래서 새해에는 어떤 해 보다 더 많은 결과를 맺었다 할지라도 그것이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입니다.


우리 기관들의 사업과 봉사와 충성은 그리스도를 위한 것이어야합니다.

여전도회나 남선교회나 우리 기관들이 먼저 알 것은 이 교회의 각기관들은 주님을 위해서 세워진 것이지 교인들을 위해서 세워진 봉사기관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또 그 각기관은 자기 기관 그 자체를 위해서 존재하는 것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그 각기관은 기관의 어떤 영향력있는 한 두 사람의 것이 아니고 그들을 위해서나 그들의 생각과 뜻대로 움직여서도 안된다는 것입니다. 교회를 돌보고 교인들을 살피는 봉사가 필요없다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도 주님을 섬기며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기관으로서 해야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기뻐하시나, 이 사업, 행위는 주님께서 인정하시는 것인가, 우리가 항상 주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심을 구하고 있는가에우리들의 초점은 맞추어져 있어야합니다.


언제나 마르다 적인 교회나 기관, 개인이 있고, 마리아적인 교회나 기관, 개인이 있습니다.

사업주의적인 교회나 기관이 개인이 있고, 신앙적이고 영적인 면에 힘쓰는 교회나 기관, 개인이 있습니다. 우리가 주님을 기쁘시게 하려면 어디에 먼저 초점을 맞추어야합니까?

어떤 분이 말씀하시길, 영적으로 움직이는 교회가 있고, 혼적인 교회가 있고, 육적인 교회가 있다 했습니다. 활동면을 볼 때에는 육적인 교회가 많이 하는 것 같지만, 주님이 기뻐하시는 교회는 아닐 수 있습니다. 교회가 영적이고 혼적이고 육적인 면을 다 조화를 맞추어야하지만, 먼저는 영적인 면입니다. 신일교회는 어떤 교회입니까?


하나님께 예배하는 일, 하나님께 기도하는 일,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고 연구하는 일, 이런 신앙적이고 영적인 면에는 관심이 없고, 프로그램에 따라서 움직이고 행사 위주로 움직이는 교회와 기관들은 마르다 적인 교회나 기관입니다. 사업적이고 맡은 일은 마르다같이 잘하지만, 하나님께 대하여 나아가는 신앙적인 면이나 영적인 면에는 관심이 없는 교회, 기관, 개인이 있습니다.

이 교회는 항상 하는 일이 많아서 분주하게 충성하는 것 같지만, 실은 내용은 없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되 내 양식은 아버지의 뜻을 행하는 것이라고 하셨고, 누가 내 모친이며 내 형제자매냐, 하나님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고 했습니다. 주님께서도 이 세상에 계실 때에 아버지의 뜻에 맞추어서 행하셨습니다. 주님의 뜻과는 상관없이 움직임만 있는 것을 주님은 대접으로 받지 않습니다.


에베소교회는 (계2:2) 내가 네 행위와 수고와 네 인내를 알고 또 악한 자들을 용납지 아니한 것과 자칭 사도라 하되 아닌 자들을 시험하여 그 거짓된 것을 네가 드러낸 것과 (계2:3) 또 네가 참고 내 이름을 위하여 견디고 게으르지 아니한 것을 아노라 했습니다.

사업도 많이 하고 열심히 있는 장점 많은 교회였습니다. 그러나 왜 주님께서 책망할 것이 있다고 했습니까? 주님께 대한 처음 사랑은 잊어버리고 열심과 사업으로 날뛰었기 때문입니다.


우리 여전도회가 봉사하는 여전도회 되기를 축원합니다.

우리 여전도회가 하나님의 사업에 충성하는 여전도회 되기를 축원합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우리 여전도회가 스스로 주인이 되지말고 주님의 제자로서 주님의 마음을 맞추어서 주님을 진정으로 봉사하고 대접하는 여전도회가 되기를 원합니다. 육적인 면보다도 먼저 영적인 면을 생각해야합니다. 무슨 일을 하든지 예배 중심, 기도 중심, 말씀 중심으로 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봉사와 충성을 하되, 주님께 받은 은혜와 사랑에 대하여 감사하며 감격에 넘쳐서 해야 피곤치 않고 불만이나 불평이 없습니다.


주님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고 일에만 분주했던 마르다는 결국은 마리아에게 원망했습니다. 주님께도 불평을 늘어 놓았습니다. 교회의 잡음은 일하지 않고 불충한 사람에게서 나오기도 하지만, 주님에 대한 사랑이나, 주님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고 일만하려는 열심히 충성하는 사람에게서 많은 잡음이 일어납니다. 조심해야합니다.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주께 봉사하는 충성으로 하는 것이 되지 않으면 인간 노름에 불과하게 됩니다. 우리 자치기관들은 다 교회에 붙어 있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어야하고 이 기관들은 다 주님을 위하여 있는 것이라는 인식을 가져야합니다. 인간적인 생각, 인간적인 계획, 인간적인 사업을 아무리 많이해도 주님께 묻지 않고 주님께 대접하는 것이 안되면 다 소용없는 일이고 불평과 불만의 목소리만 높아져 가는 교회에서 그 기관의 세력을 업고 불평을 터드리는 압력단체가 될 것입니다. 주께 칭찬들을 줄 알았던 마르다가 오히려 책망 들은 일을 기억해야합니다.


이제까지 각 기관을 맡은 일꾼들이 이런 중심으로 주님을 잘 대접하신 줄 압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들의 그 중심을 아시고 그 모든 행한 일에 복으로 갚아주실 줄 믿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여기에 머무르지 말고 한 단계 더 높은 깨달음으로 나가자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교회에 세우신 각 기관들이 이전에도 하나님께 충성을 다했지만 새해에는 더욱 새로와져서 하나님께서 뽑아 세우신 일꾼들로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하나님 중심하는 영적인 기관으로서, 감사와 감격에 넘치는 마음으로 교회와 교인들을 섬기며,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 전도기관들이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