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의 소유로 섬기더라

자기의 소유로 섬기더라/눅8:1-3

자기의 소유로 섬기더라
눅8:1-3





복음서를 통해 예수님의 생애를 조명해보면, 그분은 결단코 어떤 도에 이르기 위하여 수년간 고생을 하며 수행한 흔적이 없음을 발견케됩니다. 또한 어떤 종교의 지도자처럼 학습하거나, 학문에 정진한 바도 없습니다.

그런데 어찌하여 예수님 당신께서는 수행이나 고고한 학문연구 과정이 없이도 그와 같이 진리의 주인이 되셨는가 하는 의문이 제기될 수 밖에 없습니다. 그것은 바로 성경이 말씀하시는대로 예수님 당신 자신이 \\\'진리\\\'이셨기 때문입니다. 요한사도는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에 계신 분이 예수님이시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은 바로 당신 자신이 말씀이셨고, \\\'로고스\\\' 즉 \\\'참 진리\\\'이셨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가 또다른 진리를 얻기 위해서 수행하거나 학습하거나 탐구할 이유가 없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안에 있는 우리들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불교의 불자들은 그들의 스승처럼 수행해야만 어떤 도에 이를 수 있습니다. 유가의 제자들은 그의 스승처럼 학문을 해야만 만물의 이치와 인간관계를 깨달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제자인 우리는 그럴 필요가 전혀 없습니다.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사느니라\\\"

의롭게 되는 길은 \\\'오직 믿음\\\'으로만 가능합니다. 그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말미암습니다. 참 진리이신 예수님, 말씀 자체이신 그분이 선포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음으로 믿음을 얻게 되고, 그 믿음으로 말미암아 사는 것이 참 의로움에 이르는 길이라는 것이 성경이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진리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그의 복음을 들음으로 의에 이른 우리들은, 예수님께서 이 땅에 육신되어 오셔서 오직 말씀을 선포하시면서 사셨던 것처럼, 수행이나 학문의 길이 아니라 그분의 말씀을 증거하면서 사는 것을, 성도의 참된 생활의 모습으로 삼아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말씀 증거를 위해서 많은 동역자를 얻으셨습니다.

오늘 성경 말씀에 보니 1절에서 \\\"예수께서 각 성과 촌에 두루 다니시며 하나님나라를 반포하시며 그 복음을 전하실쌔 열두 제자가 함께 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혼자서 다니지 아니하시고 열두 제자를 택하셔서 그들에게 천국복음전파를 맡기셨습니다.

또한 2절∼3절 이하에서는 마리아와 요안나, 그리고 수산나와 다른 여러 제자가 함께 하여 \\\'자기들의 소유로 저희들을 섬기더라\\\'고 말씀합니다. 여기에서 동역자의 두가지 표본이 재시되고 있습니다. 하나는 예수를 따라다니며 예수님처럼 말씀을 전파하는 전임사역자, 즉 열두제자이고, 또 한 종류는 그들의 필요를 따라 소유로 섬기는 평신도사역자들입니다. 오늘 저는 이 두 번째 봉사의 섬김의 표본을 묵상하고자 합니다.


사실, 우리는 성경전체를 통해서 주의 동역자됨에 관한 문제를 많이 묵상하고 생각합니다. 예수님의 동역! 과연 예수의 일을 맡아서 봉사하는 것으로 의에 이를 수 있는가? 만약 예수님의 동역에 협조하지 않으면 지옥에 가는 것인가?

분명한 것은, 예수님과 더불어 봉사하는 것은 우리의 구원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는 것입니다. 성경은 주의 일을 하는 것이, 말씀자체에 더 가까이 가는 하나의 도구가 된다고 말하고 있지 않습니다. 우리가 교회를 위하여, 하나님 나라를 위하여, 복음을 위하여 봉사하는 근본정신은 결과론적인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말하자면 오늘, 복음서에 나타난 세 여인과 여러 여인들의 삶속에서 대표적으로 나오는, 일곱 귀신에 길들여져 평생 귀신을 주인으로 섬기고 점을 치면서 그의 이성과 그의 감정이 완전히 사로잡혀버린 인생을 살아갈 수 밖에 없었던 그 여인이,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귀신이 붸겨나가고 자유함을 입어 구원의 기쁨 속에서 예수님과 그 제자들의 필요를 따라 자기의 소유를 가지고 섬겼던 것을 모상으로 삼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구원을 받았기에 봉사하는 겁니다. 진리를 얻었으므로 봉사하는 겁니다. 나에게 귀신이 쫓겨났기 때문에 새로운 주인을 섬기는 것입니다. 병고침을 받았기 때무에 또다른 우리의 이웃과 불쌍한 형제를 위하여 봉사하는 것입니다.

공중권세 잡은 자와 물질과 정욕의 노예가 되어서, 이 땅의 썩어질 육체를 따라 살 수 밖에 없었던 나에게,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새로운 가치관과 새로운 세계와 새로운 영생을 얻을 수 있도록 베푸신 은혜를 주셨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며 주님을 위하여 섬기는 일에 동참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주님의 동역자 됨의 근본원리입니다. 이것이 바로 예수님께서 수행·학문하지 아니하시고 당신 자신속에 말씀과 진리가 충만하셨듯이, 오직 말씀을 듣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에 이른다는 기본적인 복음의 진리속에서 이해할 수 있는 원리인 것입니다.


진리 가운데 바로 서게 되면 우리는 오늘 말씀에서, 참으로 우리가 왜 봉사, 헌신해야 되는 가의 동인, 원인을 발견할 수 있게 됩니다.

여기 막달라마리아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누가복음의 본 사건에서는 그의 일이 나오지 않고 있지만, 다른 부분에서는 막달라마리아속에 있던 일곱귀신이 물러간 사건이 언급되고 있습니다. 마리아는 그 기쁨으로 자기를 고쳐준 예수님에게 향유가 가득 넘치는 항아리를 들고 다가와서 그것을 깨트려 버렸습니다. 예수님의 온 몸에 향유가 흘러내려 향기가 발하기 시작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의 고결한 머리카락을 가지고 예수님의 발을 흘러내린 향유로 뎶어드렸습니다. 이 때 옆에 있던 가룟유다는 마리아의 행함을 보고 심히 못마땅하게 여겨, \\\"어찌하여 너는 이렇게 어리석은 짓을 하느냐! 이 향유가 얼마나 값이 많이 나가는 것인데 이것을 이렇게 소홀히 깨뜨리면 되겠느냐?\\\"하고 꾸중을 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대로 두라\\\"고 했습니다. 마리아는 자기가 가지고 있는 유일한 것, 가장 귀한 것을 값으로 따질 겨를이 없었습니다. 그의 인생은 계산이 없는 인생이었던 것입니다. 이전에는 어땠습니까? 자신의 행동 하나하나, 점치는 것, 남자에거 웃음을 파는 것, 그 모든 것이 돈으로 환산되는 삶을 살았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만나 구원을 받은 후에 그에게 있는 소유물은 계산되지 않았던 것입니다.

이에 반해 가룟유다는 계산에 바빴습니다. 예수님을 따라 다니다가 그가 십자가를 질 것 같은 위기를 느끼고 \\\'손해보는 것 아닌가\\\' 하고는 은 30냥에 예수님을 팔아넘기고 말았습니다. 예수님을 섬기는 자세의 근본적인 자세는, 구원을 받았음에, 은혜를 받았음에 따른 계산없는 삶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 중 40대 이상되시는 분들은 기억하실 줄 압니다. 당시만 해도 카메라가 귀하던 시절이라, 교회에서 소풍을 한번씩 가게되면, 카메라를 가지고 있는 사람은 자랑도 할 겸, 카메라를 들고 사진을 열심히 찍어줍니다. 한 번, 두 번... 그런데 처음 몇번을 할 때는 신이 났는데, 그 다음부터는 은근히 속이 상합니다. 찍어달라고 할 때는 \\\"아무개 집사! 여기! 여기 좀 찍어줘요!\\\"하고 매달리지만, 현상해서 돌리면, 자기 얼굴만 잘 못나왔다고 투덜대지요, 찾지도 않지요... 그러다 보면 \\\'다시는 내 카메라 들고 가는가 봐라\\\'는 소리가 나옵니다.

교회를 섬기는데 계산을 하기 시작하면 못합니다. 계산을 하면 목사도 못합니다.

제 친구 중 미국유학을 갔다와서 선교단체에 간사로 있는 분이 있는데, 얼마전 만나서 이얘기, 저 얘기를 나누었습니다. 이 친구는 학교선생을 하다가 감동받은 것이 있어 미국에서 신학을 하고 목사가 되어서 돌아왔습니다. 그런데 선교회의 간사이다보니 생활비가 영 형편이 없었던 겁니다. 자기의 옛 친구들, 즉 지금까지 교사를 해온 사람들 호봉을 보니까 200만원이 넘는데, 자기는 100만원을 못 넘기는 겁니다. 유학을 가서 공부를 한다고 빈털털이가 되서 돌아왔는데, 와보니 전세 하나 얻을 수 없으므로, 부인되는 사모님은 가끔씩 친구에게 투덜거리는 모양입니다.

계산하면 목사도 못합니다. 계산하면 장로도 못합니다. 찬양대원도 계산하면 별 신나는 일 이 아닙니다. 주일학교 교사들, 토요일까직 직장생활 하시다가 주일 아침 더 일찍 일어나서 열심히 자기반 아이에게 전화합니다. 손수 차를 몰고 골목골목을 다니면서 아이들 픽업해서 교회로 데리고 옵니다. 그렇다고 기름비를 줍니까? 교회에서 돈이 나옵니깍? 계산해보면 교회를 섬긴다는 것은 손해가 이만저만이 아닌 일입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교회를 섬기는데 있어서는 계산없는 삶을 살지않고서는 교회를 섬길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계산 없는 삶을 살려면 어떻게 해야합니까? 그것은 이 세상의 어떤 것으로도 비교할 수 없는 귀한 구원을 얻었다는 확신이 있을때 가능합니다. 이런 구원의 감격이 없이는 교사도, 찬양대원도 못하는 겁니다. 목사, 장로, 권사의 직임도 감당할 수 없습니다.

이 세상에서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밖에 살지 못하다가 흙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는 나를, 독생자의 보혈로 말미암아 그의 이름안에서 하나님을 아바아버지로 부를 수 있는 은혜를 내 마음속에 확신하게 되었은 즉, 거기에서 바로 봉사라는 것, 섬김이라는 것이 나올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섬김의 봉사자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카메라가 있으시면 다시 들고 나옵십시오. 남이 없는 재물이 많으면 그 재물을 들고 나옵시오. 남이 없는 재능이 있으면, 남이 부족한 건강이 충만하면, 그것을 들고 나오십시오.

여러분들에게는 분명한 소유물이 있을 것입니다. 이 세상에 소유가 없는 사람이 없습니다. 무엇이든지, 하나님은 여러분에게 복을 베풀어 주셨습니다. 여러분들에게 주신 무언가 있는 소유물을 찾아보시고, 값으로 계산하지 말고 드리기를 원합니다. \\\"여호와께서 내게 주신 은혜를 무엇을 보답할꼬!\\\"하는 마음으로, 소유물을 가지고 나와서 주의 복음이 전파되는데 함께 동역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교회봉사의 현실에서는 아쉬움을 가질 수밖에 없습니다. 봉사하시는 교인들을 보면 바로 그 사람이 그 사람입니다. 찬양대원이 교사로, 교사가 부엌에서... 아침 일찍 교사하고 성가대하고, 부엌에서 땀을 뻘뻘 흘리시면서 봉사하고 계십니다. 한사람이 1인2역, 1인3역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들, 오늘 이 시대는 전문화시대입니다. 이러한 시대에 우리교회가 후진교회가 되어서야 되겠습니까? 찬양에 은사가 있는 사람은 찬양만 하고 오직 찬양만을 생각할때에 그 찬양이 더 아름답지 않겠습니까? 가르치는 은사가 있고 아이들을 잘 돌보는 은사, 사람의 은사가 있는 이는 교사로서만 전념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또한 그럴때 주일학교가 부흥하지 않겠습니까? \\\'나는 가르치는 은사도 없다, 노래도 못한다, 그렇지만 손맛은 있다\\\'고 생각되시면 부엌에 가서 도우십시오.


어느 목사님이 다른 교회 집회에서 하루저녁집회를 마치고 식사를 하는데, 그 교회목사님이 강사목사님에게 어떤 분을 소개하더랍니다. \\\"목사님, 이 집사님이 우리교회의 평신도 챔피언입니다. 일주일 내내 교회 와서 사실 정도로 열심이신 분입니다. 성가대로, 교사로, 위원으로, 또... 얼마나 모범이 되는 지 모르겠습니다.\\\"하고 자랑을 하시더랍니다. 강사목사님은 그 집사님이 나가시고 난 후에 한마디를 던지셨답니다. \\\"목사님, 제가 선배라서 안해야될 만한 말 한번 해보겠습니다. 제 목회경험으로 봐서는 그분 그렇게 하면 안됩니다. 그렇게 하면 교회에 유익이 없고 그분도 오래 못합니다. 나름대로 사업도 하시고, 정당활동도 하신다면서요? 목사님, 그 분, 이틀 저녁은 사업하라고 보내시고요, 하루 정도는 정치활동하라고 보내시고, 이틀은 아버지 역할하라고 보내십시오. 안 그러면 그 사람 얼마 못가서 탈진합니다.\\\"

오늘, 우리 교회의 현실도 유사합니다. 열심있는 분들은 낮이고 밤이고 교회 와서 삽니다. 기도회다, 뭐다 하고 삽니다. 그러면 집에 있는 남편들께서 좋아하십니까? 가정의 주부이고 가정의 남펀인데 말입니다. 사업도 하고 가정도 지켜야 안됩니까? 그런데 왜 그렇게 못하십니까?

그것은 바로 여러분들께서 그분들을 그렇게 만드신 겁니다.

북한은 세가지 전략을 가지고 있다고 하지 않습니까? \\\'전군의 간부화\\\', \\\'전국토의 요새화\\\', \\\'전인민의 무장화\\\'가 바로 그것입니다. 우리 교회가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고 세상을 복음으로 정복하려면, \\\'전 성도의 참여화\\\', \\\'전 성도의 무장화\\\'가 이루어져야 합니다.

연말이 되면, 당회에서 이렇게 저렇게 사람들을 제직으로 임명합니다. 지금 우리 교회 제직이 무려 800명이 다 됩니다. 그런데 정기제직회를 한다고 하면 150명도 안 나옵니다. 관심이 없습니다.

교회를 섬기는 소수의 사람들만 보혈의 은혜를 입었습니까? 아니면 그 사람이 특별한 사람입니까? 우리는 모두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사람들이 아닙니까? 하나님의 은혜를 입었거든 내 생명, 하나님 독생자의 십자가 은혜로 말미암아 나의 새로운 삶이 시작되었거든, 값으로 환산할 수 없는 그 은혜를 입었거든, 요즘 새벽기도시간에 묵상하는 골로새서 2장 6절 말씀 \\\"그러므로 형제들이여 너희가 예수를 주로 받았거든 그안에서 행하십시오\\\"을 기억하시길 바랍니다. 우리가 예수를 나의 주로 받았거든, 여러분들에게 주신 하나님의 소유물이 어떤 것이든 드리시기를 바랍니다.


지금은 작고하신 서울벧엘교회의 하회룡 목사님의 책에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느 집사님이 성경학교 시즌이 되어 일을 맡고싶다며 찾아왔답니다. 그런데 그분은 언변이 무척 없으신 분이라 목사님 가슴이 철렁하더랍니다. 그런데 이 집사님이 대뜸 하시는 말씀이 \\\"아이들이 더워서 물을 많이 찾는다는데, 제가 이번에 물을 배달하는 일을 한번 맡고 싶습니다. 산에 가서 약수를 떠와 분말쥬스룰 풀어서 그것 한잔씩 아이들에게 나누고 싶습니다. 목사님, 그 일 맡겨주시겠습니까?\\\" 이 말을 들으신 목사님은 너무 기뻐서 \\\"아, 그러믄요, 그 일, 평생 계속하십시오.\\\"하고 말씀하셨답니다.

우리에게는 저마다 할 일과 은사가 있습니다. 이것을 나누어 지십시다. 우리 중에 음정박자가 가능하다면 성가대를 지원하십시오. 교사대 학생비율이 교육의 질을 좌우하므로 교사로 많이 지원하십시오. 지금 계획하고 있는 교육관보다 더 중요한 것은 선생님입니다. 시골 헛간에서 그 사랑이 넘치는 선생님 때문에 예수 믿고 오늘날 도시교회의 장로도 되시고 권사도 된 것 아닙니까?

정말 좋은 교회, 정말 은혜가 넘치는 교회는, 건물이나 숫자가 아니라 서로서로 봉사하려고 하는 교회입니다. 그것이 증거입니다.

우리, 진실로 은혜를 받았거든, 계산 없이 여러분들에게 주신 하나님의 소유물을 가지고, 본문 끝부분에 나오는 말씀, \\\"자기들의 소유로 저희를 섬기더라\\\"는 말씀을 기억하십시다.

성경은 소유관에 대해 청지기론을 가르칩니다. 우리가 땀 흘려 수고하여 내 이름의 집과 땅, 통장이 있지만, 성경은 그것이 관리하라고 맡긴 하나님의 것이라고 말합니다. 맡겨진 것 가지고 자기 것인줄 알고, 자기 마음대로 사용하다가 주님앞에 가면 얼마나 책망받겠습니까? 우리에게 무엇이 있던지간에 그것은 하나님이 주신 것이요, 하나님이 맡기신 것입니다.


대구 시내 어느 큰 교회를 다니다가 부부가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하고는 새로운 신앙생활을 한 가정이 있습니다. 얼마전 이 가정에 초대를 받아 이야기를 나누는 중에 마음에 참 감격스러운 도전을 받았습니다.

이 남편되시는 분은 대구시내 한복판에서 아주 유명한 성형외과를 운영하는 원장 의사입니다. 그는 대구 인근의 시골출신으로, 6.25를 겪으면서 때때로 먹을 것이 없어 일시적으로 고아원생활도 하던 중, 고학을 해서 의사가 되었습니다. 그 후 재물이 쌓이기 시작하며, 아주 부유하게 살면서 통합측의 큰 교회에서 생활해왔습니다. 그런데 은혜를 받고 나니, 자신의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답니다. 지금은 지산동의 어느 건물에 교회를 개척하고 섬기고 있습니다. 그리고 교회를 지을 새로운 땅부지에서 부인과 같이 여리고 돌 듯 한바퀴씩 돌면서 \\\"하나님, 이 땅을 주십시오\\\"하고 기도하고 계시는 중이랍니다. 또한 제주도땅에 신학교가 없음을 아시고 신학교를 세우기 위해 자신의 농장에서 나오는 모든 수확물을 드리면서 준비하고 있답니다. 물질적인 부분만을 말해서 죄송합니다만, 정말 하나님의 은혜를 깨달은 사람은 계산 없는 삶을 산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오늘 우리 가운데는 물질이, 학력이, 재능이, 성품이 나은 사람이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을 여러분의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것이라 여기시고, 감동이 오거든 하나님을 섬기는 귀한 봉사자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자비로우신 하나님, 이 한 해를 이제 얼마 남겨놓지 아니하면서, 지나간 날들을 되돌아보는 중에 우리에게 베풀어 주신 은혜가 너무나 큼을 다시 한번 생각하고 나에게 베푸신 새 생명의 역사, 값으로 따질 수 없는 이 놀라운 구원의 은혜를 베푸셨는데, 아버지 하나님, 오늘 우리는 이것을 가지고 내 마음대로 생각하며, 하나님을 섬기는 중에도 계산하며 섬길때가 많습니다. 오늘 주신 말씀을 통해 우리 마음을 한번 더 감동케 하시고 계산없는 봉사자가 되게 하시고, 정말 나에게 맡기신 소유물을 주님 위하여 최선을 다하여 헌신할 수 있도록 역사하여 주소서. 다음 주일은 특별히 추수감사절 예배입니다. 나에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무엇으로 갚을꼬! 하는 간절한 마음으로 정성을 다해 믿음으로 준비하여 하나님께 감사할 수 있도록 인도해 주옵소서. 예수님 귀하신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