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신토록 이렇게 섬기더라

종신토록 이렇게 섬기라 / 눅1:57-80

종신토록 이렇게 섬기라
눅1:57-80





구원 받은 하나님의 사람은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을 말씀하는 것이 본문입니다.
구원 받은 사람은 종신토록 하나님 앞에서 살아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은 언제 어디서나 하
나님을 의식하고 믿음으로 사는 사람을 말합니다.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일을 하나님이 기
뻐하실까? 이렇게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생각하고 적극적으로 살아가는 것 입니다.
성경은 어린 사무엘이 여호와 앞에서 자랐다고 말씀하고 있으며 삼 2:21 에녹은 300년 동
안 하나님과 동행하며 살았다고 증거하고 있습니다.창 5:22, 24

오늘 본문에 보시면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살았던 사가랴와 엘리사벳의 가정에 가브리엘을
보내셔서 요한의 탄생을 말씀하셨습니다. 사가랴는 천사 가브리엘에 의해 세례 요한의 수
태고지를 전달받고 그 사실을 믿지 못하였기에 요한이 태어날 때까지 벙어리로 지내야만
했습니다. 그가 벙어리 되었던 것은 자신과 엘리사벳이 나이 많아 늙었으니 어찌 아이를
낳을 수 있겠는가 하는 의심으로 그 징표를 보여 달라고 요구했기 때문입니다.

“보라 이 일의 되는 날까지 네가 벙어리가 되어 능히 말을 못하리니 이는 내 말을 네가
믿지 아니함이어니와 때가 이르면 내 말이 이루리라 하더라”(눅 1:20)
하신 말씀대로입니다. 그러나 그는 세례 요한이 태어나자 곧 그 이름을 \\\'요한\\\'이라 짓고
혀가 풀려 제일 먼저 전능하신 하나님을 찬송하였습니다. \\\"찬송하리로다. 주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시여. 주는 온 땅의 하나님이라 일컬음을 받으시리로다.\\\"

사가랴는 구속 역사를 언급하여 하나님을 주 이스라엘의 하나님이라고 불렀습니다. 하나님
께서는 구세주를 보내심에 있어서 특히 이 민족을 주목하셨습니다. 그러므로 그는 여기에
서 하나님을 주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시라고 부릅니다. 사가랴는 이제 메시야께서 친히 이
루실 구속 역사를 인하여 하나님을 송축하면서 이렇게 말 합니다.

종신토록 주의 앞에서 성결과 의로 두려움이 없이 섬기게 하리라 하셨도다 (눅 1:75)고 합
니다. 구속함을 입은 하나님의 사람은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성결과 의로 두려움이 없이
섬겨야 합니다. 어떻게 섬기는 것이 성결과 의와 두려움 없이 섬기는 길 일까요?
빛가운데 섬기는 것을 말 합니다. 구약성경의 마지막 책인 말라기서에 보면 메시야 되시
는 주님이 오시는 광경을 마치 돋는 해가 위로부터 우리에게 임하는 것과 같다고 했습니
다.
(눅 1:78) 돋는 해가 위로부터 우리에게 임하여
돋는 해는 rising sun, 일출을 말합니다. 장엄한 태양이 떠오르는 모습을 연상해 보십시
오. 시 19:5 해는 …그 길을 달리기 기뻐하는 장사 같아서 6 하늘 이 끝에서 나와서 하늘
저 끝까지 운행함이여 그 온기에서 피하여 숨은 자 없도다

(말 4:2) 내 이름을 경외하는 너희에게는 의로운 해가 떠올라서 치료하는 광선을 발하리
니 너희가 나가서 외양간에서 나온 송아지같이 뛰리라
이와 같이 하나님의 영광의 빛이 찾아오면 모든 병이 떠나가고, 모든 저주가 떠나가고, 모
든 어둠이 물러 날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오늘 본문이 말씀하시는 그리스도는 어떤 분 이십니까? 두 가지 멧세지를 꼭 기억 하시고
성탄을 맞이 하시기 바랍니다.

1. 예수님은 생명의 빛을 비추어 주시기 위해 오신 분 이십니다.

79, 어두움과 죽음의 그늘에 앉은 자에게 비추고
해가 돋으면 어두움은 물러갑니다. 해가 떠오르기 시작하면 어두움은 도망가 버리고 맙니
다. 예수님은 이와 같이 세상에 빛으로 오셨습니다.
빛으로 오신 예수님은 어두움을 몰아내셨습니다. 어두움은 죽음이라고 했습니다.
어두움은 사망이요, 빛은 생명입니다. 예수님은 죄와 사망으로 가득찬, 어두운 세상에 생
명의 빛으로 오셨습니다.

이사야 9장 2절에 보면 메시야의 출현을 생명의 빛이 비추는 것으로 예언했습니다. 다같
이 읽어 볼까요? 우리 교회 이름의 뜻이 여기 있습니다.
\\\"흑암에 행하던 백성이 큰 빛을 보았고 사망의 그늘진 땅에 거하던 자에게 빛이 비치도
다\\\"고 말씀하십니다. 여기서 큰빛이 누구이겠습니까? 그리스도이십니다.
흑암의 권세, 사망의 권세를 이기신 주님 이 분이 바로 큰빛이라는 뜻입니다. 이 예수님
이 오셨을 때 요한은 증거합니다.

(요 1:4)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예수님도 스스로를 자증하셨습니다.
(요 8:12) 예수께서 또 일러 가라사대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두움에 다
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
I am the light of the world 이 말씀은 요한 복음에 나타난 예수님의 7가지 I am
statement 가운데 두 번째 선언입니다. 이 말씀은 예수님의 자기 계시로서 하나님이신 그
분이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셔서 하실 자신의 역할과 사명이 무엇인지를 보여 주시는 위
대한 선언인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 말씀의 독특성은 또한 나만이 빛이라는 선언으로서 자신이 하나님이시라는 선언입니
다. 그래서 구약의 시편 기자도 여호와는 나의 빛이요 나의 구원이시니 내가 누구를 두려
워 하리요 라고 (시 27:1)고백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요한일서 1:5절에서도 하나님은 빛이
라고 선언합니다. 그런데 주님이 똑같게 말하는 것 입니다. \\\"나는 세상의 빛이라\\\" 빛의 역
할이 무엇일까요? 요 12:46…
(요 12:46) 나는 빛으로 세상에 왔나니 무릇 나를 믿는 자로 어두움에 거하지 않게 하려
함이로라

예수님만이 참 빛 생명의 빛입니다. 공자도, 석가도, 소크라테스도 모두 빛을 찾고자 했
던 사람이었지 빛이 아니었습니다. 사람들이 인류의 빛이라고 말하는 괴테가 죽으면서 마
지막 남긴 말이 <빛이 그립다>는 한 마디였습니다.
불교계의 어른이셨던 성철스님은 자기 마음은 지옥이라고 했습니다.
나의 가는 길이 저 아비규환 지옥으로 간다고 했습니다. 제대로 말했습니다.

이 세상에 스스로 빛이라고 하신 분은 오직 예수 밖에 없습니다. 왜냐면 그 분은 진실로
빛, 생명의 빛이기 때문입니다. 그 누구도 예수 밖에서 빛을 발견할 수 없습니다. 예수 외
에는 생명의 빛이 없습니다.

사람이 스스로 어두움에서 벗어 날수가 없습니다. 빛이 찾아와야 합니다. 사람이 노력한다
고 해서 광명의 세계가 찾아오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빛은 주님의 임재의 증거라고 할 수 있습니다. 구약의 불기둥도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하신다는 것을 보여주는 임재의 증거였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우리와 함께 하기 위해 찾아오신 하나님이십니다. 이것이 바로 예수님
의 탄생을 예언한 임마누엘의 의미입니다. 예수님의 탄생은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의
임재를 말 합니다.

마 1:23 …그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
하나님의 백성들과 함께 계시기 위해 우리를 찾아오신 하나님! 그 분이 바로 예수님이십니
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그래서 지금 하나님은 말씀으로 우리 가
운데 거하시는 것 입니다. 주의 말씀도 빛이십니다.

주님이 나와 함께 하신다면 두려울 것이 무엇이 있겠습니까? 빛 가운데 있으면 두려움이
사라집니다. 어둠이 항상 두려움을 가져다 주는 것 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빛으로 내게 찾
아오셔서 흑암에 행하던 나에게, 사망의 그늘진 땅에 거하던 나에게 생명의 빛을 주신 주
님은 나와 세상 끝날까지 항상 함께 있으리라고 약속하신 것 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서 하나님은 저와 여러분에게도 영원토록 함께 하시는 하나님 이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다시 한번 본문을 읽겠습니다.

흑암에 행하던 백성이 큰 빛을 보았고 사망의 그늘진 땅에 거하던 자에게 빛이 비치도다
빛이 위로부터 나에게 임해야 합니다. 돋는 해가 위로부터 우리에게 임하여 (78)
장엄한 태양이 찾아와야 하는 것 입니다. 생명의 빛이 영혼에 임하면 죽었던 심령이 거듭
납니다. 하나님의 생명을 받습니다. 생명이 빛이 가정에 임하면 죽었던 가정이 살아납니
다. 예수의 생명이 깨진 가정을 회복시켜주십니다. 생명의 빛이 교회에 임하면 죽어가던
교회가 살아납니다. 생명의 역사를 일으킵니다.

예수님만이 생명의 빛이십니다. 참 빛이십니다. 구원의 빛, 사랑의 빛, 진리의 빛, 치료
의 빛, 회복의 빛, 소생의 빛이십니다.
마음이 어두운 사람은 절망합니다. 낙심합니다. 괴로워하게 됩니다. 미워하게 됩니다.

(요일 2:11) 그의 형제를 미워하는 자는 어두운 가운데 있고 또 어두운 가운데 행하며 갈
곳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어두움이 그의 눈을 멀게 하였음이니라.
어두움 가운데 계속 거하면 어두움이 눈을 멀게 합니다. 바다 깊은 속에 사는 물고기는 눈
이 먼다고 합니다. 카나다 서부 깊은 탄광에서 일하는 당나귀들도 눈이 멀었다고 합니다.
빛이 있어도 눈이 어두우면 볼 수 없습니다.

눈이 있어도 빛이 없으면 볼 수 없습니다. 요8:12 생명의 빛이라고 말씀하신 예수님은 요9
장에서 날 때부터 소경인 자의 눈을 뜨게 해주셨습니다.
실로암의 은혜를 주셨습니다. 성탄을 통해 저와 여러분의 마음의 눈도 밝아지고, 가정도
밝아 지고, 우리 교회도 밝아지기를 축복합니다. 생명의 역사가 일어나기를 바랍니다.

(엡 5:8) 너희가 전에는 어두움이더니 이제는 주 안에서 빛이라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
(롬 13:12) 밤이 깊고 낮이 가까왔으니 그러므로 우리가 어두움의 일을 벗고 빛의 갑옷을
입자
이제부터는 빛의 자녀로 살아가야 합니다. 빛의 갑옷을 입어야 합니다. 빛 가운데서 행해
야 합니다. 어둠의 일을 벗어야 합니다. 주님의 빛으로 인도를 받아야 합니다. 나는 세상
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둠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고 하셨습니
다. 하나님 나라에 이르기까지 저와 여러분을 빛가운데서 인도하기 위해서 오신 예수님을
찬양하시기 바랍니다.

2. 평강의 길로 인도해 주십니다.

(눅 1:79) 어두움과 죽음의 그늘에 앉은 자에게 비취고 우리 발을 평강의 길로 인도하시리
로다
생명의 빛이 되신 예수님은 우리 발을 평강의 길로 인도하신다고 했습니다.
돋는 해가 비추일 때 길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전에는 어두움 속에서 길이 보이지 않아 헤
맸는데, 이제는 길이 보입니다. 그 길은 평강의 길입니다.

성경은 악인에게는 평강이 없다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모두 다 어두움에 속하여 평강의 길
을 알지를 못했습니다. 평강을 잃어 버린 사람들이었습니다.
이 세상에는 의인이 하나도 없다고 하였습니다.

(롬 3:10) 기록한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롬 3:11)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롬 3:12) 다 치우쳐 한가지로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
나도 없도다 (롬 3:13) 저희 목구멍은 열린 무덤이요 그 혀로는 속임을 베풀며 그 입술에
는 독사의 독이 있고 (롬 3:14) 그 입에는 저주와 악독이 가득하고 (롬 3:15) 그 발은 피
흘리는 데 빠른지라 (롬 3:16) 파멸과 고생이 그 길에 있어 (롬 3:17) 평강의 길을 알지
못하였고 (롬 3:18) 저희 눈앞에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없느니라 함과 같으니라

파멸과 고생의 길을 걸어가던 우리에게 돋는 해가 떠올라 생명의 빛이 비쳐지고 평강의 길
이 열리기 시작한 것 입니다. 예수 생명의 빛이 비추이는 곳에는 평강이 임하고, 평화가
이루어지고, 화평한 관계가 형성되며, 마음에 평안이 찾아 옵니다.

평안이 없는 사람은 크리스챤이 아닙니다. 다른 사람을 전도 한다는 것도 바로 이 평강의
길로 인도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은혜를 받은 사람들에게 즉각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은 그
맘에 평강이 찾아온다는 사실 입니다.

여러분 평안 하십니까? …. 왜 평안 하십니까?
예수님이 평강의 왕으로 이 세상에 임하셨기 때문입니다.

(사 9:6)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 어깨에
는 정사를 메었고 그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
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
예수님은 평화의 왕자이십니다. 에수님은 바로 복중의 복인 평강을 주십니다.
(히 7:2) 아브라함이 일체 십분의 일을 그에게 나눠 주니라 그 이름을 번역한즉 첫째 의
의 왕이요 또 살렘 왕이니 곧 평강의 왕이요

구약에 나타난 하나님의 스테파니 라고 하는 예수님의 모습도 평강의 왕의 모습이었습니
다. (골 1:20) 그의 십자가의 피로 화평을 이루사 만물 곧 땅에 있는 것들이나 하늘에 있
는 것들을 그로 말미암아 자기와 화목케 되기를 기뻐하심이라
십자가의 근본적인 의미도 죄라는 장벽을 헐고 하나님과 우리를 화평케 하신 것입니다. 십
자가 정신은 평화의 정신 입니다. 그래서 사도는 이렇게 말합니다.

(엡 2:14)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중간에 막힌 담을 허시고 중간
에 막힌 담은 죄악의 담이었습니다. 사망의 담이었습니다. 그런데…
(요일 4:10)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이 우리
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위하여 화목제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니라
하나님의 사랑이란 우리들과의 관계회복을 위해 당신의 아들을 화목제물로 내어 놓으신데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오신 것 입니다.

(사 53:5)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
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우리가 이 평안을 누릴 수 있게 된 것은 거저 된 것이 아닙니다. 그가 내 대신 징계를 받
으셨기 때문 입니다.
예수님은 바로 이 땅에 이런 평안을 선물로 주려고 오신 것 입니다.
(눅 2:14)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 중
에 평화로다 하니라
(요 14:27)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
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잠 17:1) 마른 떡 한 조각만 있고도 화목하는 것이 육선이 집에 가득하고 다투는 것보다
나으니라

가진 것이 없어도 가정에 화목이 있고, 마음의 평강이 있으면 그곳이 주님이 계시는 천국
가정인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재물이 아무리 많아도 평강이 없고 화평이 없으면 그 가
정은 지옥 입니다. 이 평강의 복이 넘치시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원 합니다.

(행 9:31) 그리하여 온 유대와 갈릴리와 사마리아 교회가 평안하여 든든히 서 가고 주를
경외함과 성령의 위로로 진행하여 수가 더 많아지니라
교회도 마찬가지 입니다. 가장 건강한 교회 부흥의 모습은 바로 이것 입니다. 교회가 평안
하여 든든히 서가고… 우리교회도 평안하여 든든히 서가는 교회가 되도록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저와 여러분의 발걸음이 닿는 곳 마다 화평의 역사가 있기를 바랍니다.
분쟁을 만드는 사람이 되지 말고, 화평케 하는 자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롬 12:18) 할 수 있거든 너희로서는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평화하라

어둠 속에 있던 우리들, 사망의 그늘에 앉아 있던 우리들, 흑암에 붙잡혀 있었던 우리 백
성들에게도 주님은 태양 보다 밝은 생명의 빛으로, 영광의 빛으로 찾아오셨습니다. 지난
120년 동안 우리 민족은 어둠의 옷을 벗고있습니다.

저주와 악독과 파멸과 고생의 길로 헤매이던 우리들, 평강의 길을 알지 못하던 우리들에
게 주의 평안을 주시려고 평강의 왕으로 찾아오신 주님, 이 주님을 아직 영접하지 못하신
분들은 오늘 주님을 영접하시기 바랍니다.

이제 오직 심령으로 새롭게 되어 (엡4:23)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
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 (엡4:24)고 합니다.

이 주님을 영접하신 분들은 계속해서 빛의 자녀로 살아가고, 계속해서 평강의 길로 인도
하시는 주님을 온전히 따라 가시는 축복된 사람이 될 수 있기를 축원 합니다.

메리 크리스마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