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사람과 이웃 섬김

하나님 사랑과 이웃 섬김(Love the Lord & serve your neighbor)
막12:28-37,신6:4-5





유대인 탈무드에는 6000가지 이상의 \\\'하라\\\'와 \\\'하지 말라\\\'는 규정이 진술되어 있습니다. 이토록 많은 규정들의 핵심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어떤 서기관이 의문을 품고 있었습니다. 즉 그 규정들의 핵심을 알아야 율법의 근본 정신이 무엇인지를 알 수 있으며 또한 그것을 따라 행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아마 그 서기관은 자신이 탈무드에 언급된 그 규정들을 모두 지켰어도 생명력 있는 신앙을 소유하지 못했기 때문에 모든 의문에 대답 잘 하시는 예수께 나아와 계명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물었을 것입니다.

이러한 신앙의 고민은 종교 개혁자 루터(Martin Luther)를 통해서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루터는 수도원으로 들어가 죄악의 유혹에서 완전히 벗어난 삶을 위해 고행을 비롯한 신앙 훈련에 열중했습니다. 그러면 그럴수록 그에게는 죄의 유혹이 강해져서 절망적인 상태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중에 사도 바울의 믿음으로만 의롭게 됨(以信稱義)에 대한 가르침의 참된 의미를 깨닫고 구원의 환호성을 지를 수 있었습니다. 그리하여 그에게 이신칭의의 사상이 기독교의 핵심으로 받아들여졌던 것입니다.



이처럼 본문에 언급된 서기관도 기쁨과 감사와 감격이 없는 신앙 생활에 회의를 느꼈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참 신앙의 본질이 무엇인가 알고 싶어서 예수께 \\\"모든 계명 중에 첫째가 무엇이니까\\\"(28절)라고 가장 중요한 질문을 던졌을 것입니다. 아마 그 질문에 그의 모든 삶과 사고가 집중되어 있었을 것입니다. 특히 예수의 대답에 대한 그의 반응 곧 \\\"마음을 다하고 지혜를 다하고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과 또 이웃을 제 몸과 같이 사랑하는 것이 전체로 드리는 모든 번제물과 기타 제물보다 나으니이다\\\"(33절)란 고백 가운데서 그가 무엇을 고민했는지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의 고백은 분명히 랍비적인 것이 아닙니다. 랍비들은 번제물이나 기타 제물을 결코 낮게 평가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이 서기관은 예수의 대답을 듣고 곧바로 그런 고백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신앙이 형식에 얽매여 저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고 많은 고민을 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런 말을 했다가는 출교(excommunication)를 당하게 되기 때문에 혼자서 고민했을 것이며 또한 자기의 생각이 옳았음을 인정해줄 권위 있는 선생이 필요했을 것입니다. 그런 그의 고민을 해결시켜 줄 수 있었던 분이 예수뿐이심을 깨달았기에 그는 예수께 나아와서 자신의 생각이 올바르다는 것을 인정받고 싶었던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께서 그에게 대답하신 내용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지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1. 하나님을 사랑함

하나님에 대한 인간의 의무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질문한 그 서기관에게 유대인들에게 가장 친숙한 \\\'쉐마\\\' 부분 곧 \\\"이스라엘아 들으라 주 곧 우리 하나님은 유일한 주시라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29,30절; 신6:4, 5)는 말씀으로 첫 번째 답을 주셨습니다. 이 대답 속에는 다음 두 가지 의미가 함축되어 있습니다.

첫째, 하나님의 유일성을 믿는 데서 하나님께 대한 인간의 의무가 시작된다는 것입니다.

이 말은 인간의 의무를 행할 대상이 유일하신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대상이 없는 의무 수행은 있을 수 없습니다. 대상이 확실히 정해진 후에 그 대상에 대한 의무가 비로소 실행될 수 있습니다. 유일하신 하나님을 만나지 못한 자들은 각기 나름대로 알고 있는 신들에게 종교적 의무를 행할 것입니다. 그러나 기독교는 성경 가운데 분명하게 자신을 계시하신 그 하나님께 종교적 의무를 수행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유일하신 하나님이시기에 그 외에 다른 신은 있을 수 없습니다.

이방인들이 섬기는 신들은 신의 이름은 가지고 있으나 그 이름은 어디까지나 인간들에 의해서 부여된 것에 불과합니다. 고전8:5,6에 \\\"비록 하늘에나 땅에나 신이라 불리는 자가 있어 많은 신과 많은 주가 있으나 그러나 우리에게는 한 하나님 곧 아버지가 계시니 만물이 그에게서 났고 우리도 그를 위하여 있고 또한 한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계시니 만물이 그로 말미암고 우리도 그로 말미암아 있느니라\\\"라고 하였습니다. 웨스트민스터 소 요리 문답(The Westminster Shorter Catechism) 제 5문에서 \\\"하나님 한 분 외에 또 다른 하나님이 있습니까?\\\"라고 질문하고, 거기에 대해 \\\"한 분뿐이시니, 참되시고 살아 계신 하나님이십니다\\\". 라고 대답하고 있습니다. 이 대답은 단순히 하나님만 유일한 신이심을 고백하는 것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만이 우리 예배의 대상이시며 우리의 창조주 되시며 우리의 인도자 되심에 대한 고백을 포함합니다.

둘째, 그러기에 인간은 유일하신 하나님만을 사랑해야 합니다.



유대인들은 이 표현을 오해하여 인간에 대해 행해야 할 의무도 하나님께 드림이 되면 그만이라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막7:11 \\\"너희는 이르되 사람이 아버지에게나 어머니에게나 말하기를 내가 드려 유익하게 할 것이 고르반 곧 하나님께 드림이 되었다고 하기만 하면 그만이라 하고\\\" 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 표현은 그런 뜻이 아니라 하나님 외엔 다른 우상들을 사랑해서는 안 된다는 의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구약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을 섬기면서 이방의 우상들인 바알과 아세라 그리고 몰렉을 함께 섬겼습니다. 이러한 혼합주의(syncretism)는 인간들로 하여금 다신론에 빠지게 하고 결국은 유일하신 하나님을 배척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선지자들을 보내시어 우상 숭배로 종교적 혼합주의에 빠진 이스라엘 백성들을 책망하셨습니다. 이런 점에서 타종교에도 구원이 있다고 가르치는 종교적 다원주의(religious pluralism)는 매우 합리적인 이론 같으나 실상은 구약 이스라엘 백성들이 범했던 혼합주의와 다를 바 없는 것입니다.



2. 네 이웃을 섬김.

인간에 대한 인간의 의무입니다. 사도 야고보는 \\\"만일 형제나 자매나 헐벗고 일용할 양식이 없는데 너희 중에 누구든지 그에게 이르되 평안히 가라, 더웁게 하라, 배부르게 하라 하며 그 몸에 쓸 것을 주지 아니하며 무슨 이익이 있으리요\\\"(약 2:15, 16)라고 말함으로써 형식적이고 위선적인 믿음을 경계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사도 요한도 \\\"만일 우리가 하나님과 사귐이 있다 하고 어두운 가운데 행하면 거짓말을 하고 진리를 행치 아니함이거니와\\\"(요일1:6)라고 표현하여 믿음과 행위 사이에 깊은 상관 관계가 있음을 보여주었습니다. 이와 같은 내용은 믿음을 강조하는 사도 바울에게 있어서도 마찬가지로 강조합니다.

바리새인들은 인간에게 행해야 할 의무는 하나님께 행하는 것으로 상쇄될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이웃에 대한 의무에 매우 무관심했습니다. 예수는 그들의 잘못을 잘 알고 계셨기에 참된 믿음을 소유한 자는 반드시 이웃에 대해 사랑을 베풀 줄 알아야 함을 말씀하셨습니다. 그렇지 못하면서 자신이 참된 신앙인이라고 말하는 자들의 위선에 대한 요한은 \\\"빛 가운데 있다 하며 그 형제를 미워하는 자는 지금까지 어두운 가운데 있는 자요\\\"(요일2:9)라고 선언했습니다.



오늘 마가복음과 병행하는 누가복음10:25-37에는 이 말씀을 예수께서 선한 사마리아 사람비유를 하십니다. 우리는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에서 우리의 이웃이 누구인지를 발견하게 됩니다. 우리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이 곧 우리의 이웃입니다. 우리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그들에게 우리의 힘이 닿는 대로 행하는 것이 이웃에 대해 사랑을 실천하는 것입니다. 우리교회나 성도들이 하나님께 대한 뜨거운 사랑 곧 믿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웃을 섬기는 일에 소홀하다는 지적을 받고 있습니다. 디아코니아가 부족하다는 말씀입니다.

오늘날 교회는 해외 선교라는 큰 계획을 세워 놓고 그것을 실천하기 위해 많은 정성과 돈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해외 선교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교회 주위에서 도움을 필요로 하는 자들에게 도움을 주는 것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점점 삭막해지고 이기적인 이 세태를 보면서 우리는 우리의 이웃이 누구인지를 살펴보고 그들에게 그리스도의 사랑을 전해야 합니다. 만약 이런 구체적인 행동 없으면 우리의 신앙은 죽은 것이며 또한 세상은 그런 우리의 모습에 대해 비난하게 되고 그러한 교회의 전도도 업신여깁니다. 여기서 우리는 눈에 보이는 형제를 사랑하지 못하는 자가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다는 평범한 진리를 되새겨 보아야 할 것입니다.



제가 부석교회를 섬길 때 교회창립 30주년을 맞이하여 기념교회를 세웠는데 그것이 감곡교회(영주시 부석면 감곡2리 298번지)입니다. 교회개척을 기도하는 중 마침 감곡리에서 한씨 부부가 교회를 나왔습니다. 그들이 목양실에 들어와서 자기마을에 교회를 세워달라고 하였습니다. 우리는 기도하던 일이니까 그것이 주의 뜻인 줄 알고 그곳에 교회를 개척하기로 하고 한씨 집터가 넓어서 터를 제공함으로 예배당을 지었습니다. 김태석 장노님이 上梁에다가 主務목사 鄭永和라고 기록하고 우시는 것이었습니다. 교회를 개척한 것은 목사님 덕분이라고 했습니다.

지금대구 내당교회를 담임하는 조석원목사가 초등학교 선생님이신대 초대전도사로 부임해왔습니다. 장로회신학대학교 학부3학년에 입학하여 신학을 시작하고 매주일 개척교회에 와서 전도하고 설교하고 올라갔습니다. 그러던 중 한 여학생이 중병으로 앓게 되었습니다. 수술을 해야하는데 돈이 없어 죽을 수밖에 없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집으로 무명으로 거액의 돈이 전달되었습니다. 이름도 밝히지 않고 \\\'예수를 믿는 사람으로부터\\\'라고 되어 있었습니다. 이것이 도화선이 되어 전도가 되기 시작하여 교회가 든든히 서가고 교역자가 10여명이나 나왔습니다. 제가 짐작키로 그것은 조석원전도사가 한일 같은 데 아직 까지 비밀입니다. 이웃을 섬김의 힘이 얼마나 큰지를 알게되었습니다.



결론입니다.



여기 등장하는 서기관은 예수님으로부터 칭찬을 받은 유일한 바리세인입니다. 그의 질문은 정직했고 단도직입적이었습니다. 우리의 삶의 여정 속에서 일어나는 의문들을 누구를 통해 해결할 수 있겠습니까? 주님 앞에 조용히 나아가 주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면 주님은 꼭 대답해주십니다. 예수님은 십자가로 하나님사랑과 이웃사랑을 완성하신 분입니다. 위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고 섬기라고 하시는 예수님이 우리의 답이십니다.